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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페이퍼] 노동시간을 둘러싼 새로운 국면

금속노조연구원   |  

노동시간을 둘러싼 새로운 국면



                                             
                                                                          이종탁자문위원 (산업노동정책연구소)



1. 이명박 정부, 노동시간단축을 말하다


2010년 6월 8일 노사정위 근로시간·임금제도개선위원회는 ‘장시간근로 관행 개선과 근로문화 선진화를 위한 노사정 합의문’을 채택했다. 노사정은 이날 합의문에서 2020년 이내에 우리나라 전 산업 노동자의 연평균 근로시간을 일본과 비슷한 1천800시간대로 단축하기 위해 단계적 목표를 설정해 노력하기로 했다. 또 노동시간 단축이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고용창출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동계·경영계·정부를 포함한 범국민 추진기구를 구성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2010년에는 더 이상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러면 그렇지’라는 말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고용노동부가 2011년 업무계획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다시 노동시간단축을 들고 나왔다. 신바람일터를 만들겠다는 계획 속에 장시간 노동시간을 줄이겠다며, 2010년 2,111시간에 이르렀던 연간 노동시간을 2012년에는 1,950시간으로, 그리고 2020년에는 1,800시간대로 줄이겠다며 구체적인 타임스케줄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한 구체적 사업으로는 ㅇ 중소·영세기업 실근로시간 줄이기 지원(컨설팅, 보조금 등) ㅇ 유연근로시간제 활용률 제고(탄력적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등 기준법 개정 추진, 모범사례 발굴・확산 등)  ㅇ 휴가 사용률 제고 및 여가문화 선진화(휴가촉진조치 시점 조기화(3월전→6월전) 등 기준법 개정 추진 및 각 부처별 여가 활성화 대책 마련 등) ㅇ 장시간근로 개선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 (장시간근로 개선 노사민정 공동 캠페인 및 근로문화 혁신 운동 전개, ‘장시간근로 개선 가이드라인’(노사정 협의) 제정)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노동시간단축은 노동시간에 대한 유연성을 높이는 한편, 자본(기업)의 비용부담을 줄이는 것을 핵심 축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노동진영의 대응 역시 ‘노동시간단축’ 계획보다는 ‘유연근무시간제’ 비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탄력근무시간제 단위 기간을 확대하고 단시간 상용직을 제도화하면서 시간제 노동을 활성화하는 내용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그리고 이를 위한 노동법 개악을 저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과 대응은 이명박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고용창출 방식 자체를 겨냥하지 못한다. 물론 진보와 노동진영은 이명박 정부의 일자리 창출 계획들이 ‘질 낮은 일자리’ 혹은 ‘비정규 일자리’라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은 매우 정당하다. 노동부가 업무계획에서 밝힌 일자리 창출 방안의 해김은 근무형태 다양화인데, 그 구체적 방안이란 것이 ㅇ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 창출과 확산 ㅇ 고용창출형, 세대간 상생형, 일·육아 병행형 등 ‘3대 일자리 함께하기’ 지원 ㅇ 장시간근로 제도와 관행을 개선(’11.7월부터 20인미만 사업장 주40시간제를 적용하고, 휴가 사용률 제고를 위해 연차휴가사용 촉진조치 시점을 조기화(3월전 → 6월전)하는 한편, 근로시간저축휴가제를 도입하고, 재량근로시간제 적용대상(소프트웨어 개발자, IT 컨설턴트, 애널리스트, 회계사 등)과 탄력적 근로시간의 단위기간을 확대(취업규칙의 경우 2주 → 1개월, 노사합의의 경우 3개월 → 1년)하는 등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그리고 이렇게 줄어든 근로시간을 교육․훈련에 사용하여 생산성을 높이도록 일터의 학습조직화와 체계적 현장훈련 등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대학의 주말․야간과정, 시간제 등록도 확대할 예정) 따위들이다.
하지만 진보와 노동진영은 ‘일자리 창출’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고 있다. 질 낮은 대신 질 좋은, 비정규 대신 정규직 일자리 창출을 말하고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과연 어떻게 질 좋은 정규직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까? 이에 대한 고민과 대안 없이는 이명박 정부가 만들어내는 질 낮은 시간제 일자리에라도 가서 일해야 하는 현실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2. 일자리 창출, 가능한가?


한국의 2010년 경제성장률은 6.2%이고, 1인당 GDP는 2만 달러를 다시 넘어섰다. 2008년 금융위기를 가장 빨리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한국의 놀라운 경제 상태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고용의 회복세도 완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11년 2월 취업자는 23,336천명으로 전년동월대비 469천명(2.1%) 증가하였다.(통계청, ‘2011년 2월 고용동향’, 20011.3.16) 산업생산․소비판매 및 수출 호조세로 제조업 등 비농림부문을 중심으로 취업자 증가세가 유지되고 있다. 문제가 있다면 20대와 30대의 취업자는 계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림 > 취업자 및 취업자 증가율




 


