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칼럼 > 칼럼
칼럼
 

4차 산업혁명과 사라지는 노동의 권리

백승렬 / 어고노믹스 대표
금속노조연구원   |  

2017년 정유년 새해 벽두부터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단어 중 하나는 “4차 산업혁명”과 이것으로 인해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기사들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는 많이 들어봐서 매우 친숙한 단어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제대로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쉽게 말하자면 현장에 도입된 자동화 설비에 인공지능을 결합하여 인간의 사전 조작 없이 스스로가 판단하여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똑똑한 기계로 바꾸는 것이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다. 그러면 왜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일까?

“혁명”이라는 단어는 새로운 것에 대한 희망적 의미로 받아들여지지만 사실 매우 잔혹하고 비정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이중적인 단어이기도 하다. 혁명은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등을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세우는 과정을 의미하며, 이를 위해서는 소수계층이 칼자루를 잡고 반대 세력을 모두 제거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이루어지는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과정인 것이다.

이러한 혁명이 산업계에서는 이미 3차례가 진행되었다. 새로운 기술인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시작된 1차 산업혁명으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계급이 분화된 이후, 석유와 전기의 발명으로 기인한 1900년대 2차 산업혁명의 결과로 거대기업이 등장하였고, 1970년대 이후 자동화기기 도입으로 인한 3차 산업혁명에서는 글로벌기업이 등장하면서 부를 독점하게 되었다. 반대로 노동자 계급은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매번 대량실업과 임금삭감으로 인한 공황의 고통을 감내하여야 했다. 무엇보다도 무서운 점은 3차에 걸친 산업혁명은 모두 이익의 확대를 위한 신기술 도입으로 시작되어 대중들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진행되었고, 노동계급이 인식하게 되는 시점은 공산품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물가가 불안해지게 되고 경제를 살리려면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보편화되어 희생양이 필요한 시점에서야 비로소 체감한다는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나라는 산업혁명의 여파는 받지 않았으나 다른 나라보다 뒤늦은 산업화, 자동화의 흐름과 정치적 상황이 엮인 IMF 외환위기로 산업혁명의 결과와 유사한 대량실업과 임금삭감의 고통을 경험한 바 있다. 따라서 닥쳐올 4차 산업혁명의 과정에서 자본의 확장과 이로 인한 노동자 계급의 피해는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새롭게 등장한 단어도 개념도 아니다. 세계적인 석학이자 미래학자인 엘빈 토플러(Alvin Toffler)나 존 나이스빗(John Naisbitt)은 1980년대부터 산업화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의 전환으로 데이터 홍수, 로봇에 의한 인간일자리 75% 대체, 하이테크와 하이터치의 공존 등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고 점진적으로 우리 생활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어서 절실하게 체감을 하지 못했을 뿐이다. 4차 산업혁명을 기술적으로 정의하자면 이른바 CPS(사이버 물리 시스템)의 적용이다. 인공지능 서버가 엄청난 속도의 무선통신망을 통하여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전자장비나 기계들을 사람의 개입 없이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초보적인 사이버물리 시스템은 이미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불과 얼마 전에는 매장에 가서 점원과 함께 물건을 고르고 계산을 하고 물건을 들고 왔으나 지금은 스마트폰 홈쇼핑에서 클릭 한번 하면 신용카드로 바로 결제가 되어 다음날 집으로 배송된다. 몇년 후에는 홈쇼핑에서 고른 상품이 잘 어울리는지 가상현실로 보여주고 원하는 대로 디자인이나 색상을 변경한 상품을 공장에서 로봇이 실시간으로 맞춤 생산해서 무인차로 바로 배송하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 시범운행 중인 자율주행차는 운전사를 대신하게 되어 택시나 버스, 화물트럭을 운전하는 노동의 대부분이 필요 없어지게 되고, 시설을 점검하거나 상황에 따라 조정하는 장치산업의 업무나 텔레마케팅이나 전화상담원도 상당수가 무선통신과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러한 4차 산업혁명을 뒷받침할 두가지 핵심기술, 알파고(ALPHA Go)로 대표되는 인공지능과 초고속 통신기술인 5G 이동통신이 몇 년내에 상용화되면 미래가 현실화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앞으로 몇 년 후부터 본격화될 제 4차 산업혁명이 벌써부터 이슈가 되는 것일까? 