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이슈페이퍼 > 이슈페이퍼
이슈페이퍼
 

2009년 금속노조의 투쟁과 교섭, 경제위기국면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금속노조연구원   |  
2009년 금속노조의 투쟁과 교섭,
경제위기국면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이상호(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미국발 금융공황으로 신자유주의 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주주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무너지고 자본주의의 본질적 모순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세계경제위기는 대외 의존적 한국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 실물경제 전반에 걸쳐 심각한 증세로 나타나고 있다. 현 위기의 심각성은 이러한 위기상황이 단순히 경기변동적 요인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본질적 문제로 인해 폭발한 것이기 때문에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나지 않고 향후 3~4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이러한 경제위기가 자본의 위기를 넘어 전 산업에 걸친 생산축소와 구조조정으로 인해 노동자와 서민의 생존권위기로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한편 이러한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경제정책의 실패를 부정하고 오히려 ‘고통분담론’을 앞세운 이데올로기 공세, 1% 재벌과 부자를 위한 경제정책, 방송법-비정규직법-정리해고관련법의 개악을 필두로 노동자와 서민에 대한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독점재벌을 비롯한 총자본 또한 ‘비상경영체제’ 등을 앞세우며 ‘현금유동성확보’를 통한 생존경쟁에 돌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산감축은 물론 비용절감을 위한 ‘노동자 쥐어짜기’를 가속화하고 있다. 정부와 자본의 공세는 한국경제의 약한 고리에 서있는 비정규직, 미조직, 중소사업장 노동자들부터 휴업, 해고 등에 내모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대공장 또한, 상대적으로 취약한 쌍용차에서 보듯, 일방적 후생복지중단, 임금지급거부, 자본철수와 공장폐쇄 등 공세적인 도발을 자행하고 있다. 노동자의 단결과 저항의 기회를 제거하기 위한 자본의 전략은 정규직-비정규직의 분할, 대공장-중소영세사업장의 분할뿐만 아니라, 대공장마저 취약사업장과 후순위 공격대상 사업장을 분할하여 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실정이다.
역사상 초유의 경제위기 속에서 벼랑으로 내몰린 노동자와 민중은 생존의 위기, 단체협약을 무시한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통한 노조의 무력화, 노동자의 분할을 통한 선별적 조직단결을 깨려는 자본의 공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할 시기에 서있다. 하지만 민주노조운동을 비롯한 진보진영의 주체상황은 허약한 상태이다. 반(反)신자유주의 진보진영의 결집력이 아직 약할 뿐만 아니라, 진보정치세력의 분열로 인해 구심점이 될 수 있는 대안세력이 사실상 불명확하다. 민주노총과 산별연맹의 조직력과 투쟁력은 지난 몇 년간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으며, 노동운동의 전반적 부진으로 인해 조직노동자의 계급대표성도 상당히 취약하다. 또한 산별노조에 대한 신뢰가 약화된 상황에서, 경제위기에 대한 각 사업장의 체감정도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위기로 인한 경제적 조건의 하락, 더 나아가 심각한 고용불안 앞에서 조합원들이 위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어려운 주객관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가 장기화되고 자본과 정권의 노동자-서민에 대한 ‘쥐어짜기’정책이 강화될수록 위기에 대한 경각심은 강화되고 저항과 투쟁의 기운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즉 금속노조의 경우 15만 조합원이 ‘구조조정저지를 위한 노동자의 연대로 함께 살자!’라는 핵심목표 하에 산별노조차원의 ‘비상체제’를 구축하여 ‘자본의 위기’를 ‘노동의 기회’로 전화시켜 나가야 한다.

