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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페이퍼] 한 눈에 보는 대선후보 노동공약

금속노조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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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에 보는 대선후보 노동공약
 ‘소통과 철학의 부재’ 박근혜, ‘종합선물세트’ 문재인,
‘불안정노동자의 대변인’ 김소연·김순자, ‘노동가치 존중’ 이정희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홍석범
(sukbum0214@hanmail.net)
 
18대 대선이 이제 코앞으로 다가왔다. 야권단일화 이후 박근혜, 문재인 양자대결 구도로 진행되고 있는 이번 대선은 <경제민주화>와 <정치혁신 및 구태정치 청산>, 보다 넓게는 <MB정부 심판론>과 <노무현 정부 역심판론>의 프레임에 갇혀 다른 정책현안들이 전혀 부각되지 않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와 총선을 뜨겁게 달궜던 <보편적 복지>가 어느 샌가 사라졌음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노동자들의 관심사를 담아낼 노동현안은 <일자리 창출>이란 담론 덫에 걸려 단 한 번도 주요 의제로 등장하지 못했다. 여기에는 올 봄 통합진보당 사태와 분당 과정에서 드러난 불편한 진실 역시 한 몫 했으리라... 우리 노동자들이 느낀 실망과 자조가 대선후보들의 노동공약에 대한, 나아가 대선 자체에 대한 무관심과 방조를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그러나 운동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번만큼 의미가 깊은 대선 국면도 없다. 일일이 열거하자면 사흘 밤낮이 턱없이 모자랄 정도로 MB정부의 노동탄압과 노동현안은 얼마나 많았던가. 쌍용차 정리해고로 인해 스무 명이 넘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생의 끈을 놓았고, 현대차 사내하청, 유성기업, 쌍용차 노동자들은 자본의 무책임한 정리해고와 불법파견, 노동탄압을 부르짖다가 더 기댈 곳이 없어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추위에 고공철탑에 올라가지 않았던가. 안산 SJM 사건에서 밝혀진 노무컨설팅 업체의 노조분열 및 노동탄압 획책에도 마뜩찮은 표정으로 노사자율 원칙만을 내걸던 자들이 새누리당과 MB정부다. 그리고 이제 새누리당의 적자이자, 중핵이라 할 수 있는 자가 대권에 출사표를 내던졌으니 과연 이번 대선이 우리 노동자들에게 뜨거운 선거가 아닐 수 있을까? 각설하고, 이번 대선은 노동자 선거다. 그것도 단순히 정권심판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미래를 좌우할 전환점 위의 선거라고 할 수 있겠다.
 
대선을 며칠 앞두고 아직도 표심을 결정하지 못한 노동자들을 위해, 혹은 우리 선거가 아니라고 쓴웃음 지으며 무관심하게 지켜보고 있을 노동자들을 위해 대선후보들의 노동공약을 요점 정리했다. 커피 한 잔의 여유시간을 투자해 대선후보의 노동공약을 벼락치기로 훑어보자. 그리고 차분히 이번 대선을 우리 선거로 새겨보자. 사실 대선국면의 짧은 기간 동안 나라살림에 대한 총체적 내용을 알려내야 하니 각 후보들의 공약이 구체적이고 세세한 정책과 제도를 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노동현안에 대한 철학과 입장들을 가리는 데에는 큰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박근혜 후보의 노동공약 키워드, ‘일자리 늘/지/오’
 
먼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노동공약을 살펴보자. 박근혜 후보의 노동공약은 ‘일자리 늘/지/오’로 요약된다. 일자리 늘/지/오는 ‘일자리 늘리기, 일자리 지키기, 삶의 질 올리기’의 준말로서 그 풀이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노동공약이라기보다는 일자리공약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일자리 늘리기에 상당한 방점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이며, 후보가 제시한 10대 공약 중 우선순위에 있는 네 개의 복지정책(<국민걱정 반으로 줄이기>)을 제외하면 일자리정책은 복지에 이어 두 번째 핵심 공약사항으로 위치해 있다.
 
세부공약들을 중심으로 주요 내용들을 간략히 짚어 보자(<표 1> 참조). 우선 ‘일자리 늘리기’ 부문은 말 그대로 일자리 창출에 관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농업, 제조업, 서비스업에 정보통신기술 기타 과학기술을 융합해 고부가가치 신산업으로 육성하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 ▲학벌이 아닌 능력중심 사회 구현, ▲근로시간 단축 및 일자리 나누기 동반성장 전략 추진 등이 제시돼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들여다보면 많은 문제점들이 나타난다.

