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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페이퍼] 내부노동시장의 변화와 사내하청 확산 메커니즘: 조선산업 사례를 중심으로

금속노조연구원   |  
2013-10 금속연구원 이슈페이퍼
내부노동시장의 변화와 사내하청 확산 메커니즘
: 조선산업 사례를 중심으로
 
박종식(노동연구원 객원연구위원)
 
  현재 금속노조에서 당면한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로 비정규직, 그 중에서도 동일한 사업장에서 함께 일을 하고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가 진전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문제는 현재 금속노조의 조직적인 과제 전반에 걸쳐져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 글에서는 ‘기존 사내하청 노동 연구’에 있어서의 일반적인 경향들을 몇 가지로 구분해서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조선산업 사내하청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힐 필요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사내하청 형태의 고용이 비단 최근에 나타난 고용형태는 아니다. 일찍이 자본주의 초기의 선대제 생산방식에서 찾을 수 있으며,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전근대적 고용형태로 인식되면서 점차 소멸되어져 갔다. 하지만 제조업 중에서 조선산업과 철강산업과 같이 수요탄력적인 대규모 장치산업에서는 사내하청 고용이 지속되었다. 한국에서 사내하청의 활용은 1987년대 노동자대투쟁을 분기점으로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 1987년 이전 사내하청 : 정규직과의 동질화 경향과 ‘동료의식’
 
  1987년 이전에 활용되었던 사내하청 노동은 자본의 일방적인 필요에 의해서 자의적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이지만, 오히려 당시에는 직영과 사내하청의 차이를 노동자들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따라서 1987년 대투쟁 당시 노동조합운동의 요구 속에서 사내하청 문제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사업장 내에서 내주하청, 임시일용공 등으로 통칭되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노동조건, 작업장 내 지위 등에 있어서 거의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1987년 이전 시기에 존재하였던 사내하청은 고용 관계 자체는 기업을 경계로 분리되어 있어서 고용조정 시의 불이익은 있었지만, 임금, 및 기타 노동조건에서는 거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시기 직영과 사내하청 노동자들 간에는 상당한 동료의식이 존재하였다. 이처럼 별 차이가 없었던 이유는 1987년 이전 활용되었던 작업장 내 사내하청의 경우 상당수가 과거 정규직이었다는 점이다. 즉, 이 시기의 작업장 내 사내하청 업체는 대체로 원청에 의해 설립된 경우가 대부분이며, 원청에 고용된 직영이 소속을 옮긴 것에 불과하였다. 따라서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공통의 물질적 이해 - 하향평준화된 저임금 - 에 기반을 두어 자연스럽게 원청과 사내하청 노동이 함께 결집해야 한다는 의식과 행동이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정규직과 별반 차이가 없이 동질화된 사내하청 노동에 대해 노동자대투쟁 시기의 폐지 요구는 자연스럽게 분출되었으며, 자본의 입장에서도 인건비 절감 효과 등은 없고, 잦은 이직 등으로 기업에 대한 낮은 몰입(committment) 등의 문제가 있었기에 노동조합의 사내하청의 폐지 요구를 쉽게 수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1987년 시기 나타난 원청 정규직과 사내하청 간의 연대와 이를 통해서 사내하청이 대거 직영으로 전환되었던 결과는 이후에 나타날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한계를 내재하고 있었다.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당시 노동조합운동의 대응은 개별 기업 차원에서만 연대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임금 및 노동조건 등이 거의 유사한 상황에서 나타난 이와 같은 공장 내부에서의 원하청 연대는 곧 기업별 노동조합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노동조합에서는 사내하청을 제외한 여타의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노조의 문호를 폐쇄했다는 점에서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즉, 당시로서는 원청의 직영과 사내하청의 차이가 별로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공통의 이해관계에 근거하였지만, 나머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배타적이었다. 그 결과 1987년 이전까지 억눌려 왔던 한국 제조업 노동자들이 1987년 노동조합운동을 폭발적으로 전개하면서 실질적인 계급으로의 조직화에 성공했지만, 그 양상은 자본의 경계를 따르는 한계를 노정한 셈이었던 것이며(김동춘, 1995), 이로 인한 한계는 1990년대 뿐 아니라 2000년대까지도 지속되었는데, 이제는 과거와 달리 사내하청 노동 또한 배제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 1990년대 기업내부노동시장의 형성과 사내하청 노동의 재등장
 
