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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간과 임금, 그리고 삶

금속노조연구원   |  

시간과 임금, 그리고 삶

 

 

이종탁(산업노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2013년도 절반을 훌쩍 지났다. 3월에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에서 주간연속2교대제를 도입했고, 관련 협력업체 몇 곳도 이 제도를 도입했다. 7월 현재에는 한국지엠에서 이 교대제 도입을 둘러싸고 치열한 노사 힘 겨루기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 이후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양상은 매우 우려스럽다. 그 중에서도 노동시간을 단축하자고 하는 제도가 현실에서는 장시간 노동, 특히 주말 및 휴일 노동을 증가로 이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다양하게 진단할 수 있을 테지만 크게 두 가지 원인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투자의 외부화이다. 사회적 분위기는 삶의 질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자본은 여전히 생산의 효율화정도에 머물러 있고, 더 싼 비용으로 더 많은 수익을 얻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경영에 머무르고 있는 자본은 늘어나는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공장가동시간을 극대화하는 방법에만 몰두한다. 해외공장은 늘리면서 국내 투자에는 인색한 현대차 그룹이나 전 그룹 차원의 수주량을 더 많이 받아오는 일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한국지엠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또 하나, 여가와 문화의 부재를 꼽을 수 있다. 평일 심야에 잠을 잔다는 것은 참으로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일이다. 토요일에서 일요일까지 이어지는 시간에 노동자들은 여전히 특근을 선택한다. 공장이 돌아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시간에 여가를 만끽하고 문화를 향유하는 법을 알지 못하는 노동자 삶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놀고 즐기면서 게으르게 사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막상 여가와 문화를 즐길 곳도 그리 많지 않다. 결국 노동자들은 돈이 되는 주말에 일을 선택하는 패턴을 반복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매우 걱정스럽다.

자동차 산업 교대제 개선과 노동시간단축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패러다임 전환을 말한다. 일 하는 시간을 늘려 생산을 늘리고 임금도 더 받는 산업화성장 패러다임은 현재 전개되고 있는 세계 자동차 산업 동향과 한국 사회의 객관적 위상에 비추어 볼 때,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생산을 효율화하면서 노동시간을 줄이고, 더 좋은 품질로 더 높은 부가가치를 올려 더 많은 임금을 주는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더 오래, 더 많이 일 하는 방식으로는 급변하는 세계 자동차 산업 속에서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는 점이 공통된 분석이다. 하지만 자본의 대응은 안이하기 그지없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모듈화와 외주화로 생산의 일대 전기를 마련했던 한국 자동차 산업이 2010년 전후 세계화말고는 뚜렷한 생산전략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상태로는 자본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전향적 자세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노동에게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한 진지한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자신있게 그렇다라고 말하기 어렵다. 생산 일선에서 하루하루 노동하며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더 많은 임금 대신 더 많은 여가를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여가와 문화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놀고 쉴 수 있는 판을 만들고, 그 안으로 노동자들을 끌어들이는 노력을 노동조합이 해야 한다. 노동이 자본과 다른 길을 가느냐 마느냐는 여기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임금의 수준에 따라 생활이 결정되는 현실에 맞서는 대응도 필요하다. 브랜드 소비가 확산되고 일류가 되기 위한 스펙 쌓기는 전 세대를 망라하면서 은 많은 이들의 삶에 절대적 기준이 되고 있다. 이런 삶의 구조 속에서 개인인 노동자가 다른 삶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노동조합이 삶의 연대, 협동하는 지역을 만들어가야 한다. 협동과 연대를 통해 생활 비용을 낮추는 한편, 경쟁이 아닌 나눔의 삶으로 이끌어야 한다. 노동조합이 임단협 투쟁에서 생활의 영역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 자본에 요구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노동이 선택하고 실천해야 할 과제이다.

이를 통해 시간과 임금의 연관 체계를 극복해야 한다. 더 많은 임금을 위해 더 오래 일하는 패러다임이 지속된다면 노동은 자본에 종속된 상태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임금 대신 시간을 선택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한 전환은 노동조합이 삶을 자기 영역으로 포함하려는 전략적 결정과 전환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