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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낮은 연대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금속노조연구원   |  

더 낮은 연대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2010년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들의 임단협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교섭 초기 타임오프 문제로 시끄러웠던 것에 비하면 2010년 임단협은 큰 공과 없이 마무리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굳이 지적하자면 '특단협 방침'이 타임오프에 별로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사실과 완성차 지부의 교섭 독자성이 이전보다 훨씬 강화된 결과를 낳았다는 점에서 금속노조의 고민과 숙제는 남아 있다고 하겠다.


이런 점에서 최근 현대차그룹 계열사 노조들의 임단협 타결 양상을 주목해야 한다. 타임오프 문제는 대부분 완성차 노사협상 뒤로 넘긴 채 경영성과를 둘러싼 분배의 문제가 핵심으로 등장했다. 구조조정에 대한 요구 내용은 생색내기용으로만 다루어졌을 뿐이고, 임단협 교섭의 주된 관심은 성과금이었다. 특히 현대자동차 지부가 회사로부터 엄청난 성과금을 챙기면서 교섭의 저울추는 급격하게 기울었다. 주간연속2교대제 문제나 해외공장 비율 문제 따위는 제대로 다루어지지도 못했다. 비록 현대차 그룹 계열사에 한정된 양상이기는 하지만 좀 심하게 말하면 타임오프를 둘러싼 밀고 당기기 와중에서 결국 성과금 챙기기로 마무리된 교섭이라고 말할 수 있다. 


300% + 400만원 + 30주. 이것이 적당하냐 적으냐 많으냐는 논란거리가 아니다. 만약 그것을 가지고 논란을 벌인다면 '우물안 개구리 논쟁'일 수밖에 없다. 우물 바깥에서 이 문제를 보아야 한다. 우물 밖 세상은 이렇다. 먼저, 50대의 고용율이 20대를 앞지른 것도 모자라 30대도 앞질러 버렸다. 지난 6월에 합의된 최저임금은 월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런 우물 밖 세상의 눈으로 금속노조와 현대차 지부를 바라보면 자기들과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일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이 자본으로부터 더 많은 몫을 분배받는 것은 언제나 정당하다. 그것은 노동자들의 살아 있는 노동의 결과로 얻은 기업 이윤을 분배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정당성을 십분 인정하더라도 현대차 지부와 노동자들은 사상 최대의 현대차 성과가 부품사 노동자들과 비정규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빨아먹은 결과라는 사실을 외면하거나 부정해서는 안 된다.


얼마 전 있었던 현대차 그룹 전횡적 경영과 불공정 거래에 관한 토론에서 발제자들은 현대차의 성과 일부를 환원한다면 부품사들의 경영난을 타개하고 비정규직 모두를 정규직화할 수 있다고 했다. 2차, 3차 협력업체와 그 노동자들에 대한 어떤 고민도 없이 진행되고 있는 현대차와 그 계열 노동조합들의 '성과 잔치'는 금속노조를 큰 시험대에 들게 하고 있다. 


금속노조와 노동자들은 최근 이명박 정부의 행보를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친서민정책'을 전면에 내걸고 '중산층을 두텁게, 서민을 따뜻하게' 만들겠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박근혜와 마주 앉아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와 자신의 뜻은 같다고 말한 것이 이명박이다. 물론 노동운동진영에서 볼 때, 이명박의 이러한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며,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해서 자본가들의 배를 채워주는 일만 하고 있다. 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노동조합이라는 틀 바깥에서 보면, 지금 한국 사람들에게는 '6개월'밖에 일하지 못하고, '100만원 짜리'에 불과한 일자리이지만 그것도 없어서 아우성치고 있다. 심지어 알바만으로 생활하는 새로운 유형이 등장하기도 했다. 돈이 필요할 때만 잠깐 잠깐 일하는 사람들까지 합치면 대략 이런 알바 인생이 4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현실에서 이명박 정부가 1명을 고용하면 1천만원 세금을 깎아주고, 미용을 목적으로 하는 성형수술에도 부가세를 매기겠다고 나섰다. 공공부문에서부터 유연근무제 도입을 확대하고, 파견 허용 업종을 확대하겠다고 한다. G20을 하고 한미 FTA를 체결하면 일자리를 늘어날 것이라는 거짓말까지 섞어서 말이다.


미국 경기가 다시 혼조세를 보이고 유럽과 일본이 장기 침체 양상을 보이면서 세계 경제는 다시 불안한 조짐을 보이는데, 이런 국면에서 이명박 정부는 '서민'을 통해 '노동자'를 공격하는 분명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기업과 자본가들에게 호통을 치기도 한다. 이러한 방법은 가깝게는 김대중, 노무현을 닮았고, 멀리는 히틀러도 닮았다. 김대중, 노무현은 노동의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해 비정규직 문제를 활용했다면 이명박은 실제로 서민 정책을 가지고 노동자들을 공격할 태세이며, 지난 2년을 돌이켜보면 분명히 그렇게 할 것이다.


2010년 하반기 정국은 파견법을 비롯한 비정규직법 개정과 G20 및 한미 FTA 협약비준, 개헌 등 권력구조 개편 문제 등으로 요동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이명박 정부는 '친서민정책'을 내세우며 노동을 공격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친서민정책'을 제대로 정리하지도 구사하지도 못했는데, 이번 세제개편처럼 서민들에게 유리한 내용을 조금이라도 담아낸다면, 그래서 다수의 서민들이 '친서민정책'에 호응하게 된다면 노동은 그로부터 고립되는 최악의 사태를 맞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1년 복수노조가 시행된다면 대부분의 사업장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것이다.


민주당과 손잡고 반MB 전선을 확장하는 일은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어떤 대안을 만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금속노조가 진정으로 하반기 정국과 2011년을 예비하려고 한다면 이명박식 '서민'정책의 허구성을 드러내면서 진정으로 '민중'과 함께 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더 낮은 곳을 향한 연대, 더 낮은 곳과의 연대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조직된 노동자들은 노조에 대해 어느 정도 불만이 있다고 하더라도 노조가 갖는 장점을 십분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노조가 없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힘들고 어려울 때 노조가 제대로 일을 하면 참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잘 안다. 정리해고가 터지면 노조를 만들고 민주노총으로 전화를 거는 사람들은 바로 그런 노동자들이다. 이러한 노조의 힘으로 실업과 가난, 무권리 속에서 신음하는 노동자들을 향한 연대를 대대적인 시작해야 한다. 금속노조의 미래는 여기에서 다시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