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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단축 프레임 새롭게 짜기

금속노조연구원   |  

 

 

  노동시간 단축 프레임 새롭게 짜기

 

홍석범 노동연구원 연구위원

   

114개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일하는 나라

 

그간 널리 회자되어 왔듯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긴 시간 일을 하는 나라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 취업자 1인당 연평균 실노동시간은 2,193시간으로 OECD 평균 1,749시간에 비해 444시간이나 많다. 하루 8시간을 기준으로 할 경우 OECD 평균에 비해 55.5일을 더 일하는 셈이니 1열 두 달이 아니라 열 네 달이란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부끄럽게도 지난 15년 동안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최장시간노동국가라는 타이틀을 단 한 번도 탈피하지 못했다.

 

두 번의 큰 선거가 치러지는 올해의 정치정세 속에서 우리 노동운동은 자본과 정부의 무관심과 탄압 속에서 그동안 억눌려왔던 다양한 노동의제를 힘 있게 주장하고 있고, 그 한 가운데에 장시간노동이 자리 잡고 있다. 양대노총은 노동시간 단축을 핵심의제로 설정하였고, 우리 금속노조 또한 노동시간 단축과 심야노동 규제를 대정부 요구안으로 제시하며 투쟁을 전개하는 중이다.

 

정치권과 노사정테이블에서도 노동시간 단축에 관한 활발한 논의들이 이뤄지고 있다. 노사정위원회가 올해 3월부터 실근로시간단축위원회를 가동시키는가 하면 제 정당들은 모두 노동시간 단축을 19대 총선공약으로 비중 있게 다루었다. 뿐만 아니라 고용노동부도 올해 초부터 스스로가 부정해왔던 휴일노동의 연장근로 산입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종전에 고수해왔던, ‘9월 정기국회에서 휴일노동을 연장근로에 포함시키는 근기법 개정안을 제출하겠다는 입장이 얼마 전 충분한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입법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후퇴했고, 노동시간 단축을 주장하는 정부의 의도도 정확하게 알 길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재 장시간노동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유례없이 의제화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정치권의 노동시간 단축 관련 총선공약 평가

 

한편, 이렇듯 활발하게 전개되는 노동시간 단축 논의 속에서도 허전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노동시간 단축의 정책적 목표가 일자리 창출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보다 숙고해야 할 노동시간 단축의 기본적인 가치인 건강권과 재생산권, 인간답게 살 권리가 유실되고 있다.

 

우선 이번 제19대 총선 당시 각 정당별 노동시간 단축 공약을 살펴보자. 새누리당은 근로시간을 줄여 근로자의 행복을 높이겠습니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서 실근로시간 단축’, ‘교대제 개선’, ‘유연근로시간제 확대라는 정책 목표를 제시하였다. 구체적으로 실노동시간을 단축하는 중소제조업체에게 임금감소분을 일부 지원하거나 주야2교대제를 실시하는 중소기업이 교대제를 개편할 경우 한시적으로 전환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밖에 휴일 없는 장시간노동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는 방안도 제시하고는 있으나 또 다른 선택지로서 휴일근로를 주10시간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병렬적으로 제시하기 때문에 그 진실성이 의심된다. 뿐만 아니라 심야노동 금지를 내걸고 있으나 현행 근로시간특례업종과 마찬가지로 예외 사업장을 이미 예정하고 있어 이 또한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

 

결국 새누리당의 노동시간 단축 정책은 지불능력이 낮은 중소업체가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한시적으로돈을 지원해준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노동자의 행복을 표어로 삼은 것 치고는 그 대상범위나 내용이 상당히 빈약하다.

 

한편,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노동시간 단축 공약은 대동소이하다. 민주통합당은 고용률을 선진국 수준인 70%로 높이겠습니다는 캐치프레이즈 아래에 실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공약을 제시하고 있고, 통합진보당 역시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창출 특별법 제정이라는 기조 하에 세부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내용의 풍부함에 있어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나 두 정당 모두 법정근로시간제도의 확대 적용근로시간특례업종 및 예외규정 범위의 축소와 폐지’, ‘연장근로를 포함한 실노동시간의 상한선 설정 및 최소휴식시간의 확보’, ‘교대제 개선등에 관한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룬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특히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공약 실천방안으로서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특별법을 제안하는 것을 보면 두 정당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에 보다 더 큰 중요성을 두고 있다고 평가된다.

