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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금속노조의 조직력을 갉아먹고 있는가?

홍석범 /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작업장 노사관계에서든, 대정부 투쟁 또는 사회적 캠페인에서든 노동조합이 상대방에게 자신의 입장을 선명하게 각인시키고 자신의 요구를 효과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의 조직자원이 필요하다. 하나는 조직규모(또는 조직률)이며, 다른 하나는 조직력이다. 전자가 노동조합 역량의 양적 차원이라면, 후자는 질적 차원의 조직역량을 뜻하는데, 서로가 뒷받침되지 않은 채로는 지속적으로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 두 가지는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산별노조운동 영역에서 보다 많은 관심을 끄는 주제는 후자인 조직력이다. 기업별노조와 비교해볼 때 양적 동원능력은 훨씬 더 강하지만, 반대로 그 내부의 이질성, 균열구조 또한 크고 다양해진 까닭에 구성원들 간의 결집성은 오히려 약화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오페와 비젠탈(Offe and Wiesenthal)이 지적했듯이, 노동조합 규모를 마냥 늘리기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조직규모 증가가 야기하는 관료제의 확산, 조직력의 훼손을 감안해본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최대의 조직규모가 아니라 조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조직규모를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달리 정의될 수 있는 모호한 개념이기는 하나, 노동조합의 조직력이란, 그 중에서도 특히 산별노조의 조직력이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원리 혹은 규범을 동시에 내포하는 개념이다. 첫 번째는 집단주의다. 이것은 개인주의와 대비되는 것으로서 노동조합이 지향해야 할 조직구성 원리를 뜻한다. 두 번째는 연대주의다. 이것은 배타주의에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노동조합이 지향해야 할 조직운영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규범은 조직의 제도(hard aspects, 노동조합 규약, 규칙 등 공식적이고 명시적인 요소들)나 문화(soft aspects, 조직분위기, 집단정체성 등 비공식적, 비형식적 요소들)를 통해 그 실체를 드러내는데, 조직의 리더십이 이러한 규범들을 보존하고 실현하기 위해 활동하며 조직 구성원들 또한 그러한 규범에 복무하고 실제 참여행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때 우리는 이를 두고 노동조합(산별노조)이 강력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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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는 어떠한가? 아쉽게도 오늘날 금속노조의 상태는 위의 기준들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해관계만을 중시하고, 외집단에 대해서는 배타적․폐쇄적․공격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노동조합 멤버십을 갖고 있으되 철저하게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한에서만 조합원 신분을 유지하거나 노동조합 활동에 참여하는 등 배타적인 집단주의나 계약적 연합관계와 같은 모습들이 우리에게 보다 익숙한 풍경들인 까닭이다. 뿐만 아니라 금속노조의 규칙과 제도, 집행력과 리더십은 이러한 배타주의적 또는 개인주의적 행위들을 제대로 제어하고 해소하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그 속에서 산업-업종, 직종, 고용형태, 원하청지위, 기업규모 등과 같은 여러 가지 분할선들이 조장하는 차이와 이해관계 갈등들이 온존한 채 산별노조라는 허울만이 화려하게 빛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금속노조의 조직력이 이 같은 상태에 처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도대체 무엇이 금속산별노조의 조직력을 갉아먹고 있을까? 가장 흔히 거론되는 요인 중 하나가 바로 노동조합 활동을 약화시키는 각종 법제도적 환경들이다. 예컨대, 현장의 노동조합 간부 규모 그 자체를 물리적으로 제약하는 타임오프제도, 회사측 기업노조 설립을 용이하게 만듦으로써 신규노조 설립을 방해하고 소수노조의 교섭권 및 쟁의권을 무력화하는 복수노조 및 교섭창구단일화제도, 산별노조의 단체교섭권과 쟁의권을 제약하는 기업별노조 중심의 노조법 및 노동행정 등 노동조합 활동 그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여러 법제도적 요소들이 금속노조 내 각급단위로 하여금 자기 사업장만을 중심으로 하는 구심력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여론 또한 단골로 언급되는 요인 중 하나다. 노동조합 활동을 바라보는 사회의 부정적 시선 혹은 조합원이나 현장간부 주변인들의 만류가 노동조합에 대한 참여 자체를 꺼려하게 만드는 원인이라는 점이다. 주지하듯이, 주류 미디어 담론들은 일상적으로 금속노조에 대해 부정적인 프레임(예: 귀족노조, 정규직 대공장노조, 억대연봉 생산직)을 강하게 덧씌우고 있으며, 심심찮게 들려오는 대공장 노조간부들의 채용비리 연루 사건이나 일부 대공장 노동조합의 비정규직 배제 행위들은 이 같은 프레임에 날개를 달아준다. 이처럼 조직노동이 시민들로부터 지지받지 못하는 사회적 풍조와 운동지형이 노동조합에 대한 조합원들의 자부심, 소속감, 효능감을 크게 약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에서 노동조합운동이 사회적으로 환대받거나 제도적으로 우호적인 환경에 놓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심지어 87년 노동자대투쟁 시기에도, 96-97년 총파업 시기에도, 2000년대 초반 민주노동당이 원내진출에 성공하고 금속노조가 산별노조로 탈바꿈했을 때에도,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조합원들 스스로의 효능감은 높아졌을지언정 혹은 이미 노동조합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의 노동운동 및 시민사회운동에 대한 참여는 높아졌을지언정, 노동조합이 다수의 대중들로부터 강하게 지지받았던 적은 없었다.

 

현재 금속노조가 겪고 있는 조직력 약화의 원인을 노동조합 외부로 돌리는 태도는 -약간의 논리적 비약만 보태면- 주체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무책임한 운명론적 관점으로 이어질 여지가 크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활동가들이 보다 지향해가야 할 자세는 오히려 우리 노동조합운동 내부를 먼저 되돌아보면서 그 속에서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찾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 따라 이번 이슈페이퍼에서는 금속노조의 조직력 약화를 야기하는 주요 요인들을 산별노조 또는 노동운동 내부에 천착해서 짚어보고자 한다. 조합원 개인 차원에서, 조직운영이나 리더십 차원에서, 조직문화나 소통 차원에서, 그리고 노동조합의 역사 차원에서 산별노조의 조직력을 약화시키는 핵심요인들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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