  1990년대 이후 재등장한 사내하청과 이전의 사내하청의 가장 큰 차이점은 1987년 이후 (정규직) 노동조합이 작업장 내에서 중요한 행위자로 등장하게 되면서, 직영 정규직과 사내하청 노동이 구분 없이 자본의 필요에 의해 활용되어 왔던 사내하청 노동이 이제는 공장 내 노사관계에 의해 규율될 수밖에 없는 대상으로 변모했다는 점이다. 아울러 조선산업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사내하청 노동을 비생산업무에서만 주변적으로 활용하던 자동차산업(박명준, 1997) 및 제조업 전반의 생산 공정에 사내하청 노동이 전면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자본은 작업장 내에서 정규직 노동자 및 노동조합을 우회하기 위한 ‘신경영전략’의 일환으로 사내하청 노동을 확대 하면서도, 도입 과정 및 그리고 작업장 내에서 사내하청 노동의 활용 및 배치와 관련해서 일정 정도 정규직 노동자/노조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1990년대 이후 사내하청 노동의 작업장 내 확산은 (상대적으로) 노사간 교섭이라는 제도화된 ‘관료주의적 시스템’ 하에서 전개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직접 생산부문에까지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정규직 중심의 노동력 활용구조에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다. 즉, 사내하청 활용을 통해 정규직 노조가 주도하는 기업내부노동시장을 약화시키고, 작업장 내에서의 자본의 관리·통제 측면에서 노동유연성을 증가시킬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내하청 노동에 대한 임금차별을 통해 비용절감까지 이룰 수 있는 방안이었던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원청 자본은 사내하청 노동의 고용조건, 작업장안전 등의 문제에 대해서 어떠한 사용자 책임도 질 필요가 없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이러한 자본의 사내하청 활용에 대한 조선산업 정규직 노조들의 대응은 보다 나은 노동조건을 추구하는 노조 조합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그 결과 조합원들이 꺼리는 위험한 작업공정과 고강도 작업공정을 중심으로 사내하청 활용을 늘려가는 것에 동의하였다. 이러한 양상의 전개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이와 같은 위험․고강도 공정에 대한 사내하청 활용은 노-사 단체교섭에서 나타나고 있기 보다는 노조의 골간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현장 대의원들과 현장 생산관리팀 사이에서 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1990년대 이후 사내하청의 확대는 원청업체 노-사 간 ‘아래로부터의 요구와 담합의 과정’이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그 결과 기업내부노동시장의 완성 이후 기업 내 이중노동시장이 사내하청의 재등장과 함께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내부노동시장의 변화의 양상은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즉, 사내하청 노동은 기존의 기업내부노동시장 제도와 병립하게 되었고, 따라서 원청과 사내하청의 긴밀한 상호의존 하에 ‘사내하청을 활용하는 생산시스템’이 형성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과거 직영-사내하청 노동자 간에는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었으나, 사내하청이 재등장한 1990년대 이후에는 과거와 같은 ‘동료의식’은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중요한 차이로 지적할 수 있다.
 
◯ 고용의 위기와 사내하청 노동의 고착화
 
  1997년 경제위기와 전면적인 구조조정 과정에서 고용조정은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위기 국면에서의 고용조정의 불가피성을 이유로 자본은 장기적인 작업장 및 노동유연화 전략을 구사하는 기회로 변모시켜, 위기 극복을 위한 대규모의 고용조정을 통해 정규직 중심의 견고한 내부노동시장 기제를 무력화시키거나 또는 약화시켜 나가고자 했다. 그 결과 1997년 경제위기 속에서 자본의 위기는 노동의 위기, 구체적으로는 ‘고용의 위기’로 전화되었다(손정순, 2009: 182-3). 이러한 점에서 1990년대 자본이 지속적으로 추진했던 소위 ‘신경영전략’은 1997년 말 경제위기를 경과하면서 보다 전면화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자본의 ‘기회’를 통해 보다 구체화된 자본의 의도의 핵심에는 생산부문에 활용되던 사내하청이 위치하고 있었다.
 
