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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이슈]알뜰 주유소 정책은 무엇이 문제인가?

금속노조연구원   |  

알뜰주유소 정책은 무엇이 문제인가?

                                    - 또다시 확인되는 독점 재벌 규제의 필요성

 

이상동 노동연구원 자문위원(새사연 연구팀장)

 

기름값이 급등하고 있다. 전국 평균 보통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을 드디어 넘어서더니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국제 유가의 상승은 더욱 가파르다. 이란 핵개발 의혹을 둘러 싼 중동 정세가 긴장감을 더해 가면서 텍사스산중질유와 브렌트유 그리고 두바이유 등 주요 지표유종의 가격은 배럴당 120달러 안팎까지 치솟았다. 비관적인 전망에 따르면,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초에 역사상 최고점을 기록한 배럴당 147달러를 돌파할 수도 있다고 한다.

위기감이 높아지자 지난 금융위기 발발을 전후하여 기름값 인하 정책을 둘러 싼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정부의 이른바 ‘알뜰 주유소’ 정책과 시민단체의 ‘유류세 인하 주장’이 대표적이다. 한편 진보진영은 눈에 띄는 정책을 내어 놓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은 정부의 알뜰 주유소 정책이 갖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정부의 알뜰 주유소 정책은 기본적으로 시장 만능주의적 정책이라 할 수 있다. 경쟁을 격화시켜 가격 인하를 유도하겠다는 것인데 정작 도매 업자인 정유업체에 대한 압박이 없고 유통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어 실효성이 의심스럽다. 이런 가운데 알뜰 주유소 정책은 결국 적자의 위기에 놓인 상당수 소규모 주유소의 고사라는 부정적 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1. 정유업계는 정책에 협조할 이유가 없다.

 

정부의 알뜰 주유소 정책은 일반 주유소보다 리터당 100원 이상 싼 가격에 판매하는 주유소를 전국에 보급하는 것을 말한다. 이 정책의 핵심은 한국석유공사와 농협 등의 공공기관이 대량으로 석유를 구매함으로써 도매가격을 떨어뜨리는 데 있다. 4대 재벌기업이 공급을 독점하고 있는 상태에서 사실상 정부가 직접 대형 소비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부의 기대만큼 효과가 발생하고 있지는 않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정유업계의 실질적인 거부로부터 비롯된다. 지난 해 공개입찰은 두 번 모두 유찰되었다. 이번 달에야 겨우 서울에 1호점이 생긴 알뜰주유소로의 납품에 목을 맬 이유가 없다. 현재 한국의 재벌들이 수익을 발생시키는 원천은 공급 독점에만 있지 않다. 정유를 포함하여 거의 모든 업종에 재벌들은 수직적 독과점 체제를 확장하고 있으며 이는 곧 유통구조의 장악을 의미한다. 거대 정유업계는 모두 중간 유통망을 자체로 보유하고 있고 이를 주유소 통제의 주요 수단으로 사용한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거대 정유업체들 입장에서 볼 때 공공기관에만 차별적으로 싼 가격에 납품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유업체들의 초과 이익을 보장해 준 가장 중요한 수단은 4대 거대 정유업체들이 불법적으로 자행해 왔던 가격 담합 카르텔이었다. 만약 공공기관에 더 낮은 가격으로 납품하는 것이 현재의 비용-수익 구조에서 가능하고 정부의 의도대로 이런 방식으로 도매업체들의 경쟁이 발생한다는 것은 담합 구조가 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재벌 업체들이 여기에 응할 리 없다. 일반 주유소와의 형평성 차원에서 정부 정책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정유업체의 발언은 자신들끼리의 경쟁을 회피하겠다는 내심을 숨기는 행위일 뿐이다.

 

표1 알뜰주유소 현황과 향후 목표 (개, 누적)

관리주체

기존

2월2주

2월말

1/4분기

2/4분기

’12년

석유공사

1

9

64

124

161

200

농협

-

20

170

300

350

450

도로공사

-

-

10

15

36

50

합 계

1

29

244

439

546

700

 

*출처: 지식경제부, 2012. 2. 3 “알뜰주유소 추진 현황과 향후 계획”

 

2. 자영 주유소는 출혈경쟁에 내몰린다.

