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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은 노동자의 적인가?

금속노조연구원   |  

인공지능은 노동자의 적인가?

박명준(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 날, 사람들은 일단 즉각 그리고 원초적으로 일종의 공포감에 빠져들었다. 고도의 머리싸움 영역인 바둑에서마저 기계가 인간을 이기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무한대라고 이야기되는 바둑의 수가 기계에게 정복당했으니, 앞으로 바둑 기사들은 설 자리가 없겠네... 뭐 이런 류의 푸념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출근길에 운전을 하다 문득 한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 마침 한국기원의 관계자가 나와 전날의 충격에 대한 소회를 전했다. 이 사태(?)가 어떠한 영향을 끼치느냐는 진행자의 물음에 그의 대답은 동전의 두 면을 다 건드렸다. 한편에서는 좌절되고 실망스럽지만, 다른 한편으론 새로운 기회 같다고도 했다. 이 기회에 바둑에 관심이 없던 다수의 대중들이 바둑에 대해 급격한 관심을 나타내 오히려 좋은 면도 있다는 거였다.

그렇다. 인공지능이 무조건 인간을 이기고 인간의 설 자리를 빼앗을 것이라고 하는 생각. 우리는 기계에 지배당할 것이라는 생각. 너무 단순한 생각 아닐까. 그건 마치 기계라는 것이 처음 만들어져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여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자 ‘기계파괴(러 다이트)’운동을 벌였던 200여 년 전 영국인들의 반응과 같은 건 아닌지...

그렇다면 도대체 인공지능이란 무엇일까? 어디서 생겨서 자라다 지금 우리 눈 앞에 나타난 괴물일까? 지금 인공지능은 어디까지 이용되고 있으며 앞으로 그것은 우리의 일자리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 과연 인공지능은 노동자의 적일까?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약자로 AI)’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1950년대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 겸 인지 과학자 존 매카시(John McCarthy)였다. 당시 과학자들은 2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급속한 발전을 이룩한 컴퓨터의 가공할 위력에 고무되어 있었다. 어려운 수학계산 문제를 풀거나 공식들(Theorems)을 증명하기도 하며, 영어로 말을 하는 컴퓨터가 생겨났고, 어떤 이들은 인공지능의 조기 출현을 낙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공지능을 향한 환상은 곧 깨졌다. 연구들은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했고, 정부들은 연구자금을 대폭 삭감시켰다. 그 시절 컴퓨터는 이미 수학문제를 풀고 서양장기에서 사람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지능이 아니라, 단지 입력된 명령 프로그램만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한 낱 기계에 여전히 불과했다.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 이른바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s)’이라는 것이 고안되었다. 이는 특정 분야에 국한해 인간보다 더 뛰어난 전문성, 즉 최첨단 지식 기반과 분석 능력, 그리고 이런 지식과 추론 능력에 기반한 의사결정 능력을 발휘하는 컴퓨터 시스템을 만들려는 시도였다. 1980년대 초반 다수의 미국 대학들은 전문가 시스템에 대한 강의를 개설했고, 대기업들은 생산일정 계획과 재고관리 등 일상 경영에 이를 적용했다.

일시적으로 번성기를 맞았던 이 시스템은 그러나 곧 한계를 보였다. 프로그램에 맞추어서 특정한 지식에 기반하고 특정한 문제들에 한해서만 능력을 발휘하는 기계라고 하는 원래의 속성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해결해야 하는 과제의 내용이 달라지거나 기계가 갖고 있는 것과 다른 지식이나 정보와 만나면, 곧장 무용지물이 되곤 했다. 결국 인공지능의 구현을 꿈꾸며 시장에 뛰어들었던 컴퓨터 기업들도 정부도 여기에서 재차 손을 떼었다.

