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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체제에 대해 논의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

생산체제에 대해 논의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이종탁 노동연구원 자문위원(산업노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여전히 고용 불안?

아마도 현장 조합원들이든 간부들에게 고용이 불안하냐고 물으면 여전히 그렇다고 대답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러 경로로 현장을 방문하고 대화와 면접을 진행하면서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위험에 처했고, 세계 경제가 심각한 상태에 있다는 이야기는 고용불안을 더욱 부추긴다. 더 정확하게는 최근 유럽의 국가 부도 조짐이 한국 금융시장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는데도 수출 증대로 2008년 이후 물량이 늘어난 현장에서는 ‘위기’를 불안으로 받아들인다. 이에 대해서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할 수 있는데, 백번 천번 맞는 말이지만 위기를 전가받은 노동자들이 이 위기를 고용 불안으로 느낄 뿐,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넘어서고자 하는 적극적 의지로 전환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세계 경제가 불안하다 혹은 위험하다, 그래서 자본은 또 다시 구조조정을 할 것인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고용불안’에만 초점을 맞추면 ‘위기 전가’에 반대하며 투쟁하기보다는 ‘고용불안’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순응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국가가 아니라 자본에게 요구해야 한다

최근 ‘복지’가 유행이다. 노동 유연화와 주주 이익을 우선하는 신자유주의가 빚어낸 사회 양극화가 새로운 빈곤을 만들어내고, 일 해도 가난한 사람들(워킹푸어)을 양산하고 있음은 이제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복지담론이 확산 중이다. 심지어 한나라당조차도 복지를 말한다. 선별적 복지인가 보편적 복지인가를 놓고 경쟁하지만 복지 정책은 두 가지 모두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볼 때, 복지 담론을 확산하는 기능을 한다. 진보진영에서조차도 복지는 빼놓을 수 없는 담론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복지 담론, 복지 경쟁이 결국 ‘국가’와 ‘정부’의 역할과 기능에 관한 것이라는 점은 잘 주목하지 않는다. 고용유연화로, 주주 위주 경영, 신자유주의 경영과 구조조정으로 떼돈을 벌면서 부를 축적하는 집단은 자본, 더 구체적으로 재벌들이다. 금속노조와 노동연구원에서는 몇 년 동안 재벌들이 얼마나 많은 현금을 확보하고 부를 축적했는지, 노동자에게 임금 주는 것은 아까워하면서 재벌총수와 그 일가들은 부당한 방법까지 동원하면서 돈을 끌어모으는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지적해왔다.

이런 현실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국가에게 복지를 말하는 것과 함께 자본에게 부의 분배를 요구해야 한다. 세계 경제 불안정 상황에서 자본은 그 위기를 노동에게 전가할 것인데, 그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고용을 가지고 수세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자본이 축적한 부를 분배하여 노동자들이 더 이상 불안에 떨지 않도록 요구해야 한다. 2009년 금속노조가 주창했듯이 ‘함께 살자’고 말해야 한다.

 

노동 중심적 작업장 체제를 만들자

자본이 부를 축적한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신규 채용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자동화와 외주화를 확대하는 것이다. 엄청난 설비 투자 비용이 들지만 정규직 고용에 따른 여러 가지 부담을 회피하는 동시에 작업을 표준화하고 품질을 균질화하는 수단으로 기술·기계를 중심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본 전략은 작업장에서 고령화를 촉진한다.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강제적 고용조정도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정규직 인력감축은 아직 전면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설비개선과 라인 증설에서 자동화와 외주화를 확대하면서 신규 채용을 최대한 억제하고 있다. 심지어 정년퇴직자가 생기더라도 자본은 신규 채용은 회피한다. 그 결과 금속노조 산하 작업장들은 기계와 기술 중심 체제로 변화하였다.

지금까지는 정규직 고용을 중심으로 자본의 작업장 체제 전환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지만 이제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현장 노동자들의 평균 연령이 40세를 넘기고 있는 지금, 사람은 줄이고 기계는 늘리는 방식은 이제 노동자들을 구체적으로 위협하기 시작한 것이다. 생산성이 높아지지만 노동강도와 직무스트레스는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자본에게 기계·기술에 투입하는 비용을 노동의 고용과 노동강도 완화, 직무 스트레스 감소를 위해 투자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노동을 중심으로 하는 작업장 체제까지는 갈 길이 멀겠지만 노동을 줄이는 작업장 체제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자본에게 고령 노동자들을 위한 건강한 일터 만들기와 일자리가 없어 고통받는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도록 요구하는 일은 시급히 진행해야 한다.

 

금속노조의 ‘연대성’을 기대한다

생각해보자. 한쪽에서는 건강을 생각하며 야간노동을 줄이자고 한다. ‘잠 좀 자자’고 했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고 ‘일자리를 달라’고 한다. 이것이 금속노조 안에서 동시에 벌어진다. 이 문제는 자칫 금속노조를 ‘존재분열’로 내몰 수 있다. 하나의 틀에 사뭇 다른 양상을 하나로 융합하고 통일시키기 못하면 분열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금속노조가 연대성으로 내적 통합을 높여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자리’에서 연대성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주간연속2교대 논의와 정리해고 철회 투쟁이 금속노조 안에서 ‘연대성’으로 통합되는 방법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 대책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노동 중심 작업장 체제’를 산업의 의제로 제기하고, 그것을 위한 자본의 부를 분배할 것을 요구하는 일이다.

이것은 금속노조의 전략적 전환을 요구한다. 더 오래 많이 일 하는 체제에서 건강을 위해 일 덜 하는 체제로, 사람을 줄이는 작업 방식에서 사람 중심의 기능 체계로 작업장을 변화시키는 작업장 만들기 운동이 필요하다. 그저 고용안정과 일자리 지키기로 대응해서는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