 

한편 알뜰주유소 정책으로 인해 소매 주유소의 어려움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되고 주유소 업계의 반대도 강력해지고 있다. 알뜰주유소가 들어서면 인근 지역 주유소의 출혈 경쟁이 우려된다. 2012년 2월 4주 현재 주유소의 보통휘발유에 대한 ‘유통비용 및 마진’은 4%로 집계되었는데(한국석유공사, 2012년 4월 “국내 석유제품 동향”), 이는 금액으로 리터당 82.6원에 해당한다. 실제 마진은 이보다 훨씬 못할 것이며 만약 정부의 공언대로 알뜰주유소가 리터당 100원을 낮추게 된다면 다른 주유소들은 손해를 보아야만 같은 가격에 판매를 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표2 . 보통휘발유의 가격 구성 (2012년 2월 4주, 전국평균)

항목

가격

비율

주유소 판매가격

1,989.6 원/

100.0%

유통비용 및 마진

82.6 원/ℓ

4.2%

세금 (VAT포함)

926.8 원/ℓ

46.6%

세전 정유사가격 (1주 전)

980.3 원/ℓ

49.3%

 

 

 

 

 

*출처: 한국석유공사, 2012년 4월 “국내 석유제품 동향”

 

보다 심각한 점은 현재 구조에서도 상당수의 주유소가 적자 운영을 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유통비용 및 마진’ 4%가 숨기고 있는 두 가지 중요한 비용 때문이다. 첫째는 중간 유통과정에 관계된 비용이다. 현재 일반 주유소가 파는 휘발유, 등유 및 경유 등 경질유의 약 절반은 정유 대기업으로부터 조달되고 나머지 절반은 대리점에서 조달된다. 중간 유통과정인 대리점은 대기업의 계열사가 운영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예컨대 정유사는 SK에너지이고 유통사는 SK네트웍스를 들 수 있다. 지난 1월 보통휘발유의 대리점 판매가는 정유사 판매가보다 29원 비쌌다. 이 점을 고려하면 4%라는 수치는 3.4%로 떨어진다.

둘째 비용은 카드결제 비용이다. 주유소 업자의 카드수수료를 1.5%로 계산하면 리터당 약 30원에 해당하며 다시 수치는 1.9%로 하락한다.

현재 일반 주유소의 절대 다수는 4대 거대 정유사들의 폴주유소로 운영되고 있다. 여기 SK폴주유소가 있다고 하자. 해당 주유소는 대기업으로부터 어떻게 수탈되는지 정리해 보자. 먼저 정유사인 SK에너지가 유가급등의 부담을 도매가에 반영하여 주유소에 전가한다. 다음으로 중간유통사인 SK네트웍스가 의무로 약정된 기간과 양을 정유사보다 비싼 가격에 사도록 삼으로써 주유소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그리고 다시 SK제휴카드가 수수료 수입을 기다리고 있다.

 

3. 농협 등 거대 공기업에 주유소 사업 진출 길을 터주다.

 

대략적인 비용만 확인했는데도 주유소 업자의 마진은 1.9% 미만으로 나타난다. 시설비, 임대료, 판촉비 등까지 고려한다면 실제 마진은 마이너스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주유소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판단해도 무방할 것이다. 결국 알뜰주유소가 늘어나면 자영 주유소는 폐업의 위기에 몰릴 것으로 보인다. 독점 대기업이 자영 주유소의 수익을 뺏어가는 현재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정책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폐업하지 말고 알뜰주유소로 전환하면 간단한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이미 상당수의 자영주유소가 대기업의 이름을 간판에 포함시킨 폴주유소 계약을 이미 맺고 있다. 전환 가능한 주유소가 많지 않다는 뜻이다. 그리고 앞서 확인한 것처럼 알뜰주유소로 전환한다 해도 가격 인하 여력이 별로 없어 다른 주유소와 차별화가 쉽지 않다.

 

차별화된 저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길은 대량으로 구매하여 장기간 저장하면서 판매하는 것이다. 국제유가의 급 변동이 주는 기회를 살려 저가일 때 대량 구매하고 장기 보관하다가 가격이 많이 상승한 이후에 판매한다는 뜻이다. 이는 곧 유가 급변동의 위험을 최소화시키는 자본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농협과 도로공사, 그리고 석유공사가 직접 운영하는 형태가 알뜰주유소의 대부분이 될 것이다. 이들, 특히 농협이 가장 많은 알뜰주유소를 운영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전국에 분포되어 있는 자신의 대형할인점 점포망과 연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공기업이 알뜰주유소를 운영한다는 것은 전통적으로 자영업 업종이었던 주유소 사업에마저 거대기업이 진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농협은 소규모 지역 상권 파괴의 일등공신이었던 대형할인점 사업영역을 현재 갖고 있다.

 

정부가 내어 놓은 알뜰주유소 정책은 ‘소비자 부담 경감’이라는 여론의 암묵적 지지(? 또는 관심?)를 등에 업고 소규모 사업체를 고사시킴으로써 양극화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멀리 보면 자영업의 영역을 축소시키고 공기업 직영주유소의 비정규직을 확대시킬 위험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