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칼럼 > 칼럼
칼럼
 

복지논쟁과 노동

금속노조연구원   |  

복지논쟁과 노동


             정태인(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지난 금요일 광주의 5.18재단이 주최한 “5.18 시민강좌 종합토론회”에 다녀 왔다. 주지하다시피 지금 정치권에서 복지 논쟁이 뜨겁다. 야권의 “모두에게 복지를”(보편복지)에 맞서 한나라당은 “필요한 사람에게 복지를”(선별복지)를 내세웠고 민주당 내에서는 “증세없는 복지”와 “증세를 통한 복지”가, 그리고 진보진영에서는 “부자들의 증세”(내라)와 “우리 모두의 증세”(내자)가 맞서고 있다. 복지의 백화제방, 아름다운 풍경이다. 굳이 내 생각을 말하라면 “우리 모두의 증세에 의한 보편 복지”라고 대답하겠지만 지금은 단번에 정답을 내 놓는 경쟁을 할 때는 아닌 듯 하다. 


한나라당이 참가하지 않아서 다소 김이 빠졌지만 민주당의 “보편복지”와 진보정당들(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의 그것 사이에는 꽤나 큰 차이가 났다. 복지의 규모부터 그렇지만 증세를 둘러싼 예산확보 방안에서는 “대립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시각이 달랐다. 그러나 그 어느 것보다도 진보정당들이 복지의 주체로 “노동”을 강조했다는 점은 분명한 철학의 차이를 드러냈다. 민주노동당은 이름부터 “노동 중심 평화복지”이고 진보신당의 “사회연대 북지국가” 역시 “생산체제(노동시장)와 계급간 연대 전략(연대 노동)을 빼 놓고는 복지를 논할 수 없다”고 못박았으며내 사회당의 복지전략 또한 “노동시간의 획기적 단축”을 축으로 하고 있다.


이들은 서구의 복지국가를 예로 들면서 노동조합 조직율(프랑스의 경우 적용율), 그리고 진보정당 지지율이 복지국가 형성의 핵심이라고 구체적인 통계로 입증하려 했다. 그 뜻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내 질문은 이 지점을 향했다.


“그렇다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합쳐서 10% 남짓의 조직율을 보이는 한국에서는 복지국가를 만드는 게 불가능한다는 얘긴가?” “진보정당 지지율은 그 보다도 더 낮은데, 그렇다면 적어도 이번 총선과 대선에서 ‘진정한 복지국가’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하는 건가?” 뾰족한 답이 있을 리 없는 질문, 그래서 보통은 공개 석상에서는 잘 하지 않는 무례한 질문을 한 셈이다. 내친 김에 한 마디 더 했다. “예컨대 참여연대 회원과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조사하면 복지에 찬성하는 비율, 나아가서 증세에 찬성하는 비율이 어디가 더 높을까?”한마디로 과연 지금 민주노총은 이른바 “복지 세력”인가, 라는 도발적 질문이고 세 정당보다는 민주노총이 대답해야 하는 질문이다.


재분배 이전에 사회양극화를 초래하는 근본부터 보아야 한다는 세 진보정당의 시각은 지극히 옳다. 세 정당 모두 노동시간 단축을 중요한 고리로 내세웠다는 것도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휴식이 늘어난다는 자체의 복지 효과 뿐 아니라 노동 시간 단축에 따른 일자리 확대, 생산성 향상에 의한 세수 확대 등 노동시간 단축은 복지의 주요 전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단일 항목에 진보정당들이 배정한 예산은 5천억원-7천억원 정도에 불과하고 국가에 의한 노동관련 복지 확충(예컨대 일자리 창출과 실업보험, 실업부조 지원제도)에 돈을 집중적으로 배정하고 있다. 혹시 이들 정당이 말로는 그렇게 해도 별로 실효성 있는 정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물론 노동시간 단축은 제도로 정하고 엄격히 관리하면 그만이어서 별도의 예산이 들지 않을 수 있지만)?


정부와 재계를 일단 논외로 한다 하더라도 노동계는 노동시간 단축에 찬성할까? 난 조직 노동, 그 중에서도 대기업 위주인 민주노총이 제일 반대할 것이라고 짐작한다. 60-70년대 저임금-장시간 노동 체제라는 게 있었다. 너무 임금이 낮아서 노동시간을 늘려 겨우 먹고 살았다는 의미이며 경제학을 조금 사용한다면 노동공급이 임금이 낮을수록 오히려 증가하는 “<”모양의 공급곡선을 지니고 있었다. 그 때에 비해 임금이 1000배 가량 증가한 지금도 이 시스템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40대에서 50대의 중장년 중화학공업 노동자들은 아이들 사교육비와 부동산 값을 대기 위해 여전히 잔업과 철야를 반복하고 있다. 총액임금이 중산층 이상이라 하더라도 월급은 애들 교육비로, 대출 이자로 주먹 속 마른 모래처럼 금세 빠져나간다. 더구나 외환위기 때의 경험(“언제 잘릴지 모른다”)은 일할 수 있을 때 최대한 일해야 노후 걱정을 그래도 덜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 하청업체 등 다른 중소기업, 또 비정규직과의 임금격차가 심해지면서 더욱 더 대기업 노동자들의 해고 비용(해고되면 치러야 할 대가)은 높아졌다. 바로 그만큼 파업이나 이직 위협 등 노조의 무기는 무뎌졌다.  


결국 대기업의 조직 노동자라고 해도, 사회 개혁이 선행되지 않으면 “연대”라는 아름다운 가치, 그리고 노동계급의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또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어떤 복지를 도입한다 해도, 또 마찬가지로 부동산투기, 교육투기, 그리고 대기업의 전횡이라는 양극화 메커니즘이 존재하는 한 “밑빠진 독에 물붓기” 꼴이 될 수 밖에 없다. 


결국 양극화 메커니즘을 해체해서 노동자들의 삶이 투기에 묶이지 않도록 하지 않는 한 노동자계급, 특히 대기업 노동자들이 복지동맹의 핵심 주체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물론 그들이 그런 상황에서 다른 계급은 더욱 더 그러할지도 모른다. 누누히 강조하는 일이지만 복지 정책은 그에 걸맞은 거시정책과 함께 함께 추진해야 한다. 스웨덴의 렌-마이드너 플랜이 단순한 연대임금 정책을 훌쩍 넘어선 거시안정정책, 생산성 향상정책이었고 그 체제가 무너진 후 스웨덴 복지국가가 흔들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국민 모두를 절망에 빠뜨리는 양극화 메커니즘부터 무너뜨려야 한다. 그런 거시정책, 즉 자산재분배정책과 노동연대 정책이 조화를 이루고 그 실현가능성을 국민들이 믿을 때 복지국가는 비로소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진보정당이 이런 비전을 제시하고 집권 및 실천의 믿음을 줄 수 있을 때 노동자를 복지의 주체로 불러 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거꾸로 렌-마이드너의 LO가 그랬듯 노조가 고유의 비전을 진보정당에 제시하고 스스로 노동시간 단축 등 연대의 가치를 실현함으로써 정당, 나아가서 국민을 이끌고 나가는 것이 더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과연 민주노총은, 금속노조는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가? 실로 민주노총은 복지 세력인가, 아니면 소극적 반복지 세력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