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시대 노동조합, 기득권유지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사회연대의 길로 나갈 것인가?
복지국가시대 노동조합, 기득권유지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사회연대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
이상호(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연구위원)
1.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는 복지국가논쟁
복지국가의 비전과 전망을 둘러싼 논쟁이 2011년 한국사회의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2012년 정치판의 최대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복지국가를 어떻게 설계하고 이를 추진할 것인지를 두고 진보개혁진영은 몰론, 각 시민사회단체와 여야 정치권 또한 자신의 입장과 내용을 제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노총을 비롯한 민주노조운동세력은 복지국가의 발전에 있어 핵심적 주체로서 역할을 수행한 서구사회 노동조합과 달리, 복지국가의 구축과정에서 핵심적 의제는 무엇이며, 노동조합은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과 책임을 수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를 제대로 주도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현 시기 복지국가논쟁은 단순히 복지정책과 복지프로그램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진보적 사회패러다임의 구축방안을 아우르는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지난 20년간 한국사회를 옥죄어온 신자유주의의 폐해와 시장만능주의의 횡포를 극복하고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보편적 복지국가의 실현은 반드시 거쳐야 할 관제고지이다. 특히 노동자와 민중의 인간적인 삶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민주노조운동에게 ‘행복한 삶(복지)’는 버릴 수 없는 사회모델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민주노조운동은 현재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고 있는 보편적 복지국가논쟁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자신의 입장과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할 상황에 서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진보적 사회운동의 중심세력이고 사회개혁의 주체세력으로 자임해온 금속노조 또한 현재 사회적 화두로 제기되고 있는 복지국가의 비전과 전망에 대한 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자신의 사회적 위상에 맞는 역할과 책임을 반문해보아야 시점에 서 있다.
2. 보편적 복지국가논쟁에서 노동의 ‘복원’이 지닌 필요성과 의미
1) ‘운동없는 복지국가’와 노동운동의 ‘방기’
정치권과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현재 논의되고 있는 ‘보편적 복지국가론’은 잔여적 복지의 수준과 범위에 제한되어 있던 한국사회의 복지문제에 대한 논의의 지평을 심화, 확장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란을 넘어서서 복지국가의 제도적, 정치적 차원으로까지 논의가 넓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선거 시기나 특정 사안에 매몰되었던 과거의 모습과는 분명 다른 국면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복지국가의 실현전략을 논의하면서 ‘복지의제를 중심으로 한 집권플랜’과 연동시키는 정치공학적 구도에 갇히거나, ‘재원마련을 위한 조세개혁’과 같이 정책적 유효성에 집중되고 있다. 특히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주목해야 한다.
첫째, 제 정치세력과 전문가들이 주도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이러한 ‘복지국가논쟁’은 아래로부터의 적극적인 실천과 광범위한 대중적 운동의 필요성을 주목하지 못하고 있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복지국가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복지동맹에 기반한 제 정치세력의 연합이 중요하긴 하지만, 복지국가로의 이행과정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기득권층의 저항과 반발을 극복할 수 있는 대중운동의 활성화와 주체적 역할이 제대로 설정되지 못하고 있다.
둘째, 복지국가론의 핵심의제인 노동문제가 주변화되고 노동조합의 역할과 책임이 지닌 중요성이 논의되고 있지 못하다. 서구 복지국가의 경험으로 볼 때,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보편적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가장 든든한 우군인 동시에, 자신의 요구와 책임을 실질적으로 담보하는 핵심주체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여전히 노동대중을 복지혜택의 시혜대상자로 치부하거나, 노동조합을 기득권 유지세력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복지국가의 실현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적극적 역할과 사회적 책임이 요구된다는 것을 부정하는 이들은 없다. 이와 같이 민주노조운동진영은 보편적 복지국가의 사회적 공론화과정에서 노동문제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사회적 약자와의 사회연대운동을 실천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
2) 노동문제의 중심성과 노동조합의 주도성
과연 그렇다면 노동문제는 복지국가의 논의에서 왜 중요하며, 노동조합의 주도성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첫째, 노동의 저항과 압력에 의해서 복지국가의 수준과 경로가 결정되었다. 서구사회의 복지국가발전의 역사적 경험은 각 국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보이고 있지만, 공통점은 시장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감소시키고 국가와 자본친화적인 전횡을 막아내는 노동의 저항과 압력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실제로 이러한 노동과 자본의 세력관계 및 이에 영향을 받아 결정된 법제도의 발달정도에 따라 각국의 복지국가모델이 특성을 달리하게 되었다.
