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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년간 설레었던 모험을 마치며

금속노조연구원   |  

2년간 설레었던 모험을 마치며


 

윤욱동 (금속노조 8기 사무처장)


 

지나온 정동길 2! 긴 여운과 아쉬움... 한마디로 시원섭섭해야 하는데 돌리는 발걸음이 너무나 무겁다. 노동시장 구조를 완전히 노예시장으로 전락시켜 자본의 헤게모니를 완성시키려는 극우 보수정권과 재벌들의 사생결단식 집요함이 온 천지를 뒤덮을 태세로 몰려오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금속노조는 새로운 사람들의 새로운 패기를 동력으로 9기 지도집행력을 세우고 절치부심하여 험로를 개척할 것이라 믿으며 2년간의 집행과정에서의 안타까움을 조심스럽게 몇 자 적어본다.

 

내부적 차이에 대한 갈등과 적개심이 사업과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은 98IMF를 지나면서 서로의 처지와 조건이 너무나 달라졌다. 대공장과 중소공장, 정규직과 비정규직, 외투기업과 국내기업, 중소기업 중에서도 잘나가는 사업장과 경영의 어려움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 사업장, 민주노조로서의 전통이 계승되고 있는 중견사업장, 전혀 다른 조건에서 어렵게 노동조합을 지켜가고 있는 새내기사업장 등등. 이런 조건 속에서 전체의 통일성을 높여낸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대공약수를 뽑아내고 합심하려는 노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적인 이해관계를 뛰어넘으려는 노력과 상호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지만 단위사업장의 문제부터 지역조직 내의 문제 등 다양한 이견들은 상호 대결적 구도로 고착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내부에서 상호 불신과 적대감으로 귀결되어 패거리 아닌 패거리로 분열의 구실로 작동하고 결국엔 전체 단결의 기운을 갉아먹고 관계를 불신하게 하는 구조적 문제를 낳게 된다. ‘단결만이 살 길이요는 노랫말 가사나 구호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절실한 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투쟁에서 외쳤던 조합원들의 구호, “적들에 대한 분노보다 동료(동지)에 대한 사랑을 한 뼘만 더 소중하게!”가 유난히 듣고 싶다.

 

노조는 자판기가 아니다. 자판기노조가 되는 순간 조합원은 수동화되고 집행부가 알아서 실리를 챙겨오면 된다.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100원짜리 보다 맛있는 커피가 나오면 칭찬’, 100원짜리가 나오면 당연’, 그보다 못한 놈이 나오면 자판기는 박살이 난다. 이 과정에선 어느 누구의 책임도 부정된다. 그리고 집행부와 조합원 사이는 서로 대상화되는 관계로 전락한다. 노동조합이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자판기노조를 경계하며 조합원 교육을 열정적으로 하던 때가 있었다. 신규노조가 설립되면 그런 내용의 교육들을 필수적으로 했던 기억이 난다. 끊임없이 조합원을 주체로 세워내는 과정은 노예가 아닌 노동자로서의 자각의 과정이며 자존감과 자부심을 획득하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의 축적만큼 우리는 총자본이 끊임없이 강요하는 노예의 삶과 인간적 삶의 갈림길에서 인간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전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작은 사업장에서건,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업장이건, 지역지부라는 상급단위든 전체로서의 집합체인 금속노조든 예외일 수 없다. 집행부는 민원처리를 하는 곳이 아니라 조합원이 함께 가는 길에 대한 고민을 한 발짝 먼저 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곳이다. 다 아는 공자님 말씀처럼 고루한 얘기인지 몰라도 2년간 이 명제에 대해 허한 마음이 꽤 많이 들었다. 나태해서일까? 아님 처리할 일에 쫓겨 잊고 산 것일까? 반성에 반성을 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금속노조는 강력한 시스템이 있다. 매력적이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지난 2년 간 총 88회의 상무집행위원회 회의가 소집되었다. 여름휴가, 구정, 추석을 빼고 나면 매 주 회의를 한 셈이다. 중앙집행위원회는 총 73차에 걸쳐 열렸다. 열흘에 한 번씩 열린 셈이다. 전국에 산재한 14개 지역지부의 대표와 5개 기업지부의 대표들이 매 주 모여 전 계급적 상황과 지역투쟁, 사업장투쟁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일상화되고 그에 기초해 사업장까지 움직여나가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할 수 있는 조직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거기에다 재정도 집중과 분산이 완벽하게 구성되어 집행되고 있다. (어느 산별조직이 이렇게 움직이는가?) 물론 시스템이 잘 갖춰졌다고 운동이 꼭 잘 되는 건 아니겠지만 이 분명한 장점은 투쟁의 역사 속에서 갖춰진 것이기에 장점을 극대화시키려는 새로운 모색이 필요하다. 9기 집행부와 사무처 동지들의 혁신적인 지혜를 부탁드린다.

 

노조 사무처장으로 오기 전, 금속노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경솔하게 뱉어낸 말들이 많았음을 고백하며 마지막으로 사무처 동지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말도 탈도 많은 금속노조,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까지 중심을 잡고 조직이 버텨낼 수 있었던 힘은 15만 조합원 다음으로 사무처에서 모든 스트레스를 묵묵히 견뎌낸 동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고 임기를 마칠 수 있게 해주셔서! 부디 민주노조운동의 무거운 짐. 무겁다 여기지 말고 노동계급의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버티고 앞으로 나아감을 주저하지 말기를 부탁드린다. 미국의 대통령 링컨의 말은 그였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사무처 동지들에게 더 소중한 말이 아닐까 싶다. “만일 나에게 나무를 베기 위해 1시간만 주어진다면, 우선 나는 도끼를 가는 데 45분을 쓸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