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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금속노조 원하청 정책에 대한 제언

금속노조연구원   |  

금속노조 원하청 정책에 대한 제언

 
한지원(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1. 원하청 불공정거래, 과연 하청의 지불능력 개선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한국에서 재벌개혁의 핵심 정책 중 하나는 원하청 불공정 거래 개선이다. 진보진영이 제기하는 재벌 개혁의 가장 큰 필요성이 재벌이 국민 경제를 수탈해 자신들만의 부를 쌓는다는 것인데, 산업 차원에서 하청 기업에 대한 불공정 거래가 바로 그 수탈 체계의 핵심에 있기 때문이다.

재벌 개혁 의제를 가장 지속적으로 발언해 온 주체 중 하나는 금속노조였다. 특히 재벌개혁의 핵심 축인 원·하청 불공정거래 개선 관련 요구는 단지 정책 제안 수준이 아니라 금속노조가 십 수 년간 물리적 투쟁을 동반하여 제기해 온 의제다. 원하청 불공정거래 개선은 2001년 금속산별노조가 출범하면서 제기한 중심 투쟁 과제였다.

그런데 문제는 금속산업연맹 시절부터 현재까지 매년 비슷한 요구가 반복되어 왔고, 이중 일부는 부분적으로 제도화되었지만 현실의 원하청 불공정거래는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소 형식적이기는 하지만 원가연동제를 현대차나 삼성전자가 이미 수년전부터 부분적으로 실행 중이고, 개정된 하도급법에 따라 2011년 말부터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협동조합의 하도급 대금 조정 신청권, 하도급거래 실태조사 및 결과공표 의무화 등도 시행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2004년, 2007년 하도급법 일부 개정안으로 금속노조와 시민단체에서 요구하던 내용 일부가 시행되고 있기도 했다. 물론 이런 제도들로 인해 원·하청 불공정거래가 크게 개선되었다는 보고는 찾기 힘들다.

또한 이런 현실적 결과 외에도 현재 진보진영의 원하청 불공정거래 개선 정책에는 ‘노동’의 문제가 간접적으로만 고려된다는 근본적 문제가 있다. 금속노조를 포함해 진보진영의 원하청 거래 개선 정책은 불공정거래를 통한 재벌대기업의 수탈이 줄면 하청업체의 지불능력(순익 증가)이 증가하고, 지불능력이 증가하면 노동자 다수가 고용되어 있는 하청업체의 임금 및 노동조건도 개선될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자본주의에서 임금 노동조건이 기업 지불능력에 비례하여 증가해야만 한다는 필연적 이유는 없다.

예를 들면 전자산업 1차 벤더의 생산직 노동자들은 회사 지불능력에 상관없이 대부분 3년 이내의 짧은 근속에 최저임금보다 약간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 자동차산업도 마찬가지다. 외부 개입 없이 기업 지불능력과 임금이 시장(?)에서 결정되는 무노조 사업장의 경우 임금은 회사 경영 실적과 상관없이 최저임금 선에서 결정되고, 여기에 약간의 상여금이 붙는 것이 일반적이다.

원하청 거래 문제와 노동 문제가 다른 의제로 제기되고 있지만 한국의 원하청 구조는 분단되고 차별화된 노동시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고착화되었다고 봐야한다. 노동시장과 원하청 거래 문제가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1980년대 중반부터 이미 분단되어 있었고, 원청과 하청의 분업구조는 하청이 저임금 노동시장을 활용하는 것을 기반으로 거래관계가 형성되어 고착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 노동운동은 이러한 구조에 맞서 초기업적 교섭구조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고 결국 기업별 교섭에 안주하며 분단 노동시장과 원하청 관계가 확대 발전하는 것을 방조했다.
 
2. ‘금속노조‘다운 원하청 정책
 
현재 기업 간 거래 규제를 중심으로 짜인 금속노조의 원·하청 불공정거래 개선 정책은 그 중심을 노동 의제 중심의 원하청 불공정거래 개선 정책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 의제 중심의 원하청 불공정 거래 개선 정책의 한 가지로 금속노조 집단교섭에 따른 효과를 중요하게 검토해봐야 한다.
 
< 기업 간 거래 중심 원하청 정책과 노동 중심 원하청 정책>

 
 
본 연구의 방향을 보여주는 것이 위 그림이다. 원청이 참여하는 산별교섭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기업별 임금 격차를 축소하고, 산업 내 임금을 상향평준화 한다면 원청이 납품단가를 결정할 때 자의적으로 늘이고 줄이는 임률을 산업적으로 규제할 수 있으며, 이는 중소 부품업체의 납품단가 교섭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기업간 거래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 노동조건의 산업적 협약에서부터 기업간 거래를 역규정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원하청 관계 개선 정책 방향이 기업간 거래 규제 정책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하도급법, 공정거래법 개정은 진보진영에서 주장해 온 대로 추진되어야 한다. 하지만 제조업 노동자를 대표하는 금속노조가 중점을 두고 추진해야 하는 것은 좀 다르다는 것이다. 금속노조의 원하청 불공정거래 정책은 노동을 중심에 둔 의제여야 하며, 그것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투쟁을 진행해야 한다. 그것이 금속노조 다운 정책이고 투쟁이다.
 