 

우선, 고용의 질을 문제 삼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이 점은 ‘일자리 지키기’나 ‘삶의 질 올리기’ 부문에서도 마찬가지다). ‘근로시간 단축 및 일자리 나누기’를 추진한다고 하면서 휴일근로의 초과근로 산입, 특례업종 축소, 교대제 개편,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일자리 나눔형 근로시간 단축 등을 제시하고는 있지만 여기에 줄어든 노동시간이 노동자 개인에게 어떤 효과를 불러오는지에 대한 고민은 담겨 있지 않다. 저질의 일자리 문제를 해소하지 않고서 노동시간 단축만을 주장할 경우 이것은 단지 크기가 한정된 작은 파이를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이 나눠먹는 것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실제로 새로운 일자리가 얼마나 창출될지도 의문이다. 우리 사회의 90%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중소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 및 공공부문의 장시간노동 관행을 없애 새로 생길 일자리를 만든다고 한들 그 수준은 언 발에 오줌누기 격이기 때문이다(노동시간 단축과 고용의 질에 관한 쟁점에 대해서는 2012년 6월 노동연구원 정책보고서 “노동시간 단축의 쟁점과 정책과제” 참조).
 
청년실업 해결 및 능력중심 사회를 구현한다고 내놓은 직무능력표준 개발 및 직무능력평가제 도입도 마찬가지다. 이미 1990년대 자본의 신경영전략 이후 대부분의 중대형 기업들은 연공급 구조를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일정수준 직무평가 및 직무급제도를 도입하고 있고 우리 노동시장은 이미 국가 차원의 각종 자격증제도를 통해 충분히 직무능력표준 도구들을 갖춰놓은 상태다. 주의해야 할 점은 오늘날의 고용침체와 실업문제의 주요 원인이 ‘일자리 부족’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 부족’,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대기업으로의 구직자 쏠림 현상과 중소기업 인력난의 악순환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구직자의 스펙이나 능력이 아니라 온존하고 있는 노동시장의 구조적 차별기제들이다. 대중소기업 격차 해소, 원하청 불공정거래 근절과 같은 경제민주화가 일자리문제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닌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다음으로 ‘일자리 지키기’ 부문의 공약들을 보자. 세부공약으로는 ▲경기변동에 대비한 고용안정 및 정리해고 요건 강화, ▲대규모 정리해고시 고용재난지역 선포, ▲상시지속업무 정규직 고용관행 정착,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이 제시되고 있다. 공약의 제목만 놓고 보면 다소 솔깃하지만 구체적인 내용과 행간을 들여다보면 일자리 늘리기 부문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문제점들이 확인된다.
 
우선 정리해고 요건 강화 공약과 관련해서 새누리당이 현행 방식의 정리해고를 그대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리해고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문제의식은 “기업 경영 악화시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회생을 할 수 있도록 하되, 근로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정리해고 최소화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경영악화를 명목으로 실시되는 정리해고제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쌍용차 사측이 정리해고를 하는 데에 정당성을 부여했던 경영악화가 실제로는 조작된 회계감사의 결과라는 점은 기업의 경영악화라는 명목이 얼마나 부실하며 자의적일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익히 경험해왔듯이 ‘고용살인’, ‘해고를 빙자한 살인’이라 할 수 있는 정리해고 문제에서 고용재난지역 선포와 같은 사후처방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게다가 정리해고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사법적 문제로 전환되는 순간 생존권 투쟁은 장기국면에 들어서게 된다. 때문에 정리해고 문제 해결방안은 그 자체를 엄격하게 차단하는 사전적 예방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 순간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공약이라고 내건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법」 제정 역시 마찬가지다. 사내하도급법에는 사내하청 노동자와 원청업체 정규직 노동자 간 동종·유사 업무시 차별처우 금지, 사내하도급 계약 만료시 사내하도급 사업주가 교체되더라도 기존 업무 유지시 사내하청 노동자의 고용 보호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입법발의된 사내하도급법은 사내하청 노동자와 사내하청업체, 원청업체의 작업장 생리와 권력관계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그 이면에 불법파견을 정당한 사내하도급이란 새로운 이름 속에서 인정한다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새누리당의 사내하도급법 기타 간접고용 입법 논쟁에 관해서는 2012년 10월 노동연구원 뉴스레터 “정책비평: 간접고용 규율 입법 논쟁 뜯어보기” 참조).
 