둘째, 복지국가에 있어서 노동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노동시장이 소득 분배의 핵심영역이기 때문이다. 소위 자산소득은 부동산이나 대규모의 부를 소유한 소수의 ‘가진 자’에게 집중되어 있는 반면, 한국사회의 대다수 사람들은 시장임금과 사회임금(사회보장기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시장임금은 1차 분배가 이루어지는 노동시장에서 노동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인 반면, 사회임금은 조세와 복지를 통해 2차적으로 이루어지는 재분배영역이다. 따라서 시장임금에 영향을 주는 노동시장정책은 우리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소득양극화 문제해결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 의제이다.
셋째, 노동소득은 지속가능한 복지국가의 형성을 위한 중요한 원천이다. 노동시장에서의 소득증대는 빈곤층 확대에 따른 복지지출을 줄여주는 동시에, 재정능력을 향상시켜서 복지국가의 보편적 혜택을 확대시키는 토대가 되었다. 노동시장정책에 따른 복지지출 감소 및 재정투입 확대는 각국의 복지제도 및 조세정책에 따라 그 영향력이 다르게 나타났다. 우리의 경우 높은 비정규직 및 저소득 자영업자 비중, 낮은 고용률, OECD 최고의 저임금 노동자 비중 및 그에 따른 근로빈곤층 확대 등으로 인해 향후 복지재정부담의 증대 및 재원확보의 어려움 등으로 보편적 복지국가의 유지발전에 큰 장애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노동소득의 ‘상향평준화’와 ‘격차축소’는 단순히 임금비용의 부담문제가 아니라, 복지국가재원의 지속가능성문제의 관건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넷째, 보편적 복지국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초기업적인 노동조직화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보편적 복지는 기본적으로 그 혜택을 누구나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포괄성원칙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경우 노동조합의 실질적 형태가 여전히 기업별로 분절화되어 있기 때문에, 기업복지는 물론, 사회복지의 혜택 조차 기업소속 여부에 따라 큰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기업별 노조의 교섭과 투쟁을 통해 확보된 기업복지가 보편적 복지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에 대한 복지의존성이 강화되면 될수록, 국가차원의 보편적 복지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게 되며, 자신의 복지욕구를 기업의 지불능력과 성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 바로 기업별 노사관계의 함정인 것이다. 한마디로 보편적 복지국가를 실현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무엇보다 먼저 실천해야 할 것이 바로 기업별 노조의 관행을 깨고 기득권을 버리는 것이다.
3. 사회개혁주체로서 노동운동의 반성과 사회연대전략의 필요성
1) 노동주체의 재형성과 노동운동의 재활성화
이 글의 초입에서 이미 밝히고 있듯이 보편적 복지국가의 구축과정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원마련방안, 조응하는 정치체계와 복지정책의 세부내용이 아니라, 보편적 복지국가의 가치와 비전을 실천할 수 있는 주체역량의 형성에 있다. 서구의 보편적 복지국가의 발달과정이 진보와 보수의 타협, 즉 양날개에 의해서 추동되었고, 이 과정에서 자본의 저항과 사보타지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조직노동의 힘과 타 계층계급에 대한 연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적 경험과 현실적 상태를 되돌아 볼 때, 보편적 복지국가의 실현을 위한 사회적 연대에 민주노조운동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민주노조운동에게 ‘연대’란 익숙하면서도 불편한 가치이다.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을 위해서라도 제 사회계층과의 연대가 필수적이라고 알고 있지만, 현실적 조건에 기반한 조직이기주의적 속성을 극복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경험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특히 자신의 처지와 상황이 녹녹하지 않을 때, 타인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민주노조운동은 지난 20년 동안 연대의 가치를 버리지 않고 끊임없이 이를 실천하는 오랜 여정을 걸어왔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수많은 연대투쟁을 벌렸고 그 성과로 1995년 노동자연대의 틀로서 민주노총을 건설하기도 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평등사회를 건설하는 사회비전을 가진 민주노조운동은 한국사회의 변혁을 위한 주체세력인 동시에, 억압받는 민중(소외된 대중)들에게 신뢰받는 연대세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연대의 가치는 98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로 인해 파편화되고 협소화되고 말았다. 노동자의 연대투쟁은 민주노총의 총파업으로 형해화되고, 민중연대활동은 집회지원으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민주노조운동의 ‘연대’는 ‘우리만의 리그’에서 통용될 뿐, 사회적 약자와 계급내 소수자에 대한 ‘사회연대’는 서서히 실종되고 말았다. 