인공지능 연구는 이후 긴 침체기를 보내고 난 후, 1990년대 후반 다시 꿈틀댔다. 컴퓨터 연산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특정 문제의 해결에 더욱 집중하는 쪽으로 AI 연구방법론이 방향을 선회하여 심화되어 가면서였다. 연관분야인 수학, 인지과학, 뇌신경과학 등에서 나온 최신 연구성과들도 공유하게 되었다. 마침내 1997년에는 IBM의 슈퍼컴퓨터 ‘딥 블루(Deep Blue)’가 수차례의 도전 끝에 체스(Chess)게임의 인간 세계 챔피언을 물리치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그로부터 약 14년 후인 2011년. 보다 놀라운 성과가 나타났다. IBM의 질문응답 시스템인 ‘왓슨(Watson)’이 미국의 인기 텔레비전 방송프로그램인 제퍼디(Jeopardy!) 퀴즈쇼에서 두 명의 인간 최강자들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사람들은 고난도 퀴즈에서 기계가 사람을 이겼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이로써 IBM 등이 주도하는 인공지능 개발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크게 고조되었다. 왓슨은 프로그래머가 입력한 알고리즘에 따라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일은 그 어떤 인간보다 더 잘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가진 지능의 가장 기초 단위인 사물의 형태를 인식하고 언어를 인지하는 일은 여전히 잘 수행하지 못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마침내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이 도입되었다. 수학적 최적화 및 통계분석 기법에 기반해, 사람의 도움 없이도 데이터로부터 일정한 신호와 패턴을 배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음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며 적합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알고리즘을 갖춘 기계를 만든 것이다. 기계학습이라고 하는 방법론에 기댄 인공지능 연구 흐름은 특히 2012년에 도약의 전기가 마련되었다. 당시 구글(google)과 앤드류 응(Andrew Ng)이라고 하는 스탠포드대학의 교수는 기계 학습의 한 분야인 ‘심화학습(딥 러닝, Deep Learning)’ 알고리즘을 이용해 컴퓨터가 1천만개의 유튜브 동영상 속에서 고양이 이미지를 74.8%의 정확도로 식별하도록 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

딥 러닝은 기존의 기계학습의 한계를 지난 1950년대에 만들어진 ‘신경네트워크(neural networks)’ 개념을 이용해 돌파한 것이다. 구글의 경우 컴퓨터에게 ‘이것이 고양이다’라고 기계에게 미리 프로그램으로 가르치려고 부질없는 노력을 하는 대신, 인간의 두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모방한 신경네트워크 컴퓨터를 고안하여 스스로 고양이를 인식하도록 한 것이다. 구글의 고양이 프로젝트(원래 명칭은 구글 브레인 프로젝트)가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이후, 심화학습은 오랜 답보상태를 지속해 온 인공지능 연구분야의 유력한 돌파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제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구글은 물론 기존의 인공 지능 강자 IBM 외에도 수많은 기술 기업들이 인공지능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심화학습이 컴퓨터 비전, 음성인식, 번역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면서 실질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많은 스타트-업(start-up)들이 심화학습과 관련된 세부 기술항목들을 발전시키는 작업에 매달리면서 그 적용 분야는 IT 이외에도 유전자 분석을 통한 의료기술 향상, 신약 개발, 금융거래 등으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예컨대, IBM은 왓슨의 인공지능을 활용해 의료산업 분야에서 본격적인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왓슨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의료 지식에 기반해 항상 정확한 진단과 최선의 치료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2015년 정식 출범한 ‘Watson Health’는 현재 뉴욕의 암센터들과 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보험사인 WellPoint는 의료진의 치료 계획안이 적절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데에 왓슨을 활용하고 있다. 스타트-업인 Enlitic은 X-레이, CT, MRI 등의 메디컬 이미지 패턴 분석을 통해, 폐암이나 골절 진단을 지원하고, 유사한 상황에 놓였던 환자들의 과거 치료법과 결과를 제시해 줌으로써 의료진의 판단을 지원하고 있다.

투자 자문업의 경우 사람의 직감에 의존하는 측면이 많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IT 적용 수준이 낮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왓슨과 같이 검증 받은 AI 시스템을 이용하는 금융기관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싱가포르 개발은행(DBS)은 자산관리 업무에 왓슨을 이용하여 우수 고객에게 맞춤형 투자 자문과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호주뉴질랜드은행(ANZ)은 IBM과 4.5억 달러의 계약을 맺어 투자자문 서비스의 품질을 높일 계획이다. 남아공의 네드뱅크(Ned Bank)에서는 소셜미디어 모니터링 같은 분야에 왓슨을 활용하려는 시도를 진행 중이다.

