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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꿈을 잃어버린 노동운동

금속노조연구원   |  

꿈을 잃어버린 노동운동

 

노광표(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광풍에 모든 이슈들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 저임금노동자들의 1년 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도 사회적 관심사가 되지 못한 채 예년처럼 최저임금위원회의 마지막 결정만 남아 있고, 갑을오토텍의 용역폭력과 노조파괴 공작도 수면 아래로 묻히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철탑 위에 올라간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외침은 허공에만 머무를 뿐이다.

 

빈곤 심화, 양극화, 일자리 위기, 고용의 비정규직화 등으로 한국사회는 이미 위험사회로 전이된 지 오래고, 지속가능성 조차 의심받고 있다. 그런데 이들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노동운동은 무기력한 상태이고, 노동조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약화되고 냉소마저 제기된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정부의 물리적 탄압, 노동 배제의 정치, 정규직·대기업노조에 대한 이데올로기 공세는 노동운동의 약화를 가져온 외부 요인이다. 내부적으로는 산별노조운동과 정치세력화의 실패, 그 결과물인 실리주의의 확대 및 계급연대 전략의 붕괴를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관성적인 노조활동과 패배주의, 상상력의 빈곤과 잃어버린 꿈이 더 큰 원인이 아닐까? 세계화와 심화된 국가 경쟁 그리고 반()노조주의의 거센 흐름은 우리가 통제하기 어려운 외부 환경이다. 환경을 탓하지 않고 상황 변화를 주도할 몫은 운동 주체의 역할이다. 관성적이고 실리적인 활동의 뿌리에는 좌표를 잃어버린 노동운동의 이념 부재가 옹아리 틀고 있다. 교조주의의 극복, 개방된 논의에 기초한 이념의 혁신 이야말로 운동 발전의 원동력이다.

 

노동조합운동은 정부와 자본이 만들어 놓은 울타리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자본의 공세를 감안하더라도, 대항담론(counter discourses)을 만들지 못하는 노동의 대응은 백전백패이다. 귀족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피크제와 청년고용의 프레임은 노동운동을 집단이기주의 세력으로 만들었다. 조지 레이코프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Don’t think of an elephant)”에서 정치 담론에서 상대편의 언어를 써서 그의 의견을 반박하게 되면,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상대편의 프레임이 더 활성화되고 강해진다. 반면에 우리의 관점은 약화된다.”고 했다. 이의 해결방안으로 진보는 보수의 언어가 아닌 진보의 언어를 써서 진보의 신념을 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운동을 약화시킨 주범은 물리적 탄압 못지않은 반()노동의 프레임이었다. 정부는 노동운동을 정의의 무기가 아닌 경제적 이해대변 집단으로 축소시켰고, 노동조합을 비정규직 확산의 주범으로 만들었다. 자본과 노동의 격차 심화보다 노동 양극화를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핵심 모순으로 바꿔치기했다.

 

노동운동 활성화는 노동의 세계관으로 노동의 언어를 되찾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노동 소외를 극복하고,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천민자본을 뿌리 뽑아야 한다. 일할 권리를 요구해야 하며, 자본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 주체는 다름아닌 노동조합이다. 노동조합운동의 약화는 사회적인 위험이 한계치에 가깝거나 이미 넘어섰음을 가리키는 빨간 신호등이다. 노동의 추락은 교섭력 약화로 이어지고, 그 피해는 조합원뿐만 아니라 전체 국민들에게 미친다. 노동조합은 기업경영과 국가정책의 잘못을 지적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요구하는 사회적 제어 장치이고, 일터의 권리 회복을 위한 버팀목이다.

 

노동운동이 보편적인 해방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공장울타리를 깨고 노동의 바다로 나아가야 한다. 실리주의의 극복은 한국사회의 개혁 전망을 전체 조합원이 공유할 때 가능하다. 각자도생에서 함께 살자로 우리의 운동 방향을 바꿔야 한다. 한국사회 개혁의 청사진을 만들고 우리가 만들고 국민대중 앞에 내 놓아야 한다. 금속노조는 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우리 금속노동자는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한 삶을 지키기 위해 예속과 차별, 빈곤의 확산을 가져오는 신자유주의 자본의 세계화에 맞서 전세계 노동자와 연대해 투쟁할 것이며, 이 땅의 민중, 진보세력과 굳건히 연대하여 노동자·민중이 주인되는 사회, 억압과 차별이 철폐된 평등사회, 남북이 하나된 통일조국 건설에 앞장설 것이다.” 이 선언을 한국사회와 일터에서 실현할 수 있는 공세적 노동 의제가 필요하다. 노사공동결정제도, 35노동시간제, 재벌개혁과 경영참여, 노동의 인간화 전략은 흘러간 옛 노래가 아닌 이 땅에서 실현해야 할 현재의 과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