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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페이퍼] 공급사슬 조직화와 지역조직화 결합을 통한 전자산업 조직화

금속노조연구원   |  

공급사슬 조직화와 지역조직화 결합을 통한 전자산업조직화
 
 
이유미(금속노조 노동연구원 객원연구위원)
 
 
전자산업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서는 공급사슬 내에서 교섭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전략과 공단지역 조직화를 결합시키는 방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대기업을 정점으로 하는 수직적인 하청구조가 노동조건을 규정하기 때문이며, 전자산업 노동자들은 한 업체에 정착하지 않고 공단의 하청업체를 전전하기 때문이다. 본 글에서는 하청업체 중에서 원청인 전자대기업에 상대적으로 교섭력을 가지며, 공단에서 주요한 업체로서 파급력을 가지는 1차 하청업체를 주요 대상으로 삼아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노동운동의 혁신과 조직화」(마크 딕슨 외, 2013)와 「금속노조 공단조직화」(박준도, 2014)에서 참고한 국내외 조직화 사례를 살펴보면서 전자산업 조직화의 시사점을 확인해 보고자 한다. 공급사슬에서 교섭력을 발휘하기 위한 전략과 지역조직화 전략으로 나눠서 살펴보겠다.
 
1. 공급사슬에서 교섭력을 발휘하기 위한 전략
 
전자대기업의 생산 특징은 첫째 생산지 해외이전, 둘째 외주화, 셋째 재고 최소화다. 생산지 해외이전을 통한 비용절감은 제품이 판매되는 국가나 인접지역으로 이동해 물류비용을 최소화 하고, 저임금 지역으로 이동해 노동비용을 절감하는 방법이다. 다음으로 외주화는 단가경쟁력이 필요한 범용화된 제품을 위주로 외주 생산하여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다. 셋째로 재고 최소화는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 수요에 따라 공급을 맞추는 적기생산 방법으로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국내 하청업체들은 비용절감을 위해 외주화된 범용부품을 생산한다. 그리고 전자대기업으로부터 재고 최소화를 위해 내부 생산부서처럼 일체화된 방식으로 생산할 것을 요구받는다. 하지만 전자대기업은 하청업체가 일체화된 방식으로 생산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하여 완충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아무리 범용 부품을 생산하는 하청업체의 문제라도 적기생산 시스템으로 인해 원청이 타격받기 때문이다.
 
전자대기업은 하청업체에 문제가 발생하면, 직접 만들던 부품일 경우 자체 생산량을 증가시키고, 또는 동종부품을 납품하는 하청업체의 물량을 늘릴 것이다. 그리고 문제가 지속된다면 해외생산 비중을 높이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다. 하청업체의 노동조합 설립으로 인한 생산 차질 역시 마찬가지로 대응할 것이다. 그러나 단지 생산 차질에만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설립과 유지에 개입할 것으로 보인다. 적기생산에 최적화된 공급사슬 내에 노동조합이 생긴다는 것은 원청 전체 생산에 파급력을 가진 노동조합이 생기는 것이며, 수직적 하청구조를 통한 저임금 시스템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따라서 1차 하청업체에 노동조합이 확대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물량이전 위협을 할 가능성이 높다. 노동조합으로 인해 물량이 줄고 결국 하청업체가 위태로워져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노조설립을 저지하기 위해 하청업체를 비공식적으로 지원할 것이다. 결국 하청업체의 노조인정 여부는 단순히 하청업체가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자대기업의 판단도 작용한다.
 
원청인 전자대기업의 물량 이전 위협을 비롯한 노조설립 방해공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전자하청업체 조직화는 공급사슬을 고려한 전략이 필요하다.
 
○ 미국의 청소노동자 조직화와 게스 조직화
 
미국 LA 청소노동자 조직화 사례는 청소하청업체와 실질적 사용자인 건물주를 동시에 공략하는 특징을 보인다. 하청업체만 대상으로 하면 건물주가 손쉽게 하청업체를 교체해 조직화가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의 하청업체나 건물주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LA지역 전체의 청소 하청업체와 건물주를 대상으로 했다.
 