인공지능은 또한 투자 자문을 넘어 직접적인 트레이딩(trading) 영역에도 적용되고 있다. 이미 2002년 이후 이른바 ‘알고리즘 트레이딩’의 활성화와 함께 컴퓨터가 정해진 알고리즘에 따라 자동으로 거래하는 방식이 투자계에 확산되어 왔다. 현재는 기계학습과 같이, 고도화된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 중이다. JP모건의 헤지펀드 자회사 하이브리지 캐피탈은 인공지능 스타트-업인 센션트 테크놀로지와 기계학습을 기반으로 하는 투자시스템의 개발을 위해 협력 중이다. 딥-러닝과 관련된 스타트-업이 직접 트레이딩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바이나틱스(Binatix)는 약 3-4년 전부터 딥러닝 알고리즘을 통한 투자 활동을 시작했으며, 현재 구체적인 수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설립자들에 따르면 양호한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인공 지능은 지금까지 ‘전문가의 영역’으로 여겨져 온 법률 서비스에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방대한 양의 과거 판례를 대신 분석해줌으로써 기업의 법무팀이나 재판을 준비하는 법조인들의 시간과 노력을 줄여주고, 보다 정확한 분석 및 결과를 예측하는 데에 활용되는 것이다. 2013년 설립되어 2015년 2월에 천만 달러까지 펀딩을 받은 스타트-업인 피스칼 노트(Fiscal Note)는 미국 연방정부 및 각 주별 법률과 규제를 분석, 예측해주는 서비스를 제공 하고 있다. 이 회사의 프라페시(Prophecy)와 같은 솔루션은 입법부 구성원들의 법률에 대한 입장 및 향후 태도 변화를 예측할 수 있게 함으로써, 입법의 흐름 및 향후 규제 변화에 민감한 기업 및 기관에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왓슨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법률 자문 솔루션인 ROSS는 누군가 법률적인 질문을 하면, 유관 법 조항, 과거 판례 및 2차 자료 등을 분석한 후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결과를 예측하여 근거 자료와 함께 동료에게 말하듯이 답해 준다. 이렇게 인공지능은 법조인의 역할을 대체한다기보다 법률업무를 수행하는 데에 놓칠 수 있는 부분을 보완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자료를 준비하게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일자리의 문제는 오늘날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비관론에 젖어 인공지능으로 인해 많은 유수한 직업들이 대체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이들은 반면 낙관론을 취하며 인공지능이 오히려 새로운 일자리들을 더 많이 만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실론자들은 인공지능의 활용가능성은 제한적일 뿐이며, 그것은 어떤 영역에서는 일자리를 줄이지만 다른 영역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식으로 변동을 일으킬 것이라고 본다. 예컨대, 인공지능 전문가로 유명한 카이스트의 정재승 교수는 한 칼럼에서 인공지능과 노동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한 바 있다.

“인공지능이 연구된 지 60년. 그 덕분에 많은 공장들은 자동화되었고, 인공지능은 장난감에서부터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온갖 제품에 사용되었지만, 일자리를 줄어들게 하지는 않았다. 제조업에서는 일자리가 줄어들었지만, 그 못지않게 서비스업의 일자리가 늘었기 때문이다. 서비스업이란 본질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인간과의 상호작용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인간의 행동은 모두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인공지능의 적용이 쉽지 않았다.”

다시 알파고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알파고를 관찰하면서 우리는 의미심장한 모습을 보게 된다. 인간의 눈으로 악수나 실수라고 간주되는 수들을 알파고도 두지만 결정적인 승부수도 두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그 수들이 종합되어 이기더라는 거다. 그런데 이런 식의 해석은 철저히 인간중심적 시각, 기존의 바둑 정석론자들의 주류적 시선이 깔려 있다. 알파고에게는 알파고 나름의, 거의 무한대에 이르는 경험을 귀납적으로 축적, 체득해 형성한 논리가 갖추어져 있다. 다만 그게 뭔지 인간이 모를 뿐이다. 그것은 당연히 기존의 바둑이론으로는 포착되지 않을 수밖에...

결과 앞에 무력한 모든 고정관념과 이론은 새로 쓰여져야 한다. 인간의 지식과 판단은 모두 미지의 불안한 미래를 향해 선택하며 살아야 하는 인간사의 실천을 돕는 “잠정적인” 무기일 뿐이다.

새로운 이론은 새로운 실천으로 만들어진다. 알파고의 길도 그러하기에 인간의 길의 일부이며, 이제 알파고의 선택을 놓고 새로운 해석이론을 개발하는 흥미롭고 참신한 도전 작업들이 남아 있다. 수학은 인간이 만들었지만 그건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다. 극단의 귀납을 종합하여 인간으로선 거의 불가지라 할 수 있는 사고를 할 수 있는 논리기계. 이것도 사실 발명이라기보다 발견에 가깝다. 알파고 때문에 바둑이 몰락 하는 게 아니라 고정관념에 갇혀 새로운 이론을 내오지 못해 고리타분해진 바둑계가 알파고 덕에 새로운 출구를 맞이하게 되는 거다. 이 역시 인간의 성취이다. 그걸 기계의 영역이라고 자존심 상해하고 슬퍼할 게 아니다.

어차피 인공지능은 인간과 공존해야 한다. 그걸 잘, 윤리적으로 이용하는 일, 인간을 위해 이롭게 적용하는 일이 중요하다. 인공지능과 관련한 영역의 일자리 정보가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제공되고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는 훈련과 이직 서비스들이 잘 갖추어진다면 인공지능 자체가 어찌 노동자들에게 절대적인 재앙이겠는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