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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노동시장 개악 저지 투쟁을 넘어서서

금속노조연구원   |  

노동시장 개악 저지 투쟁을 넘어서서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위한 파상공세가 심상치 않다. 집권 초만 하더라도 비정규직 차별 및 저임금노동의 해소를 말하던 정부의 태도가 돌변하였다. 지난 86일 박대통령은 경제재도약을 위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에서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개혁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였다. “노동개혁은 일자리입니다. 노동개혁 없이는 청년들의 절망도,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통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중략예전처럼 일단 좋은 일자리에 취업하면 일을 잘하든 못하든 고용이 보장되고, 근속년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시스템으로는 기업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능력과 성과에 따라 채용과 임금이 결정되는 공정하고 유연한 노동시장으로 바뀌어야 고용을 유지하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른바 정규직 과보호가 경제 회생 및 고용창출의 걸림돌이며 그 해법은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에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정부의 노동시장 정책은 경제 활성화를 위한 부속물로 전락하였다. 비정규직 대책에서 시작된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노동개혁으로 바뀌었고 마침내 노동조합 죽이기로 마무리되고 있다. 임금피크제와 성과형 임금체계의 도입, 파견·용역 확대가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의 입구라면 그 출구는 저성과자 퇴출을 위한 일반해고 도입과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이다. 노동 개혁이라는 언어로 포장 된 속살은 개악이다.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 조치의 결말은 뻔하다. 정부도 임금피크제가 청년실업 대책이 아니며, 유연화 조치 확대가 노동시장 양극화의 대안이 아님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2년 반 동안 한 일은 없고, 일은 만들어야 하니 돌아간 곳은 과거 실패한 정책의 재탕이다. 기업친화 정책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 수 있고, 일자리의 질()이 아닌 양()을 중시한 이명박정부와 판박이다. MB정부보다 세련된 점은 청년일자리 창출이라는 의제를 선점했다는 점 그리고 사회적 대화라는 외양이라도 갖추었다는 점이다. 노동시장 개혁은 경제적 효과가 아닌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 효과에 방점을 두고 있다. 경제 파탄과 일자리 책임을 재벌과 정부당국이 아닌 조직노동자들에게 덮어씌우겠다는 속셈이다. 더 나아가 노동계급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놓고, 세대 간으로 분열시킨다. 정부입장에서야 뜻대로 관철되면 좋고, 안되어도 밑지지 않는 장사다. 경제 파탄도 고용률 70%을 달성하지 못한 책임도 조직노동에게 화살을 겨눈다. 임금피크제 도입과 쉬운 해고 공방 속에 정권과 재벌들은 무대에서 사라지고 노동조합에 대한 사회적 공격은 집중된다.

 

정치평론가인 이철희소장이 지적하였듯이 노조·정규직 이기주의를 타깃으로 삼고, 다수의 비노조·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여기에 대항하도록 하는 노·노 갈등의 프레임은 저소득층을 동원하는데 효과적이다. 사회적 긴장이 높아질수록 보수 성향의 지지층을 결집하기도 쉬워진다.” 현재의 노동개혁 프레임은 20164, 20대 총선까지의 치밀한 정치 프로그램인 것이다. 이렇듯 노동시장 개혁 논의의 지형이 녹녹치 않다. 정부는 의제를 선점했고, 임금피크제를 청년고용 대책으로, 정규직노동조합을 노동시장 이중구조화의 주범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정부 뜻대로 판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개혁으로 포장된 노동정책의 민낯이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정세는 노동의 대응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이제 공은 노동조합에 넘어 왔다. 노동조합 대응의 출발점은 정부와 자본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다. 임금피크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일반해고 등 노동시장 유연화 공방을 뛰어넘어 진짜 노동시장 개혁 방안을 제시하고 싸워나가야 한다.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비정규직 고용이 일반화된 고용불안정, OECD국가 중 최고 수준의 저임금노동자의 비중과 산재사망률 1위의 불명예는 현재의 고용체제가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됨을 보여준다. 이제 노동시장의 공정성을 파괴한 재벌과 이를 방조한 정부의 책임을 묻고 따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싸움은 여기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노동시장 내 격차 해소를 위한 노동연대전략을 구체화하고 실현가능한 정책으로 만들어야 한다. 계급연대의 파괴는 노동운동의 사회적 정당성을 약화시키고 노동의 고립을 강화한다. 금속노조는 강령에서 우리는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원칙을 바탕으로 금속노동자의 권리보호와 권익향상을 위한 산별협약을 쟁취하고 노동의 소유·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한다”, “우리는 임시·비정규·여성·이주노동자 등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를 위해 노력하며 차별철폐 투쟁을 통해 금속노조의 강화·확대를 위해 투쟁한다고 선언하였다. 우리의 투쟁이 강령에 얼마나 복무하고 있는가 되새겨 볼 때이다. 산별노조 시대, 역설적으로 약화된 계급연대는 노동운동 위기의 원인이며, 우리가 뛰어 넘어야 할 산이다. 이제 말이 아닌 행동을 조직하고 준비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