마지막으로 노사상생이란 명목으로 제시되고 있는 노동조합 및 노사관계 관련 공약을 살펴보자. 재밌게도 박근혜 후보의 노동조합 관련 공약은 일자리 정책의 말미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것은 노동조합 및 노사관계 관련 공약을 깍두기처럼 끼워 넣은 듯한 인상을 준다. 그렇다보니 공약 내용도 빈약하기 그지없다. 가령, ▲대화와 상생의 노사관계 정착이라는 공약에서는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상생의 노사관계가 정착될 수 있도록 정부의 공정한 조정중재자 역할 강화”와 “노사관계 주요 쟁점들에 대해 노사정위원회에서 사회적 대타협”하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당연히 대화와 타협은 옳고 그름을 논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정부는 적절한 조정중재자였던가,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입을 빌려 자본의 논리를 설파하는 대리인이었던가. 심지어 노사자율 해결 원칙을 가장 큰 목소리로 외쳤던 MB정부와 새누리당 집권 시기에서조차 정부가 중립적인 노사관계의 관조자, 방관자였던 적은 없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복수노조 및 근로시간면제제도 합리적 보완 공약 역시 마찬가지다. 박근혜 후보는 타임오프 및 복수노조 시행 관련 쟁점들을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기형적으로, 파행적으로 가동되고 있는 노사정위원회를 어떻게 가동시킬지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은 없고 문제를 나열하는 수준에 그친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문재인 후보의 노동공약 키워드, ‘만/나/바 일자리 혁명’
 
다음으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노동공약을 살펴보자. 문재인 후보의 노동공약은 ‘만/나/바 일자리 혁명’으로 요약되며, 이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좋은 일자리를 나누고,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바꾸기’의 준말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달리, 10대 비전 중 제일 서두에 ‘만나바 일자리 혁명’을 배치함으로써 명시적으로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설정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세부공약의 내용과 기조를 살펴봄으로써 그 안에 담긴 후보의 철학과 입장을 짚어보자. 먼저 ‘좋은 일자리 만들기’ 부문에서는 ▲공공부문에서 좋은 일자리 만들기, ▲중소 중견기업 강국으로 일자리 만들기, ▲지역산업 육성하여 좋은 일자리 만들기 등이 제시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교육, 보육, 사회복지, 보건의료 등 공공부문에서 4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4000여개의 중견기업을 지원․육성해 중소규모 사업장에서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공공기관 채용시 해당 지역 출신 구직자를 우선 채용하는 등의 정책들을 담고 있다.
 
노동공약 전반을 노동기본권이나 노사관계, 노동조합 관련 정책이 아닌 일자리정책을 중심으로 편성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박근혜 후보와 차이가 없으며, 오히려 공약의 우선순위 측면에서는 문재인 후보의 공약에서 일자리 중심성이 훨씬 두드러진다. 그러나 방향을 완전히 달리하는 확연한 차이점이 목격되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문재인 후보의 일자리 창출 공약이 단순히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 창출’에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앞서 박근혜 후보가 일자리 만들기만을 주장했던 것과 달리 문재인 후보는 일자리 창출을 얘기하면서 적어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과 처우개선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것은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바꾸기’ 부문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데 2017년까지 전 산업의 비정규직 절반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이 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중소기업에 대한 입장 역시 마찬가지다. 박근혜 후보는 ‘창조형 중소기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주장하면서도 창조의 의미는 제외한 채 창업 지원, 일자리 창출에만 주목했다. 반면, 문재인 후보의 경우 국가 소유의 R&D 성과를 중소기업에 무료로 이전하는 등 중소기업에 대한 투자와 중소기업 일자리의 제고를 연결 짓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하다.
 