3. 실제 산별교섭은 ‘원하청 거래’에 영향을 미쳤다. 
 
지금까지 잘 알려져 있지는 않았지만, 몇 가지 실증적 자료를 보면 금속노조의 집단교섭이 일정하게 원하청 거래에 미치는 효과가 존재했다. 노동자운동연구소에서는 현대기아차에 직접 납품을 하는 423개 자동차 및 트레일러 제조업 업체의 재무제표, 사업보고서를 가지고 이를 살펴보았다.

경제위기 이전인 2006년부터 2011년까지 경영상황을 금속노조 집단교섭 참여 사업장과 나머지 사업장으로 나누어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집단교섭 참여 사업장의 생산직 임금 총액은  30% 상승한 반면 나머지 사업장은 22% 상승에 그쳤다. 판매가를 공시하는 상장기업들을 대상으로 보면 집단교섭 참여사업장의 경우 납품가가 38% 인상된 반면 나머지 사업장들은 22% 인상에 그쳤다. 매출총이익률(영업 부분이 아닌 실제 공장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이익률)은 이 기간 집단교섭 참여 사업장이 1.6%포인트가 상승했고 나머지 사업장은 0.7%포인트가 하락했다. 즉 이 기간 집단교섭 참여 사업장의 임금인상이 훨씬 컸고, 또 그만큼 원청에 대해 좀 더 나은 조건으로 거래를 했다는 의미다.

 
<2006년 대비 2011년 변화>
 

혹시 이런 결과가 집단교섭 참여 사업장이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기 때문은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 집단교섭 참여 사업장은 평균 매출액이 2011년 기준으로 3,248억원으로 나머지 사업장의 평균 매출액은 1,726억원과 비교해 볼 때 크다. 하지만 노동자운동연구소에서 살펴 본 바로는 기업 규모의 차이가 수익률의 차이나 임금 총액의 차이로 직접 연결되지는 않았다. 매출액 1천억 원이 넘는 중견 기업들로 대상을 좁혀서 분석 해봐도 금속노조 집단교섭 참여 사업장과 나머지 사업장의 비교 결과는 비슷했다. 즉 금속노조의 집단교섭이 분명 일정한 힘으로 2006년부터 2011년 분석 기간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경제위기 기간 발생한 일들을 생각해보면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유추해 볼 수 있다. 현대차를 포함해 대기업들은 이 기간 매우 큰 단가 인하에 나섰고, 수많은 중소기업들은 임금을 삭감하며 이에 대응했다. 하지만 금속노조 집단교섭 참여 사업장들의 경우 임금 하락 압박에 그럭저럭 대응력을 갖추고 있었고, 특히 집단교섭 과정에서 마구잡이 임금 삭감을 방어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10년 경제위기 이후에는 이 기간의 임금동결 혹은 적은 임금인상을 만회하는 수준으로 임단투를 진행했다.

앞의 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부품사 사업주들 역시 금속노조 효과로 발생하는 임금 인상에 대해 현대기아차에 납품가 반영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임금 삭감을 쉽게 하고, 또 임금 인상을 오랜 기간 유보할 수 있는 무노조 기업의 사업주들보다 당연히 집단교섭 참여 사업장의 사업주들이 좀 더 납품가 현실화에 열성적이었을 것이다. 또한 현대차 역시 이런 금속노조 효과를 뻔히 아는 상황이었기에 이 또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원하청 거래 개선책은 원청 기업의 호혜가 중소기업 노동자에게 이어진다는 가정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경험적으로 봐도 그런 일은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 반대로 중소기업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임금조건이 집단적으로 개선되었을 때 어쨌건 이들과 거래를 해야 하는 재벌 대기업은 좀 더 많은 몫을 내놓았다.
 
4. 나가며
 
앞으로 금속노조가 추진해야 하는 것은 현재 하도급법과 공정거래법 중심으로만 논의되고 있는 원하청 관계와 관련된 의제를 원하청 노동자 격차 축소를 위한 산별교섭 제도화 의제로 확대시켜나가는 것이다.

원하청 불공정거래 개선은 기업간 거래에 대한 규제만이 아니라 노동의 측면에서도 적극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원하청 불공정거래에 관해서 노동의 측면은 오직 간접적으로, 하청 기업이 지불능력 개선 이후 효과로만 고려되었다.

금속노조는 재벌 대기업 원청을 포함한 살별교섭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원·하청 불공정 거래 개선에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사회적 정치적으로 산별교섭 제도화를 의제화해야 한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산별교섭 제도화가 원하청 불공정거래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