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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퇴진 투쟁과 그 이후, 노조하기 좋은 나라 건설로 나아가자

강지현 / 전국금속노동조합 기획실장
금속노조연구원   |  

제도정치권의 시간 끌기와 기회주의적 흐름은 대중투쟁에 제압됐으며 국회 탄핵소추안의 압도적 가결까지 나아갔다. 그것도 매우 평화적으로. 이제 국민의 요구는 부역자 처벌, 재벌 처벌로 뻗어가고 있다. 그리고 2017년으로 해가 바뀌고 있다. 박근혜는 이미 끝났고, 지금은 저마다 박근혜 체제 이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도대체 뭣이 끝난 것이고, 이제 뭣이 중할까?

박근혜 체제 이후가 더 중요하다

연인원 1천 만 명에 육박하는 촛불집회 참석자에는 박근혜를 찍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과히 국민항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군사적 국가주의, 민족종교, 기독교 혼합 종교, 재벌 등으로 표상되는 극우세력이 국가체제나 의회체제 밖에서 비밀 결사 형태로 조직되어 국가운영에 프랙션(fraction)했고 그 장본인이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었던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것을 드러낸 게 기획된 무엇이든 또는 우연이든 크게 중요치 않다. 박근혜가 실정법 어느 대목을 조목조목 위반했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실로 박근혜는 끝났다.

박근혜의 종말은 한국형 권위적 국가주의 체제가 종점에 도착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권위적 국가주의란 규율과 전제지배, 유사군대적인 조직적 규칙, 위계, 결정과 처벌의 중앙집권화를 강화하고 확대하는 체제를 말한다. 이 체제는 국가관료제 위주의 통치며 정치적 자유에 대한 심각한 제한을 내포하면서 행정부의 최고지도자 권력의 개인화 경향으로 치닫는 체제다. 박정희 체제가 그랬고 박근혜 체제가 이를 복사했다. 때문에 박근혜의 종말은 권위적 국가주의 체제라는 긴 터널로부터의 해방이다.

권위적 국가주의의 종점이 보인다

권위적 국가주의 체제의 종말은 의회질서의 재구성의 길도 열고 있다. 그동안의 체제를 떠받친 정당은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3권 분립에 의거한 행정부 견제 기구가 아니었다. 그 정당은 청와대와 국가 관료가 결정한 국가정책의 선전선동을 위한 단순한 회로였다. 국회의원 선거는 위에서 내리꽂은 입후보자에 대한 승인에 불과했다. 박근혜 체제의 종말은 바로 이 정당의 해체 혹은 고립을 뜻한다. 새누리당도 사실상 끝났다. 당분간 발악은 하겠지만.

앞으로 정국은 이렇게 전개될 것이다. 우선 어떠한 식이로든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려 할 것이다. 대통령(청와대) 견제 기능으로서 의회와 사법부 역할론도 대두될 것이다. 그런데, 국가행정‧관료제와 대비되는 진정한 복수정당 체제가 존재하지 않거나 작동되지 않는다면 권위적 국가주의의 또 다른 터널은 언제든 부활한다. 이 점에서 우리 노동운동은 대통령 결선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사법부 개혁(특히 검찰개혁), 그리고 집회‧시위‧언론‧출판의 자유 등 모든 정치적 자유의 제도적 보장을 외쳐야 한다. 고작 현 정치권 이합집산의 도구 수준으로 개헌을 만지작거리는 흐름을 반드시 제압해야 한다. 검찰만이 모든 정보를 독점하며 청와대에 칼을 휘두르는 꼴도 위험하기 짝이 없다.

자칫하면 또 다른 어둠의 터널이 온다

국가체제에 기대어 장기 불황에 기인한 이윤율 하락을 만회하고 착취율을 높이려 하는 게 자본의 속성이고 자본과 국가의 관계다. 2014년 11월 전경련은 기간제법-파견법 개정, 해고요건 완화, 임금피크제 법제화 등의 정책 추진을 청와대에 주문했다. 저 정책은 자본의 착취율을 높이는 것을 전격적으로 도와주는 정책이다. 박근혜 체제는 이를 그대로 추진해줬다.