두 번째로 ‘좋은 일자리 나누기’ 부문에서는 ▲노동시간 단축 및 교대제 개편, ▲청년고용촉진을 위한 고용의무할당 및 취업준비금 지급 등의 정책이 제시되고 있다. 특히 노동시간 단축 및 교대제 개편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방점이 찍혀 있는데, 앞서 좋은 일자리 만들기 부문에서 ‘좋은’ 일자리라는 개념이 포함돼있던 것과는 달리 일자리 나누기 부문에서는 그에 대한 고민이 빠져있다는 한계를 지적하게 된다. 이를테면, 문재인 후보는 주 “52시간의 노동시간 준수 시 70만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보고 있으며, “장시간노동을 조장하는 2조2교대제를 3조2교대제 또는 3조3교대제로 전환”함으로써 일자리를 나눌 수 있다고 인식하는 듯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빠져 있다. 교대제 개편 문제는 단순히 장시간노동의 근절이 아니라 임금수준 및 임금구조와 연동돼있다는 점이다. 가령 장시간노동 문제가 가장 심각한 제조업에서는 시급제 중심의 낮은 기본급과 높은 변동성과급 비율 문제가 존재하며, 서비스업은 변동성과급마저 거의 없어 상시적인 저임금에 노출돼있다. 따라서 임금수준 하락을 방지하고 임금구조를 개편하기 위한 제도설계가 함께 도출되지 않을 경우 교대제 개편이나 노동시간 단축은 일자리 창출은커녕 기존의 일자리의 질조차도 담보하지 못하는 결과를 도출하게 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좋은 일자리 지키기’ 부문에서는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 및 취약계층의 사회보험료 지원, ▲고용보험제도를 비롯한 고용안전망 강화, ▲정리해고 요건 강화를 비롯한 고용안정체계 구축 등이 제시되고 있다. 특히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으면 기업유지가 어려운 경우에만 정리해고가 허용될 수 있도록 해고요건을 엄격화”한다는 내용이 눈에 띄는데 앞서 박근혜 후보가 정리해고 요건 강화를 두고 “경영악화시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회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전제로 달았던 것에 비해 정리해고에 대해 보다 엄격한 잣대를 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경영상황 악화’라는 상당히 자의적이고 조작가능한, 그러나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정리해고 요건 그 자체는 문제 삼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새누리당의 입장과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후보의 노동공약의 가장 큰 차이는 노사관계 및 노동조합 관련 정책에서 드러난다. 문재인 후보의 경우 10대 비전 중 첫 번째인 ‘일자리 혁명’ 부문에 노동기본권을 명시하는가 하면, 두 번째인 ‘공평하고 정의로운 상생·협력의 경제민주화’ 부문에도 노동조합 및 노사관계 관련 세부 공약들을 배치하고 있다. 앞서 박근혜 후보가 일자리정책의 말미에 노사상생 항목을 배치한 것에 비해, 문재인 후보는 노사관계 및 노동조합에 관한 공약을 ‘경제민주화’ 항목으로 분류했다는 점이 인상 깊다.
 
우선 ▲노동기본권 사각지대 해소 공약에는 근기법을 4인 이하 사업장에까지 확대 적용하거나 노조법상 노동자와 사용자 개념을 확대해 특수고용노동자, 실직자, 구직자 등 노동3권의 약자들이 노동기본권을 보장받는 내용이 포함돼있으며, 단체교섭 및 쟁의행위 대상의 범위를 현실화하는 등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의 제약을 완화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전임자 임금지급을 노사자율로 결정하도록 하며,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제도 강제조항을 삭제해 교섭을 노사자율로 결정하도록 하는 것 역시 박근혜 후보에게서는 볼 수 없던 공약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이란 명목 하에 제시되고 있는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은 새누리당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노사정위원회가 정부의 간섭과 통제로 인해 사회적 대화라는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라는 자성과 진단, 그리고 공익위원을 노사정이 각각 추천하는 제도로 바꾼다는 점에 있어서는 뚜렷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불안정노동 철폐 및 노동기본권 존중’, 김소연․김순자 후보
 
다음으로 김소연․김순자 후보의 대선 노동공약에 대해 살펴보자. 스스로가 불안정노동의 투쟁 속에서 살아온 이력 덕분에 두 후보의 노동공약은 노동자, 그 중에서 저임금․비정규직 등 불안정노동자와 노동약자의 입장을 가장 충실히 대변하고 있다.
 