본격적인 산업혁명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아 외국에서는 미래 이야기로 논의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현실세계에서 구조조정의 피바람으로 불고 있다. 핀테크란 명분으로 상담이나 입출금등 대부분의 은행 업무가 줄어드는 것을 예상하여 지점을 폐쇄하고 조기퇴직을 진행하고 있다. 백화점과 마트에서는 판매직 인원이 줄고 있으며 택배업체는 정규직 고용을 줄이고 대부분의 배송사원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있다. 상당수의 제조업 사업장에서는 조금씩 인원이 줄어가고 있고 그 자리를 자동화 설비들이 차지하고 있다. 언론이 기술발전으로 일자리가 줄어간다고 대중을 세뇌를 시키고 있어 기술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는 노동자는 해고를 당하는 것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이나 첨단 기술 도입이 명분이 되어 인건비를 줄여 수익을 높이는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발전된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기업이나 노동자뿐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사명이지만 발전을 추구함에 있어서 불필요한 희생이나 피해는 없도록 충분히 검토하고 대비하는 것 또한 미래를 준비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사업장에서는 노동시장의 변화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는커녕 미래를 대비한다는 구실로 일자리를 줄이고 노동자에게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일어날 기술발전에 따라 일자리가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라고 분위기를 조성하는 언론의 의도대로 만들어지는 국가정책이다. 국가의 정책은 당장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지만 수년이 지나면 돌이킬 수 없는 흐름으로 작용한다. 유럽등 선진국에서는 수년 전부터 기술발달로 인한 노동시장의 급변을 대비하기 위하여 노사정이 협력하여 정책을 마련하고 시행하고 있다.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직무 종사자에 대하여 직무전환 교육을 실시하고, 노동시간을 줄이고 임금체계를 개선하여 개인의 여가시간을 늘이고 고용을 확대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EU국가를 중심으로 4차 산업혁명이 이루어지면 오히려 고용은 안정되고 노동시간은 줄어들며, 경제가 성장하여 복지수준이 높아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예측의 중심에는 고용안정을 통해 부의 재분배가 가능하도록 하는 노동진영의 의견이 반영된 국가 정책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용자단체들은 언론매체를 통해 여론을 조성하고 정부정책에 지속적으로 관여하여 왔으나, 노동진영에서는 정책 수립단계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거나 정책에 의사를 반영하는 것은 고사하고 매번 정책이 결정되고 시행된 이후에야 반대의견을 내는 사후 약방문 처방만 반복하여 왔다. 한국형 4차 산업혁명 정책인 “제조업 혁신 3.0”도 이미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으나 대기업 주도의 자동화 정책으로 고용에 대한 고려는 부족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정책의 기조가 유지된다면 앞으로 수년후 일을 할 수 있는 권리는 상당부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미 언론이 만들어낸 사회적 분위기는 과거와는 비교도 안되는 높은 수준의 구조조정을 당연시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의 대부분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사라지는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국가 정책을 노동중심으로 전환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노동진영의 선제적이면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고용의 증진을 위한 국가정책을 요구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이다. 노동자는 국민의 한 사람이자 노동의 주체로써 일하는 권리를 요구하고,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대표로써 이러한 개개인의 요구를 받아 안아 책임지고 국가정책으로 관철시켜 사라지는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

앞으로 몇 년새에 닥쳐올 기술의 변화에서 깨어 있고 하나된 노동진영의 목소리는 제4차 산업혁명을 피비린내 나는 대량해고와 구조조정으로 노동의 권리를 사라지게 할 것인지,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를 살리게 될지 방향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