사회연대전략의 기조 하에서 교섭전선의 조기구축이 시급히 요구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와 서민의 생존을 위해 금속노조는 시장만능주의적 규제철폐정책, 자본의 투기화, 부자를 위한 감세정책 등을 추구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완전하게 철폐하는 한국경제의 구조개혁이라는 기조를 분명히 해야 한다. 즉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각종 구조조정을 거부하고, 쌍용차 등 구조조정 사업장과 비정규직 우선해고 등 당면 현안투쟁을 능동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사회정치적 전선을 조기에 구축해야 한다. 특히 경제위기의 장기화 추세를 고려할 때, 구조조정의 경우 각 사업장의 현안 차이를 넘어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로 대응전선을 구축하는 한편, 현대차-기아차를 비롯한 대기업 조합원들이 대응주체로 적극 나설 수 있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 지난날의 불신과 갈등을 극복하고 내부소통과 단일노조로서의 일치성을 높이기 위한 임원현장순회, 토론회, 교육 등을 종합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이 때 현 국면에서 금속노조 내외부의 광범위한 연대와 단결 없이 올해 투쟁은 승리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삶의 위기가 노동자와 서민 모두의 절박한 현실임을 직시하여, ‘노동자-서민 살리기’를 금속노조의 확고한 투쟁기조로 설정해야 한다. 즉, 노동자-서민의 생존을 위한 고용연대-소득연대-산업연대-생활연대 등 실질적 사회연대전략을 실천할 수 있는 교섭과 투쟁전술을 시급히 마련하고, 신자유주의 정부와 자본에 대한 완강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이를 위해 경제위기의 돌파전선을 중심으로 올해 임단투를 앞당겨 배치하고,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총노동전선의 구축에 금속노조가 앞장서서 비정규법, 최저임금법, 정리해고법 개악 등 반신자유주의-반이명박 사회정치전선 강화에 복무해야 한다.
이러한 취지에 따라 금속노조는 경제위기와 관련된 국가와 자본의 책임을 분명히 하며, 약자와 소수계층을 희생시키는 자본의 ‘시장경쟁=약육강식=적자생존’의 담론을 깨고, 노동자와 서민의 ‘함께 살자!’를 위한 사회연대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이데올로기 전선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 한편 쌍용차와 비정규직 등 당면 구조조정 투쟁 현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산별노조의 책임감을 강화하고, 이를 구조조정 사업장을 묶는 금속노동자의 전체투쟁으로 발전시켜 총고용 보장을 실현하고 생존권을 사수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서민 살리기를 위한 투쟁본부’를 중심으로 위기돌파에 총력을 기울여 조직적 신뢰와 집중력을 높여 내야 한다. 또한 산별노조의 사회적 위상과 역할을 강화하고, 중소사업장 및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금속노조에 적극적으로 가입할 수 있는 조직화방안을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

2009년 금속노조의 핵심요구와 대자본 요구안

이러한 정세인식에 따라 금속노조는 지난 2개월 동안의 논의과정을 거치면서 2009년 교섭과 투쟁에 대한 기조를 잡아나가고 있다. 물론 2월 중순으로 예정된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최종적으로 결정될 사항이기 때문에 현재의 내용에 대해 섣불리 평가하기는 힘들지만, 금속노조 내외부에서 이미 제기되고 있는 몇 가지 쟁점들은 이후 논의 활성화를 위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금속노조는 올해 핵심요구안으로 국민기본생활의 보장, 모든 해고의 금지와 총고용보장,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만들기, 재벌잉여금의 사회 환원과 투기자본규제, 제조업과 중소기업의 기반강화 등 5대 요구안을 설정하고 있다.

1) 국민기본생활의 보장
- 최저생계비기준을 평균가구소득의 38%에서 50%로, 지원대상을 159만 명에서 500만 명으로 확대하라!
- 월급제로의 임금체계 전환을 통해 노동자 기본생활을 보장하라!

2) 모든 해고의 금지와 총고용보장
- 정부는 고용유지 지원금, 노동시간 단축지원금을 확대 지원하라!
- 사용자는 해당사업장의 비정규직을 포함한 현재 총고용인원의 고용을 보장하라!

3)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만들기
- 심야노동의 철폐와 일자리창출을 위해 주간연속2교대제를 시행하라!
- 연 노동시간을 2200시간 이하로 제한하라!

4) 재벌잉여금의 사회환원과 투기자본 규제
- 투기자본을 규제하고 국가기간산업에 대한 외국인투자를 제한하라!
- 천억 이상의 잉여금을 보유한 회사는 잉여금의 10%를 특별기금으로 출연하라!

5) 제조업과 중소기업의 기반강화
- 특별법 제정을 통해 원하청의 불공정거래를 막고 원하청의 성과공유제, 납품단가의 원가·물가연동제를 시행하라!
- 무분별한 해외공장 확장을 중단하고 제조업 기반강화를 위해 노력하라!
- 노사공동결정제를 도입하여 노동자 경영참여를 보장하라!