김소연 후보의 경우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핵심 구호로 들고 나선만큼 10대 공약의 최상위에 노동공약을 배치하고 있으며, 그 안에 정리해고제도 및 직간접고용 비정규직 폐지, 노동약자에 대한 노동기본권 확대, 야간노동 폐지 및 노동조건 저하 없는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현실화 등과 같이 노동계가 오랫동안 주장해왔던 내용들을 담아내고 있다. 김순자 후보 역시 ‘일자리, 소득, 삶을 보장하는 사회’라는 구호 아래 ‘비정규직 불안정노동 없는 실질적 완전고용사회 만들기’를 노동공약의 핵심 기조로 설정하고 있으며 김소연 후보와 마찬가지로 노동현안에 관한 노동계의 주장들을 세부공약으로 배치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두 후보의 노동공약은 대동소이하지만 공약이 담고 있는 철학과 관점에 있어서는 서로 차별성을 갖고 있다. 김소연 후보가 기존에 노동계가 꾸준히 주장해왔던 내용을 정론으로서 풍부하게 담아내고 종합하고 있는 반면, 김순자 후보는 이에 덧붙여 노동현안에 대한 비교적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제언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김순자 후보가 제안하고 있는 청사진, 즉 기본소득제도(월 33만원) 및 이와 연동된 노동시간 단축(주35시간, 연1,800시간 상한), 유급안식년제도(7년에 1년) 도입,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나아가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것은 그동안 일부 진보적 학자 및 시민사회단체들이 주장해왔을지언정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새로운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유급안식년제도나 기본소득제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들을 우리나라가 직접적으로 벤치마킹하기 어려운 역사적, 사회의식적, 제도설계적 맥락과 한계 존재한다. 때문에 어찌 보면 두 후보의 노동공약은 상호보완적 성격을 띤다고도 할 수 있겠다.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 이정희 후보
 
마지막으로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의 대선공약을 살펴보자.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라는 키워드로 요약되는 이정희 후보의 노동공약은 ▲노동기본권 보장, ▲기간제 제만 및 일방적 정리해고 금지, ▲노동시간 단축 및 일자리 창출 특별법 제정, ▲최저임금 현실화, ▲고용보험료 확대 지원 등으로 구성돼있다. 세부공약에 있어 한편으로는 김소연 후보 및 김순자 후보와 매우 유사한 입장과 내용을 담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의정활동 및 법률가로서의 경험 덕분에 비교적 구체적이고 세세한 제도설계와 실현방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비록 대선후보를 사퇴했지만 노동운동의 제도적 투쟁방향에 일정부분 시사점을 준다는 점에서 간단하게나마 그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이정희 후보는 여러 노동공약 가운데서도 노동기본권을 최상위에 배치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간접고용에 있어 실질적 사용자의 사용자성 인정등 노동기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을 노동법상 노동자로 자리매김토록 하는 것에서부터 산별교섭 제도화’, ‘공격적 직장폐쇄’, ‘복수노조의 자율교섭 보장등 정당한 노조활동을 가로막고 있는 제도적 장치들을 걷어내는 내용의 공약들이 그 속에 담겨 있다. 이는 앞서 박근혜 후보나 문재인 후보가 일자리 창출을 노동공약의 핵심으로 삼았던 것과 대조적이다. 아울러 기간제 사유제한이나 파견법 폐지와 같은 비정규직 문제가 노동기본권에 이어 두 번째에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는 노동자의 조직화, 그리고 조직된 노동자들의 노조활동에 보다 무게를 싣고 있음을 짐작하게 되는데, 이는 김소연 후보가 노동조합 활동 보장 이전에 비정규직 및 정리해고, 불안정노동 그 자체에 보다 깊이 천착하고 있는 것과도 다소 구분된다.

 

기간제 제한 및 일방적 정리해고 금지 공약에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명문화’, ‘기간제 사용사유 제한’, ‘파견법 폐지등의 세부공약이 포함돼있으며, 특히 정리해고 금지에 있어 사용자의 보수삭감, 또는 사직, 배당 중단, 유휴자산 매각 등 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에 대한 사용자 입증책임 부과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는 박근혜 후보 및 문재인 후보가 정리해고 요건 강화를 주장하면서도 사용자 스스로의 고용유지 노력을 지적하지 않았다는 점과 비교하면 매우 중요한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밖에 특별법 제정을 통해 5인 미만 영세사업장까지 예외 없이 노동시간을 연간 1,800시간으로 단축하고 노동시간 상한제를 도입하는 노동시간 단축 및 일자리 창출 공약, 최저임금 현실화(최저임금을 평균임금의 50%로 개정) 고용보험료 확대 지원(고용보험 국고 부담 확대, 1년 이상 장기실업자나 청년 미취업자, 폐업 자영업자를 위한 구직촉진수당 지급, 특수고용 전 직종에 걸쳐 자부담 없이 산재보험 적용) 공약이 제시되고 있다. 이는 문재인 후보, 김소연 후보 및 김순자 후보의 공약내용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러나 다른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임금하락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주장하면서도 그 규모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소득보전기금 설치 외에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다거나 복지재원의 중요성을 주장하면서도 국고 부담금 확대 외에 고용보험 재원 확보 방안을 보다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하는 점은 동일한 한계로서 지적된다.

