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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적 성찰을 바탕으로 공세적 조직전략을 마련해야 할 때

금속노조연구원   |  

반성적 성찰을 바탕으로 공세적 조직전략을 마련해야 할 때


   


이종탁(정책연구원 자문위원,산업노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1. 따라두는 바둑으로는 진다


 


현재 노조법 개정, 특히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시한이 7월 1일로 다가오면서 각 사업장과 산별노조, 총연맹은 사뭇 긴장감이 감돈다. 3월 27일에는 민주노총 차원의 총력집회가 있었고 4월에는 총파업 및 총력투쟁도 예정되어 있다. 그런데 단위노조 간부들, 특히 대기업 간부들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경총이 6월 30일 이전에 전임자 관련한 합의를 하지 말라는 공문을 내려보내면서 사측의 태도가 사뭇 완강해졌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상황을 접하면서 살짝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좁게는 전임자, 넓게는 개정 노조법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이 자본과 정권을 두고 있는 수를 뒤따라가는 형국이라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자본과 정권의 공세가 민주노조에 대한 명백한 공격이고 도발이긴 하지만 뒤따라 가는 식의 대응으로는 국면을 돌파하기 어렵다. 노조법, 전임자 문제를 접근하는 인식과 대응의 구상 자체부터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한다. 개인적인 고민을 한 번 적어보겠다.


2. 개정 노조법, 자본과 정권의 노림수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와 관련하여 민주노총에서 지적하고 있는 문제점은 크게 4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통한 노조활동 제약 <> 근로시간 면제제도 도입을 통한 노조활동 족쇄 <> 전임자 임금 및 타임오프를 위반하는 쟁의행위 금지 <> 근로시간 면제심의위원회의 과도한 권한과 편파적 운영 등이다.


복수노조가 유예된 개정 노동법에 대해 민주노총이 지적하는 문제점은 <> 교섭창구 단일화로 노동자의 단결권 침해 <> 창구 단일화 과정에 자본 및 정부의 개입 합법화 <> 복잡한 교섭, 길어지는 교섭 <> 교섭대표 단일화 책임을 노조에 전가 <> 노조법에 발목잡히는 산별교섭 <> 파업의 자유 봉쇄 등이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핵심이 빠져 있다. 노조법 개정으로 자본과 정권이 노리는 핵심은 ‘기업별 협조적 노사관계의 구축’이다. 전임자 임금 관련해서 보면,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에서 논의가 종료되면 기업 차원의 협의가 진행될 형국이다. 복수노조 관련 분야에서는 개별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문제만을 다루고 있으며 교섭권 단일화 등 여러 문제에서 초기업 노조의 문제는 제대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된 계산이다. 기업별 단위로 노사관계를 환원하면서 그 속에서 자본은 협조주의를 유포할 것이고, 그 틀을 깨고 나오려는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정부가 법적 제재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여기에서 노동법 개정을 밀어부친 정권과 그것을 받아들인 자본의 의도는 명확해진다. 아주 단순하게 말한다면 신자유주의 세계 경제위기 시대를 맞이하여 노동조합을 자본과 기업의 하위파트너로 재편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즉, 노사관계에서 자본 주도성을 명확히 하고, 그러한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이번 노동법 개정 시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러한 자본과 정권의 구상은 일정정도 효력을 보고 있다. 이번 노동법 개정이 자본 우위의 노사관계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번 법 개정에서 자본은 전임자 급여의 완전 금지를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상한선과 노조의 현장기능 감시라는 두 가지 활용수단을 얻게 되었고, 전임자 활동과 관련하여 확실히 교섭의 우위에 서게 되었다. 또한 교섭창구 단일화와 관련하여 교섭단위 분리 신청권과 창구 단일화 제외와 관련한 재량권도 가지게 되었다. 법안 내용만 놓고 보자면 자본은 결코 손해볼 것이 없다.


3. 반성적 성찰이 필요하다.


복수노조 허용에 따른 교섭창구 단일화, 그리고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을 금지한 새로운 노동법은 노동조합 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래서 전교조 및 공무원 노조 탄압과 묶어서 노동조합 말살 정책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러면서 이것을 막아내지 못하면 노동조합이 그 기능과 역할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개정 노조법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분노하지 않는 현장의 모습을 정확히 들여다보지는 못하는 것 같다. 민주노총이 4월 총파업 및 총력투쟁을 말하지만 그것에 대해 열성적인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현장을 직시해야 한다.


3~4년 전으로 기억한다. 울산의 한 노조에 대한 어떤 보고서에서는 빨간조끼에 대한 조합원들과 노조에 대한 지역 주민의 불신이 때로는 분노로까지 표출되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 적이 있다. 자본과 정권이 노조법을 개정할 수 있었던 요인에는 바로 이 점이 있다. 노조 및 간부와 현장의 간극 혹은 유리. 노조 및 간부의 활동이 조합원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곳이라면 전임자 관련 법 개정으로 그리 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조합원들이 필요한 조합원들을 지켜내는 어떤 행위라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의 노조에 대한 공세를 막아내려는 조합원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조합원들에게 전임자와 관련한 어떤 행동을 요구하려면 조합원과 지역으로부터 유리된 간부와 노조의 현실에 대한 통렬한 반성부터 보여야 한다. 이번 기회를 오히려 환골탈태의 기회로 삼으면서 조합원 속에서 새롭게 거듭나는 노조의 뼈를 깎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대기업에 집중되어 있는 노조 전임자 자원을 지역이 공유하는 체제를 적극 고민해야 한다. 금속노조 지역지부와 본조의 정책/조직 역량보다 기업 지부 정책/조직 역량이 더 많은데, 이번 기회에 기업 지부의 역량을 지역적으로 공유하고자 하는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


