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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업을 사고파는 사모펀드

금속노조연구원   |  

기업을 사고파는 사모펀드


이종태 (시사인 기자)


 

통상적인 의미에서, 기업은 상품을 생산해서 판매하는 조직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기업 그 자체를 하나의 상품으로 사고팔며 이득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거래 장소가 바로 주식시장이다. 어떤 회사의 주식을 산다(판다)는 것은 그 기업의 소유권 중 일부를 매입(판매)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대다수의 주식 매입자들이 돈을 버는 방법은 매우 단순하다. 그냥 사놓고 해당 주식의 가치가 오르기를 넋 놓고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부자라면 좀 더 적극적으로 돈을 벌 수 있다. 실력 보다 주가가 낮다고 평가되는 기업의 주식을 대량 매입해서 경영권을 획득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차지한 경영권을 행사해서 기업가치(주가)를 올린 다음 다시 팔아버리면 된다. 이게 바로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가 하는 일이다.

 

사모펀드는 일반적인 금융 투자자(오를 때까지 기다리는)가 아니다. 직접 경영자 지위에 올라 구조조정으로 주식가치를 올리는 적극적투자 행태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기업 자체(그리고 소속 노동자 등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이익과 사모펀드의 이익이 크게 다르거나 심지어 상반되는 경우가 가끔(혹은 자주) 나타난다는 것이 문제다.

 

사모펀드 사례

 

2015년 중반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사건 당시 두각을 드러냈던 미국계 사모펀드인 엘리엇을 통해 그 폐단을 살펴보도록 하자.

 

2000년대 초반 미국의 석면 기업인 오웬스코닝, USG 등에서는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석면증에 걸린다. 결국 석면 기업들은 사망자나 환자들에게 배상하기로 결정하면서 사실상 파산 상태에 이른다. 당시 엘리엇은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으로 오웬스코닝을 사들인다. 기업가치를 올릴 수 있는, 무자비하지만 효율적인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상금을 줄이는 것이었다. 이후 석면증 환자들이 꾀병을 부리고 있다는 캠페인이 대대적으로 전개된다.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가세해 관련 법률 개정을 요구하거나 TV 출연을 통해 꾀병설을 퍼뜨렸다. 엘리엇의 폴 싱어 회장은 공화당에 주기적으로 거액의 기부금을 내왔다. 덕분에 석면 기업들의 배상금 액수는 계속 줄고 이에 반비례해서 기업가치(주가)는 올랐다. 나중에 엘리엇은 오웬스코닝을 팔아 10억 달러 정도의 수익을 올렸다.

 

글로벌 자동차 부품업체인 델파이 사례도 유명하다. GM과 크라이슬러 등에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델파이는 2005파산 보호를 신청한다. 이 무렵부터 엘리엇 등 헤지펀드들은 델파이의 회사채를 싼값으로 매집했다. 회사채는 회사가 발행하는 채권이다(회사채를 산다는 것은 해당 기업에 돈을 빌려준다는 의미). 발행 기업의 재정이 악화되면(=해당 기업이 채무를 상환할 가능성이 낮아지면), 회사채의 가격 역시 낮아진다. 덕분에 엘리엇을 비롯한 여러 사모펀드들은 델파이 회사채 중 대다수를 액면가의 불과 20% 정도로 사들일 수 있었다. 파산 직전의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사모펀드들은 델파이의 명줄을 거머쥔 채권자가 되었다.

 

2009년 취임한 오바마 미 대통령은 자동차산업 구제 프로젝트를 개시한다. GM, 크라이슬러 등 완성차 업체는 물론 델파이 같은 부품업체도 그 대상이었다. 델파이의 부품이 없으면 GM과 크라이슬러까지 망한다. 오바마의 구제 프로젝트는 엘리엇 등에게 호재였다. 정부가 델파이를 정상화하려면, 엘리엇 등 채권자들에게 채무부터 갚아야 한다. 또한 정부 입장에서는, 채권자들이 예컨대 액면가 100원짜리 델파이 채권을 20원 정도에 샀다면, 30~40원 정도로 되팔라고(채무를 청산하자고) ‘흥정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엘리엇 등 사모펀드들이 그 정도의 수익에 만족할리 만무하다. 액면가 수준에 가까운 금액으로 채권을 다시 사가지 않으면 델파이의 부도를 선언하겠다고 맞섰다. 델파이가 부도를 당하면, GM과 크라이슬러도 망한다. , 사모펀드들은 미국 자동차산업을 인질로 정부에게 거액을 요구한 것이다.

 

사모펀드의 요구는 하나 더 있었다. 델파이의 주식을 자신들에게 싼값으로 뭉치 째 팔라는 것이었다. 결국 미국 정부에 델파이 회사채를 비싸게 판매한 돈으로 해당 기업 주식을 1주당 불과 67센트로 사들였다. 기업 외부의 채권자에서 내부의 주인으로 변신해 경영권을 장악한 것이다. 이렇게 경영권을 차지한 사모펀드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는 것이었다. 또한 델파이의 본사를 영국의 저세율 지역에 등록했다. 미국 정부는 무려 130억 달러 정도를 델파이의 구제 자금으로 투입했는데, 세금도 못 받게 되었다. 이처럼 노조 약하고, 세금 안 내고, 채무 없는(미국 정부가 갚아줬다) 기업이 되면 주가가 치솟는다. 엘리엇 등 사모펀드들은 201111월 델파이의 주식을 주당 22달러에 상장해서 각각 수억~수십억 달러 규모의 이익을 거둬들였다. 67센트로 산 주식을 22달러에 팔았으니 불과 2년 만에 무려 3000% 이상의 수익률을 달성한 셈이다.

 

사모펀드는 때로 기업의 자산을 팔아 치워 건실한 회사를 빈 껍데기로 만들기도 한다. 위니아만도는 1999, 해외자본이 주도하는 UBS캐피털 컨소시엄에 2350억 원으로 인수됐다. UBS 컨소시엄은 인수 직후부터 대규모 해직 등을 통해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면서 기업가치를 올려나갔다. 그리고 2001년엔 유상감자를 실시했다. 유상감자란, 예컨대 100억원인 자본금을 60억원으로 줄이면서(감자), 나머지 40억원을 주주들에게 나눠준다(유상)는 것이다. 위니아만도의 경우, 그 주주가 바로 경영자이기도 한 UBS 컨소시엄이었다. 한마디로 경영자가 자기 회사의 자산을 줄여 투자금을 회수한 것이다. 또한 엄청난 금액의 배당을 여러 차례 실시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정상적 경영자들은 지나치게 많이 배당하기를 꺼린다. 회사 자체를 유지하고 이후 투자를 준비하려면 자금을 회사 내에 보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기업 자산 자체를 줄이는 유상감자는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UBS컨소시엄이라는 사모펀드에게 위니아만도는 오랫동안 유지하며 번영시켜야할 기업이 아니라 단기간에 많은 수익을 뽑아내면 되는 투자 상품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유상감자에 대규모 배당을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UBS 컨소시엄은 2005년 위니아만도를 매각하고 나간다. 매각대금은 투자 원금의 세배에 달했다.

 

한국의 경험

 

사모펀드가 한국에 상륙한 것은 지난 1997IMF 사태 직후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