지역 차원의 청소 하청업체와 건물주를 동시에 공략하기 위해 취약지점을 샅샅이 파헤쳐 대중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무노조 하청업체가 청소를 맡은 건물에서 시위를 벌이며 대형 선전물을 내걸거나, 하청업체 사장들이 자주 모이는 장소에서 선전활동을 했다. 한편 건물주를 공략하기 위해, 입주자들의 불만이 건물주를 향하도록 해당 건물 앞에서 집회나 선전전을 개최했다. 그리고 노조와 친화적인 관계에 있는 건물 투자자를 활용하여 자금압력을 넣었다. 건물 투자자 가운데 공무원퇴직기금이 있음을 확인하고 노조가 연락을 취해 건물주를 압박하여 협상에 응하도록 한 것이다.
 
게스조직화도 원청과 하청을 동시에 공략했다. 게스는 의류 생산에 3,500여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었는데 대부분을 70개의 하청공장에 흩어 놓았다. 하청업체별 접근을 한다면 물량을 옮겨서 노조를 와해시킬 것이 자명했다. 하청업체 전반을 포괄하면서 원청을 고려해야하는 조건인 것이다. 조직화에 나선 활동가들은 이러한 상황을 원청인 게스의 문어발 전략이라고 묘사했다. “(게스가 문어처럼) 여러 발이 있는데, 하나를 잡으면 그건 놔두고 다른 발들로 공격할 것이다.”
 
이에 따라 원청에 대한 치밀한 고공전을 준비했다. 대중적 이미지에 크게 의존하는 사업의 성격을 활용하여 노동착취 공장의 실태를 폭로한 것이다. 게스가 주식을 공모하려던 시점에 노조는 게스 하청업체들이 불법적 가내하청 등 노동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노동부에 제소했다. 그리고 투자자들이 모이는 곳에서 집회를 개최하며 압박하고, 노동착취 실태를 폭로하는 백서를 배포했다. 여론전은 성공적이었으며 게스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혔다. 결국 주식 공모가 연기되고, 노동법을 준수하는 의류산업 선도기업 명단에서도 게스가 제외되는 결과를 얻었다.
 
① 하청조직화를 위해 원청 공략.
 
청소노동자 조직화와 게스 의류생산 노동자 조직화 사례에서 전자산업 조직화가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원청과 하청을 동시에 공략해야 한다는 점이다. 전자산업 역시 원청인 전자대기업의 하청에 대한 영향력이 강력하다. 원청에 대한 전략 없이 하청업체 노동자를 조직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전자대기업의 취약점을 파악하여 대중적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여론전, 캠페인 등을 기획하는 고공전이 필요하다. 삼성과 엘지가 국가 경제를 선도하는 기업이라지만 실상은 하청업체 노동자를 착취해 수익올리고 있음을 폭로하는 것이다. 국가적 영향력이 큰 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 할 것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기획해야 한다.
 
하청업체 노동실태가 열악한 것은 대기업이 책임질 부분이 있으니, 대기업은 노동착취 하는 하청업체와 거래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삼성과 엘지는 하청업체를 매년 평가해서 물량배분과 지원여부를 결정한다. 하청업체 평가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항목도 있는데 노동, 안전, 환경 등의 기준 준수여부를 따지는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하청업체들이 노동착취를 통해 납품단가를 낮추고 수익을 창출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기만적인 사회적 책임이 아니라 실질적인 하청업체 노동조건 개선에 나서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요구를 모아 <전자 하청업체 노동표준>지표를 마련하여 현재 노동자들의 실태를 폭로하고, 이것을 준수하지 않는 업체는 삼성과 엘지가 거래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캠페인 기획도 유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삼성과 엘지는 국내 보다 해외에서의 생산과 매출 규모가 훨씬 더 크다. 국내 여론을 통한 압박만으로는 효과가 약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국내 부정적 여론이 거세지거나, 하청업체 인건비 상승 압력이 실질화 되면 국내물량을 해외로 이전시킬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캠페인의 범위를 초기부터 국제적으로 기획할 필요가 있다. 전자 대기업의 매출액 비중이 높은 지역의 노조나 단체와 공동의 캠페인을 기획하고, 전자 대기업의 주요 생산지인 아시아 노동자들과의 국제 연대를 모색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국내외 여론을 형성하여 해외물량 이동을 제약할 수 있도록 압력의 수위를 높여야 한다.
 
