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산업동향 > 산업동향
산업동향
 

월가 점령 시위와 1%를 위한 미국경제

월가 점령 시위와 1%를 위한 미국경제

 

이상동 새사연 연구팀장

 

1. 월가시위의 성격

 

10월 들어 미국에서 월가점령 시위가 확산되고 서울을 비롯한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99%의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개최되었다. 이른바 ‘월가를 점령하라. Acquire Wall Street’ 시위는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 것인가?

대답은 아주 간명하다.

“1%의 탐욕과 부패를 응징하라.”

 

요구는 간단하지만 시위대의 인식은 본질에 굳건하게 서 있다. 그들의 구호는 부자에 대한 단순한 처벌 이상을 담고 있다. “전쟁 종식, 부자과세 (We are the 99%, End the War, Tax the Rich!)”라는 구호는 현 시대의 요구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

민주주의가 국민에 의해, 국민을 위해 실행되지 않고 스티글리츠가 지적한 것처럼 미국사회는 어느새 “1%의, 1%에 의한, 1%를 위한” 사회가 되어 있다. 이를 두고 “플루토노미(Plutonomy)”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금권이 지배하는 경제를 의미하는 이 단어는 경제를 의미하는 접미어 -onomy- 대신에 정치를 의미하는 -cracy-로 대체해도 무방할 것이다.

 

2. 1% 소유 미국 사회의 실상

 

자본주의 사회에서 권력의 창출과 행사는 소득과 재산에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누구나 동등한 정치적 발언권을 갖는 ‘1인 1표’가 아니라 부의 크기만큼 정치적 발언권을 갖는 ‘1주 1표’가 작동하고 있다.

 

아래는 미국의 소득과 재산 분포를 나타내는 표이다. 상위 1%가 소득의 21.3%를 얻고 있으며 재산과 금융자산의 점유 정도는 더욱 높아 각각 35.6%와 42.4%에 달하고 있다. 반면 하위 90%의 점유율은 전체 소득의 약 50%를 겨우 넘고 있고, 재산과 금융자산의 25%, 17.3%에 이르고 있을 뿐이다.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 상위 1%가 금융자산의 거의 절반을 통제하고 있는 셈이다. 하위 90%의 금융자산을 다 합쳐도 이들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금융자산은 금융수익을 직접적으로 창출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하자. 상대적으로 낮은 점유율을 기록하는 소득의 상당수는 노동으로부터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하기 위해서.

2008년 미국 국세청(IRS)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000만 달러 이상을 번 13,480 슈퍼리치의 총소득 4000억 달러 중 노동에서 발생한 소득은 19%에 불과하였다. 극심한 양극화가 바로 금융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역사적 추세를 보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1980년대 이후, 상위층으로 소득이 이전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80년 쯤에 상위1%는 전체 소득의 약 13%, 하위 90%는 64%를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지난 30년 동안 약 미국 전체소득의 8%가 상위 1%로 이전된 셈이다. 1980년대 레이건 재임 기간 상위 1%의 소득 점유율은 약 5%p 상승한 바 있고, 이 추세가 이어져 2008년 경제위기 직전까지 추가로 약 7%p가 올랐다. 1950~60년대 ‘자본주의 황금기’ 시대에 양극화가 완화되었다면,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는 양극화가 확대되는 특징을

보인다.

 

양극화의 수준은 소득분포보다 재산 분포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즉 경제 민주화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소득보다는 재산 분포가 더욱 중요함은 물론이다.

 

 

 

1990년대 신경제로 주식시장이 폭등하던 시기, 미국의 상위1%는 전체 재산의 38.1%를 차지하였다. 2000년대 초반 IT 버블 붕괴로 상위1%가 차지하는 재산 비중은 조금 감소하였다. 그러나 감소한 부분이 하위 계층으로 이전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상위1~4%가 차지하는 비중이 21.3%에서 25.8%로 이전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상위5%, 또는 상위10%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대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하였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상위10%가 차지하는 재산비중은 더욱 증가하여 75.1%를 차지하고 있다. 그에 상응하여 하위90%는 1963년 33%에서 2009년에는 24.9%로 줄어들었다. 하위90%를 조금 구분하면 하위60%는 전체 재산의 2.2%만을 차지하고 있다. 금융자산은 불과 0.3%에 불과하다.

최하위 계층의 재산은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음도 확인된다. 결국 상위1%의 평균재산과 보통(median) 가구의 평균재산의 격차가 확대되고 있고 최하층의 실상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참고로 1962년에 상위1% 부자들은 보통 가구보다 평균적으로 125배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2009년 이 격차는 최고치로 늘어나 무려 225배에 달한 바 있다. 금융위기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이다.

 

 

2009년을 보면 네 가구 중 한 가구가 재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이 마이너스 상태에 있다. 12,000달러 미만인 가구는 37.1%로 1/3 이상을 차지한다. 다른 말로 하면 경제위기나 실업에 매우 취약한 가구가 1/3을 넘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3. 경기회복? 고용 없는 장기 침체의 지속

 

월가 점령 시위대가 분노하는 것은 소득 및 재산의 극심한 양극화에 그치지 않는다. 이

들을 더욱 분개하게 만든 것은, 금융위기에 따른 고통분담과 경기회복의 과실 또한 불평등하게 배분되고 있는 현실이다.

