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칼럼 > 칼럼
칼럼
 

<칼럼> 2013년 상반기 노동운동을 되돌아본다

금속노조연구원   |  

2013년 상반기 노동운동을 되돌아본다

 
노광표(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87년 노동자대투쟁이후 노동조합운동에는 시기별로 유형화된 패턴이 있었다. 상반기는 임금인상투쟁, 하반기에는 노동법 개정투쟁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지 노동조합운동의 시기 구분은 큰 의미가 없게 되었다. 상반기에 마무리되던 임금교섭이 시나브로 늦어져 여름휴가를 넘기는 경우가 태반이고, 노동법 개정 요구는 1년 내내 제기되는 구호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관성화된 임금인상투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낮아진 것도 그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요즘은 상반기가 훨씬 지나도 ‘평가’가 없는 것 같다. 일 년 한 해를 6개월로 뚝 잘라서 의미를 부여할 만큼 무슨 변화가 있는가라는 반론도 있지만 앞으로의 과제 정립을 위해 상반기 노사관계와 노동운동의 큰 변화 흐름을 검토해 보자.
 
요동치는 현장, 조직화와 투쟁의 진전
 
2013년 상반기 노동정세의 열쇠는 박근혜정부의 등장이었다. 이명박정부 5년에 이은 보수정부의 재집권은 노동운동에게는 위기 그 자체였다. 박근혜 후보 당선이후 연이은 노동자들의 죽음은 실낱같은 희망조차 찾을 수 없는 노동현장의 절망을 웅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박근혜대통령은 이명박정권을 답습할 수 없었다. 보수정당의 뿌리는 동일하지만 다름을 보여주지 않고서는 국민들을 설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헛말일지라도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를 약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시대정신이었다.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는 재벌개혁, 비정규직의 처우개선, 노동시간 단축, 정년연장을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억압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는 말처럼 이명박정권의 무단적인 노동탄압에 시달리던 노동대중들은 이 틈새를 깨고 나왔는데, 그 조짐은 2011년 하반기부터 시작되었다. 고용노동부의 ‘2011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현황’에 의하면, 조직대상 1,709만명 가운데 172만명이 노조에 가입해 노조조직률은 10.1%이다. 이는 2010년 조직률(9.8%)와 비교해 0.3%p 오른 것인데, 조직대상은 같은 기간 1.7%(28만6000명) 늘었으나 조합원 수가 4.7%(7만7000명) 늘어 조직대상 증가폭을 앞질렀다. 지난 10년 동안 하락하였던 조직률이 2011년을 기점으로 소폭이나마 반등한 것이다.
이 흐름은 박근혜정부에서 더 강화되었다. 청년유니온과 노년유니온의 합법화, 아르바이트노조의 건설, 희망연대노조 티브로드지부, 전남대학교 청소용역 지회,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의 투쟁 및 조직, 한화갤러리아 백화점노조,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 지부, 성동조선해양 지회 등 무노조의 아성이었던 삼성그룹에서 유통서비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까지 신규노조 결성은 전방위로 확산되었다. 신규노조의 건설 및 조직화가 얼마나 확대될지 예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변화의 밑바탕에는 ‘더 이상 밀려서는 안된다’는 절박감 그리고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의 회복이 뒷받침되고 있다. 이 흐름은 장기투쟁 사업장의 부분적 승리 및 전선의 확대 그리고 정치적 정당성 확보로 연결되고 있다. 현대차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정규직화 투쟁, 2,076일 최장 농성과 202일의 종탑농성으로 승리한 재능교육 투쟁, 아직 끝나지 않은 쌍용자동차와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노동자들의 싸움이 그것이다.
 