  고용의 위기는 (정규직) 사업장 내부에서 정규-사내하청 경계를 따라 불균등하게 전가되어, 고용위기 당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고용조정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와 같은 경험으로 인해 위기 이후의 경기 회복과정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보장받기 위해서 작업장 내 차별적 저임금의 사내하청 노동의 확산을 ‘묵인’하는 흐름이 조선산업 및 제조업 전반에서 관찰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묵인’은 원청인 정규직 노동자들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위험한 작업과 기피공정에 투입할 사내하청 노동을 필요로 하는 구조가 이미 형성된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사내하청은 원청의 노사관계의 결과물이라는 점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이러한 점에서 오늘날 사내하청 노동의 활용은 원청 노사 간의 담합(collusion)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담합이 등장하게 되는 이면에는 1997년 위기 이후의 대규모의 고용조정 사태를 직간접으로 경험하면서 노동의 고용안정 요구가 자본의 비용절감․고용 다양화 요구 못지않게 절실한 요구였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경제위기 이후의 고용안정을 둘러싼 조선산업 사업장들에서 일련의 파업 후,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정규직) 고용안정 협약’을 단체협약, 또는 별도 협약을 통해 체결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노동조합에서 조합원의 고용안정을 보장받기 위해서 사측과 ‘고용안정 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고용안정 협약’은  제조업 작업장 내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작업장 노사관계에서 배제하는 제도화이자, 동시에 사내하청 노동자를 고용의 완충장치로써 필요로 하는 제도화라는 이중적인 효과를 낳았다. 그 결과 이러한 원청 노사관계에서 체결된 ‘고용안정 협약’은 작업장 내 사내하청의 존재를 사후적으로 정당화시켰다. 그리고 (법적인 다툼과는 별개로) 작업장 내 노사관계에서 제도적으로 정당성을 확보한 사내하청 노동은 2000년대 이후 조선산업 사업장 내에서 급증하게 되었다.
 
[그림 1] 조선산업의 직종별 고용인원 변화 추이
 
 
◯ 사내하청 제도화 과정의 의미가 축소된 기존 연구들
 
  1990년대 이후 사내하청 노동의 (재)등장은 한국사회에서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조합의 고용안정 및 임금인상 요구로 제조업 부문에서 (폐쇄적인 정규직) ‘기업내부노동시장’ 형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기존의 연구성과들(정이환, 1992; 조영철, 1993; 강석재, 2002)을 받아들일 때, 기업내부노동시장 논의에서 새로운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폐쇄적인 기업내부노동시장이 대기업 사업장 내에서 형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업장 내에서 사내하청 노동이 확산되고 있는 양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사내하청업체는 별도의 기업이고 거래관계이므로 원청의 기업내부노동시장과는 별도의 ‘외부노동시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인력파견/노무도급의 성격이 강한 사내하청 노동은 원청과도 고용관계가 사실상 성립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사내하청 노동의 활용은 기존의 기업내부노동시장에 대한 논의에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다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왜 사내하청 노동이 확산되고 있는가에 대한 기존 학계의 논의들을 살펴보면 원청의 자본축적 전략(손정순, 2009), 신자유주의(노중기, 2008), 경영합리화/인사관리전략(강석재, 2002; 김유선, 2003), 시스템합리화 전략(백두주․조형제, 2009), 정규직노동자 및 노조에 대한 통제 전략(정이환, 2003) 등 대부분 원청자본의 ‘전략적인 선택’을 통해 노동유연성-수량적 및 임금 유연성 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내하청 노동이 1990년대 이후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금속노조 사업장에는 노동조합이 존재하고 있었다. 노조의 존재를 기업내부노동시장의 행위자로서 주목해서 기존의 연구들을 살펴보면 정규직 노동조합이 자본의 전략적인 선택의 과정에서 개입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거나 또는 수세적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해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내하청 노동의 확산의 원인에 대한 설명에서 기업내부노동시장에서 중요한 행위자인 원청 정규직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한 적극적인 재해석이 필요하다. 고용과 임금, 기업복지를 둘러싼 노사 간의 ‘작업장 정치’(Burawoy, 1985)의 결과물로 인한 ‘담합(collusion)’이 사내하청 노동의 확산을 가져왔다는 점에 보다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아울러 사내하청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적인 접근 시도의 경우에도 기존의 내부노동시장 이론(신원철, 2001)이나 작업장체제론(강석재, 2002), 네트워크 이론(우연섭, 2004), 노사관계 이론(김동원․진숙경, 2005; 진숙경, 2007), 노동법의 사내하도급 이론(박제성 외, 2009), 노동운동론 등을 바탕으로 사내하청 문제에 대해서 (부분적인) 설명을 시도하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이론적인 설명의 시도들은 사내하청을 일련의 사회현상, 사회문제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면서 설명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설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손정순(2009)은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 이후부터 한국의 사내하청 문제에 대한 역사구조적인 검토를 진행하면서 한국경제의 축적체제의 변화와 사내하청 활용을 통한 고용분절화의 위계적인 구조화를 주장하고 있다. 특히 ‘비정규 노동시장과 (기업)내부노동시장이 상호간에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전개되어져 온 상황에서 이를 분리고찰하거나 비정규(사내하청) 노동을 보조변수로 전락시키고 있는’(손정순, 2009 : 34) 기존 연구의 한계에 대해 지적하면서 사내하청을 이제 (내부노동시장에서) 하나의 독립적인 실체로 접근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주장은 내부노동시장론, 작업장체제론, 노사관계론, 하도급 이론, 노동운동론 등에서 사내하청 문제를 부수적으로 다루는 것에서 ‘문제틀’의 변화를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 사내하청에 기반을 둔 생산시스템 구축
 
