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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이슈>다가오는 민생대란, 비상대책 시급히 마련해야

금속노조연구원   |  

다가오는 민생 대란, 비상대책 시급히 마련해야

 

 

한선범 진보연대 정책국장

 

 

경기침체 장기화, 한계 맞는 한국 경제

 

세계 경제의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다. 미국은 제로금리, 양적완화, 감세와 재정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성장률이 2%에 미치지 못하고 있고, 유럽은 미국보다 더 심각하다. 위기가 유로화 문제, 유로존 통합 문제와 엮이며 시스템 위기와 경기침체를 동시에 겪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경기가 침체되면서, 중국과 브라질, 인도 등 개도국 경기도 가라앉고 있다.

세계 경제는 언제 회복될 것인가? 기약이 없다. 1990년 거품이 붕괴한 일본은 20년째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 일본보다 대응을 잘했다고 평가받는 미국의 경우도 이제 위기 5년차에 불과하다. 적어도 10년은 간다고 하면, 앞으로 무려 5년이 더 남은 것이다.

1929년 ‘블랙 먼데이’로 시작된 세계 대공황은 10년 장기침체를 거쳐 1939년 2차 대전으로 발전했고, 이후 6년간 징병과 전비물자 생산, 이를 위한 고용, 통화 증발에 따른 인플레 등으로 공황이 해소됐다. 그러나 지금은 2차대전 같은 대규모 전쟁도 어렵다. 당시는 주요국들이 제국주의 정책을 쓰며 대립했으나, 지금의 세계는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로, 공황을 날려버릴 대규모 세계 대전은 일어나기 어렵다. 그리고 그만큼, 공황 탈출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렇게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그간 그럭저럭 선전해왔던 우리나라 경제도 점점 그 한계를 맞으며 위기 국면에 돌입하고 있다.

 

흔들리는 수출 신화

 

경제위기 이후 오히려 잘 나가던 수출은 올해 들어 한계를 보이고 있다. 1월부터 7월까지 누적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0.8% 감소했다. 원래 수출증가율은 매년 10~20%씩 증가해 왔는데, 증가율이 줄어드는 걸 넘어 아예 감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림1] 월별 수출액 및 증감률. 꺾은선이 수출증감률이다. 10~20% 수준이었던 증가율이 계속 떨어져 0%선(점선, 우축) 부근에서 움직이고 있다. / 자료: 관세청

 

산업별로 보면 조선 산업이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고, 조선-자동차-해외 건설경기의 영향을 받는 철강 산업의 수출이 정체 상태에 빠졌다. 자동차와 기계 산업이 아직까지 선방하고 있으나, 이 역시 이전의 수출 증가율에 비해서는 둔화된 것이다. 반도체와 무선통신기기 분야 역시 수출이 급감하고 있으며, 일본의 원전 가동 중단에 따른 천연가스 수출 증가로 석유제품의 수출이 그나마 양호하게 나오고 있다.

 

 

[그림2] 품목별 수출 증가율(2012년 1~7월) / 자료: 관세청

 

앞으로 경기가 개선된다면 지금의 수치는, 조선 산업을 제외한다면 그래도 견딜 만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향후 전망은 밝지 않다. 거품이 붕괴되면서 발생한 위기는 거품기간 동안 발생한 부실과 부채를 거품 이전 수준으로까지 정리하고 난 뒤에도 끝나지 않는다. 빚을 갚느라 가계가 재정 여력을 거의 다 소모해서, 이를 다시 충전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수도권에 사는 어떤 직장인이 5억원짜리 집을 자기 돈 2억원과 대출 3억원으로 샀는데, 집값이 4억원으로 20% 떨어졌다. 집을 사려는 사람이 없어 3억5천만원에 헐값(?)으로 팔았다고 치자. 그러면 그에게 남는 돈은 5천만원 뿐이다. 그가 다시 예전의 소비를 회복하려면 다시 저축을 해서 이 5천만원이 다시 2억원 정도가 돼야 한다. 상황이 더 나빠 집을 못팔아서 꼼짝없이 대출 3억원을 다 갚아야 하게 되면 소비 여력 회복은 적어도 20년은 걸린다고 봐야 한다. 그 20년간 그는 일자리를 그대로 유지한 채 임금을 계속 받을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만약 실직하게 되면 얼마 못 가 파산으로 직행하게 되고, 소비여력의 회복은 아예 불가능하게 된다.

