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덫에 걸린 산별노조 구하기

공계진/(사)시화노동정책연구소 이사장
금속노조연구원   |  


2000년, 당시 필자는 금속산업연맹 정책실장으로서 전국을 돌며 조합원들에게 단일노조, 산별노조에 대해 설명했었다. 당시 금속산업연맹의 조직적 노력의 결과 현대자동차 등 완성차 몇 곳을 제외한 대부분의 노조가 조직형태변경 규약개정에 성공, 마침내 2001년 2월 8일 산별노조인 전국금속노동조합(이하 금속노조)가 탄생했다. 모두들 환호했고,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 믿었다.


금속노조가 태어난 지 18년이 되었다. 그간 2006년 현대차를 비롯한 완성차들의 산별전환, 촛불투쟁 이후 조합 가입의 증가 등으로 이제 금속노조는 조합원 20만명에 육박하는 거대 노조로 양적 성장을 이루어내었다. 


하지만 이런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금속노조를 바라보는 눈길에는 걱정이 잔뜩 끼어 있다. 걱정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가 그 산별성을 강화해 가기보다는 오히려 기업별노조의 연합체였던 금속산업연맹의 모습으로 후퇴하고 있기 때문에 쌓여가고 있다.


산별노조는 단일노조이다. 조직운영의 효율화를 위해 지부-지회라는 체계를 두고 있지만 금속노조는 몇 개의 지부 또는 지회가 연합한 연맹이 아니라 하나의 노조이다. 그러나 현재 금속노조 안에는 수백개의 노조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앞세우며 각자 움직이고 있다. 그러다보니 어느 지회에서 투쟁이 발생하면 그것이 곧 나의 투쟁이란 인식을 갖고 함께하기 보다는 품앗이 차원에서 연대한다는 생각들을 갖는다. 

산별노조는 공장의 벽을 넘어 산업별로 뭉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산업의 벽을 넘어 전체 노동자의 하나됨을 지향하며, 그 하나된 힘을 무기로 자본 중심의 세상을 노동중심의 세상으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현재의 금속노조는 산업의 벽을 넘으려 하기보다는 그 안에 갇혀있으며, 노동중심 세상건설이라는 과제는 멀리한 채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렇듯 금속노조가 산별성을 더욱 강화해가기보다는 그 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금속노조가 덫에 걸려있기 때문이다. 금속노조내 가장 큰 단위인 완성차는 물량(일할 꺼리)의 덫에 걸려있다. 이들 완성차 단위에서의 노조활동의 중심은 ‘많은 물량을 확보하고, 그것을 장시간노동으로 소화하여 고임금을 받아내는 것’이다. 물량확보를 위해 노동자끼리 경쟁하고, 잔업특근을 밥먹듯이 하는 상황에서 옆의 동지, 옆 공장의 동료가 보일 리 없고, 산별정신, 노동중심세상건설, 이따위들은 사치일 뿐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완성차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작은 단위인 지회에서도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은 단위인 지회는 물량의 덫과 유사한 임금의 덫에 걸려 있다. 그 결과 금속노조 전체는 경제주의라는 덫, 실리주의라는 덫에 걸려 앞에서 언급했던 걱정, 즉 산별성 강화가 아닌 산별성 후퇴의 방향으로 항해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현대차 및 기아차 일부 동지들에게 덫에 걸린 쥐의 모습을 보여주며 ‘당신들의 모습이 저 덫에 걸린 쥐의 모습과 같다, 저 쥐가 덫에서 탈출하지 못하면 죽듯이 당신들 역시 죽는다,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섬뜩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슬픈 일이지만 이제 쥐덫에 걸린 쥐의 모습을 금속노조 전체 조합원들에게 보여주고 앞의 현대차 및 기아차 일부 동지들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해야할 것 같다. 그림을 이 칼럼에 게재할 수는 없으니 이 글을 읽으시는 조합원들께서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 사진을 보실 것을 권해드린다. 


필자가 다소 과할 정도로 덫에 대해 강조하는 것은 상황이 심각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상황의 심각함을 반영, 시급히 덫에 걸린 산별노조, 금속노조 구하기에 나서야 한다. 

먼저 해야 할 것은 ‘18년이 된 금속노조가 어디로 가고 있나’를 진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산별노조의 방향을 바로잡는 것이다. 덫에 걸려 경제주의로 향해하다 결국 침몰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배의 키를 돌려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조 지도부를 전략적 사고가 가능한 동지들로 구성해야 한다. 더불어 사무처를 전략단위로 설정하고, 산별노조 방향 전환을 위한 중장기 계획, 중장기 정책 등을 입안하고, 그것을 토대로 단기실행계획의 수립과 집행, 조합원들에 대한 교육을 대대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다행인 점은 연수원이 건축되고 있어서 조합원에 대한 집단적 교육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별노조의 연합체가 아닌 진짜 산별노조로의 발전을 다시금 도모해야 한다.


필자는 일주일에 두 번씩 투쟁사업장 출근 선전에 참여하고 있다. 얼마전 대창지회 출근선전에 가서 SJM 이용호 지회장이 한 발언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저는 연대라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의 노조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