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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거지는 유럽 재정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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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떨어지는 유로화 가치.
                    유럽 재정위기가 재부각되면서 유로화 가치는 1.32불 수준까지 하락했다 / 자료: 한국은행

 



아일랜드, 거품으로 흥하고 거품으로 망하다


 11월29일, 유럽연합 재무장관 회의에서는 아일랜드에 대한 850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안을 승인했다. 이로써 그리스가 1,10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받은 지 반 년 만에 아일랜드가 구제금융을 받게 되었고, 유럽 재정위기는 2라운드에 접어들게 되었다.


 



 


 아일랜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10여년 간 연평균 7.3%의 고성장을 하면서 1990년대 말부터는 1인당 국민소득이 4만불을 넘어 ‘철천지 원수’라 할 수 있는 영국을 앞서는 경제 기적을 이뤄냈다.
 그러나 이는 아일랜드 경제의 질적 성장에 따른 것이 아닌, ‘거품’에 의한 것이었다. 아일랜드는 유로존 가입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금리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되었고, 12.5%라는 파격적으로 낮은 법인세를 통해 외국 기업을 유치했다. 이는 결국
2000년대 미국의 저금리 정책과 맞물리면서 거대한                          자료:한국일보
부동산 거품을 양산했다. 은행들은 저리자금을 조달해 부동산 대출을 대폭 늘렸는데, 거품이 꺼지면서 주택 가격이 급락하고 모기지 연체율이 급등했으며, 주택 압류가 증가해 은행이 부실화되었다.
 은행 부실화로 인한 금융시스템 위기를 막기 위해, 아일랜드 정부는 앵글로아이리쉬은행, 얼라이드아이리쉬은행, 아이리쉬내이션와이드은행, EBS 주택금융조합 등 5대 은행 중 4개 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해 국유화했다. 2위 은행인 앵글로아이리쉬은행에만 360억 유로가 투입되었고, 총 공적자금 투입 규모는 무려 500억 유로로 추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올해 아일랜드의 재정적자 규모는 무려 GDP 대비 32%로 폭증했는데, 이는 유럽연합의 재정적자 권고치(GDP 대비 3%)의 열 배를 넘는 규모다. 결국 아일랜드의 성장을 유도했던 외국 자본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간고한 투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해냈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온 아일랜드 국민들은 구제금융이라는 수모를 당하고 말았다.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아일랜드 정부는 향후 4년간 재정적자를 150억 유로 축소하는 긴축 정책을 내놓았다. 이는 공공부문의 정리해고와 사회복지의 심각한 축소, 세금의 인상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최저임금이 현재 시간당 8.65유로에서 7.65유로로 삭감되고, 수도세와 재산세가 신설되며, 판매세는 21%에서 23%로 인상될 예정이다. 연금에 대한 감세가 축소되며, 공무원 일자리 2만5천개가 사라지고 공무원 임금도 신규 직원 기준으로 10%가 삭감된다. 이에 따라 복지 관련 지출은 28억 유로(14%) 줄어들고, 소득세는 19억 유로 늘어나게 된다.
 문제는 구제금융과 긴축이 아일랜드의 경제를 회복시켜 줄 것인지 매우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구제금융은 부채를 부채로 막는 ‘돌려막기’에 불과하며, 언젠가 모두 상환해야 한다. 또한 2008년 -3.5%, 2009년 -7.6%의 마이너스 성장을 한 상태에서 강력한 긴축을 한다는 것은 거의 자살 행위에 가깝다. 따라서, 이번의 구제금융과 긴축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는 결국 채무 재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아일랜드⇒포르투갈⇒스페인⇒유로화 붕괴?


