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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14년 비정규운동 전망과 과제

금속노조연구원   |  

2014년 비정규운동 전망과 과제

 
이남신(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박근혜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은 ‘설마’가 ‘역시나’가 된 한해였다. 재작년 양대선거 공간에서 화두가 된 경제민주화와 복지 담론의 영향으로 한시적으로 유화책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으나 이런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전교조 법외노조 시비와 통합진보당 해산 시도 강행에서 명확하게 보여지듯이, 이 정부는 국제적 규범이나 우리 사회의 민주적 상식은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매카시즘류의 저급한 종북 색깔 덧칠하기로 일관하면서 반노동 반민생 반민주의 본색을 유감없이 드러내왔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과 함께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연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들의 불길한 예감을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는 몸서리치도록 확인해왔다. 창립18 년만에 처음으로 경찰이 민주노총에 난입한 사태도 박근혜정부의 계급적 본색이 가감없이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이다. 핵심 국가권력기관이 총동원된 관권부정선거 시비에 휘말려 합법적 정통성이 뿌리로부터 흔들리고 있는 박근혜정부가 노동자와 서민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정당한 합법투쟁마저 공권력으로 억누르면서 더욱 큰 위기를 자초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정세를 반전시킬 대중투쟁과 정치권 내 흐름은 요원해보인다. 민주노총이 제안하고 주도하는 2.25 국민 총파업이 그 시발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2014년 비정규운동을 거칠게 전망하고 주요 과제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파기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비정규 관련 공약 이행
 
우선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다시 한번 들춰보겠다. 비정규직 관련해 주요하게 내세운 공약들로 2015년까지 공공부문 상시지속 업무 비정규직 전원 정규직화와 비정규직의 차별적인 처우개선, 최저임금 결정시 경제성장률과 물가인상율 고려 등 그나마 공익적 사용자로서의 역할이 기대되던 내용들은 아직까지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을 뿐더러 추진의지를 확인할 길도 없다. 오히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경우 정규직화가 무기계약직화에 불과하고 광범위하게 확산된 민간위탁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통째로 배제되고 있어 실제 공약으로서의 의미가 파기 수준으로 심각하게 후퇴해왔다. 거기에다 위장도급 내지 불법파견이 명확한 사실로 드러났던 삼성전자서비스에 대해 면죄부를 준 고용노동부의 수시근로감독 결과에서 보듯이 재벌자본의 이해를 비호하느라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노동 문제인 불법적인 간접고용 비정규직 양산에 대해서 도외시해왔다. 이는 대법원의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최종판결이 무력화되고 있는 현실이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거기에다 공공 부문 비정규직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예산이 국회 관련 상임위를 통과하고도 새누리당의 반대로 대폭 삭감된 데서 확인되듯이 앞으로도 노동 관련 공약들이 수난을 겪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2014년 비정규운동 전망과 과제
 
비정규운동은 노동운동과 한 궤이므로 올해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를 비롯한 조직노동이 얼마나 노동계급 대표성을 되찾아오면서 활력을 회복하느냐가 우선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작년말 상당한 여론의 지지 속에 정국을 뜨겁게 달군 철도 파업과 안녕들 하십니까는 노동 의제가 국민적 주목을 받는 호기가 됐다. 이런 계기 속에서 무엇보다 노동기본권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규직/중소영세사업장/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풍부한 조직자원을 가진 산별노조의 전과는 실천적으로 다른 투쟁과 조직화 노력이 요청된다. 특히 반노동 기조를 비타협적으로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는 박근혜정부에 맞서 공세적인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하겠다.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조직노동이 노동자 스스로의 단결과 투쟁으로 위기를 돌파하고 합법적이고 대중적인 힘으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때, 2003-2004년 화물연대가 덤프연대가 전국적으로 조직됐듯이 우후죽순으로 전국 도처에서 벼랑끝으로 몰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요원의 불길처럼 자신의 투쟁요구를 중심으로 일어설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투쟁과 조직화의 뇌관을 조직노동이 잘 당겨 제대로 도미노 연쇄폭발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올해 비정규운동과 관련해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제정된 파견법을 분기점으로 우리 사회 전역에 확산돼온 불법/탈법/편법적인 나쁜 일자리인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남용돼온 만큼 철퇴가 절실하다. 특히 중앙정부와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국회가 문제 개선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만큼 당사자들이 직접 나서서 외치고 투쟁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미 무노조 삼성왕국에 민주노조의 깃발을 꽂고 치열하게 투쟁해온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작년 투쟁 성과를 발판으로 전국적 조직화에 나선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두산 자본이 원청사용자인 중앙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등 진짜 사장에게 찾아가 마땅한 사용자 책임을 묻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하루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다 인천공항, 다산콜센터 등 공공 부문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조직화도 거세질 전망이다. 또한 재벌 자본의 이해와 직결된 사내하도급법 제정 시도와 파견 업종 확대 추진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 관련한 법제도 논란도 이어질 것이다. 올 한 해 노동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투쟁 의제는 정규직노조가 중심이 되는 통상임금 관련 공방과 함께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가 될 것이다.
 
