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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행복자치를 위한 노동자들의 지자체 투쟁

금속노조연구원   |  

진정한 행복자치를 위한 노동자들의 지자체 투쟁


 


김영수(경상대교수,정책연구원 자문위원)


 


우리는 지금 지방자치를 16년째 맞이하고 있다. 온갖 정치세력들은 2010년 6월 지방선거를 위해 진력을 다하고 있다. 지방자치가 마치 주민들의 축제가 아니라 정치세력들의 선거를 위한 축제로 전락하고 있다. 자치가 정말 주민들의 아니 노동자들의 즐거운 축제인가의 여부나 혹은 무엇이 진정한 자치인가는 문제되지 않는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자 권리를 누리는 축제의 장이고, 지방자치야말로 그 자체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그냥 믿으면 그만이다. 형식만을 강조하다가 내용을 은폐하기도 하는 민주주의의 역설이다. 지방자치가 권리를 잃어야만 하는 고통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권리를 맘껏 실현하는 행복의 정치가 되었으면 좋겠다.


역사적으로 민주노조운동도 1995년 이후 현재까지 지자체 선거투쟁을 전개하였다. 민주노총은 1995년 지자체 선거투쟁의 목표를 ‘적극적인 선거참여를 통해 자치와 민주화를 실현, 민주노총(준)의 정치활동을 강화하고 지역운동과의 결합을 강화,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의 자유를 쟁취’로 설정하여 민주노조운동의 정치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고,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의 강화에 주력하였다. 그래서 민주노총(준)은 ‘지자제 특별위원회’를 중심으로 특히 ‘연대기구 결성 및 연대활동의 강화, 수도권과 노동자 밀집지역을 전략지구로 삼아 범민주후보와 노동자후보를 당선시킴, 자원봉사단을 대대적으로 조직하여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을 강화, 노동조합 정치활동 금지에 대해 쟁점화하고 악법조항임을 폭로’ 등의 실천투쟁에 주력하려 하였다. 그러나 민주노총(준)은 지자체 선거투쟁에서 중앙과 지역의 지자체특위를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였다.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선거운동을 한 후보는 전혀 없었고, 노동조합이 조직적으로 노동자 후보를 지원하는 모습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금속노조의 조합원들도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서 자유롭지 않다. 2010년 지자체 선거를 맞이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민주노총은 1995년도에 결정했던 지자체 선거투쟁의 목표와 거의 유사한 수준에서 2010년 6월 지자체 투쟁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민주노조운동 진영이 정치방침에서 만큼은 민주노총의 결정에서 쉽게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금속노조도 2010년 6월 지자체 선거투쟁의 목표를 민주노총의 결정에 따를 것이다.


문제는 지자체 투쟁을 해 왔지만, 그러한 투쟁의 역사적인 성과를 평가하지 않았거나 아예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지 진보적인 후보들 중에서 몇 명이 당선되었는가라는 문제에 집중하거나 혹은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의 일환으로 볼 때 지자체 선거가 매우 성공적이었거나 혹은 실패작이었다는 두루뭉실함뿐이었다. 진보적인 후보가 지자체의 수장이 되고 나서 혹은 몇몇이 지방의회에 진출하고 나서 진정한 행복자치가 이루어졌는가에 대해서는 모두가 함구하고 있다. 모든 문제가 당선된 그들만의 몫으로 떨어졌다. 지자체 선거가 끝나고 난 이후에는 자치가 사라졌다. 그저 선거만이 자치인 것으로 간주하면 그만이었다. 민주노조운동은 정치세력화나 사회세력의 한 주체인 이상, 이를 넘어서려는 정치투쟁의 터를 닦아야만 한다. 그것은 곧 지방자치의 역사를 올곧게 인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풀뿌리민주주의는 미국 하층민의 정치참여 요구에 반응하여, 미국 공화당이 1935년 전당대회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말이다. 그러나 미국의 풀뿌리민주주의는 명망가 정치나 연방정치에 개입하지 않는 수준에서 허용되는 제한적인 지방자치였고 지방에 지배세력의 새로운 망을 형성하는 지방자치였다. 그리하여 미국의 국민들은 풀뿌리민주주의의 실현과 함께 이중적인 지배와 통치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연방정부의 대상이자 지방정부의 대상이 된 것이다.


