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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음'과 '다름'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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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음'과 '다름'의 역설


                                                                                             
                                                 김영수자문위원 (경상대학교 교수)




‘같음’과 ‘다름’은 차이가 너무나 명확하다. 발음이나 의미에서. 이 둘이 서로 차이가 없다고 한다면, 누구든지 황당해 할 것이다. 무식한 사람이구먼! 뭔 소리를 하는 것인가?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 때 듣더라도 ‘같음’과 ‘다름’ 간에 차이가 없는 이 세상에 대해 한마디 지껄인들 세상이 뒤집어지지는 않겠지.

혼란스럽다. 말 그대로 카오스다. ‘같음’과 ‘다름’이 서로 뒤섞여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모르겠다. 진보와 보수가 어떻게 구분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가치와 현실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같음과 다름이 드러나지 않는 이 세상을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우긴다. 본래부터 차이가 있었던 ‘같음’과 ‘다름’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모험주의의 수렁에 빠져 드는 느낌, 나를 엄습하는 역설이다.

많은 사람들은 정치에서 ‘차이를 통합’으로 변화시키는 힘, ‘갈등을 봉합’하는 주고받기식 협상력을 소위 정치력 혹은 지도력이라고 말한다. 각종 선거에서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연합세력이 각종 선거에서 승리해야만 하는 민주진보대통합, 혹은 진보세력의 통합만이 사회변혁운동진영의 살 길이라고 진보대통합의 정치력이 판을 정리해 나가고 있다. 통합의 정치가 ‘같음’과 ‘다름’을 선거라는 단 하나의 쓰레기통에 처박고 있다. 그 쓰레기통은 다름 아닌 대리주의 정치의 별동대인데도 말이다.

‘민주진보대통합’의 민주진보는 서로 간에 너무나 달랐던 과거, 특히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하에서 노동자들을 국가폭력으로 대했던 그 당시 정치세력이 행한 다른 정치’가 이명박 정권을 앞세워 서로 ‘같은 정치’로 둔갑하였다. 한미FTA의 주역이었던 그들이, 이명박 정권과는 다르다고 말하면서 이명박 정권의 한미FTA를 반대하는 투쟁전선에 나섰던 ‘같음’의 정치가 역설적이다. 국가폭력으로 노동자․농민들을 살해했던 그들의 정치가 이명박 정권의 국가폭력과 ‘같은 정치’인데도, 노동자․민중이 아니라 서민을 위한 정치에서는 이명박 정권과는 ‘다른 정치’라고 핏대를 올린다. 이명박 정권이 설파하고 있는 서민을 위한 정치와 무엇이 다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다름’의 정치라는 그들의 울림만이 존재한다. 그 울림판에서 소위 제도권의 진보정치세력도 흥에 겨워 어깨춤을 추고 있다.

‘같음’과 ‘다름’의 역설은 ‘복지’에서 정치력의 꽃으로 만개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복지, 소위 박근혜의 복지, 민주당의 복지, 민주노동당의 복지, 진보신당의 복지 등이 함께 춤을 추고 있다. 복지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같음’ 정치가 호탕하게 웃고 있다. 국민의 생활이 고통스러우니 국가가 나서서 그 고통을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같음’이 웃는다. 국민을 고통스럽게 했던 국가의 ‘악’에 대해서 모두가 함구하고 국가의 ‘선’만을 의기양양하게 내세우는 것도 똑같다. ‘다름’이 드러나지 않는 ‘같음’의 정치이다. 이런 ‘같음이’ 복지 앞에 서 있는 노동자․민중은 어떤 정치의 복지든 자신의 생활고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을 좋아할 것이다. 그 복지가 ‘등을 치고 배를 만져주든, 윗 둑을 빼서 아랫 둑을 막든, 노동자․민중들의 척수와 등골을 빼든 자본가들의 초과이익을 빼든’ 상관하지 않는다. 보다 많은 돈을 주는 ‘다름이’를 좋아할 것이다. 국민들이 국가의 돈을 장악하고 있는 지배세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같은 정치’의 역설이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이든 충청권 과학벨트입지 구축이든 이명박에게 사기를 당했지 한나라당이나 보수세력에게 사기당했다고 의식하지 않는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역설. 김대중이나 노무현 그리고 그 휘하 세력들은 민주적인데 그들의 폭력 앞에서 그들을 상대로 비판하면서 투쟁했던 세력 때문에 민주적 개혁을 이루지 못했다고 규정해 버리는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역설.

이러한 역설의 한복판에 소위 진보적인 세력이 서 있다. 민주진보대통합과는 다른 진보대통합의 정치도 ‘같음’과 ‘다름’의 역설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통합의 정치’ 는 ‘다름’의 정치를 인식하고 행동하는 주체로 나서게 하는데 있어서 적지 않은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같음’ 속에서 ‘다름’을 드러내는 차이의 정치, ‘다름’ 속에서 ‘또 다름’을 드러내는 차이의 정치. 이것이야말로 노동자․민중이 ‘같음’과 ‘다름’의 역설에 빠져 나와 자신의 정치를 자기가 지배하는 또 다르면서도 진짜로 같은 정치의 주체로 나서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