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칼럼 > 칼럼
칼럼
 

<칼럼> 세월호 참사와 민주노조운동 거듭나기

금속노조연구원   |  

세월호 참사와 민주노조운동 거듭나기


 

이 남 신(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대한민국이 초유의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1997IMF 외환위기가 그나마 극복 가능한 경제적 파국이었다면, 세월호 참사를 분기점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한국의 거대한 총체적 난맥상은 근본적이고 고질적인 체제 무능 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헤어나올수 있을지 의구심이 깊어지고 있다. 여전히 자신의 귀를 닫고 눈가리며 아웅 하고 있는 박근혜정부의 지겨운 행태도 달라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한때 식민지를 경험한 후진국에서 개발도상국을 거쳐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과에 힘입어 남북분단의 참화를 딛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한, 세계사에 선례를 찾기 힘든 나라라는 상찬까지 받던 한국이 위태롭다.

 

도처에서 적신호가 요란하게 깜박인다. 갈수록 역진불가 양상으로 극단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사회양극화와 소득 격차 심화, 법 위에 군림하며 슈퍼갑으로 행세해온 재벌 집단의 독점과 탐욕, 노동자가 최대 다수임에도 노동 홀대와 폄하가 당연시되는 기이한 사회 문화, 공정한 게임의 룰은 사라진 채 사회 전반에 만연한 이기면 그만이란 천박한 인식, 청백리와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찾아보기 어렵고 사익 추구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공직, 부동산 투기-자녀 부정 편입학-병역 기피-논문 표절 등 이제는 식상해져버린 기득권층의 식별 패키지 지표, 두레 정신으로 표상되던 공동체 문화는 실종된 채 질식 직전까지 이르른 연대와 협동의 가치, 빨리빨리와 대충대충으로 상징되는 생명과 안전 경시 관행, “부자 되세요가 당연한 덕담과 인사가 되고 물신의 지위를 획득한 돈이 왕노릇 하는 엄연한 현실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비정상 지수는 임계점에 도달한 지 오래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416일 이전과 이후는 정말 달라져야 한다는 외침이 드높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속빈 강정처럼 돼가고 있다. 원인을 제공한 자본의 탐욕과 희대의 비극으로 치닫게 방조한 정부의 무능이 최악의 조합으로 굴비처럼 한데 엮여 3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낳았고, 100일을 넘긴 지금까지도 10명의 실종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꼬리를 무는 의혹에도 아직 기본적인 진상규명조차 오리무중이고 무책임한 여야정쟁 속에서 유족과 실종자 가족의 속만 타들어가고 있다. 오죽하면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들이 무기한 단식농성에 나섰겠는가. 그 부모들의 농성을 지지하면서 태안 해병대캠프 참사·춘천 봉사활동 인하대 학생 희생자 유가족 등이 모인 재난안전가족협의회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해야 하는 현실이 참담하다. 이게 공동체인가. 이게 정말 국가가 맞는가. 산업화와 민주화로 일군 성과는 사막의 신기루처럼 허깨비가 돼버린 것인가. 99% 시민이 1% 기득권자들의 이윤 추구와 권력욕의 희생양이 되고 만 기막힌 현실 앞에서 우리 사회의 진로와 노동운동의 역할에 대해 새삼스레 근본에서부터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비정규직 문제만 해도 그렇다. 1800여만 노동자 중에 절반을 훌쩍 넘는 1천만명이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사회가 되도록 노동운동은 무엇을 했나. 정규직 대비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사회복지와 기업복지를 망라해 더욱 열악한 지위에 놓인 비정규직의 고통과 한탄이 켜켜이 쌓이고 있는데 이 지경이 되도록 민주노총과 산별노조들은 무얼 했나. 민주노조운동의 본산인 금속노조는 어떤 역할을 해온 것인가. 아니 최초의 비정규 전문운동단체인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지난 14년 동안 도대체 무얼 바꿔온 것인가. 성과가 없진 않지만 지금의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돌아보면 절로 실망스런 한숨이 비어져나온다. 비정규직 문제 뿐 아니라 매일 5명의 노동자들이 산재로 죽어가는 한국은 하루 하루가 어쩌면 세월호 참사의 반복에 다름아니다. 이렇게 매일 세월호를 경험하고 있고 도처에 세월호 참사가 잠복해 있는 나라에서 전체 노동자계급을 대표하려 애써온 민주노조운동은 이 위험한 사회를 바꾸기 위해 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더욱 선명하게 확인된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과 적폐를 극복하고 개선하기 위해선 노동운동이 거듭나야 한다. 이 사회 전반의 물신주의 인식과 자본의 이윤 중심 사회 운영을 바꾸기 위해선 자본과 대면하고 마주선 노동자들의 운동이 핵심 변수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공동체가 상생의 길이 아니라 공멸의 길로 더 이상 내몰리지 않도록, 이익에만 혈안이 된 채 모두의 생명과 안전을 뒷전으로 내팽개치는 끔찍한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의 근간을 철저하게 바꿀 주도 세력으로 노동운동이 나서야 한다. 이윤 추구를 체제 지속의 연료로 삼을 수 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본성에 대한 냉철하고 객관적인 진단과 성찰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오늘과 내일을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위기가 깊어질수록 책임 있는 대안 세력으로 노동운동이 자신의 몫을 다해야 할 때인 것이다.

 

이 지점에서 최근 76년 무노조경영의 울타리를 허문 삼성전자서비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로 원청 자본과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격화되고 있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주목하게 된다. 민주노조운동을 이끌 새로운 계급주체로 성장하고 있는 신진 노동자들의 투쟁이기 때문이고, 현재 한국 사회의 최우선 선결 노동 의제가 진짜 사장의 책임을 묻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동안 침체되고 퇴행해왔던 노동자 투쟁의 기운을 되살리면서 기형적인 한국자본주의의 근본적 변화를 추동하는 역할을 이들 노동자들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생존해 돌아온 단원고 학생들의 도보 행진에 동참한 삼성전자서비스와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습에서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을 예감하게 된다. 비정규직 문제가 드러나기도 한 세월호 참사는 노동운동의 거듭나기 없이는, 비정규직을 비롯한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대다수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할 세력의 조직화 없이는 한국 사회의 진정한 변화가 불가능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산 자들의 어깨에 얹힌 십자가를 온 힘을 다해 제대로 지고 가야 한다. 그러려면 노동운동의 자기 성찰이 주장과 선언을 뛰어넘은 실천으로, 비정규직의 급진적인 조직화로, 전국적인 노동자 단결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노동운동의 근본적인 자기 혁신을 통한 거듭나기,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