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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부의 책임이 사라진 비정규직 종합대책

금속노조연구원   |  

정부의 책임이 사라진 비정규직 종합대책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1230, 고용노동부가 드디어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발표하였다. 고용노동부가 애써 내놓은 대책을 폄하하고 싶지 않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되어 있지만 결국은 현재를 크게 개선하지 못하거나 비정규직이 늘어날 가능성이 많다는 점에서 실망스럽다.

 

의미 있거나 없거나, 모두 비정규직의 실질적인 처우개선엔 부적절

 

고용노동부의 이번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다양한 측면에서 진전이 있었다. 구체적으로 몇 가지는 의미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3개월 이상 근무한 기간제 비정규직에 대한 퇴직금 지급, 노조의 차별신청 신청대리권 인정, 그리고 운송업종(항공, 철도, 선박)가운데 핵심 업무인 조종, 운전 등의 업무에 대해 기간제와 파견노동자 사용금지 등이다. 그러나 3개월 이상 1년 미만의 기간제 노동자의 퇴직금은 좋은 취지이지만 그 금액자체가 많지 않고, 노조의 차별신청 대리권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조직률이 3%미만인 상황에서 커다란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할 것이란 점에서 실효성이 크지 않다. 또 안전업무관련 비정규직사용규제는 의미 있지만 이미 항공조종사는 기간제 및 파견노동이 금지되어 있으며 전국의 철도기관사 중 비정규직은 없다. , 고용노동부의 비정규직 대책 중 의미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정부의 주장대로 처우개선의 파급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외 나머지 비정규직 대책들은 추상적인 수준이거나 일회성 지원이 대부분이어서 대책이라고 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을 적정수준으로 인상하고 이행력을 제고한다고 했으나 최저임금을 매년 얼마나 인상할지가 제시되어 있지 않다. 또 최저임금 불이행을 강제한다고 하지만 지금도 최저임금 시정명령 불이행 시 사법처리를 받게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노동자의 최소 10%가량이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을 어떻게 강제한다는 것인지가 애매하다. 중소기업에 국한되어 있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따른 지원금(최대 월 60만원)제도 역시 모든 중소사업장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며 지원도 1년에 불과하다. 특히, 지원금의 총예산을 제시하지 않고 다만 공모를 통해 대상사업장을 선정한다고 되어 있어 효과의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다. 비슷하게 사내하청, 용역 등과 관련한 대책도 수 십 가지이지만 모두 추상적인 수준(: 감정노동자에 대한 예방조치에 대한 명시 등)이거나 원칙적인 내용들(: 일용노동자 취업지원확대 등)이어서 이를 통한 처우개선이 얼마나 이루어질 수 있을지 비관적이다.

 

더 강화된 사용자 편향

 

고용노동부는 앞서 다양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내세우면서 슬그머니 2가지를 끼워 넣었는데 하나는 기간제 사용기간 최대 2년 연장과 파견업종 확대이다. 이는 청와대, 기획재정부, 그리고 얼마 전 노사정위원회에서도 언급되었던 부분으로 사회적 비판이 적지 않았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고용노동부는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의 경우 노동자의 신청이 있을 때 시행하기로 했으며 파견업종확대의 경우 55세 이상의 고령노동자와 전문직으로 제한하였다. 그러나 단서조항에도 불구하고 이 두 가지는 비정규직의 증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먼저 기간제 사용기간연장은 비록 노동자의 신청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하지만 기간제의 특성 상 비교적 젊은 노동자들은 상당기간 기간제로 머무르게 될 것이다. 다행히 젊은 기간제노동자들이 기간연장을 통해 숙련을 인정받고 동일한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행운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정규직 직장으로 이직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쳐 결국은 남은 인생을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에 대한 정부규제는 없다. , 기간을 연장하더라도 정규직 전환여부는 기업의 권한이다. 기업이 나쁜 의도를 갖고 있다면 젊고 유능한 노동자를 기간제로 채용한 후 정규직 희망고문을 통해 4년까지는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55세 이상의 고령노동자에 대한 파견확대 역시 퇴직 후 혹은 경력단절 이후 노동자층을 대거 비정규직으로 끌어들이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의료기술의 진전과 고학력 고령노동인구가 늘어나고 있어 55세 이상이라고 할지라도 충분히 일할 수 있는 건강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인구가 늘고 있다. 이는 60세 정년연장 등이 현실화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55세 노동자에 한해 파견업종을 전면적으로 허용할 경우 이들 노동자들은 최소 5년에서 15년가량을 파견노동자로 살아가야 한다. 고령층의 파견업종 전면허용은 다음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다수의 고령노동자층이 제조업, 서비스업종에 무차별적으로 진입함에 따라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제조업종 파견은 금지되어 있으나 55세 이상의 노동자들이 제조업에 대거 투입될 경우 지금도 부족한 제조업 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둘째, 노령층빈곤이 개선될 가능성이 낮다. 정부는 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일자리제공을 통해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고 하지만 파견노동자의 대부분이 최저임금을 받고 있으며, 그 중 일부(10~20%)를 파견업체에 소개비로 내주어야 하므로 고령층이 파견노동자로 살아가는 동안 삶의 질 개선을 기대하긴 어렵다.

 

소득격차 축소 없는 비정규직의 증가, 정부의 책임은?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과 파견업종 확대는 단서조항에서도 불구하고 향후 우리나라 노동시장에 상당한 후폭풍을 몰고 올 것이다. 비정규직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늘어날 가능성이 더 많다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하면 비정규직의 대폭적인 축소는 기간제의 사용사유를 엄격하게 제한하거나 동일업종 유사업무에 대해 동일임금을 지급하는 등과 같은 혁신적인 규제밖에 답이 없다. 그러나 예상대로 정부는 혁신적인 대책보다 비정규직이 늘어나더라도 소득격차가 줄어드는 방안을 택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부의 작은 희망조차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갈수록 커지는 기업 간 경쟁격화의 상황에서 기업은 가능한 한 노동비용을 줄이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의 보편적인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선 정부의 개입이 절실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정부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 놓지 않은 채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기업과 개인에게 맡겨 버렸다. 그 결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소득격차는 줄어들지 않고 비정규직만 늘어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우리의 정부에 대한 실망과 암담함은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