이러한 기조에 따라 중앙교섭과 대각선교섭 시 대자본에 요구할 공동요구안으로 다음과 같은 세부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노동자의 기본생활보장의 차원에서 “회사는 월급제 전환을 통해 고정급여를 확대한다”는 조항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총임금 대비 기본급의 비중이 40%에 불과한 현실에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조업단축과 휴업으로 인한 심각한 생활난을 겪고 있기 때문에, 기본급비중의 확대, 월급제로의 전환 등을 통해 노동자의 기본소득을 보장받기 위한 취지에 근거하고 있다.
둘째, 모든 해고의 금지와 총고용보장차원에서 “회사는 해당사업장의 비정규직을 포함한 현재 총고용인원의 고용을 보장한다. 회사와 노조는 조합원의 고용안정을 위해 산별고용안정기금을 제정, 운영한다. 노사는 통상급의 0.5%를 각 출연하되, 기금운영을 위한 세부내용은 별도로 정한다”는 조항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경기불황으로 인한 감산, 휴업, 복지축소,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이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는 인식에서 나온 요구사항이다. 특히 비정규직 우선해고, 무기한 휴업 등 비정규직에 대한 정리해고가 암암리에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포함한 모든 해고의 금지와 총고용의 보장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고용안정기금의 도입은 고용보험제도가 워낙 부실하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중소영세사업장과 비정규직 실업자들에 대한 지원 부재 등의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재정적 보완장치를 마련한다는 의미를 지니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산별고용안전망의 구축을 위한 계기로 활용하자는 취지이다.
셋째,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만들기 차원에서 “심야노동의 철폐와 일자리창출을 위해 교대제를 개선한다. 연 노동시간을 2,200시간 이하로 제한한다”는 조항을 요구하고 있다. 주40시간제 시행에도 불구하고 년 2,350시간이라는 장시간노동의 현실을 개선하고, 자동차산업에서 8H+8H방식의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을 앞당기는 계기를 이번에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제기된 것이다. 또한 1일 8시간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재의 조업시간을 고려하고 이후 경기가 좋아질 때 노동시간이 다시 연장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년 2,200시간의 노동시간상한제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넷째, 재벌잉여금의 사회 환원 차원에서 “1천억 이상의 잉여금을 보유한 회사는 잉여금의 10%를 경제위기극복을 위한 특별기금으로 출연한다”는 조항을 요구하고 있다. 심각한 경제위기상황에도 불구하고 10대 재벌은 2백조 원에 가까운 잉여금(사내유보금)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중소기업은 심각한 자금난과 조업단축에 따른 부담, 경제위기에 따른 납품단가의 추가인하 압력 등 심각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1천억 이상의 잉여금을 가진 대기업은 현재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고통을 함께 나누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10%의 특별기금을 조성하여 비정규직과 협력업체에 대한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취지이다. 이렇게 조성된 특별기금은 비정규직의 고용유지와 중소협력업체에 대한 납품단가의 인상, 자금난에 시달리는 업체에 대한 무이자대출 등을 통해 경제위기의 극복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섯째, 제조업 기반강화와 노동자 경영참여의 차원에서 “회사는 해외공장 신·증설, 제조업종 외의 투자를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으며, 노사공동결정제도를 도입한다”는 조항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빅3의 몰락은 외형의 확장이 곧 경쟁력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제조업의 국내기반과 기술기반이 취약하면 자동차업체의 양적 성장이 아무리 급속하게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위기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해외공장에 대한 규제, 국내생산체계의 혁신, 재벌의 투명경영을 위해 실질적인 노사공동결정제도를 도입하여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금속노조의 입장이다.
여섯째, 올해에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금속산업의 최저임금인상차원에서 “회사는 금속산업 최저임금을 월 0000 원으로 한다”는 요구안을 제시하고 있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저임금노동자의 최후보루로서 산별최저임금의 인상을 통해 격차 해소와 생계보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 금속노조의 입장이다. 특히 정부와 자본이 최저임금제도를 무력화하거나 개악하려는 현재의 정세에서 금속노조가 기존의 성과를 지키고 확대한다는 차원에서 산별최저임금의 인상이 요구안에 포함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금속노조 내외적으로 많은 논란이 제기되고 있지만, 임금인상차원에서 “회사는 월 0000원의 임금을 인상한다”는 조항을 요구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액수는 민주노총의 올해 표준생계비 산정치와 교섭전략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금속노조의 고민과 쟁점은 무엇인가?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금속노조는 2009년 핵심요구안과 대사용자요구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수많은 회의와 내부토론과정에서 확인되는 몇 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개인적인 의견을 제안하고자 한다.

