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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더 이상 우롱하지 마라

김영수 / 상지대 교수
금속노조연구원   |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지난 4월 15일에 끝났다. 정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에서 163석을 차지해 국회 전체 의석의 과반수를 넘어섰으며 소위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획득한 비례대표의석 17석과 합해 총 180석을 차지하였다. 개혁과 관련된 법의 개정과 제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은 개혁을 염원하는 국민의 승리라고 하면서 짐짓 겸손한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국민의 개혁명령에 따르지 않거나 뒤로 미룰 수 없는 궁지로 들어갔다. 그 동안 촛불정신과 촛불염원을 외면하면서도 버팀목 역할을 했던 ‘보수 팔이’를 할 수 없게 된 상황이 만들어졌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더 이상 촛불정신을 우롱하자 마라!

 

정부와 여당이 개혁의 주인공으로 등극할지 아니면 계속 개혁의 걸림돌만을 찾는 탐정으로 남을지 궁금한데, 누구나 잠시만이라도 역사의 시공간을 찾아 나서면 그 궁금증을 해결할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16년 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더듬어보자. 2004년 4월 국회의원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국회의석의 과반수이상을 차지했고, 헌법재판소의 용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었다.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대통령 탄핵반대와 사회구조의 개혁’이라는 국민의 명령대로 국가보안법 폐기, 사립학교법의 개정, 언론개혁법, 과거사진상규명법 등 4대 개혁입법을 추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그 어떤 개혁도 완수하지 못하였다. 아니 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맞다. 물론 개혁의 시도는 잠시나마 한여름 가뭄을 적시는 소나기처럼 여기저기에서 쏟아졌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내부에 존재하는 계파와 정파의 ‘노선 차이’라는 개혁의 걸림돌을 뒷짐 진 채 두 손아귀 속에 꽉 잡고 있었다. 등 뒤로 가려진 열린우리당의 손아귀를 볼 수 없었던 국민들만 우롱의 대상이 되었다.

 

개혁의 걸림돌을 보지 못하는 국민이 어리석은 것일까? 그것을 볼 수 없게 하는 열린우리당이 국민을 우롱했던 것일까? 아니면 정치란 원래 권력의 힘으로 국민을 우롱하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는 일이 인류의 시공간에서 펼쳐진 정치를 다시 더듬어야 하는 초역사적 과제이지만, 어리석음과 우롱은 동전의 앞뒷면인 것 같다. 현명함과 지혜로움으로 차 있는 사람이 우롱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우롱하는 계기는 바로 맘껏 우롱해도 될 것 같다는 어리석음과 연계되어 있는 것이 맞다. 그래서 정치는 국민이 어리석다고 판단하는 순간 국민의 권리를 우스갯거리로 만들곤 한다.

 

지난 4월 15일에 끝난 국회의원 선거는 국민을 ‘조소와 우롱의 막장 드라마’에 주연도 조연도 아닌 드라마를 각색하는 관객으로 출연시켰다. 선거법의 개정은 정치개혁의 터가 아니라 국민우롱의 핵심 컨셉이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놓고서 30석 캡을 씌운 준연동형이니 하면서 국민을 숫자의 미로에 빠지게 하여 조소하더니, 선거법이 개정되고 난 이후에는 자매정당이나 위성정당의 창당으로 국민의 권리를 우스갯거리로 만들었다. 국민은 자신의 투표 권리를 지역을 대표하는 X정당 후보와 직능을 대표하는 Z정당으로 나누어 행사하였다. 드라마 작가는 X정당과 Z정당이 다르면서 같은 것으로 써 내렸고, 선거판에 국민의 어리석음으로 도배하였다.

 

정당의 이념과 정책이 유사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유사함’이 ‘같음’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들에게 더불어시민당을 내세워 ‘유사함’과 ‘같음’이 이음동의라고 설파하면서 국민의 권리를 우롱하였다.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은 정당법에 근거해서 등록한 독립 정당이다. 서로 ‘같음’이 없는데 ‘같다’고 우겨댔다. 국민은 우겨대는 굿판에 동원되어 자신의 권리를 삿되게 하였으면서도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지 못한 채 그저 바이러스의 두려움에 중독된 상태를 넘어서는 권리의 실제 주인이 되지 못하였다.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 바이러스 19에 대한 방역정책과 방역시스템으로 국가의 격을 높였다고 칭송이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너나 나나 바이러스 코로나 어천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세계적인 칭송은 우스갯거리의 세계화와 함께 한다. 자신의 권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감염팔찌로 인권을 무시하는 대한민국의 상황이 웃기는 일이고, 자매정당과 위성정당에다 자신의 권리를 팔아버린 대한민국 국민의 투표행위를 조롱하고 또 조롱한다. 연동형 선거제도를 채택한 다른 국가에서는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거리임에 틀림없다.

 

나는 또 다른 조롱거리가 겁난다. 만약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이 혹은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이 혹시라도 위성관계를 넘어 정당통합으로 가려한다면, 이것이야말로 ‘국민 우롱’의 끝판왕이 될 것이다. 정당법과 선거법을 탐문 수사할 필요조차 없다. 국민은 우롱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을 지지한 것이지 더불어민주당이나 미래통합당을 지지한 것이 아니다. 더불어시민당이나 미래한국당이 해산되는 순간, 비례대표 선거제도와 선거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헌법은 세계를 넘어 우주의 우스갯거리가 된다는 사실이 권리를 사랑하는 내 마음을 섬뜩하게 할 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