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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헌법 개정하는 시대의 주인인가

김영수/상지대 교수
금속노조연구원   |  

헌법전쟁이 시작되었다. 개헌을 둘러싼 권력 간 전쟁이다. 문재인 정부는 현행 헌법 제128조 1항의 규정에 근거하여 소위 ‘문재인 개헌안’을 만들어 국회에 넘겼다. 권력과 권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누구나가 참여하는 개헌전쟁이다. 재외국민의 투표권을 보장해야 하는 국민투표법의 개정도 중요하지만, 진짜는 따로 있다. 1987년 이후 30년 이상이 지나서야 개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만큼, 헌법을 한 번 개정하고 나면 언제 다시 개정할 것인 가도 불투명하기에, 사람들은 개헌을 놓고서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들은 노동헌법을 농민들은 농민헌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서 정치세력이 내놓은 헌법과 전투를 할 모양새다. 소위 ‘을’들이 헌법전쟁에 달려들고 있다.

 

그런데 소위 ‘문재인 개헌안’과 ‘개헌안에 대한 국회 논의’에서는 주권자를 찾아볼 수 없다. 권력은 애시 당초 주권자들을 개헌 정국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권력을 중심으로 하는 기준과 잣대만이 개헌의 판을 휘젓고 있고, 주권자들과 함께 삶의 가치와 프레임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배제해 버렸다. 또한 참으로 오묘한 개헌 정국이다. 기한까지 설정한 시한부 헌법전쟁이다. 개헌시기를 2018년 6월 13일까지 정해놓고 시작한 것도 그렇고, 진짜 전쟁을 하고 있는지 잘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도 그렇다. 정당 간에 찬반의 근거도 불투명하다. 권력과 권리가 벌여야 할 전투가 존재하지 않는 전쟁이다.

 

1987년 6월 항쟁이 ‘호헌 대 개헌’이라는 권력 대 권리의 대립구도에서 시작되어 ‘대통령 직접 선출’하는 개헌으로 대단원의 1막을 마감했던 사실에 비추어보면, 개헌의 문제는 곧 권리주체들의 사안이어야 한다. 노동자와 농민의 헌법이라면, 어민들이나 상인들이나 어린 학생들의 헌법도 필요한 것인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정당과 정치세력들은 늘 하던 방식대로 국민을 헌법전쟁의 허수아비로 취급해서 그런 것 같다. 장막을 친 상태에서 민의 참여가 사실상 봉쇄된 권력만의 개헌전쟁이기에 그렇다. 민이 권력의 장단에 춤만 추는 인형극장의 인형이 아니라면, 민은 개헌의 주체가 될 필요가 있다.

 

주권재민의 주인인 당신은 개헌정국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헌법은 근대 국가의 정체성을 다시 정립하게 한 ‘민’이 주인이라고 한다. 그 근거도 헌법에서 제시한다. 세계 모든 헌법이 ‘국가의 모든 권력이 ‘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한 것이다. 이러한 규정이 의미하는 것처럼, 주권이 민에게 있다는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실현이다. 국가의 정체성을 다시 정립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주권자가 절대군주에서 민으로 바뀌었다고 선포한 권력의 산물인 점도 사실이다. 하지만 권력은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주권자들 스스로 권리를 행사하는데 수많은 걸림돌들을 만든다.

 

헌법 개정안이나 헌법 개정의 논의가 권력의 시공간에서만 이루어진다고 가정해 보자. 물론 현실에서는 그렇게 작동하고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주권자인 당신은 그저 권력이 만들어 낸 헌법 개정안의 주인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저 하얀 천막의 감옥으로 들어가서 빨간 잉크색 인장을 들었다 놓은 투표기계로 전락하는 것이다. 소위 ‘문재인 개헌안’이든 국회의 개헌논의든, 주권자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개헌활동본부>가 전국 방방곳곳에 설치되고, 그 본부를 중심으로 주권자들의 주체적 참여를 이루어내는 방식으로 ‘개헌 논의의 품격’을 갖추어 나가야 한다고 본다. ‘민’에게 헌법의 기억을 재현하는 차원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민을 정치의 객체가 아닌 실제 주인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매일 매일의 삶을 민주화하기 위한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갈 공간을 확보하고, 자신의 장점을 살리고 재능을 발휘하기 위한 권리자치의 ‘시대 만들기’인 것이다. 국가를 대신하는 민의 시대 혹은 권력을 대신하는 권리의 시대를 만들자는 말이다. 이는 권리의 주체들이 권력의 분산시켜 수많은 소제왕으로 탄생되는 시대, 민이 자신의 삶을 위해 권한을 실제로 행사하는 시대이다. 권리자치의 시대는 ‘권력을 민에게, 권리를 권력으로’ 체계화하는 것이다. 무수한 권한들이 ‘민’의 권리를 실현하는데 앞장서고, 그러한 권한들을 모으고 모아서 권력으로 전화되는 원리가 실현될 때, 권력의 실제 주인이 ‘민’이고, ‘민’으로부터 권력이 나온다는 헌법의 가치가 삶 속으로 투영된다. 이런 시대야말로 민주주의 정치가 민에게 ‘삶의 자존감’과 ‘헌법의 품격’을 부여한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