  오늘날의 하청형태의 전개양상에 대해서 자본간 관계가 여전히 지배-종속적인 관계에 있고 자본의 집중이 심화된다는 입장과, 반대로 오늘날에는 수평적인 관계로 전면적 이행, 혹은 부분적 이행을 하고 있다는 입장들이 대립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자본간 관계는 집중화, 조직화를 기계적으로 사고할 것이 아니라 분산화, 탈집중의 경향에 대해서 보다 열린 시각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는 오늘날의 생산체제가 자본주의 초기 단계에서 하청업체들을 흡수하면서 소멸을 강요해왔던 방식이 아니라, 하청업체들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 성장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배-종속관계의 성격이 있지만 이를 일방적인 것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 즉,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하청의 확산에 대해서는 ‘하청에 기반을 둔 생산시스템’(the production system based on subcontracting)이 형성되었기에 자본은 종속적인 수탈과 함께 하청체제의 유지 및 재생산을 위해서도 노력하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하청에 기반을 둔 생산시스템은 사내하청과 결부되면서 기존의 ‘기업내부노동시장’을 ‘기업내 이중노동시장’으로 재편하면서 사내하청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기업내부노동시장에서 사내하청 노동은 분절(segmentation)되어져 존재하면서, 동시에 접합(articulation)되어져 있는 이중적인 속성을 나타내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내부노동시장의 구조변화의 과정 또한 대기업 내에서 노동과 자본이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서로의 필요와 이해관계가 결부되면서 ‘사내하청을 활용하는 기업내부노동시장’이 등장하게 되고, 이와 같은 노사 간의 담합(collusion)은 사내하청 노동을 반드시 필요로 하게 되면서 현재 사내하청의 유지 및 재생산 방식까지 모색하고 있는 단계로까지 진전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또한 현재 노사의 전략적인 선택과 담합을 단순히 사내하청에 대한 배제전략이라고만 할 수 없다.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보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임금 및 복지수준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원청노조의 요구로 원청사측은 지속적으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처우를 지속적으로 개선해주고 원청노조에서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고용을 유지시켜주기 위해서 ‘하청업체변경 시 고용승계 보장’의 내용으로 지원활동을 하기도 한다. 이는 조선산업 사업장들의 임단협에서 ‘별도/특별 협약’ 방식으로 사내하청 처우개선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사내하청을 매우 광범위하게 활용하는 조선산업 원청대기업들은 사내하청 시스템의 지속적인 유지 및 운영을 위해서 장기근무를 하는 (1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는 하청업체에 대한 ‘기성금 단가인상’이라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정규직 수준에 육박하는 기업복지혜택들을 제공하고 있다. 즉, 원청노조의 요구 및 원청사측의 이와 같은 요구의 수용은 궁극적으로는 원청의 노사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나타난 ‘의도하지 않은 타협의 결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사내하청 활용을 통해서 고용안정 보장(노조) 및 이윤추구(사측)가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게 된다면 사내하청 활용유인이 대폭 줄어들 것이다.
 
◯ 기업내부노동시장 구조변화의 결과
 
  1990년대 이후 자본의 고용형태 다양화 시도와 (정규직) 노동의 고용안정 보장 요구는 서로 상충되고 공존할 수 없는 대결국면을 형성하게 된다. 정규직 내부노동시장을 지속시키려는 정규직 노동과 정규직 내부노동시장의 고용보장과 고임금에 불만인 자본은 서로의 이해관계를 동시에 관철시키기 위한 암묵적인 담합(modus vivendi)이 작동하게 되는데, 이는 제조업 부문에서 ‘내부노동시장의 외부화’를 의미하는 사내하청 노동의 확산으로 나타났다. 1990년대 초부터 자본은 과거 활용해왔던 사내하청 노동을 재등장을 시도하였고, 1990년대 중반 이후 노동은 개별적 또는 미시적 노사관계 차원에서 합의를 통해 사내하청 노동의 활용에 대해서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 동의하였다. 이와 같은 노동의 대응전략의 변화는 1998년 이후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이 심각해지면서 자신들의 고용을 지켜내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서 (정규직) 노동은 기존의 ‘정규직 중심의 내부노동시장’은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고임금과 기업복지를 관철시켜 나갈 수 있었으며, 자본은 정규직 중심의 내부노동시장과는 별도의 ‘사내하청 노동시장’을 기업 내부에 형성하여 고용의 유연성 확보와 인건비 절감이라는 자신들의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었다.
 