대기업 조직노동자에 대한 따가운 사회적 여론은 이를 반영하는 것이고, 민주노조운동이 봉착하고 있는 사회적 고립이 이러한 상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이 민주노조운동은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를 거치면서 자본과 국가로부터 핍박받는 사회적 약자의 벗으로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며, 오히려 조직노동자의 정치경제적 이해를 대변하는데 몰두하는 ‘이익집단화’되고 있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는 실정이다. 왜 이렇게 되고 있는 것일까? 이유는 어떻게 보면 분명하다. 민주노조운동이 전체 노동자를 대표하지 못하고 조직노동자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조운동이 민중과 서민의 든든한 연대세력이 되지 못하고 기득권의 유지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조운동이 사회적 약자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긴 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말로 표현할 수 있지만, 한마디로 민주노조운동은 현재 ‘내부자’의 이해와 요구에 갇혀 있다. 누군가 진정한 연대는 ‘타자’와의 연대라고 했다. 그렇다면 민주노조운동이 왜 내부자가 아닌 타자(외부자)와의 ‘사회적 연대’를 왜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지를 사회연대전략 논란의 사례를 통해 확인하고 보편적 복지국가의 실현을 위한 노동조합의 역할과 책임을 반문해보도록 하자.
2) 사회연대전략의 경험과 현재적 의미
민주노조운동 내부에서 사회적 연대의 실질적 내용을 둘러싼 논란의 시발점이 된 것은 지난 2007년 1월 민주노동당 대표의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불붙은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사업’이다. 기존 국민연금 가입자(정규직)의 보험료 일부 인상을 통해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미가입자(비정규직)에게 연금혜택을 확대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사업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내부격차를 보험료연대를 통해 극복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실천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소위 ‘사회연대전략’을 둘러싼 진보진영 내부의 뜨거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사회연대전략’의 좌초 경험은 민주노총이 주장하고 있는 ‘노동을 존중하는 복지국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봉착할 수밖에 없는 문제를 예고하고 있다. 특히 정규직의 ‘책임론’과 ‘양보론’은 아마도 민주노총이 제안하고 있는 ‘노동존중복지국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부딪히게 될 내부비판일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이 ‘보편적 복지’를 목표로 하는 노동존중사회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미조직, 비정규직, 영세상공인, 빈민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와 공감’은 반드시 필요하다. 설령 그것이 대기업 정규직의 일정한 ‘인내와 희생’을 전제로 하더라도 신자유주의적 양극화를 극복하고 보편적 복지국가를 실현하는 길이라면 기득권을 버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민주노총은 ‘노동귀족론’에 위축되고 ‘정규직책임론’으로 고립되는 상황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민주노조운동은 보편적 복지국가론의 이론적이고 담론적인 논란에 매몰되기 보다는 사회적 약자들이 민주노조운동의 존재감과 연대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실천전략을 통해서 비로소 민주노총의 ‘사회연대에 기반한 노동존중복지국가’는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회비전을 주도하는 위상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4. 노동이 존중받는 복지국가를 위한 노동운동의 사회연대전략
과연 그렇다면 민주노조운동은 ‘노동존중복지국가’를 위한 사회연대전략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아직 민주노총은 여기에 대해 구체적인 답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 참고로 민주노총이 진보신당 당대회 토론회 ‘진보정치가 복지다’에 참가하면서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신자유주의 및 시장만능주의의 대항마로 노동존중 복지국가를 개념규정하고 이를 지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중심축으로 노동기본권과 복지권을 제시하고 있다. 이어 현재의 복지국가논쟁에서 적어도 복지권 만큼 노동기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생산영역에서의 노동정책을 핵심적 의제로 언급하고 있다. 결국 정규직노동과 비정규노동간의 불평등이 한국사회의 양극화의 주된 내용이고 갈등의 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노동기본권의 실현을 위한 노동정책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논의는 사회를 바꾸기 위한 ‘실천’전략과 맞닿아야 하며, 민주노총에게 이를 위한 계급적 ‘책임’과 역사적 ‘사명’이 부여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반문해보야 할 것은 민주노조운동은 사회적 계급으로서 ‘책임’과 ‘사명’을 다하기 위해 보편적 복지국가의 실천전략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개인적 소견이지만 본인은 ‘보편적 복지국가’의 단초를 마련하기 위해 민주노조운동이 지금부터라도 ‘소득연대’, ‘고용연대’, ‘생활연대’, ‘복지연대’로 세분화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연대전략’을 진정성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1) 격차와 차별해소를 위한 소득연대