자치는 말 그대로 스스로가 스스로를 통치하는 것인데, 지방자치가 오히려 밑으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지배하고 통치하는 전략으로 전락하였다. 지배권력의 네트워크가 지방으로 확장되어 주민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정당을 매개로 주민들의 일상적인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주요 수단은 ‘중앙정부를 대신하는 대리통치’이자 ‘정당 중심의 대리정치’였다. 주민들의 자치 민주주의는 대리 민주주의로 탈바꿈되어 버렸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도 마찬가지이다.


지방자치선거는 4년에 한 번씩 자치단체장과 의원들을 선출한다. 선거판이 그렇듯이, 지방자치선거에서도 각종의 공약이 유권자들을 미혹한다. 어떤 후보든지 자신이 소속된 정당과 자기를 지지해야 지방을 발전시킬 수 있고 그 혜택을 주민들이 누릴 것이라고 호언장담해 왔다. 중앙정부와 정당들은 지방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후원군으로 등장하여 지방선거를 다음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의 예고편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는 지방의 자치가 사라지고 중앙의 권력에 줄을 서려는 지방의 권력만이 춤을 추게 하는 계기이다.


그래서 그런지 2010년 지방자치선거는 ‘일자리 만들기’ 공약이 판을 칠 예정이다. 마치 중앙정부에서 추진하는 ‘일자리 만들기’ 정책의 축소판인 듯하다. 중앙정부는 제4차 고용전략회의를 개최하여, 3D, 미디어 사업 등에 향후 5년 간 12조 원 투자하여 앞으로 7년 간 매년 40만 명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발표하였는데, 지방자치선거의 후보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일자리 만들기 공약을 만들고 있다. 최근 OECD가 발표한 것처럼, 저임금 노동의 천국인 한국에서 여성, 비정규, 파트타임, 청소년 알바 등의 일자리라 할지라도, 500만 명에 달하는 실업자들에겐 희소식임에 틀림없다. 그 누구도 노동에 대한 그들의 희망의 꽃을 꺾을 수 없지만, 그들의 희망이 지방자치로 실현될 것인가를 의문하는 것까지는 나의 자유로운 권리가 아닐까? 자본주의 체제의 근원적인 문제여서 중앙정부도 감히 해결하지 못하는 실업문제가 지방선거를 계기로 정치적 지배세력들에 의해 이용당하고 있다는 느낌은 나만의 생각일까!


중앙정부와 정당은 그저 예산을 무기로 혹은 국민 전체를 지배하는 법과 제도를 내세워 지방의 정부와 의회를 지배하려 한다. 지방자치가 주민의 직접적인 자치의 기능보다는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의 유착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대리통치제도’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와 정당이 개입하는 자치는 진정한 자치가 아니다. 그저 ‘무늬만 자치’인 지배세력의 지방권력에 불과하다. 진정한 자치는 주민의 권리가 살아 숨 쉬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듯이, 역사적으로 권리는 민주주의를 혁명하면서 만들어졌다.『민주주의를 혁명하라』(도서출판 메이데이)라는 책에서는 헌법․국가․정치 등의 영역에서 그 동안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민주주의의 정책적 대안을 수없이 내놓으면서, 자치를 지방자치단체들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시혜적 재정지원만으로 오해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지방의 자치입법권, 자치조직권, 자치행정권, 자치재정권 등을 주민 스스로가 주체임을 자각하고 선포하는 자치, 이것이 진정한 행복자치라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자치를 루돌프 폰 예링의 말로 대신하면, “권리는 단순히 박제화되어 있는 사상이나 제도가 아니라 살아서 움직이는 권한의 힘이고 투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