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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기업 노자 관계는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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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정책연구원



IMF 외환위기 이후 외투기업의 숫자와 비중 등이 확대되면서 이제 국민경제 내에서의 영향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국민경제의 외투기업에 대한 의존성이 이미 높아져 있는 상황에서 외투기업의 노동문제는 단순히 자본의 국적에 대한 가치 판단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으며, 이에 대한 보다 적절한 제도적 대책을 요구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하겠다.


노동의 입장에서도 최근 외투기업의 노자 갈등은 더이상 간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외투기업에서의 쟁의행위는 종종 극단적 행태로 발전하는데 이 때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총노동의 개입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초국적기업의 자유로운 자본 이동에 의해 외투기업의 노동문제가 발생하는 만큼 적절한 자본통제를 위한 총노동의 행동이 더욱 절실해 지고 있다.


외투기업 노자관계의 근본 성격


외투기업은 국민경제 단위로 형성되는 노자관계 시스템에서 이질적인 존재임에 분명하다. 외투기업의 이질성은 무엇보다 국경 밖에 의사결정의 정점을 두고 있는 데에서 연유한다. 다국적 기업의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은 현지의 지사에 있지 않고 본국의 본사에 있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형식적으로 지사의 자율성이 부여되어 있다 하더라도 내용적으로 본사가 이를 통제한다는 점은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밖에 없다.


본사의 경영진은 일국 단위의 시스템 내에서 머무르지 않고 시스템의 국경을 넘어서서 이동하는 선택지를 가지고 전략적 결정을 하게 된다. 따라서 현지 지사의 경영진은 일국 경제 시스템 내에서 자율적 행위자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 이 때 본사의 전략적 결정은 일국 경제 내의 집단들의 통제 영역 밖에 위치하게 된다.
결국 각국의 정부와 노동조합들은 다국적 거대 기업의 촉수만을 대응하게 되고, 일국적 노자관계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운 다국적 거대 기업의 일방적 국제전략 구사가 가능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초국적기업이 노자관계에서 갖는 힘은 본질적으로는 기업이 생산을 국제적 차원에서 재조직할 수 있는 능력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다국적 기업은 한 나라에서의 구조조정을 통해 사업을 축소, 폐쇄하면서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지사의 설립을 추진할 수 있다. 혹은 이미 존재하는 다른 나라의 지사로 생산설비를 일부 이전시킬 수 있다. 어떤 지사의 노자관계가 갈등적 상황으로 치달아 파업이 일어나더라도 다른 나라 생산설비를 이용해 이를 보충하는 선택지를 가지기도 한다.
초국적기업이 자본철수나 축소를 무기로 노동조합의 교섭력을 심각하게 훼손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국제적 생산조직을 통해 노동조합이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강요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초국적기업은 자본의 이동성을 높여 수익성을 높이는 한편,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핵심 역량을 본국에 두고 주변부 역량만을 타국으로 이전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20세기 후반 이후 포드주의적 대량생산 체제가 종말을 고하고 유연생산 체제가 자리 잡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는 그만큼 초국적기업으로서는 생산설비의 이전, 축소, 폐쇄가 용이한 체제를 구축했음을 의미한다.


이상의 맥락이 의미하는 바는 노동조합이 다국적 외투기업에 대한 규제력을 상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동조합은 집단교섭과 단체행동이라는 비(非) 시장기제를 통해 고용과 노동소득을 확보하는데, 그러한 활동방식의 효과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개별 기업 또는 사업장 수준의 노자관계 문제로 한정되지 않으며 일국의 노자관계 시스템 전체를 교란시키게 된다. 자유로운 자본이동, 글로벌 공급체계, 신자유주의화하는 정부를 배경으로 다국적 외투기업들은 일국의 노자관계 시스템이 함축하고 있는 임금체계, 문화적 관행을 종종 무시할 수 있게 되었다.


외투기업의 진출 목적과 노자관계


외투기업 노자관계 연구에 있어 오랫동안 관심 사항이 되어 왔던 주제는 초국적기업의 진출 행태와 노자관계 사이의 함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일단 장기투자 목적의 그린필드(green field) 투자인가 아니면 단기수익 목적의 증권(portfolio) 투자인가가 노자관계에 대한 외투기업의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본이 단기수익을 올리는 데 몰두하고 극단적으로는 기업 자체에 대한 매수와 매도를 목적으로 할 경우 당연히 노자관계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가기는 힘들 것이다. 이러한 극단적 경우가 아니라 하더라도 증권투자 목적의 지분비율이 높은 외투기업은 그린필드 목적의 지분 비율이 높은 외투기업에 비해 노자관계 안정화에 대한 유인이 적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린필드 투자와 증권투자로 외국 자본을 구분한다는 경계가 현실에서는 매우 모호하다는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보통 10% 이상의 지분 매입을 통한 외국 자본 투자를 그린필드 투자로 보지만, 이는 편의적인 기준일 뿐이다.
이보다는 외국자본이 본국에서는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가 그린필드 투자여부를 판단하는데 더 적실성이 있다. 예컨대 유입된 자본이 본국에서 관련 산업의 산업자본인지 아니면 헤지펀드, 사모펀드 등 금융자본인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구분한다 하더라도 투자 목적이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한편 그린필드 투자라 하더라도 신규투자의 형식을 빌어 진출했느냐 아니면 인수⋅합병(M&A)의 형식으로 진출했느냐도 주요한 관심사항이다. 인수⋅합병(M&A)의 경우에는 현지화에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수⋅합병(M&A) 시에는 본국 문화와 경영방식을 이식하려는 경향이 높아 노자관계의 갈등 요인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나가며


신자유주의의 구조 위기에도 불구하고 개방경제시스템의 확대와 경제의 세계화는 외투기업의 비중을 날로 늘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경제위기 이후 외국인 직접투자금액이 꾸준하게 늘어나면서 이미 외국인 투자기업의 생산액이 우리나라 GDP의 10%를 넘어선지 오래되었다.
이로 인해 외투기업의 행태가 노동자에 미치는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다. 외국자본의 유입을 무조건 ‘악(惡)’으로 보자는 것이 아니라 자본 유출입 통제와 함께 노자관계의 안정적 관리는 이제 필수적 요소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가운데 노동조합의 개입력은 갈수록 하락하고 있고, 사실상 유일한 개입통로로 여겨져 왔던 국제 노동연대는 쉽지 않은 실정이다. 당분간 총노동의 국내외 연대 노력과 개별 노동조합의 자체 대응이 병존해야 할 시기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은 외투기업의 노자관계가 갖는 특징을 잘 인식하고 적절하고도 유연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전적 대응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