민주노조운동이 계급적 책임을 다하고 계층간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업사회에 대한 의존성을 극복하고 소득연대를 실천해야 한다. 민주노총소속 노동자의 80%가 산별노조에 소속되어 있고 산업별 노조라는 간판을 달고 있을지 모르지만, 실상은 여전히 기업별 노동조합의 연합체 그 이상도 아니다. 모름지기 산별노조의 일차적 목표는 개별노동자는 물론, 기업내 노동자집단이라는 경계를 넘어서 초기업적인 연대투쟁을 통해 모든 노동자들이 임금과 노동조건의 보편적 기준을 향유하도록 만드는데 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임금과 노동조건은 물론, 복지혜택 조차 기업의 규모와 성과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여전히 기업별 임단협에 사활을 걸고 있고, 일부 재벌대기업의 경우 기본급의 인상은 뒤로 한 채 연말성과급에 목을 매는 모습을 묵도하고 있다. 이 정도라면 가히 경제적 실리만을 추구하는 노동조합, 아니 회사의 종업원조직과 다름 아니다. 이와 같이 일부 재벌대기업의 노조간부와 조합원이 자본의 ‘떡고물’에 허우적대고 있는 사이 수많은 중소영세기업의 저임금, 비정규노동자들은 바로 그 ‘잔치상의 희생양’이 되었다.
이제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그 길은 조직화된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자원과 역량을 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공유하고 이를 통해 근로빈민과 영세사업장의 임금과 노동조건, 생활수준을 끌어올리는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그럴 때에만 다수의 미조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의 정당성을 확인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노동조합과 일치시킬 수 있다. 하지만 대기업‧정규직의 자원과 역량을 중소기업‧비정규직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끌어올리는 데 쓴다는 것은 그만큼 조직된 대기업 노동자들의 인내와 희생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대기업의 조직노동자의 자원과 역량 또한 일정한 제약을 가지고 있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라고 할 때, 모두를 다 만족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공허하고 무책임한 약속일 뿐이다. 일정기간 어느 한쪽을 선택하고 그 곳에 힘을 집중해야 제대로 일이 성사된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소득연대의 전형적 사례가 바로 북구유럽이다. 북구유럽의 노조운동은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을 철저히 실현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연대임금제도를 실시해 왔다. 사실 이들 나라에서도 대기업 노동자들은 소속기업이 지불능력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중소기업에 비해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연대임금제도를 선택했다. 노동조합이 자본과 교섭할 때 대기업, 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전체 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정하고서 그 수준에 못 미치는 기업이나 부문의 임금을 끌어올리는 데 힘을 기울였다. 달리 말하면,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수도 있었던 대기업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수준을 일정하게 자제하는 대신에, 그 인내의 대가로 전체 노동자의 평균소득수준을 끌어 올리는 다양한 방법을 개발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의 산별노조가 고민해야 할 사회연대전략의 첫걸음은 바로 연대임금제도이다. 물론 그 구체적인 방식은 다양하게 고민할 수 있다. 즉 ‘한국형’ 연대임금제도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 본질은 같다. 상대적으로 자원과 역량이 많은 고소득 조직노동자의 힘으로 그렇지 못한 노동자들의 임금과 소득을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생각해 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산별노조가 임금인상을 요구할 때 초과근로와 연말성과급의 일정수준을 넘어서는 부분에 대해 연대기금이나 격차해소기금으로 조성하여 산하 저임금사업장의 임금보전에 사용하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방식의 임금연대는 존재할 수 있다.