자료 : 통계청


그래서 아주 단순한 사람들은 20대와 30대 청년 일자리를 늘여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떻게, 어디에서라는 구체적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시간제 비정규 일자리만이 그들에게 돌아갈 뿐이며, 그것도 여성과 고령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거나 40대와 50대 정규직 남성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진보진영에서는 ‘노동시장 유연화’가 아니라면 정규직 남성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지 않고서도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를 늘릴 수 있을 것처럼 말한다.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이 대표적 방안이다. 어떤 이들은 ‘경기부양’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말하기도 한다. 루즈벨트식 뉴딜정책이나 케인즈식 유효수요 창출 같은 정책을 구사한다면 충분히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20대와 30대에게만 질 좋은 정규직 일자리를 제공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방식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청년층만이 아니라 모든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질 좋은 정규직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면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질 좋은 정규직 일자리 창출이란 경제성장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잠재성장률이 계속 둔화하고 있다. 2010년 경제성장율이 6.2%라고 하지만 이것은 기저효과에다가 인위적 경기부양조치들의 후과를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잠재성장율은 3~5%대로 추정한다. 이런 성장률 조건에서 질 좋은 일자리 창출이란 진보적인 정권을 세우더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일자리 창출을 고민한다면 성장률을 제고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과 같은 경제 규모와 생산 구조에서 ‘요소투입형 성장’은 적합하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인구 증가 자체가 정체하고 있는 상태에서 노동을 더 투입하자고 말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다면 노동의 투입을 늘리지 않고 경제성장을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봉착한다. 노동의 투입을 늘리지 않는 성장이란 결국 ‘생산성 향상’의 방법밖에 없다. 자본진영이 말하는대로 '다양한 혁신을 통한 기술발전이 주도하는 경제성장’에서 그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경제성장은 필연적으로 경제의 고용유발을 하락시킨다. 경제성장의 결과(산출량)로 고용을 늘리는 방법(공공부문 확대) 외에는 고용을 창출하기 어려운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산업연관표를 보면, 한국의 산업별 고용유발계수는 2000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자본이 주도하는 경제산업체제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는 식의 둘러대기는 비겁한 방법이다. 진보적인 산업정책을 구사하더라도 성장을 위해 노동의 투입량을 늘리는 방식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그림 > 산업별 고용유발계수 추이
(단위 : 명/10억원, %)




 


자료 : 한국은행, 2006년 산업연관표(연장표) 부속 고용표


생산성 향상 이야기가 나온 김에 최근 정부와 자본 일각에서 ‘시간외 노동’을 줄이려 시도하고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편에서는 생산의 효율화라는 이름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여가의 확대로 포장되어 언급되고 있다. 생산의 기술적 효율성이 제고되어진다면 그에 따라 필요노동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런 조건에서 시장에 공급해야 할 물량을 늘리지 않는다면 자본은 총노동시간을 줄이면서 이윤량을 늘리는 방법을 선택하게 되는데, 지금 한국에서 그런 시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제조업 노동조합 대부분은 ‘잔업과 특근’이 보장되어야 고용이 안정되는 것처럼 반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대응들은 시간외노동을 줄여서 생산을 효율화하는 동시에 여가를 늘리자는 공세 앞에서 거의 무력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3. 노동시간단축, 그 자체를 시도해야 한다


지금 노동조합과 노동자는 생산성 향상에 반대하면서 시간외 노동을 유지하는 방법보다는 기술적 변화를 ‘노동시간단축’으로 곧바로 획득하는 과감하고도 확실한 대응을 해야 한다. 생산성 향상은 더 적은 투입으로도 더 많은 혹은 동일한 산출을 얻는 방법이므로 노동시간을 줄이더라도 충분히 임금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노동의 입장에서는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임금을 유지하거나 감소폭을 최소화하라는 요구를 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와 명분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자 한다면 잔업만이 아니라 특근까지 과감하게 포기하면서 ‘더 많은 일’보다는 ‘더 많은 여가와 문화’를 선택해야 한다. 이것은 ‘현실가능성’이 있느냐의 차원이 아니라 노동조합이 어떤 운동을 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성장의 신화에 불을 지피고 국가의 기능을 강화하는 선택을 할 것이 아니라면 생산성이 높아지는 그 결과를 곧바로 노동시간단축으로 요구하고 그것을 쟁취하는 투쟁에 나서야 한다.
그러므로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정규직 일자리를 주는 것이 노동조합의 선택이 아닐 수 있다. 질 좋은 일자리여야 하는 것은 맞지만 정규직 일자리일 필요는 없다. 시간당 노동력 대가를 충분히 보장받으면서 노동자로서의 권리와 인권을 침해받지 않는 형태라면 굳이 ‘특정한 자본에 귀속되는 고용형태’를 지향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래도 정규직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면 법정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 그래서 8시간을 일하는 정규직이 아니라 6시간, 5시간 일하는 정규직을 만들어야 한다. MB식 단시간 상용직이 아니라 법정노동시간을 줄이면 정규직이 될 수 있는 노동자들은 더 많아진다. 물론 법정시간을 줄이기 이전에 노사가 협약을 맺어 실 노동시간을 1일 8시간보다 더 줄이는 조치도 충분히 가능하다.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이 그런 요구를 내세우고 투쟁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노동조합으로서는 ‘더 많이 일하는 방법’보다는 일자리가 필요한만큼 ‘더 적게 일하면서 일자리를 나누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자기 존재에 더 적합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임금에 대한 접근은 ‘총액보장’이라는 방법(이것은 개별 기업 자본가들이 자기 몫을 줄이면서 선택해야 할 부분이다.)과 더불어 생활비 절감을 동시에 요구해야 한다. 공공부문을 확충해서 일자리를 늘리는 그런 의미에서의 복지 확대가 아니라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서 정부와 사회가 최소 가격으로 제공하는 그런 차원의 복지체제로 ‘생활비용’ 자체를 줄여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것을 소비하기 위해서 더 많이 일하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