문제는 이런 상황을 소수가 아닌 상당수가 겪고 있고, 부동산 거품 붕괴가 한 두 개 나라가 아니라 잘 산다는 미국과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 그리고 중국, 한국, 호주 등 좀 산다는 나라들 대부분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세계 경제 회복은 아직 멀었으며, 당연히 위의 수치, 수출 실적은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붕괴되는 부동산 불패 신화

 

현재 벌어지고 있는 부동산 경기침체는 어느 정도의 문제로 볼 수 있는가? 그저 몇 년 뒤 집값이 상승세로 전환되면 끝나는 일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1960년대 이래 우리나라에서 서울-수도권의 집값이 수년 간 하락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 97년 외환위기 때도 1년 정도 하락한 뒤에 급격히 반등했었다. 이 점 하나만으로도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직면한 건 일시적 침체가 아니라 ‘구조(패러다임) 붕괴 국면’이다.

현재 100대 건설사 중 30개 가량이 법정관리나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이는 향후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워크아웃에 들어간 건설사들은 회생하지 못하고 파산으로 내몰리고 있으며, 이에 따라 건설사들은 4대강 공사 등의 정부 발주 토목공사와 해외 수요(대기업의 경우)로 겨우 연명하고 있는 상황이다.

부동산 거품 붕괴가 국내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미국이나 스페인 같은 나라들의 선례를 보면 알 수 있다. 2002년 카드대란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신용불량자가 발생할 것이고(당시 신불자는 400만명에 불과했다!!), 은행 위기가 올 것이며, 극심한 내수 위축이 올 것이다. 외환위기 당시의 규모를 훨씬 뛰어넘는 기업들의 위기와 도산,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이다. 부동산 불패 신화는 땅 덩이 넓은 미국보다 우리나라가 훨씬 강력하다. 그리고 그만큼 충격도 더 클 수밖에 없다.

 

정리해고, 이미 외환위기 수준 도달해

위기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고용보험 상의 ‘경영상의 필요에 의한 퇴직자’, 즉 정리해고자 수가 작년에 10만3274명을 기록했다. 2000년대 이 숫자는 3~7만명 사이였는데 급격히 늘고 있는 것이다. 외환윈기 직후 98년 이 숫자가 12만3834명이었는데, 올해 들어 6월까지 수치가 6만3038명을 기록했다. 이 추세대로 12월까지 가면 수치는 12만6천명 가량이 되어, 외환위기 당시를 뛰어넘게 되는 것이다.

 

 

넓은 의미의 해고, ‘비자발적 사유로 고용보험 피보험자 자격을 상실한 사람’은 작년에 213만5천명이었는데, 올해는 상반기에만 벌써 121만6천명을 기록했다. 이 속도가 유지되면 243만명으로 크게 늘어나게 된다.

구조조정은 중소-중견기업을 넘어 대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르노삼성이 희망퇴직 신청을 받기 시작했고, 대한항공, GS칼텍스도 인력 감축에 나섰다. 극동건설 인수로 자금 부담이 커진 웅진이 핵심 계열사인 코웨이를 팔고도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현대그룹은 유동성 부족으로 사옥을 매각하려 하고 있다.

문제는 앞에서 말한 듯, 위기가 이제 시작일 뿐,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모두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민중 생존 위한 비상대책 시급히 마련해야

 

상황은 명확하다. 위기가 닥치는 건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 문제일 뿐, 반드시 오게 된다. 따라서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민중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체계적인 조치들, 즉 비상 대책이 필요하다.

민중을 위한 비상 대책은 정부가 세워주지 않는다. 정부는 자본을 위한 비상대책만을 세우고, 이는 대개 고통을 민중에게 전가시킨다. 민중의 대책은 바로 우리,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 진보민중진영이 세우고,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 한다.

그런데 이에 대해 고민하고 논의하는 이들을 보기가 쉽지 않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진보정당 등 모든 간부들의 분발이 필요하다. 이미 위기가 진행중인 조선산업 분야에서는 금속노조에서 ‘조선산업 발전전략위원회’라는 노사정 3자기구를 제안하고 정부 지원과 총고용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다른 분야들과 사회 전체차원의 고민으로, 노동계와 진보진영 전체의 과제로 빠르게 수용돼야 한다.

대규모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속에서 어떻게 일자리를 유지할 것인가? 집에서 쫓겨난 하우스푸어들은 어떻게 수용해야 할 것인가? 무너진 자영업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사회 안전망은 어떻게 확충해야 할 것인가? 망한 기업과 해당 노동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필요한 돈은 어디서 충당할 것인가? 지금이 시스템이 이 위기를 감당할 수 있는가? 다른 시스템이 필요한가? 고민하고 마련해야 할 대책들이 너무나 많다.

어찌 보면 이 문제가 ‘경제 민주화’보다 더 급하다고도 볼 수 있다. 각자가 가진 모든 역량을 짜내어, 모두 합심하여 비상대책의 체계적 마련을 위해 노력해야 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