 

 

소통과 철학의 부재박근혜, ‘종합선물세트문재인, ‘불안정노동자의 대변인’, 김소연김순자, ‘노동가치 존중이정희

 

이상으로 간략하게나마 18대 대선후보들의 주요 노동공약을 살펴보았다. 비록 후보별 노동공약의 수위는 상당한 편차를 보이고 있고 또 현실 정치에 있어 노동계를 대변하는 후보들의 지지율이 미미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노동현안에 관한 공약이 제시된 빈도만을 놓고 보면 이번만큼 다양하고 활발하게 노동공약이 제시된 대선은 없었다는 점에서 빈곤 속의 풍요를 음미해본다. 물론 공약의 실현가능성과 당선 이후 공약 추진의지는 별개의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유권자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데 있어 공약내용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에 판단의 준거를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마지막으로 앞서 살펴본 노동공약을 빌어 각 후보의 노동문제에 대한 철학과 입장을 짚어보도록 하자.

 

우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노동공약은 소통과 철학의 부재로 요약된다. 대개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면서 허울만 남기는 하지만 무릇 공약이란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그릇이어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의 노동공약은 노동계의 주장을 전혀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데다 공약 그 자체 목표와 실행방안이 부합하지 않는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일자리 늘//오를 표어로 삼아 거창하게 주장했지만 사실 박근혜 후보의 공약은 현실과 동떨어져있다는 점에서 일자리를 늘릴 수도 없고, 지킬 수도 없으며, 삶의 질 또한 올리지 못할 가능성이 짙어 보인다. 구체적 현안들에 대한 진지하고 생생한 고민들이 없다보니 결국 공약이 속 빈 강정이 된 듯하다.

 

한편,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노동공약은 마치 종합선물세트같다. 눈코입을 매료시키는 과자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지만 한 번에 모두 먹다보면 배앓이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거 민주통합당의 행보에 견줘보건대 문재인 후보의 노동공약이 상당부분 좌클릭 했음은 부정할 수 없어 보인다. 아울러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와 비슷한 제목의 공약을 내걸면서도 내용적으로, 철학적으로 상당히 다른 가치들을 담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표를 의식한 듯 여러 좋은, 그러나 색깔이 다른 공약들을 한 군데 모으다보니 공약들이 내적 연관성 없이 서로 융합되지 못하고 겉도는 인상을 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후보가 갖는 철학 속에 공약의 체계를 갖추려는 노력이 절실해 보인다.

 

다음으로, 김소연김순자 후보는 말 그대로 불안정노동자의 대변인을 자처하고 있다. 김소연 후보가 노동계 정론들을 묶어내고 종합해서 노동공약을 제시하고 있는 반면 김순자 후보는 새로운 관점에서 저임금, 장시간노동, 고용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하지만 보다 반가운 것은 생생한 노동자 출신 후보가 한 사람도 아니고 두 사람이나 대선에 출마했다는 사실이다. 향후 노동운동이 고민해야 할 지점은 이번의 정치적 국면과 두 후보의 활동을 계기로 노동의제를 보다 널리 알리고 사회적 지지를 확보해가며 새로운 제도적 투쟁을 조직화하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의 노동공약 역시 이러한 투쟁 속에서 쓰임새를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정희 후보의 노동공약은 MB정부의 노사관계를 가장 뜨겁게 달궜던 현장들을 뛰어다닌 결과이기 때문이다. 다만 노동자 후보들의 노동공약이 아직까지 보다 옳고 바람직한 세계관을 제시하는 수준 이상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노동현장과 시민들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제도설계와 실현방안을 함께 제시하려는 노력들이 곁들여져야 할 것이다.

 

이상 대선을 코앞에 두고 아직 표심을 정하지 못한 노동자들을 위해 대선후보들의 노동공약을 벼락치기해서 살펴보았다. 일각에서는 노동공약이 실종됐다고도 하지만 지금껏 살펴본 것처럼 각 대선후보들은 자신들의 노동공약 속에서 노동현안 및 노동조합, 노사관계에 대한 철학들을 직간접적으로 충분히 표현하고 있다. 이제 차분히 이번 대선을 우리 선거로 새겨보자. 노동운동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한 선거이니만큼 대선 혹은 후보들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를 거두고 우리 노동자들 저마다의 소중한 한 표가 행사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