 
진주의료원 폐업과 끝나지 않는 민영화 논란
 
집권 초 모든 정부가 추진하는 대표 정책이 공공부문 개혁이다. 방만한(?) 공공부문을 개혁하는 것은 집권세력에게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단골 메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MB정부의 민영화 중심의 공공부문 개혁의 실상을 인식한 국민들은 더 이상 사이비 공공부문 개혁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 싸움은 2008년 촛불시위에서 폭발한 민영화 반대 시위였다.
민영화 논란이 다시 촉발되었던 것은 경남 진주의료원의 폐업 사태였다. 정부와 집권여당은 공공보건의료 인프라를 확충하고 지방의료원을 비롯한 지역 거점 공공병원을 활성화하겠다고 대선에서 공약하였지만 같은 당 소속의 홍준표 지사는 진주의료원 폐쇄를 밀어 붙였다. 진료의료원 폐쇄 저지 싸움에서 보건의료노조와 시민사회가 이뤄낸 성과는 적지 않다. 전투에서는 졌지만 ‘전쟁’에서는 승리하였다. 노동조합은 진주의료원 싸움을 일자리 보장을 뛰어넘어 공공의료 확충 더 나아가 공공성 의제를 공공부문의 일 주체로서 주장하였다. 2011년 말 현재 우리나라는 의료기관 수를 기준으로 전체 의료기관의 94.1%가 민간부문에 속해 공공부문은 5.8%에 불과하고 병상수를 기준으로 공공부문 비율이 11.7%이다. 선진국의 경우 병상규모로 보면 적어도 약 30% 이상을 공공의료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12% 정도에 불과해 매우 열악한 실정이다. 박대통령 스스로 진주의료원 문제의 본질이 노동조합의 과도한 요구에 있지 않으며, 지방의료원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에 있음을 확인하였다, 공공부문 경영이 방만해서도 안 되지만 민간부문처럼 경영 잣대로만 운영해서도 안된다. 공공부문은 국민이 공감하는 ‘착한 적자’가 발생할 수 있는 분야이다.
민영화 논란은 하반기 철도 및 가스산업 민영화에서 보다 더 확대될 것이다. 그런데 민영화 정책은 신자유주의의 낡은 프레임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정부도 철도 및 가스산업의 민영화를 구조개편이라는 말로 대체하여 사용한다. 지난 30년 동안 민영화의 효과는 검증되지 않았고 필수기간산업의 민영화는 국부 유출과 요금 인상 그리고 서비스 질(質) 저하로 귀결되었다. 하반기 공공부문의 적자 증가와 복지 재원 마련을 이유로 민영화를 포함한 공공부문 합리화 정책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진주의료원 싸움에서 보듯이 민영화 추진에 맞선 노동조합의 전략은 우월한 정책능력과 대국민 지지 및 설득 여부에 있다.
 
관성화된 임금교섭과 실종된 임금정책
 
양극화는 한국 사회 및 노사관계와 노동시장을 관통하는 핵심 용어이다.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노동 내부의 격차 확대는 노동운동의 정당성을 파괴하고, 부메랑이 되어 정규직노동을 공격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가 사라진 것처럼 대기업노조의 임금인상이 중소사업장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현저히 약화되었다.
2012년 고용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5~299인 규모 중소기업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283만4천원이고, 대기업 노동자는 442만4천원이다.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노동자의 임금수준은 2002년 67.5%에서 2010년 59.9%까지 하락했다가, 2011년 64.1%로 소폭 상승했으나 그 격차는 여전히 크다. 또한 통계청의 2013년 ‘3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정규직의 임금은 283만원이고 비정규직은 140만원으로,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월임금 기준으로 52.2% 수준이다.
양극화,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노동의 대응 원리는 연대(solidarity)의 실현이다. 상황은 엄중하지만 이를 교정할 수 있는 노동조합 상급조직들의 임금교섭 전략은 큰 변화가 없다. 아니 변화는 있지만 소속 사업장에 대한 규제력을 거의 상실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별노조 건설 목표가 노동계급의 연대 구축에 있었지만 그 첫걸음인 임금의 연대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더디기만 하다.
2013년 민주노총의 임금인상 요구안을 보면, 임금불평등해소, 노동소득분배 구조개선, 저임금노동자의 생활개선 등을 위해 최저임금인상 요구액인 정액급여 월 219,170원을 ‘동일정액 인상안’으로 제시했다. 이를 요구율로 환산하면 정규직은 8.9%, 비정규직은 15.7%이며, 최저임금 요구액은 5,910원을 제시하였다. 비정규직 임금인상을 정규직에 비해 약 2배 이상 요구하고 있지만 이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거나 현실화되는 사업장은 소수에 불과하다. 결론적으로 노동조합운동은 노동 내부의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조직·정책 기제를 갖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다만 최저임금은 지난 몇 년 동안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통해 사회적 임금인상운동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최저임금위원회의 제도적 틀과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연대임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대·중소기업간 부당거래 해소만큼이나 노동의 선제적 대응이 요구된다. 대기업노조가 임금인상을 억제하고, 그에 따라 대기업의 이윤이 늘어나는 부분은 단가인상을 통하여 중소하청기업들의 임금인상 재원으로 쓸 수 있도록 강제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주체의 정비와 혁신이 출발점이다.
 
