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산업동향 > 산업동향
산업동향
 

[8월 금속동향] 끝이 보이지 않는 유럽 재정위기

금속노조연구원   |  

끝이 보이지 않는 유럽 재정위기



                                                                                                                정책연구원


1. 또다시 봉합된 유럽 재정위기


지난 7월 8일, 미국계 헤지펀드들이 일제히 이탈리아의 국채를 투매하기 시작, 영국을 포함한 유럽의 4대 경제대국인 이탈리아의 10년물 국채 금리가 18일 장중 6%를 넘어섰다. 그리고 ‘이탈리아 구제금융설’과 ‘유로존 붕괴설’이 퍼져나갔다.


그림1.jpg


이번 국채 투매사태는 표면적으로는 긴축안에 대한 이탈리아 총리와 재무장관의 갈등이 원인이었으나, 그 속에는 그리스 위기 하나 제대로 대처해내지 못하는 유럽연합에 대한 美 투기자본들의 ‘짜증’과 ‘경고’가 표현된 것으로 해석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유럽 각국과 금융자본들은 부랴부랴 긴급 회의를 소집, 1,600억 유로에 달하는 對그리스 추가 구제금융이 결정됐고, 유럽 금융자본들의 버티기로 지연되던 ‘손실 분담안’도 500억 유로 선에서 합의되었다.


이렇게 유럽 재정위기는 다시 한 번 봉합되었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그저 새로운 빚으로 빚을 돌려막은 것일 뿐이며, 근본적 원인에 대한 해법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 효과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이탈리아 구제금융은 유로존 붕괴를 의미


 


이탈리아는 1년 국내총생산(GDP)가 1.3조 유로(1.8조 달러)에 달하는 경제 대국이며, 그리스를 능가하는 관광 산업, 피아트를 비롯한 자동차 산업, 세계 1~2위를 다투는 패션 산업 등이 존재하는 나라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0.25% 수준에 그치며 경제가 정체되었고, 누적 부채가 1.6조 유로(GDP대비 120%), 향후 5년간 상환해야 할 부채가 9,000억 유로, 올해 만기도래 물량은 1,200~1,300억 유로에 이르게 되었다.


전문가들은 이탈리아가 채무불이행에 빠지면 최대 9,000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리스가 1,100억, 아일랜드가 780억, 포르투갈이 850억 유로를 받기로 했고, 스페인에 대한 구제금융 규모가 3,500~6,000억불로 추산되고 있으니, 이들을 다 합친 액수로도 이탈리아에 들어가는 돈에 미치지 못할 정도다.


이렇게 되면 현재 구제금융을 위해 모아놓은 4,400억 유로 규모의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은 고갈되게 되며, 추가 출연이 필요하게 된다. 스페인, 이탈리아까지 구제금융을 하려면 그 규모는 기존의 기금을 포함, 2조 유로 정도는 되어야 한다. 기금 4,400억 유로를 만드는 데도 국민들의 저항으로 홍역을 치렀던 유럽 각국이 그 네 배에 달하는 돈을 더 낼 수 있을까? 오히려 “그럴 바에는 유로존을 탈퇴하자”는 여론이 높아질 것이고, 결국 기금 조성이 난항에 부딪혀 재정위기국이 유로존을 탈퇴하고 자국 통화를 복원, 유로존이 붕괴하는 과정으로 돌입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2. 유럽 위기의 근원 – 경제력 차 무시한 통화 통합의 한계

그렇다면 근본적 문제는 무엇인가? 왜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그렇게 많은 빚을 지게 되었는가? 이는 유럽연합(EU)이 공동의 통화인 유로화를 도입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연합(EU)은 유로화를 도입하면서, 당시 각국의 환율에 맞춰 교환비율을 정했다. 그러나 문제는 유럽 각국의 경제력이 다르다는 것이었고, 이에 따라 환율이 변동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표1.jpg


마르크화는 독일의 경제력을 대표하고, 드라크마화는 그리스의 경제력을 대표한다. 그렇다면 유로화는 어떤 경제력을 대표하겠는가? 원론적으로 말한다면 독일과 그리스를 포함한 유로존 모든 국가들의 ‘평균’이다. 즉, 옛 통화들이 그대로 있다고 가정하면 그 통화가치는 ‘마르크>유로>드라크마’ 순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일단 유로화가 도입되자, 이 유로화의 가치는 상당부분 이전의 독일 마르크화 쪽으로 수렴되는 경향을 띄게 되었다. 이는 실제적으로 유로화의 가치를 담보하는 힘이 독일과 프랑스에서 나오기 때문이기도 했고, 이후 유럽중앙은행(ECB)을 설립하고 통화정책을 펼침에 있어 상당부분 최대 지분을 가진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결과 유로화는 독일과 프랑스 입장에서는 적절한 가치를 지닌 통화가 되었지만, 나머지 유럽 국가들에게는 고평가된 통화가 되었다. 이에 따라 독일은 수출 경쟁력이 높아져 무역수지와 경상수지 흑자를 거둘 수 있게 되었으나, 그리스는 주력 산업인 관광업이 부진해졌다.


