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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는 외롭고 두려워 둘입니다

금속노조연구원   |  

혼자는 외롭고 두려워 둘입니다


 


김영수 정책연구원 자문위원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격언 중에 하나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격언의 의미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실현하면서 살고 있다. 인간의 생로병사 자체가 혼자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면서 생겨나니 당연한 일이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자연의 법칙이야말로 죽음만큼은 혼자 안고 가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연의 법칙도 망자의 삶의 흔적과 그 정신을 소멸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혼자의 죽음도 외롭거나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름다운 경우가 있다. 1970년대의 전태일, 1990년대의 양봉수, 2000년대의 배달호, 김주익, 하중근 등 역사적으로 기억되는 많은 죽음을 거론할 필요도 없지만, 역사적으로 기억되지 않으면서도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 정부와 자본의 ‘강제철거 폭탄’과 ‘구조조정 폭탄’ 앞에 스러져 간 용산과 평택의 죽음.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것을 철저하게 보여주고 소멸되어 간 수 많은 사람들의 흔적과 그 정신. 이러한 사람들은 혼자이기를 거부하면서 항상 둘이 되고자 열망했던 흔적을 남겼다.


역사적으로 기억할만한 사건이 최근 노동조합운동 내부에서 발생하였다. 서울지하철노동조합과 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 지부의 조합원들이 보여준 태도이다. 두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은 1990년대에 공공부문 노동조합운동과 금속노동조합운동의 대표주자인 것처럼 표상되었다. 이들의 움직임은 항상 정부와 자본의 카메라에 잡혀야만 했고, 다른 노동자들은 이 들의 움직임에 따라 자신의 행보를 결정하곤 했다. 특히 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 지부의 조합원들은 2000년대에 그 짐을 짊어진 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으로 힘들고 버거웠을 것이다.


최근에 서울지하철 노동조합 위원장은 대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위원장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하여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을 탈퇴하는 조합원 총투표’를 강행하였다. 서울지하철 노동조합 조합원들은 민주노총 탈퇴에 ***% 반대하여 위원장의 의지를 저지하였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지부 조합원들은 지난 15년 만에 파업을 하지 않고 ***%의 찬성으로 임․단협을 마무리하였다.


보수언론을 예외로 친다 하더라도, 이러한 현상을 놓고서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가고 있다. 서울지하철 조합원들은 민주노조운동의 흔적을 기억하려 몸부림 친 것으로,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지부 조합원들은 민주노조운동의 흔적에서 벗어나려 진저리치는 것으로, 민주노조운동, 아니 민주노총, 금속노조, 공공운수연맹은 자신의 흔적을 둘러싼 산하 조합원들의 모습을 새롭게 보아야 한다. 이를 계기로 노동조합운동의 상급조직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는 울림이 만만치 않은 이유이다.


맞는 말이다. 기억하려는 운동이든 기억에서 벗어나려는 운동이든, 조합원 스스로 결정한다. 그렇지만 서울지하철 노동조합 조합원들은 무엇을 기억하려 하고,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지부 조합원들은 어떤 기억에서 벗어나려 한단 말인가? 많은 사람들은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이라고 말하지만, 과연 그럴까? 서울지하철이나 현대자동차의 조합원들이 지난 10년 동안 혼자 지낸 것이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지냈는가의 문제에 대해서도 물음표를 던져야만 하다.


양 노조 조합원들은 역사적으로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한다고 하면서도 늘 혼자였다. 1990년대나 2000년대의 서울지하철 노동자들은 누구를 대신해서 투쟁한 것도 아니고 또한 누구를 위해서 투쟁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들은 그저 자신을 위해 투쟁했고 자신을 위해 투쟁을 포기하기도 하였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지난 15년 동안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하였다고 하는데, 그것은 외부자의 오해에 불과할 수 있다. 정부와 자본이 조작한 측면을 배제할 수 없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 싸웠던 것이지 다른 누군가를 위해 싸웠던 것이 아니다. 우리는 혼자였던 그들을 과대포장도 과소포장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민주노조운동의 대표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다. 그들은 그저 혼자였다. 그래서 그들은 외롭고 두려울 수 있었다.


서울지하철이나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혼자였기에 외롭고 두려워 때론 둘을 원하기도 했지만, 민주노조운동은 오히려 그들을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할 수 없게 하였다. 그들이 대공장의 정규직 조직 노동자들이기에, 년 말에 성과급이나 보상금이 많은 노동자들이기에, 아니면 고용이 불안전하지 않은 노동자들이기에 그랬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항상 자신의 자리에서 외롭고 두려운 상태로 있었는데, 왜곡되고 비틀어진 민주노조운동의 우산이 그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가렸을 뿐이다. 지도부가 책임져야 할 부분에선 대중의 이해를 앞세우고 대중이 책임져야 할 부분에선 지도부가 책임지겠다고 하는 지도력의 뒤틀림 운동, 기업별 노동조합운동의 체계와 전략을 비틀고 비틀어 산업별 노동조합운동조차 변형시켜 버린 조직발전 비틀기 운동, 그리고 노동조합운동의 권력만을 추구하면서도 그 행위를 정파적인 것으로 왜곡하는 개인출세주의 운동 등이 그것이었다. 조합원들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법이나 국가권력을 두려워하는 것이야말로 혹은 삶의 흔적을 개인이나 가족의 울타리로 가두는 것이야말로 혼자 떨어져 외롭고 두렵게 살아야 할 여정인데도, 혼자가 아니라고 억지를 부리는 치기는 이제 그만 하자.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이 무엇일까? 아마도 쉽지 않은 문제일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에서 하나하나 찾아야 하지만, 문제는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혁신의 과제만 있지 집행하고 실현할 의지가 없는 상황이야말로, 둘이 되고자 하는 노동자들을 외롭고 두려운 구렁텅이로 몰아내고 있는 것 아닌가요! 다른 누군가를 위해 대신 싸운다는 것, 전선을 형성하는 책임 때문에 투쟁해야 하는 것,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투쟁에 참여하는 것, 이런 것이야말로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노동자들 스스로 혼자라서 두렵고 외로워 둘이 되고자 하는 계급적 단결, 이것을 인식하고 실천하게 하는 것이 곧 더디면서도 빠른 민주노조운동의 부활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