1) 상황인식의 차이와 체감도의 내부편차

현 경제위기국면의 심각성에 대해 부정하는 이는 없다. 위기의 파고에 따라 정부와 재벌의 전략은 달라질 수 있지만, 이 기회를 이용하여 구조조정의 칼날을 들이밀면서 민주노조운동의 양보와 무력화를 시도할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겪고 있는 고통의 수준이 다를 뿐만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아니 더 나아가 쌍용차와 현대차의 조합원이 느끼는 고용불안의 강도가 다른 것이 또한 현실이다. 경제위기의 현실적 파급력에 대한 체감도의 차이는 각 사업장의 대응방안에 있어 심각한 편차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예년과 같은 일정표에 기초한 투쟁과 교섭전술의 배치는 무의미한 것이 될 수 있다.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는 실물경제의 위기 속에서 2009년 임단협 그 자체가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현실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 사업장의 각개약진을 조절하고 통일적이고 집중적인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9년 금속노조의 투쟁과 교섭 (토론안)’은 합법적 절차와 단계에 경도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2년간의 중앙교섭 실패와 조직력의 약화라는 주체적 요인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현 경제위기는 자본과 정부까지 ‘비상체제’를 선언할 정도로 긴박한 국면이다. 이러한 상황인식에 기초해 볼 때, 금속노조 내부편차를 줄이기 위한 통일적인 교섭과 투쟁의 조기전선 구축이 반드시 필요하다. 금속노조의 집중적인 대응은 지도부뿐만이 아니라, 지부와 지회, 그리고 개별조합원들의 단결과 소통에 기반하여 구축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영세사업장의 미조직노동자, 수많은 비정규직, 그리고 우리의 이웃인 서민들이 금속노조에게 바라고 있는 최우선의 과제이다.

2) 지도부의 결의와 의견그룹의 책임 있는 태도

금속노조가 경제위기의 쓰나미를 헤쳐 나가고 구조조정의 한파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존의 관성과 불신을 극복해야만 한다. ‘특단의 시기에는 특단의 결의’가 필요하듯이, 금속노조의 책임단위인 지도부와 각 의견그룹들은 정파적 이해와 판단보다는 현 국면이 금속노조의 생존과 혁신을 가름하는 시험대라는 사실을 냉엄하게 인정해야 한다. 경제위기 국면이 시작된 지난 3개월 동안 금속노조는 경제위기의 현실적 파급효과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조직적 논의 보다는 사소한 사건들로부터 기인한 소모적인 ‘낙인찍기’에 매몰되어 서로간의 오해와 불신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 책임의 일단은 분명 현재의 지도부에 있지만, 이를 두고 누구의 탓으로 규정하면서 안주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이미 수많은 미조직 비정규직은 거리로 내몰리고 있으며, 중소영세사업장은 아무런 대책 없이 시장에 방치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지도부와 의견그룹 사이의 이전투구 식 논란 속에서 우리의 현장은 금속노조로 집중되는 단결과 결의보다는 사용자의 회유와 ‘기업 살리기’에 현혹되고 있다. 경제위기 국면이 단기적인 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합불황과 세계경제의 침체로 인해 장기화 될 경우, 만일 금속노조가 기존의 관성적 대응에 머무르고 각 의견그룹이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한다면, 금속노조의 생존 그 자체가 위협받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에 대한 우리 모두의 경각심이 요구된다.