② 주요 하청 동시 조직화
 
두 번째 시사점은 주요 하청을 동시에 조직하는 것이다. 게스 조직화에 나선 활동가의 말처럼 대기업의‘문어발 전략’에 맞서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게스 조직화 사례에서는 주요 하청업체를 동시다발적으로 조직하는 전략을 기획했다. 전자산업 조직화 역시 대기업의 물량이동 위협에 대항할 수 있어야 한다. 전자대기업은 동일한 부품을 복수의 하청업체로부터 공급받기 때문에 하나의 하청에 노조가 설립되면 물량이동을 통해 노조를 와해시킬 것이다. 따라서 동일한 부품을 생산하는 하청업체를 동시에 조직하면 원청의 위협 수단을 상당부분 무력화할 수 있다.
 
③ 지상전과 고공전의 결합
 
세 번째 시사점은 원청을 대상으로 위력적인 고공전을 벌인다 하더라도 지상전, 즉 실질적으로 노동자를 결집시키고 행동에 나서게 하는 조직력이 취약하다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스 조직화가 지상전이 미흡하여 결국 성공하지 못한 사례다. 게스 조직화에 나선 활동가들은 지상전으로 주요 하청업체에서 파업을 조직하고 확대할 계획이었다. 게스는 미국에서 생산된 의류를 판매하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이 주요 홍보 전략이었고, 수익이 높아 하청업체 노동자의 임금인상을 충분히 감당한 여력이 있었기 때문에 애초의 계획대로 노동자들의 결집과 파업이 뒷받침 되었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전략에 대한 중앙지도부와의 동의지반이 약해 고공전에만 집중하라는 지시를 받으면서 지상전과의 결합을 위한 노조의 지원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결국 위력적이던 고공전은 반격을 당하게 된다. 게스는 노조가 강한 하청업체와 계약을 해지했고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으면서 사기가 저하되었다. 또한 노조에 맞서는 캠페인을 벌였고 노조 확산을 두려워하는 LA지역 의류업체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게스 노동자 일부가 노조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으며, 게스는 생산물량을 맥시코로 이동시켰다.
 
반면 청소노동자 조직화는 지상전과 고공전의 결합으로 성공했다. 캠페인과 더불어 조합원들의 참여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캠페인으로 형성된 여론은 노동자들의 대규모 거리 시위와 선전전이 결합되면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조직화에 참여했던 활동가는 “ LA가 노조의 빛나는 별이 된 이유는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참여했고, 가장 많이 해고되었고, 가장 많이 체포되고 감옥에 갔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청소노동자 다수가 남미계 이민자였는데 이민자 네트워크가 노동자들의 결집력을 강화하는 매개로 작용했다. 그 결과 1800명이던 조합원이 2년 만에 8000명으로 급증하며 성공을 거뒀다.
 
전자산업 조직화 역시 마찬가지다. 원청에 대한 대대적인 여론작업을 벌인다 하더라도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참여와 결집이 부재하다면 원청의 반격에 직면해 실패할 것이다. 지상전에 대한 전략은 노동자들의 실태와 구체적 요구에 기반 하여 수립되어야 한다. 이하에서 관련한 내용을 살펴보겠다.
 