미국의 경기침체는 공식적으로 2009년 중반 종결되었다. 그러나 실업률과 고용률은 여전히 과거 경기침체의 최저 수준보다도 악화된 상태다. 실업률은 여전히 9% 이상을 계속 유지하고 있고 실질실업률은 20%에 육박하기도 한다. 경기침체가 시작되기 전(44개월 전)보다 실업률은 4.4%p 높고, 고용률은 4.7%p 낮은 상태다. 노동시장의 경제지표만 놓고 보면 미국은 여전히 경기침체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러나 2009년 중반부터 시작된 경기회복은 기업에 천문학적인 이윤을 안겨다 주었다.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미국 정부의 두 차례 양적완화와 기업이윤 증가에 따라 금융시장이 호황을 맞기까지 하였다. 2009년 2사분기부터 2011년 1사분기까지, 물가상승률을 차감한 실질 기업이윤은 39.6% 증가하였고, 같은 기간 S&P 500과 다우존스 지수는 40% 이상의 수익률을 보였다.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정체 혹은 감소하였고 고용의 총량 또한 경기가 회복된 7분기 동안 거의 증

가하지 못하였다.

즉 미국의 경기회복은 고용 없는, 그리고 임금 없는 회복이라 할 것이다. 금융위기로 파산에 직면한 월가의 금융기업들은, 정부가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 자금을 금융시장에 쏟아 부은 덕택으로 회생하였다. 그리고 두 차례 양적 완화 조치로 월가는 천문학적인 자산 가격 상승의 수혜 또한 입었다. 극소수 1%부자들이 경기회복의 수혜 또한 모두 가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천문학적인 이윤에 기초하여 또 다시 보너스 잔치를 벌이고 있다.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S&P 500에 속한 대기업 CEO들은 노동자의 평균임금보다 344배나 높은 보상을 받았다. 이 수치는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2009년 263배로 다소 감소하였다. 그러나 작년에 325배로 거의 금융위기 직전 수준을 회복하였다.

 

4. 1% 경제의 지속불가능성

 

미국경제는 1990년대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호황을 누린 바 있다. 이른바 ‘신경제’의 호황이 도래하였던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여러 분석이 있겠으나 분명한 사실은 이 기간 동안 1%를 위한 경제의 왜곡구조는 더욱 심화되었다는 사실이다.

 

먼저 실질임금과 생산성 증가의 부조응이다. 1980년대 이후 생산성 증가에 비해 실질임금은 거의 정체하고 있다. 생산성 향상으로 얻은 이익은 기업 CEO들의 보상 증가와 금융 산업의 이윤 증가로 이어진 것이다. 실질임금이 생산성 향상에 조응하지 못함에 따라 수요 부족 현상이 심각해져 갔다. 미국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리 인하, 감세를 통해 소비 및 투자를 유인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더욱 강화하는 길로 들어선 것이다.

 

둘째, 부채의 증가다. 생산성은 증가하고 소비 수준은 높아졌으나 실질임금이 정체되니 구매력이 낮아질 수 밖에 없다. 구매력을 유지하기 위해 빚을 늘리게 되고 이에 발맞추어 금융기업은 부채를 늘리는 신종 금융상품의 혁신을 거듭하게 된다. 미국의 가계부채는 1980년대 이후 거의 두 배 가까이 상승하여 2007년 137.6%로 늘어났다.

 

셋째, 자산시장 거품이다. 신자유주의 정부와 금융시장은 소비수요를 지속하기 위한 자산 가격 상승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이른바 부의 효과(wealth effect)를 노린 것인데, 부의 효과란 자산 가격 상승으로 재산이 증가하면 가처분소득이 늘지 않더라도 더 많은 소비하는 경향을 말한다. 자산시장의 거품이 커질수록 소비 증가 --> 부채 증가 --> 자산 가격의 재상승이라는 동학이 작동한다.

 

1%를 위한 미국 경제가 그동안 유지되어 왔던 점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우월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부족한 소득과 낮은 임금이 발생시키는 소비 감소를 감세와 부채 그리고 버블로 막아 왔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정치시스템은 소득과 임금의 상승없는 저성장, 저고용의 덫에 깊숙이 빠져 있는 것이다. 월가 점령 시위는 바로 이러한 정치경제의 본질적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는 부족한 내수 수요를 수출로 메꾸는 수출주도형 성장을 지향해 왔다. 수출경제는 노동비용 삭감과 환율 개입을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저임금과 물가상승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경제가 일견 회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저성장, 저고용의 징후를 완연히 드러내고 있으며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대세를 장악하고 있다.

 

월가점령 시위가 발생하기 전까지 미국사회에서 비판여론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지 못했던 배경에는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존재하고 있다. 이에 비견될 수 있는 것이 ‘수출 경제’에 대한 환상이 아닐까 한다. 일자리, 소득, 재산이 1%에게로 점점 집중되어도 아직 분노가 조직되지 못하는 한국도 언젠가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