 

 

고용 창출의 덫에 사로잡힌 정치권의 노동시간 단축 논의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근래에 사회 각계의 노동시간 단축 논의는 서로 상충될 여지가 있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내재하고 있다. 바로 노동자의 건강권 및 재생산권 보장일자리 창출이다. 둘 중 어느 것을 우선순위로 두는지에 따라서 논의의 구체적인 내용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데 문제는 지금 현재 후자가 전자를 압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전자와 같이 노동시간 단축이 지향해야 할 목표를 노동자의 재생산권, 나아가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를 실현하는 것에 둘 경우에는 장시간노동이 야기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기존의 일자리든 새로운 일자리든 양질의일자리를 만드는 데에 논의가 집중된다. 반면 일자리 창출을 핵심 목표로 삼는 경우에는 기존의 장시간노동 자체를 규율하고 그 줄어든 노동시간의 총량을 새로운일자리로 전환하는 것으로 논의가 좁혀진다. 특히 노동시간을 일자리로 전환하는 산술적 계산 하에서 그 일자리가 얼마나 좋은 일자리여야 하는지는 고용 창출 그 자체의 덫에 묶여 부수적으로 다뤄질 뿐이다.

 

예를 들어 법정노동시간의 확대를 보자. 근로기준법상 주40시간제를 현행 5인 이상에서 1인 이상 전 사업장까지 확대하고 유급휴일에도 12시간의 초과노동 한도가 적용된다면, 당장 제조업 대공장들은 가동률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그동안 초과노동으로 유지해왔던 시간만큼 대신해서 일할 신규 노동자들을 채용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수십 배나 많은 저임금의 중소영세업체 노동자들은 사용자의 미약한 지불능력 탓에 종전보다 낮아진 자신들의 임금수준을 만회하기 위해 다른 일자리를 추가로 찾아야만 한다. 게다가 대공장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일자리가 또 다시 비정규직으로 채워지지 않을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이 경우 노동시간 단축 이전에 중소영세 사업장의 미약한 지불능력과 낮은 임금수준, 무분별한 비정규직 활용 등의 문제가 먼저 해결되거나 동시에 진행되지 않는다면 노동시간 단축 정책은 말 그대로 노동시간만(!) 단축할 뿐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바로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이 지금 우리 사회가 반드시 풀어야 할 난제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노동시간 단축이 지향해야 할 제1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존에 장시간노동이 널리 퍼져 있는 저질의 일자리 문제를 해소하지 않는다면 노동시간 단축은 단지 그 크기가 한정된 작은 파이를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이 나눠먹는 식의 결과만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단순히 일자리인가, 아니면 양질의 일자리인가? 단순히 긴 시간 일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일자리라고 평가할 수 있는가? 작금에 제시되고 있는 노동시간 단축 공약과 정책은 이에 대해 충분히 답을 해야만 한다.

 

 

장시간노동의 다양한 문제지점들

 

장시간노동이 가장 문제시되고 있는 집단은 신규고용 창출 여력이 있는 대기업이 아니라 바로 중소영세 사업장과 비정규직이다. 2011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정규직 중 주52시간을 초과하여 노동하는 초장시간노동자는 17.4%(148만여 명)이지만, 비정규직은 20.9%(176만여 명)로 정규직에 비해 3.5%p 높은 수준이다. 그 중에서도 파견(25.4%), 용역(31.4%)과 같은 간접고용 부문에서 초장시간노동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고용형태별 주당 노동시간 분포

(단위: 천 명, %, 시간)

 

1-40시간

41-52시간

53시간 이상

전 체

평균노동시간

전 체 

8,936

(52.9)

4,723

(27.9)

3,240

(19.2)

16,899

(100.0)

41.94

정규직

4,322

(50.8)

2,699

(31.7)

1,482

(17.4)

8,503

(100.0)

43.20

비정규직

4,614

(55.0)

2,024

(24.1)

1,758

(20.9)

8,396

(100.0)

40.66

장기임시

2,535

(52.1)

1,232

(25.3)

1,098

(22.6)

4,865

(100.0)

41.29

한시노동

1,958

(59.0)

742

(22.3)

622

(18.7)

3,322

(100.0)

39.70

기간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