2. 지역차원의 접근. 공단조직화
 
하청업체의 공급사슬에서의 지위는 범용화된 제품을 전자대기업에 납품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교섭력이 미약하다. 그리고 생산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외주화된 제품이라 지속적인 단가인하 압력에 놓이며, 국내 하청업체만이 아니라 해외 업체들과도 경쟁관계에 있다. 따라서 하청업체들은 수익을 확보하기 위해서 노동비용을 절감하고 위계적인 하청구조를 활용한다. 노동비용 절감을 위해 사내하청을 비롯한 비정규직을 활용하고, 장시간 저임금 노동을 일상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위 밴더 업체들은 하위 밴더 업체들에게 공정의 일부를 외주화 하면서 위기비용과 위험부담을 전가한다. 이는 최종적으로 노동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이러한 하청구조는 전자산업 노동조건을 매우 열악하게 만든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불만은 누적된 상태라도 노조 설립이 녹록하지 않다. 이유는 전자 하청업체 임금이 낮다하더라도 공단지역 전반이 저임금이기 때문에 오히려 상대적으로 나은 편에 속하고, 노동자들의 근속이 짧으며, 하청업체가 노조설립과 유지를 방행할 다양한 수단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대기업과 직접 거래하는 1차 하청업체는 공단지역에서 그나마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지급하며 물량도 안정적으로 확보된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이만한 곳이 없다는 생각에 열악한 노동조건을 수용한다. 하지만 노동 강도를 견딜 수 없거나 물량이 감소하면 이직해서 근속이 짧다. 하청업체는 이직이 잦아도 구직자를 꾸준히 확보할 수 있으므로 근속을 늘이기 위한 유인책을 특별히 제공하지 않는다. 이직한 노동자들은 공단 내의 비슷한 전자하청업체를 맴돌다가 다시 입사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노조를 설립하기도, 유지하기도 어렵다. 하청업체 다수는 노동자를 파견직이나 소사장제와 같은 위장도급으로 고용하고 있다. 그래서 업체에 반항하는 노동자가 있는 경우에는 파견계약을 해지하고 소사장 업체를 폐업하여 물갈이를 한다. 노조가 설립 되어도 원청 대기업과 함께 물량이전으로 회사가 망할 것이라는 공포를 조장해 노조를 탄압할 것이다. 특히 불법파견과 소사장제는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피하기 위한 도피처로 활용 될 것이 자명하다.
 
따라서 전자 하청업체를 조직하기 위해서는 개별 사업체 조직화로 접근하기보다 지역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노동자가 하나의 업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기 때문이며, 개별업체 조직화로는 노조탄압에 대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하에서는 「공단조직화 진단과 과제」에서 조사한 사례를 중심으로 시사점을 확인하도록 하겠다.
 
〇 포항 쇼어링(Shoring) 업체 노동자 조직화
 
2011년 포항에서는 쇼어링 업체 노동자들을 조직한다. 쇼어링이란 선박의 대형화물을 고정시키는 일을 가리키는데 근로기준법조차 지켜지지 않는 무법지대였다. 업주들은 가능한 적게 고용해서 최대로 쥐어짜면서 노동을 시켰고, 물동량이 많으면 최대 48시간을 쉬지 않고 일을 시키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노동자들이 한 달에 받지 못한 연장근로 수당이 60-70만원에 달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노조설립을 의뢰하기 위해 쇼어링 업체 노동자가 찾아왔고, 노조를 설립과 교섭하는 과정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 관심을 끌어 쇼어링 업체 9개 중에서 제일 큰 세 군데를 거의 동시에 조직하게 되었다.
 
2012년에 세 개의 업체가 임단협을 시기집중 투쟁으로 진행했다. 포스코의 반격이 들어왔는데, 특정업체에는 물량을 몰아주고 또 다른 업체에는 물량을 적게 준 것이다. 물량위협으로 분열을 조장하려 했지만 노동자들은 물량이 많은 곳은 업무를 거부하면서, 물량이 없는 곳은 물량 거부하는 동지들을 믿으면서 단결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노조설립 이후 근로기준법대로 임금을 받는 것이 안착되었다. 현재는 단지 임금인상에 그치지 않고, 쇼어링 업체 9개 모두를 조직해서 항만의 문화를 바꾸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운송사와 화주사를 대상으로 단가인상을 하는 싸움을 준비하는 상황이다.
 
① 공단의 주요 전자하청업체 동시 조직화
 
포항 쇼어링 업체 조직화 사례의 시사점은 주요한 업체를 동시에 조직했다는 점이다. 또한 주요업체 동시 조직화를 통해 불법 천지이던 쇼어링 업계의 노동조건을 근로기준법 준수로 향상시켰으며, 원청의 반격에 동시 대응할 힘을 획득할 수 있었다.
 