박근혜정부 6개월이 지나면서 시민사회와 일반 국민이 갖고 있던 기대는 절망감으로 바뀌고 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 약속은 게걸음 상태이고, 국정원 선거 개입에 따른 장기화된 여야대치 상황은 한국 민주주의의 현 주소를 보여준다. 민주주의 후퇴와 함께 경제 상황도 먹구름이다. 지표상 성장률은 회복되고 실업률은 개선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계부채 증가와 전월세 대란으로 노동자와 서민의 살림살이는 악화일로다.
운동 상황을 결정짓는 것은 객관 정세가 아닌 주체의 역량이다. 상반기 민주노조운동이 갈지자 행보를 벗어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주체의 문제였다. 민주노총은 2012년 11월 위원장의 중도 사퇴 이후 8개월 이상 지도부 공백 상태였다. 임원 선출을 위한 두 번의 선거가 무산되는 등 조직 내부의 갈등과 반목은 민주노총의 발목을 잡았다. 덧붙여 민주노동당의 분당이후 지속된 진보정당의 분열과 반목은 현장 조합원들의 마음을 떠나게 만든 또 다른 요인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 매어 쓰지는 못한다’는 말처럼 조직 내부를 추스르고 단결력을 높이지 않는 한 노조운동의 진전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총 신임집행부와 금속노조 8기 임원의 역할은 막중하다 할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정상화는 “민주노총-산별노조-지부(지회)”의 조직 위상 확립 및 공유에서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전국중앙조직(national center)은 이념의 정립, 사회개혁투쟁과 정책참가를 포함한 정책·제도개선활동, 정치세력화 등을 임무로 하며 산별노조는 단체교섭과 조직 확대, 산업정책 등에 중점을 둔다. 지부(지회)는 보충교섭과 경영참가, 조직 관리와 일상활동의 추진을 역할로 한다. 이와 같은 일반적인 각급 조직의 역할을 염두에 두면서 현 시기 각급 조직의 역할과 임무를 분담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모든 일을 떠맡는 조직 과부하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재의 역량과 조건에서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분명히 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매년 임금인상 요구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과감하게 임금교섭의 주체인 산별노조에 넘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인상과 임금 격차 해소에 집중해야 한다. 또한 비정규·미조직 조직화 사업 추진에 있어 민주노총과 산별노조의 역할분담이 중요하다. 민주노총 신임집행부가 발표한 ‘미조직비정규 기금 200억’ 조성은 정치적 상징성은 있지만 기금 조성 방법과 사용처를 둘러싸고 자칫 조직 내 분란으로 작용할 위험이 크다.
마지막으로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광범위한 노동대중의 세력화가 절실하다. 노조조직률 하락은 노조의 위험을 알리는 ‘빨간 신호등’이다. 조직률 하락은 교섭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노조원뿐만 아니라 전체 국민들에게 미친다. 노동조합은 기업경영과 국가정책의 잘못을 지적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요구하는 마지막 사회적 제어장치이며, 일터의 민주화와 권리 회복을 위한 버팀 몫인 것이다. 무릇 상황의 돌파는 객관적인 조건의 성숙이 아니라 주체의 자각과 혁신에 달려 있다. 대담한 구상, 실사구시 그리고 노동대중에 대한 헌신이야말로 이 시대 노동조합 활동가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