다음으로 박근혜정부가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해온 70% 고용률 달성과 관련해 주요 대책으로 내놓은 시간제 일자리 확충 문제다. 현재 민간 대기업 부문에서도 정부 시책과 발맞춰 시간제 일자리 늘리기를 실행하고 있다. 시간제로 일하고 싶은 구직자에게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취지 자체는 나쁘지 않으나 시간제 일자리가 놓인 노동인권 침해 현실을 개선할 방도는 도외시한채 시간제 일자리 확대만 주장하는 것은 문제를 오히려 더 키운다. 무엇보다 시간제 일자리 정책은 경력단절의 가능성이 있는 여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전일제-시간제를 오고갈 수 있는 선택권이 보장될 때 의미가 있는데, 뜬금없이 55세 이상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파견업종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발표를 보면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기존의 일자리들을 쪼개고, 파견과 같은 간접고용을 확대하는 시간제 일자리 대책으로 변질될 위험이 커 보인다. 또한 시간제 일자리 확대가 단시간․저임금․불안정 노동을 양산할 것이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공공부문에서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확산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으나, 현재 시간제 일자리의 대부분이 최저임금 미만 또는 약간 상회하는 수준임을 고려할 때 시간제 일자리 확대로 인해 저임금 일자리가 구조적으로 고착화될 위험 또한 커 보인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13년 3월 기준 시간제 노동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임시 파트타임 노동자의 정규직 대비 시급 수준이 47%에 불과했다. 결국 고용률 제고를 위해서 일자리를 쪼개서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확대하겠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려워 보이므로 이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투쟁이 요청된다.
 
공공 부문에선 이미 5만명 이상이 조직된 학교비정규직 공무직 및 호봉제 쟁취 투쟁이 가장 중요한 당사자 투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러 노조로 나뉘어져 있는 학교 비정규직이 하나로 통합되는 것과 함께 법제도 개선을 위한 파업투쟁 등 단일한 투쟁대오를 구축해 의미있는 성과를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그리고 올해 6월 지방선거 국면에서 지자체 단위의 비정규 정규직화 등 관련 공약들이 쏟아져 나올 예정인데 이를 제대로 검증하고 실질적인 이행 공약으로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학교비정규직 조직화와 서울시 사례에서 증명됐듯이 공공 부문 사용자가 어떤 입장을 갖느냐에 따라 비정규직 조직화에 미치는 영향이 결정적이므로, 진보정당 사분오열로 바닥을 치고 있는 노동정치의 열악한 조건과 별개로 지방선거를 앞두고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고 행상시킬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모색하고 후보 공약으로 반영시킬 방도를 찾는 것은 놓칠 수 없는 과제다.
 
단결과 연대만이 살 길
 
2014년 한해도 노동자들에겐 힘겨운 고난의 한해가 될 전망이다. 불안정한 한반도 정세와 심화되고 있는 세계경제위기가 먹이피라미드 맨 아래에서 짓눌리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고통전담을 더욱 강제해올 가능성도 크다. 삼성, 현대로 대표되는 한국 사회 슈퍼갑인 재벌 자본의 위세는 막강하고 민주노조에 대한 박근혜정부의 반감은 대화와 사회적 합의를 통한 문제 개선 여지마저 막고 있는 형국이다. 결국 당사자들이 자신의 단결된 힘으로, 그리고 자신과 함께 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연대의 힘으로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그것 외에 다른 뾰족한 비법이 없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정부는 노동자에겐 단결과 연대가 살 길이라는 자명한 진실을 절감하게 하는 아이러니한 역할을 한 셈이다. 2014년은 정말 한 땀 한 땀 지역과 현장에서부터, 아래로부터 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를 씨줄과 날줄로 엮으며 전진하면서 승리를 쟁취하는 한해가 되길 소망한다. 노동정세의 핵이 될 삼성 투쟁 승리 등 금속노조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한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