전자산업 역시 동시조직화 전략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공단에서 주요 전자하청이 동시에 조직되면, 노조가 설립된 특정 업체만 임금부담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다수업체들에서 대기업 납품단가에 노동자 임금상승분을 반영하도록 하는 효과가 생긴다. 이를 통해 공단에서 전자업계의 평균노동조건을 상향할 수 있고, 노조설립이 파급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러나 전자하청은 쇼어링 업체처럼 단일 업종이 아니고 다양한 부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동시조직화 대상을 선정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공단의 업체 분포 상황에 따라 동일한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를 묶을 수도 있고 동일한 원청에 납품하는 업체를 묶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포항 쇼어링 노동자들은 조직화 단계에서는 극단적인 저임금을 의제로 삼았고, 현재는 노조로 조직된 주요 업체를 중심으로 업계 전체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공동투쟁을 벌이고 있다. 전자 하청업체역시 주요업체를 공동으로 조직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요구를 의제로 삼아 공동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전자하청업체의 경우 공동요구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한데, 쇼어링 업체만큼 동질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근속이 짧고 이직률이 높기 때문에 공동요구는 사업장 특성에 국한되지 않고 공단 전자하청업체 노동자 전반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전자하청업체들은 경기변동에 따른 노동시간과 임금격차가 크다. 물량이 몰릴 때는 한 달에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물량이 없을 때에는 무급휴업으로 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의 낮은 임금을 받는다. 노동자들이 공감할만한 요구는 ‘주 1회 쉴 권리’, 비수기에 급격한 임금저하를 예방하기 위한‘휴업수당 받을 권리’등이 있다. 최소한의 근로기준법 준수를 통해 경기변동에 따른 임금격차를 줄이고 휴식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공동요구를 통한 동시조직화가, 원청 대기업을 대상으로 고공전을 벌이는 것과 결합되면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앞 절에서, 전자하청업체 노동실태에 대한 대기업의 책임을 물으며 노동착취 하청업체와의 거래를 제한하는 캠페인을 구상해 볼 수 있다고 했다. 전자하청 노동자의 공동요구를 모아 노동착취 여부를 가려내는 지표로 가칭 <전자하청업체 노동표준>을 만들고, 이를 활용해 고공전과 동시에 공단에서 주요업체 조직화에 나서는 것이 바로 지상전과의 결합이 될 수 있다.
 
② 공단 노동자들로부터 신뢰 획득 및 거점형성
 
경남지부는 통영의 노동상담소를 고충해결기관이 아니라 지역의 현장주체를 육성하는 매개로 삼고 있다.예를 들어 임금체불 상담이 들어오면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직접 부딪쳐서 해결을 시도할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주고 독려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맺은 관계를 꾸준히 이어가면서 공단차원의 조직화를 준비하고 있다.
 
서울 남부지회는 ‘무료노동 이제 그만’캠페인을 벌여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 사업장을 고용노동부에 고발했다.무료노동이란 출퇴근 시간 20~30분을 무급으로 일시키고, 휴업수당을 주지 않고 강제로 연차를 쓰게 하는 등의 공단에 만연한 관행을 뜻한다. 노동자들의 밀접한 요구였기에 반향이 컸고, 단기간에 3천 명이 넘는 노동자들로부터 근로기준법 준수 서명을 받아 결국에는 지역 사용자 단체와 지역지청으로부터 근로기준법 준수 협약을 받았다. 그리고 정기적인 광장사업과 소모임을 구성해 공단노동자들과의 접면을 넓히고 있다.
 
두 지역의 시사점은 주체를 형성하기 위한 경로를 개발한다는 점이다. 의식적으로 주체형성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노동조합에 스스로 찾아오는 노동자 몇 명만으로는 동시조직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공단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다가올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현장 노동자 스스로가 다른 노동자를 조직하는 것으로 확대되어야 공단 주요하청업체 동시조직화가 가능하다.
 
공단지역의 노동이슈를 환기시키기 위한 설문조사, 상담사업, 선전전을 정기적으로 수행하면서 해당지역 노동자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공단지역 노동자들이 서로 교류하고 노동문제를 상담할 수 있는 기획을 마련하여 이를 중심으로 지역 노동자가 모이는 거점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