 위기는 아일랜드만으로 끝나지 않으며, 이미 투기세력들은 다음 타자로 포르투갈을 지목하고 있다. 포르투갈은 허약한 경제로 인해 매년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해왔다. 연간 성장률이 1% 미만이며, 정부 채무가 GDP 대비 82%, 민간 채무를 더하면 250%나 된다. 전문가들은 포르투갈이 내년 1분기 경 500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더 나아가 위기가 스페인으로 확산된다면 유럽 재정위기는 중대한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자료: 서울경제

 


 스페인은 현재 부동산 거품 붕괴에 따른 저축은행 부실화와, 이를 메우기 위한 지방 정부의 자금 투입에 따른 부실화, 20%가 넘는 실업률에 의해 고통받고 있다. 스페인은 전통적으로 지방 자치가 강해, 중앙 정부의 통제가 잘 먹히지 않는데, 그렇다고 해서 지방 정부의 부실을 나몰라라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결국 스페인의 민간 부채는 정부 부채로 전환될 것이며, 이것이 가시화되면 스페인 역시 외국자본 이탈과 구제금융으로 가게 된다.
 스페인의 경제 규모는 유로존 4위이며, 비중이 11.7%에 달하는만큼 그 부채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구제금융 규모가 그리스 1,100억 유로, 아일랜드 850억 유로, 포르투갈 500억 유로임에 비해 스페인은 3,500억 유로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전문가들 속에서 나오고 있다. 만약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총 7,500억 유로로 만들어진 유로안정기금은 바닥을 드러내게 되며, 유럽 각국은 추가로 기금을 조성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기금 구성에 대해서도 각국 국민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던 유럽 각국이 과연 추가 자금을 조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며, 설령 추가 출연을 한다 하더라도 스페인 다음 타자로 지목되고 있는 이탈리아로 위기가 확산되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들게 된다.
 이렇게 되면, 결국 “서로 다른 경제상황 하에서 단일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유로화의 근본적 한계 문제가 본격적으로 부각되면서 유로화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확산되는 유럽 민중의 투쟁


 유럽 각국 정부가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대적인 긴축안을 발표하면서, 이에 저항하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긴축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대학 등록금 인상에 저항하는 학생들의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포르투갈에서는 50억 유로 규모의 긴축안에 반대하여 공공, 민간 노조가 22년만에 동시 총파업을 전개했다. 구제금융안이 발표된 27일에는 아일랜드 노동조합연맹이 주도하는 4만5천명 규모의 대규모 집회가 열렸으며, 이탈리아에서도 교육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진행되었다. 이러한 투쟁으로 인해, 아일랜드 연정은 붕괴 일보직전이고,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의 정권들 역시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투쟁들은 표면적으로 긴축에 따른 공공부문 정리해고와 복지예산, 교육예산 삭감 등으로 인해 직접적 타격을 받는 분야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으나, 그 기저에는 자본의 위기를 민중에게 전가하는 데 대한 저항이 내재되어 있다.
 실제 유럽 각국이 긴축으로 내몰린 것은 그간 거품에 편승해 흥청망청하던 유럽의 거대 금융자본들이 부실화되고, 이들의 파산이 초래할 금융시스템 위기를 막기 위해 막대한 공적 자금이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벌충하는 구제금융 역시 해당국의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본들이 돈을 떼이는 걸 막기 위해 신속하게 취해지고 있는 조치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유럽 전체 차원에서 위기에 빠진 금융자본을 구하기 위해 민중의 희생이 강요되고 있는 것이 현 국면의 본질이며, 당연히 민중의 저항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국의 등록금인상 반대시위 / 자료: AP-뉴시스

 


 결국, 지난 5월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 이후 진정된 듯 했던 유럽의 재정위기는 반 년 만에 아일랜드 위기로 다시 분출했다. 지금의 위기가 진정된다 하더라도 부채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한 제2, 제3의 위기는 반드시 오게 돼 있다. 그리고 위기가 포르투갈에 이어 스페인으로 전파된다면 유로화와 유로존은 붕괴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자신의 위기를 사회화하여 국민 전체의 부담으로 떠넘기고 살아남으려 하는 거대 금융자본들의 몸부림 역시 더욱 거세질 것이며, 또한 구제금융과 긴축에 대한 유럽 민중의 거센 저항 역시 계속될 것이다. 유럽은 새로운 질서를 향한 혼돈과 어둠 속 한가운데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