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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은 어루만지고 배는 걷어차는’ 떠들썩한 정권

김영수/상지대학교
금속노조연구원   |  

‘촛불정권’임을 자부하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지 벌써 2년 3개월이 지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촛불’ 정신의 끈을 놓지 않고 있으니 기다려달라는 ‘등 두드림’을 당신과 나에게 했다. 혹시 권력의 어루만짐이 당신이나 나의 촛불을 끄고 있는데도, 그 어루만짐에 현혹되어 ‘떠들썩한 허상의 늪’을 보지 못하고 모두가 앞 다투어 그 늪으로 뛰어들기만 했던 것은 아닐까. 이제는 촛불정권의 촛불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나의 촛불을 돌아보는 것이 자신에 대한 예우가 아닐까? 당신이나 나는 왜 권력 앞에서 늘 자기 자신을 소외시키는지, 정말 골치 아프고 어려웠던 문제의 해답을 내릴 때도 되지 않았을까?

 

2016년 10월 이후 한국 사회를 촛불로 태웠던 당신과 나. 당신과 나는 당시에 권력의 악마들을 만났고, 그 악마들을 함께 증오하면서 하나로 단결하였다. 세대를 넘었고 직업과 계층을 넘었으며, 지역과 지역을 넘었다. 그저 하나였다. 우리들은 그 힘으로 너무나 악마를 선명하게 볼 수 있고 또 생생하게 그릴 수 있어서 각자 자기를 내세우거나 들어내지 않으면서도 악마를 물리쳤다. 악마는 최고 권력자와 그 주변을 휘감고 있었던 국정농단 세력만이 아니었다. 국가 자체가 악마였다. 2014년 4월 세월호가 침몰할 당시에 사람을 구하지 않은 국가였고, 국정농단의 세력들이 횡행했던 ‘깜깜한 악의 터널’에서 비정상과 비상식의 기준을 정상과 상식의 반열로 올려놓은 주체가 바로 국가였다. 우리들은 그 터널에서 국가를 구하려고 촛불을 들었고, 정상과 상식의 기준을 되찾고자 촛불을 들었다. 촛불정신이나 촛불과제의 진원지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라는 과제도 이 수원지 안에 있다.

 

하나는 ‘깜깜한 악의 터널’을 밝게 해서 국가를 구함과 동시에 누구나가 그 터널 안에 있었던 일들을 아주 세세하게 알 수 있도록 하는 과제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국가를 구하기는커녕 적폐의 몇몇 깃털만 다시 깜깜한 감옥 안으로 가두어버렸다. 깜깜했던 악의 터널에서 헤매고 있는 국가에게 적폐청산을 맡기는 비정상과 비상식의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 국가의 악마적 본성은 ‘권력기구들의 통일적이고 통합적인 주체성, 권력기구들의 다층적인 관료적 연결망 시스템, 권력기구의 시스템을 작동하는 권력자들의 장’에 켜켜이 숨어 있다가, 필요할 때 그 본성을 드러내곤 한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의 악마적 본성을 적폐로 여기지 않으면서, 그저 ‘등 두드림’이라는 미혹의 낚싯대만을 던져 놓고 있다.

 

적폐청산의 다른 과제는 정상과 상식의 기준을 보편화하는 것이다. ‘노동을 존중한다.’는 당신의 생각을 폄하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노동을 존중하는 것이 정상이고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의 생각이 만약 노동자들의 등만 어루만지고 배는 걷어찰 ‘교언영색(巧言令色)’의 터널에서 빠져 나오지 않은 채, 노동을 존중한다는 당신은 또 다른 악의 터널안으로 이미 들어간 것이다. 그 본성은 이미 드러났다.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제로(zero)화는 어디로. 최저임금 1만원은 어디로. 노동시간의 퇴행. 노동안전은 온데간데없고. (비정규직)노동자들의 권리보장은 어디로. 권리를 보장하기는커녕 노동법을 개악하는 힘은 여기저기서 꿈틀. 한국사회에서 노동에 대한 비정상과 비상식이 판을 치고 있다. ‘노동에 대한 존중’의 시작은 그 동안 노동을 천대시하고 노동의 권리를 악귀처럼 여겼던 자본의 힘을 빼앗아 그것을 노동에게 돌려주는 것이 정상이고 상식이다. 문재인 정부는 자본과 손을 맞잡고서 노동의 존중을 경제발전으로 바꾸어버렸다. 비정상과 비상식의 성벽을 더욱 두텁게 쌓아 올리고 있다.

 

권력은 늘 성벽의 석재로 삼을 수 있는 자신의 정치적 자원을 동원한다. 자원의 고리에 고리를 연결하고 순환시키면서 노동을 지배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아주 구체적인 힘이다. 공적인 지위와 권한의 힘, 제도화된 권력 시스템의 힘, 전문화된 엘리트 정책의 힘, 여론을 동원하는 힘, 경제적인 힘, 투표를 좌우할 수 있는 힘이 그것이다. 각각 고립되어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다층적인 연결망을 유지하면서 순환한다. 노동을 지배하기 위한 국가권력의 악마적 본성을 숨기는 주요 수단이기도 하다.

 

그런데 너와 나는 권력의 이러한 모습을 보려 하지 않는다. 노동은 누가 존중한다고 존중되는 것이 아니다. 노동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존중되어야 한다. 세상의 원동력은 노동과 노동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와 너는 아직도 촛불정권이라는 미혹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누구를 탓하랴. 권력의 공간을 활용한다는 우리들의 교언영색(巧言令色)도 만만치 않으니 말이다. 권력의 ‘등 어루만짐’에 그저 봄눈 녹듯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투쟁의지를 박제화하는 너와 나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