대의원과 위원회를 적극 활용하는 방식도 검토해야 한다. 금속노조 대의원들에게 일상적 활동력을 부여하는 문제는 계속 제기되고 있지만 전혀 실현되지 않고 있다. 금속노조 본조와 지역지부 대의원들이 금속 노조 활동의 일 부분이라도 적극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4. 새로운 조직전략을 적극적으로 구사하자


경제적 실리를 얻는 차원에서 접근하면, 대기업의 복수노조 체제는 자본을 상대로 더 많은 경제적 실리를 얻어내는데 효과적일 수 있다. 자본은 계급적 지향의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해서라도 실리적 노조를 선호할 것이고, 실리의 보따리를 더 풀어낼 수도 있다. 이런 차원에서는 교섭창구 단일화는 사실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업 울타리 안에서 더 많은 실리를 따주겠다고 하는 노조와 경쟁하면서 교섭 창구를 단일화하는 것은 현 시점에서 민주노총과 그 소속 노동조합이 추구할 목표가 아니다


지금 민주노총과 그 산하 노조들이 진지하게 고민할 문제는 경제적 실리를 위한 기업별 임단협 방식, 혹은 그 체계를 넘어서는 방안이다. 그렇게 하려면 의제 설정부터 바꾸어야 한다. 기업별 요구를 모아서 산별교섭을 하는 방식은 민주성으로 위장된 낡은 방식이다. 오히려 지금은 사회적 요구에 기반한 교섭으로 노동조합 내부 동력을 모아야 한다. 사회적 요구를 내건 임단협으로 초기업적 교섭구조를 만드는 일. 그것이 복수노조 시대를 맞아서 민주노조운동이 살아남는 길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그리고 복수노조의 시대를 맞아 미조직 조직화 전략을 체계적으로 준비하면서 본격화해야 한다. 재벌을 향한 정면 도전장을 띄우는 동시에 공기업(중앙 및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조직화를 선포하고 노조가 있는 곳에서는 복수노조를 추진하고, 노조가 없는 곳에서는 노조의 설립을 추진해야 한다. 비정규 중소영세사업장 조직화는 지역노조 형성 전략을 가지고 별도로 추진해야 한다. 기업별 노조를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노조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과감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 일을 하려면 재정과 사람이 필요하다. 민주노총에 남아 있는 기금, 각 산별연맹이 안고 있는 기금들을 이 부분에 우선 배정하고 민주노총 각 지역본부를 미조직 비정규 조직화 거점으로 삼아야 한다.


5. 현장에서 연대전략을 설득하자


이러한 변화와 전환을 시도하려면 정부와 사용자를 상대하기 이전에 노동조합 내부의 합의와 정비부터 서둘러야 한다. 조합원들이 기업 차원에서 경제적 실리에서 만족을 얻는데 안주한다면 기업별 협조주의가 오히려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대기업 노조들이 스스로의 힘을 기업 체계 안에서 발휘하는데 집중한다면 기업을 넘어서자는 어떤 제안도 허공에 묻힐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이러한 변화를 규약개정이나 조직체계 재편과 같은 형식적 틀의 재편으로 이루어낼 수는 없다. 지금부터 작정하고 조합원들을 설득하고 대기업 단위들을 이해시키면서 함께 당면한 난제를 돌파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내부의 설득과 이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사회적’ 전략에 기초한 ‘연대’의 조직화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금지와 복수노조에 따른 교섭 창구 단일화 및 교섭단위 분리의 핵심은 ‘기업별 협조적 노사관계’로 갈 것인가, 아니면 ‘초기업 차원의 새로운 노사관계’를 구축할 것인가로 압축할 수 있다. 민주노조운동은 그동안 후자의 길을 추구했지만 현실에서는 기업별 협조적 노사관계를 온존하는데 머물렀다. 이제 이를 극복한다는 과제를 분명히 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전략을 구체화할 때이다. 그것은 이미 수도 없이 반복되어온 ‘사회적 연대 전략’을 본격화하는 것이다.


사회적 연대 전략은 가장 우선 노동자들, 조합원들의 이익을 실현하는 방식을 개별 기업 차원의 임단협이 아니라 산별적 대응과 지역 연대를 포함하는 사회적 연대를 통해서 실현하는 구조로 전환하는 것이다. 기업별 임단협으로는 기업 내외의 격차를 확대하고 노동자들을 노동중독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을 냉정히 성찰하면서 임금과 생활에 필요한 제반 내용들을 노동자 연대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적 행동으로 쟁취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런 변화를 동반하면서 총파업 및 총력투쟁을 이야기해야 한다. 변화를 동반하지 않는 투쟁의 호소는 조합원을 움직일 수 없고, 사회의 동의를 받을 수 없다. 이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