그 대가로 현대기아차그룹은 정유라의 동창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를 납품사로 받아줬다. 그 대가로 현대기아차그룹은 미르재단에 85억 원, K스포츠재단에 43억 원을 잇따라 상납했다. 그룹은 차은택이 실소유주인 플레이그라운드에도 그룹 광고 여섯 편을 몰아줬다. 하지만 이들 재벌에게 이정도 비용은 이윤율 만회 및 착취율 제고 기대치에 비하면 껌 값이다.

문제는, 이 같은 속성을 가진 자본의 태도가 권위적 국가주의 체제의 종말로 인해 동시에 끝을 보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데 있다. 자본은 국가의 하나의 장치에서 다른 장치로 지배적 역할을 대체하는 게 가능하다. 김대중 정권에서도 자본은 정리해고제를 관철시켰다. 노무현 체제에서도 자본은 비정규직확산법을 관철시켰다. 다음 대통령 체제에서도 자본은 여전히 이를 반복하려 할 것이다.

자본의 속성, 그리고 국가와의 관계

자본에게 국가는 전략적 장소일 뿐이다. 우리 노동운동에게 권위적 국가주의 체제 종말보다 중한 게 바로 이 대목이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주의 세상은, 착취율을 높이려는 자본과 착취 받지 않으려는 노동 사이의 대립과 갈등의 산물이다. 따라서 우리 노동운동은 이번 국면을, 자본에 착취 받지 않기 위해 교섭과 투쟁을 병행하는 조직인 노동조합 활성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 점에서, 노동운동이 이번 국면에 튀지 말고 시민과 함께 하는 투쟁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안일하다. 자본은 잠시 주춤하겠지만 또 다시 자본 천국행 열차로 갈아타게 돼 있다.

이번 기회에 노조하기 좋은 나라 건설 투쟁으로 나아가자. 그 요체는 이렇다. 자본 청부 노동자 착취제도 관철에만 열 올리는 노동부를 개혁해야 한다. 재벌 기업의 산별교섭 참여를 촉진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 노조 내부 단결을 저해하고 차별만 양산하는 재벌계열사 및 하청납품사 비정규직을 제도적으로 해소해야 한다. 하청노동자를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 원하청 착취와 다단계 하도급을 근절하고 철폐시켜야 한다. 복수노조 상태에 있는 소수노조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보장하도록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더 나아가, 노조가 산업 및 사회적 각종 협의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장의 길도 열어야 한다.

시민과 함께 하는 싸움만 하면 된다?!

그런데 위와 같은 노조하기 좋은 나라 건설은 노동조합의 힘만으로는 벅차거나 불가능하다. 이를 함께 추진할 국가‧제도적 장치가 함께 필요하다. 사실 이것이 바로 정치세력화다. 이번 정국에서 우리 노동운동은 그동안 미완의 과제였던 노동자 정치세력화로 나아가야 한다.

싫든 좋든 벌써 대선국면이다. 그런데 대선이 치러질 시기는 예측하기 쉽지 않다. 그 시기가 늦어질수록 3지대 합종연횡 세몰이에 유리하고 빨라질수록 더민주당에 의한 정권교체에 유리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노동운동에게 단순한 정권교체는 대선투쟁의 목표가 결코 아니다. 우리 노동운동에게 대선이란 ▵모든 정치적 자유의 제도적 보장 관철 ▵노조하기 좋은 나라 건설을 위한 요구 관철 ▵노동자 정치세력화 교두보 마련 등을 모두 전제로 할 때 유의미하다.

2017년 새해 벽두부터 노조하기 좋은 나라 건설을 위한 우리 요구를 만천하에 쟁점화 하는 투쟁을 지속하는 가운데, 노동자 정치세력화 교두보 마련을 위한 민주노총 정치전략안 토론도 부지런히 병행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17년 이후는 그 이전과 확실히 달라져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