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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노광표/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금속노조연구원   |  

한진그룹 조양호회장 일가의 갑질과 전횡에 국민들의 분노가 집중되는 상황에서 지난 5월 22일 별세한 LG그룹 구본무회장의 경영철학과 소박한 장례식이 사회적인 주목을 끌었다. 재벌로 상징되는 황제경영과 족벌경영의 행태와 달리 정도경영(正道經營),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표상으로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편법 써야 1등 할 수 있다면 차라리 1등 안 한다”, “경영환경이 어렵다고 사람을 안 뽑거나 함부로 내보내서는 안 된다”는 발언들은 팍팍한 세태에 찌든 국민들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구회장의 경영철학은 무(無)노조 경영이 무슨 자랑이듯 떠벌리는 삼성그룹이나, 정경유착으로 점철된 여타 재벌들과 일정한 차이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구회장 칭송 뒤에 오버랩 되는 구광모 LG전자 상무의 4세 경영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에는 어안이 벙벙하다. 인화 경영의 표상으로 언론에서 상찬 받던 LG그룹도 장자승계처럼 시대착오적인 족벌경영의 굴레에 갇혀 있는 것이 한국 재벌의 현 주소이다. 언제까지 기업을 소수 오너일가의 소유물로 여기는 전근대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재벌 오너들은 평균 2∼3% 미만의 주식을 갖고 전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극소수의 지분이지만 계열기업들이 상호 주식 보유 등을 통해 서로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오너들이 강한 지배권을 행사한다. 전근대적 지배 구조를 토양으로 온갖 탈법과 비리 관행들은 한국 경제의 생태계를 갉아 먹고 붕괴시킨다. 총수 일가의 편법 승계, 일감 몰아주기,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 탈취 등 불법과 편법으로 점철된 행위는 열거하기도 힘들다.

그런데 경제민주화의 출발점인 재벌개혁과 지배구조 개편이 공론화되면 기업의 소유권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대기업의 잘못된 관행은 고쳐야 하지만, 기업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개혁을 거부하고 훼방 놓는 대표적인 논거이자 핑계꺼리이다.

재벌 오너들의 소유권 문제를 보자. 주식회사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주식회사의 경영권은 소유권에 근거하지 않는다. 주식회사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하여 대규모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등장하였고, 그 결과 소유와 경영의 분리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또한 주식을 소유했다는 사실에서 경영권이 연역되지 않는다. 주식회사는 법인으로서 주인이 있을 수 없고, 대표만이 존재한다. 따라서 주식회사에 관하여 주인이라는 표현 자체가 적절치 않다.

분명한 점은 누구도 삼성(LG)전자를 소유하고 있지 않으며 또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많은 개인과 집단, 즉 종업원, 주주, 고객들이 기업과 관련된 권리와 의무를 갖고 있다. 그러나 어떤 권리, 의무관계도 소유권이라고 표현될 수 없다. 김상봉(2012)은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에서 “기업은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사람과 권력을 소유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경영권 역시 그러하다. 주주들은 소유한 주식 몫만큼의 배당금을 받을 권리가 있고, 이해관계자로서의 노동자들은 해당 기업의 경영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박근혜 탄핵을 거치면서 재벌개혁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는 임계점에 도달했다. ‘물벼락 갑질’에서 촉발된 조양호 일가의 불법행위는 편법승계, 밀수 등으로 확대된다. 그룹사 직원들이 총수 퇴진을 요구하며 매주 촛불시위를 할 정도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의 공은 정부와 국민에게 넘어왔다. 더 이상 재벌에게 맡겨 놓을 수 없다. 시간을 늦추면 과거처럼 재계의 반발에 밀려 시간만 끌다 흐지부지될 공산이 크다. 재벌개혁은 재벌의 잘못된 행위를 막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왜곡된 지배구조를 정상화하는 것이다. 탈세와 비자금 조성, 뇌물 공여, 분식 회계, 노조 탄압 등 탈법적인 행위를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재벌 오너에 대해 무관용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중대 범죄를 저지른 경영진들은 두 번 다시 기업 경영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 출자총액제한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경영의 투명성 강화를 위해서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주주권 행사의 모범 기준인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를 도입하여 기업들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

한편 노동이사제 등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허용해 투명한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야 한다. 노동자는 기업에 고용된 동안 정해진 임금만 받아 가면 끝나는 게 아니다. 경영이 악화되면 임금이 삭감되고, 구조조정이나 폐업 등 기업의 위험을 공동 부담하는 존재다. 경영의 손실과 이익을 함께하는 공동운명체인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경영참여는 사용자들의 경영 전권이라는 장벽에 막혀 있다. 상당수 OECD국가들은 기업의 핵심 이해당사자인 노동조합의 경영참여를 보장하고 있다. 유럽연합 28개 회원국 가운데 19개 국가는 ‘노동자 대표의 이사회 등 경영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한다. 기업은 투자자, 종업원, 소비자 등 모든 이해 당사자들의 이익을 위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은 공적인 책임을 가진 사회적 기관으로 인식되며, 운영과 관리 방법에 있어 적정한 공공의 이해를 반영해야 한다. 경제민주화와 경영참여, 이 또한 노동조합의 역할이며 임무이다. 공장 앞에 멈추어선 민주주의를 직장 내로 확장하여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