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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데올로기적 일자리나누기논리를 버리고 고용안정과 생활소득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금속노조연구원   |  
정부는 이데올로기적 일자리나누기논리를 버리고 고용안정과 생활소득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상호(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연구위원)


현재 한국사회는 고용악화를 넘어 고용위기로 치닫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경제위기 이후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실업대란의 위험에 대해 안이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고용안정을 위한 직접적인 지원책 보다 경제살리기를 위한 대기업 지원, 소위 ‘녹생성장’ 이라는 삽질-토건경제의 활성화를 통한 질 낮은 일자리의 제공, 사회복지교육 서비스 일자리에 대한 소극적 재정투입 등 실효성있는 정책을 제대로 구사하고 있지 못하다. 특히 실물경제의 위기가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제조업에 대한 고용대책은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제조업에 대한 종합적인 지원대책(고용, 생산과 투자)이 마련되지 않으면, 실업대란이라는 파국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자리정책 중 특히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이 소위 ‘임금삭감을 전제로 한 일자리나누기’이다. 11월 중순 매일경제의 기획시리즈로부터 시작된 일자리나누기 캠페인은 ‘대졸초임의 인하, 임금동결과 삭감을 전제로 한 일자리나누기가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라는 단순논리를 주장하고 있다. 조중동을 비롯한 일부 보수언론이 이러한 일자리나누기캠페인에 동참하고 난 후, 올해 초부터 지경부와 청하대에 이어 대통령까지 ‘임금삭감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사용자의 일자리나누기논리는 심각한 오해와 왜곡에 근거하고 있는 이데올로기공세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된다. 일반적인 의미로 일자리나누기의 핵심은 임금삭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노동시간의 단축을 통해 고용안정성을 확보하고, 이에 기반한 노사정의 비용분담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가교역할’에 있는 것이다. 일자리나누기가 ‘일자리쪼개기’가 안될려면 실노동시간의 대폭적인 단축을 전제로 한 다양한 근무형태의 도입과 교대제개편, 노동시간제도의 혁신 등이 필요하다. 유럽에서 일자리나누기는 실노동시간의 단축과 교대조를 늘리는 근무형태의 변경을 기본으로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현재 정부와 대기업이 주장하는 ‘임금삭감을 전제로 한 일자리나누기’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먼저 제조업의 경우 임금구성의 특징인 시급제의 현실을 무시하고 있다. 5인 이상 전체사업장(2007년 9월 기준)의 월 급여총액이 2,127,430원, 초과급여 159,599원(총액 대비 약 7.6%)이고, 중소제조업(300인 이하) 사업장의 경우 월 급여총액 1,751,132원, 초과급여 308,071원(총액 대비 약 17.7%), 특별급여 406,933원(총액 대비 23.2%)에 불과하다. 이미 제조업의 경우 생산감축으로 인해 잔업과 특근이 사라진지 오래다. 결국 중소제조업 사업장 노동자들은 현재 월 100만원 정도의 임금으로 4인 가계를 꾸리고 있는 것이다. 이미 생존의 위기에 빠진 사람들에게 ‘임금삭감을 통한 일자리나누기’는 죽으라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노동시간단축분의 일정분을 보전하는 방향으로 생산직의 월급제가 도입되어야 한다.

한편 ‘임금삭감을 전제로 한 일자리나누기’가 대안이라면 고소득자(간부/임원)의 연봉축소를 통해 모범을 보여야 한다. 일자리나누기를 위해 총노동비용의 축소가 필요하다고 한다면, 저임금노동자들 보다 고임금 간부사원과 임원의 월급/연봉을 대폭 축소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다. 이는 이미 미국의 대통령 오바마가 월가의 임원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내용이다. 설혹 노동비용(인건비)의 절감이 절실히 요구되는 경제위기국면이라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임금소득자 중 고소득층에 대한 임금자제와 동결은 타당성이 있는 주장이지만, 중저임금 노동자에게 이를 강요하는 것은 시장의 논리에서도 맞지 않다. 오히려 간부와 임원, 소위 사회지도층에 해당하는 특권계층들이 자신의 소득(임금, 금융 및 자산소득 등)을 줄이고 이를 고용안정과 신규채용에 투입할 수 있다면 고용창출효과뿐만 아니라, 내수시장의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임금삭감을 통한 일자리나누기는 실질적인 고용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설혹 노동시간단축에 따른 임금축소방안에 대해 노동조합이 전향적으로 검토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비용부담을 통해 고용유지가 제대로 될지가 불확실하다. 고용안정을 위한 제반조치(생산적 투자와 인적 투자 등)에 대한 사용자의 책임있는 조치가 동반되어야만 고용유지라도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만일 정부와 사용자의 주장이 진정한 의미의 비용 및 고통분담이라고 한다면, 기존 취업자와 사용자의 연대책임을 통해 총비용의 절감을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을 종합적으로 강구해야 하고, 비용절감을 통해 확보된 투자여력을 청년취업예정자의 신규채용과 비정규직의 정규직전환에 투입한다는 사용자의 결단과 선언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임금삭감을 통한 고용유지는 산업연관효과와 고용유발효과측면에서 오히려 고용에 역효과를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설령 개별사업장에서 임금동결과 삭감을 통해 고용유지를 성공한다고 하다라도, 일방적이고 대폭적인 임금축소는 산업연관관계를 통해 타 사업장과 업종, 사회적 차원에서 고용축소효과를 발휘한다. 생산 및 투자경로를 통해 발생하는 고용역효과는 임금소득의 축소-가처분소득의 감소- 총소비축소-총생산축소-총투자축소-고용축소 등의 경로를 통해 총고용측면에서 부정적인 외부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즉 임금동결과 삭감 보다는 고용유지와 생활안정을 위한 정부의 사회적 책임차원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소득을 보전할 수 있는 정부보조금의 확대가 고용효과측면에서 더 시급히 요구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정부와 사용자는 임금삭감을 ‘전제로 한’ 일자리나누기를 주장하였지만, ‘임금삭감’이 조건이 아니라, 목표였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소위 노사민정이라는 사회적 담합기구에서 언론에 떠들고 있는 합의문이 그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임금삭감’의 구차한 변명만이 존재할 뿐, 고용안정과 고용창출에 대한 명확한 사회적 책임방안이 전혀 없다. 지금이라도 일자리나누기의 진정한 의미를 되살리고 싶다면, 실질적인 고용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실노동시간단축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진정 내수시장의 활성화와 고용창출의 가능성을 높이고자 한다면, 고용안정과 생활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정부와 사용자의 적극적이고 책임있는 결단과 실천적 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