  노동-자본 관계의 변화는 기존의 (정규직) 기업내부노동시장의 분절화(segmentation)로 사내하청이 등장한 것과 동시에 사내하청이 기존의 기업내부노동시장에 접합(articulation)되는 양상으로 구조변화가 나타났다. 이와 같은 구조변화의 과정에서 사내하청 노동은 ‘의도하지 않게’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 결과 개별 기업 차원에서의 고용불안 및 저임금은 사내하청 노동으로 집중되어 원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의 격차는 심화되었다. 1990년대 이후 사내하청을 활용하는 생산시스템의 (재)등장은 이러한 점에서 자본주의 발전 초기 단계에 나타났던 선대제 방식의 하청생산이나 건설업에서 가장 특징적으로 전개되었던 (사내)하청 노동의 활용과는 역사적인 맥락에서 차이가 있다. 그리고 노동-자본 관계의 역사적인 변화와 노동시장 구조변화의 상호작용은 한국의 제조업 부문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그림 2] 기업내부노동시장의 구조변화
 
[그림 3] 2001-2011년 대우조선해양(왼쪽), 삼성중공업(중간), 현대중공업(오른쪽)의 매출액(점섬) 및 사내하청 비율(실선)
 
  그리고 이와 같은 담합의 결과는 조선산업의 성장이 사내하청 노동을 기반으로 이루어져 왔음을 보여준다. 2000년대 조선산업은 최고의 호황기를 누리면서 급성장하였다. 이처럼 급성장하면서 노동집약적 산업인 조선산업에서 추가로 필요한 노동력은 이와 같은 원청 노사간의 담합으로 사내하청으로 대부분 충원해왔다. 이는 소위 조선산업 ‘빅3’라고 하는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모두 2000년대 매출액 증가와 직영대비 사내하청 비율의 증가가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 결론을 대신하여
 
  한국의 조선산업은 사내하청 중심으로 생산현장은 재편되었으며, 기능직으로 시작하여 숙련된 원청(직영) 노동자들은 점차 간접지원부서나 스텝으로 전환해하고 있다. 원청 노사의 이해관계가 절충안을 찾으면서 전개되고 있는 이와 같은 현재의 상황에서 앞으로 한국 조선산업의 생산현장은 이와 같은 경향이 지속되면서 사내하청 업체 및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비중과 중요성은 점차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장의 정규직 조합원들의 생각과 사측의 전략은 아래와 같이 전개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하청(중심)으로 계속 가는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고임금의 직영인원을 구해봐야 생산성도 안 나오는데 그렇게 하느니. 어차피 일정규모 직영을 유지한다는 노사합의가 있으니까. 오히려 직영인원이 현장 관리를 하는 게 더 바림직하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기술이전도 해줄 수 있으니까... 왜냐면 지금 스텝으로 빠져 있는 (직영)인원이 대부분인데 나머지 직접생산부서에 있는 직영들의 불만이 장난이 아니거든요. 그럴 바에야 차라리 전부 다 (직영을) 생산관리스텝으로 다 몰아버리고. 그리고 철저한 외주관리 쪽으로 가는 게 (낫다고 봐요.)” - 2013년 8월, 아무개조선소 직영노동자 인터뷰 중
 
  이와 같은 현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견해에 대해서 옳고 그름의 논의도 필요하겠지만,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대응방안도 다각도로 모색해야 한다. 즉, 조선산업의 사내하청 중심의 고용관행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지속적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현재와 같은 사내하청 중심의 생산방식이 지속된다면,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한 대응책 또한 준비해 나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한 사내하청 노동의 중요성이 점차 커져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현재의 상황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조직화 및 대응의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금속노조 차원에서 조선산업 사내하청 노동에 대한 대응과 개별 사업장 차원에서의 사내하청 노동에 대한 대응을 포괄하는 전체적인 대응 전략의 모색, 노동시장 구조변화에 대한 대응의 모색의 필요성은 점차 커질 것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조선업 고용관행에 대한 견제와 개입 전략, 그리고 지역별-업종별 차원에서의 노동자들에 조직화 전략이 병진(竝進)되면서 현재의 위기 이후를 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담합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위험작업에 대한 기피로 인해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산업재해가 집중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과 사내하청 노동이 확산되면서 사내하청 내부에서의 분화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이 지난 10여 년 동안 대부분 극한투쟁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실패하고 있는지, 또한 많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노동문제에 저항(voice)하기보다는 외면(exit)하고 있는 현실에서 기업차원을 넘어서는 조직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라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진단하고서, 새로운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