물론 이런 나쁜 결과들만 있다면 그리스 같은 국가들이 유로화로의 통합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통화가 고평가되면 국민 소득이 늘어나고, 또한 이전보다 더 싼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독일과 프랑스가 유로존 가입에 대해 각종 부가적 혜택을 제공했다. 결국 유로화 도입을 통해 독일은 경쟁력 강화를, 그리스는 저금리를 얻게 되었다. 그리스는 관광산업이 부진해지고 무역수지가 악화되었지만, 저금리 차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1999년 유로화가 출범한 이후 세계 경제는 거품 호황을 지속했고, 이로 인해 “제아무리 자금을 저리에 조달한다 하더라도 부채는 부채이며, 원리금과 이자는 시간이 갈수록 커지게 된다”는 냉엄한 현실이 망각된 채 지난 10여년이 흘렀다.


그러나 거품의 붕괴와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모든 것이 변했다. 독일과 프랑스 등 경제 강국들은 그럭저럭 견딜 수 있었지만, 그리스와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는 차입과 기존 채권의 만기 연장이 어려워졌고 채무불이행 상황으로 몰리게 된 것이다.


그림2.jpg


출범 이후 유로화 가치(월평균. 1999년~현재)


한때 유로당 1.6불까지 올랐으나, 세계 금융위기 이후 하락하고 있다. / 자료: 한국은행


3. 유로존 해체 가능성 높아


결국  작금의 유럽 재정위기는 근본적으로 ‘유로화의 위기’인 것이며, 이 위기가 해소되려면 ‘유로화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둘 중의 하나로 결론이 나야 한다. ▲국가적 차이를 뛰어넘어 유로존 경제정책을 일치시키던지, 아니면 ▲유로화를 버리고 각자의 통화를 복구해 사용하던지이다.


전자의 경우 유로존은 유지되지만, 독일 등과 그리스 등의 경제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여러 방법이 사용되어야 하며, 이는 독일이 그리스에 각종 지원을 해야 하는 상황을 부르게 된다. 현재의 구제금융 역시 전자의 해법 아래에 있다. 그러나 구제금융에 대한 유럽 각국 국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으며, 유럽에서는 정권 교체 바람이 불고 ‘유로존 탈퇴’를 공언하는 극우세력들이 약진하고 있다. 4,400억 유로는 간신히 마련했지만, 2조 유로는 불가능해 보인다.


후자의 경우 각자의 통화를 복구해 사용하면 이들은 자국 통화가치를 대폭 평가절하해 자국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부채 부담을 줄일 수 있게 된다. 그리스나 포르투갈 등이 탈퇴하는 방법이 있고, 역으로 독일, 프랑스 등이 탈퇴하는 방법이 있다. 유로존에 통화를 2개 두어 강대국용과 약소국용으로 나누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러한 방법들은 현실적이기는 하지만, ‘미합중국에 버금가는 유럽합중국’이라는 오래된 꿈을 버려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최근 그리스 지원 문제를 둘러싼 유럽 각국의 갈등 상황을 본다면, 전자의 해법은 거의 불가능해 보이며, 후자의 방향으로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유럽연합은 각종 구제금융책으로 버티고 경기가 회복되기를 기다릴 것이나, 유럽 각국의 긴축정책은 이를 지연시키게 될 것이다.


4. 시사점


1) <하나의 유럽, 달러를 대체하는 유로화>라는 전망은 실현 불가능해지고 있다.


재정위기 해법을 놓고 유럽 국가들이 보여준 갈등과 분열, 이를 조정할 지도력의 부재는 ‘하나의 유럽’이라는 전망이 여전히 꿈에 불과한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유럽 각국에서는 구제금융을 반대하고 유로존 탈퇴를 공언하는 극우세력들이 약진하고 있고, 노르웨이에서조차 테러가 벌어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가까스로 그리스 추가지원안이 타결되었지만, 향후 더 심각한 타협을 해야 하는 상황을 과연 이들이 헤쳐나갈 수 있을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으며, 결국 재정 취약국들 또는 독일의 유로존 탈퇴로 유로존이 붕괴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달러를 대체하는 유로화’라는 전망 역시 아직 꿈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달러를 무차별 살포하면서 달러가 약세를 보이고 있고, 이것이 달러 패권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여전히 대세를 이루고 있다. 향후 국제 기축통화가 달러 위주에서 유로화, 엔화, 위안화 등으로 다원화 될 것이라는 전망도 그 중 하나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보았듯, 유로화는 존속 여부가 불투명해지고 있으며, 달러와 마찬가지로 그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향후 유로존 붕괴가 가시화되면 유로화는 그 결과에 따라 존속 여부가 판가름날 것이다. 따라서 당분간 유로화가 달러를 대체하기는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2) 향후 유럽은 ‘구제금융의 늪’, ‘긴축의 늪’에 빠져 진퇴양난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에 대한 추가 지원은 당연히 형평성의 문제를 낳는다. 아일랜드와 포르투갈 역시 경제상황 악화로 그리스에 준하는 지원을 요구하게 될 가능성이 높으며, 유로존은 또다시 구제금융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게 될 것이다. 이는 유로존이 유로화를 유지하려고 하는 한 계속될 것이며, 구제금융을 더 이상 하기 어려운 상황에 가서야 유로존 해체라는 형식으로 끝이 날 가능성이 높다.


재정적자 축소를 위한 긴축 역시 오랜 기간의 성장 정체를 야기, 상황의 호전을 가로막을 것이다. 긴축이 성장률을 낮추고, 오히려 재정적자 비중을 높이는 악순환에 빠져들 가능성도 높다. 이를 타개할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