3) 일자리 지키기/나누기/만들기를 위한 고용연대전략

현 위기국면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조합원들의 동의와 서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고용연대전략’을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금속노조의 핵심요구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총고용보장’은 조합원의 정서와 고용불안의 현실을 고려할 때, 필수불가결한 요구안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총고용보장’이라는 요구가 ‘기존 취업자의 고용유지’에 머물고, 암암리에 자행되고 있는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의 정리해고를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이러한 선언은 금속노조 조합원들의 ‘알리바이’에 불과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금속노조는 고용문제에 대한 대안마련에 있어 보다 진정성을 지닌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물론 매일경제와 중앙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이 ‘일자리 나누기’라는 의제를 선점하고 이를 통해 우리를 전면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일자리나누기’는 이미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으며, 이러한 이데올로기 공세에 대해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금속노조는 경제위기 국면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고용조정에 대해서 ‘고용연대전략’의 관점에서 공세적인 대안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소위 ‘일자리 나누기’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을 불식하고 일자리를 지키면서 나눌 수 있는 방안은 물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금속노조의 종합적 대안 모색과 이를 핵심요구안으로 하는 집중적인 공론화와 투쟁이 전략적으로 배치되어야 한다. 일자리를 나누는 것은 노동시간과 일거리를 공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일자리를 위협하는 요인들이 제거되는 고용유지 방안을 전제로 하는 것은 물론, 자본이 조장하고 있는 노동시간과 물량의 편차를 최소화하기 위한 우리 스스로의 ‘나눔의 실천’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적정노동시간에 대한 노동조합의 조정과 통제가 가능해지고, 바로 이러한 과정을 거쳐 새로운 일자리는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4) 사회연대전략으로의 통합과 집중

2009년 금속노조의 핵심요구와 대(對)사용자 요구는 나열식으로 배치되어서는 안된다. 현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특단의 결의와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요구안 또한 조합원들의 이해와 요구를 집약하고 투쟁과 교섭을 집중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또한 사회정치적 전선의 구축을 통해 국민과 서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고 사회적 공론화가 가능한 의제를 중심으로 대정부 요구와 대사용자 요구가 통일적으로 배치되어야 한다.
현 국면에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의제는 고용과 일자리이고, 이를 공세적으로 제기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고용연대’라는 관점에서 총고용의 유지, 노동시간 단축, 교대제 변경과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 고용안정기금의 조성 등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경제위기는 서민과 노동자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금속노조는 사회적 위기에 대한 처방책으로 ‘사회연대전략’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고용연대’는 물론, ‘소득연대’, ‘산업연대’, ‘생활연대’를 핵심 축으로 하는 적극적인 대응방안을 준비하고 제시해야 한다.
‘소득연대’는 임금수준의 인상을 둘러싼 논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단축에 따른 실질임금의 보전과 수준향상, 시급제폐지와 월급제로의 임금제도의 질적 개선, 국민기본생활의 보장을 위한 공적자금의 투입 등에 대한 대안제시를 통해 공세적으로 제기할 수 있다.
한편 ‘산업연대’는 불공정하도급거래의 개선과 공정거래법의 강화라는 논의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재벌잉여금(사내유보금)의 사회 환원을 통한 산업단위 중소협력기금의 조성은 물론, 정부와 금융기관의 정책자금 및 대출자금의 지원이 그 결정기준으로 ‘고용안정과 창출지표’를 삽입하는 동시에, 노동친화적 생산체계의 구축을 위한 ‘산업혁신위원회’를 노사공동으로 구성하는 것이 포함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생활연대’는 각 사업장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사회의 주민과 서민을 위해 기업복지문화시설의 개방화는 물론, 사내복지기금의 사회적 기금화를 통해 노동조합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고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시혜적 관점에서 약자에 대한 지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스스로 지역사회의 책임 있는 주체로서 역할을 다하는 구체적인 ‘사회활동의 실천’ 또한 적극적으로 배치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위기시대 ‘사회공헌활동’의 주도권을 기업에게 넘기지 말고 ‘생활연대’의 관점에서 우리가 그 실천주체가 되어야 한다.

결론을 대신하여

민주주의적 조직이 공론화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경제위기 국면에서 금속노조는 기존의 관성을 깨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 ‘연대와 실천’이라는 산별노조의 본령에 서야 한다. ‘혁신과 도약’을 위해서는 금기(禁忌)할 내용이 없다. 구조조정과 고용조정이라는 어려운 조건이 우리를 위축시킬 수는 있지만, 이를 돌파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멈출 수는 없는 것이다. 상황이 냉혹한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위기를 기회로’ 전화시킬 수 있는 힘과 계기는 결코 외부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위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 보다는 생존의 위협에 처할 수도 있는 금속노조를 ‘어떻게 제대로 다시 세울 수 있는가’라는 우리 모두의 성찰과 모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