여기에서 시야를 조금 더 확장해서 근로빈곤층과의 소득연대를 구상할 수 있다. 대기업‧정규직과 중소기업‧비정규직 사이의 이러한 연대를 임금연대라고 한다면, 사회임금의 확충을 통한 조직노동자와 근로빈곤층과의 연대는 소득연대라고 규정할 수 있다. 사회임금이란 다른 게 아니다. 보편적 복지를 위한 재원마련에 조직노동자와 고소득노동자들이 더 많이 기여하고 이를 통해 복지혜택이 보다 많은 서민대중과 근로빈곤층에게 확대된다면 그것이 바로 소득연대의 모범사례가 되는 것이다.
2) 불안해소와 위험공유를 위한 고용연대
보편적 복지국가의 토대를 굳건히 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고용연대전략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고용문제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전략은 지속가능형 고용모델과 다층적 고용안정체계에 기반한 고용연대전략을 중심에 두고 추진되어야 한다. 일단 기업경영이 위기국면으로 치닫거나, 구조조정을 통한 고용조정이 본격화되고 난 후 노동조합이 취할 수 있는 대응은 고용유지를 중심으로 한 수세적 방어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고용문제에 대한 노동조합의 개입전략은 교섭차원과 고용의제별로 다층적이고 중첩적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고용문제에 대한 교섭차원을 기업, 산업과 지역, 국가단위로 다층적으로 구성하고 핵심고용의제인 고용유지, 고용안정, 고용창출을 위한 세부사항을 노사가, 더 나아가 노사정이 중층적으로 교섭하고 협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노동조합의 개입기제는 다층적 고용안정체계의 구축이라는 목표로 현실화될 수 있다.
한편 노동조합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장년과 청년간의 ‘일자리나누기’는 물론, 지속가능한 고용을 위한 ‘고용연대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이러한 고용연대전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고용안정을 위한 다양한 모색과 함께, 일자리의 공유와 창출을 위한 종합적인 제도개혁이 요구된다. 한편 한국사회의 고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양한 법제도적 개혁과제가 노동조합 앞에 놓여 있지만, 고용연대전략을 실현하기 위해 노동조합 스스로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실천방안 또한 마련해야 할 것이다. 장시간노동체제,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의 확산, 일상적 구조조정과 고령화추세 등과 같은 한국사회의 현실 속에서 노동조합이 핵심적으로 추진해야 할 실천과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고용연대전략 실현을 위한 첫번째 과제는 고용안정과 해고의 최소화를 위해 노동시간단축과 일자리공유를 원칙으로 하는 능동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고용조정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용안정협약을 마련하고, 고용유지를 목표로 하여 기존의 법제도적 고용안정조치(고용보호조항, 고용유지지원금제도, 노동시간단축과 근무형태변경 등)을 최대한 활용하는 노사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특히 고용조정을 배제하는 실노동시간단축과 소득안정성을 담보로 한 비용절감방안, 고용유지를 전제로 한 순환휴무 및 휴직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 또한 서구의 퇴직보상제도와 점진적 퇴직제도의 경험을 바탕으로 퇴직희망자와 고령자의 자연스러운 퇴직을 유도하기 위해 퇴직 이후 생활보장과 재취업을 위한 퇴직안정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두번째 과제는 고용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현행 고용관련 제도의 전면적인 개혁과 함께, 노동조합이 노사공동, 혹은 독자적으로 고용안정센터를 운영하고 기금을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노동자의 고용상태(미취업, 취업, 단기실업, 중장기 실업 등)에 따라 소득안정과 직업안정을 동시에 담보할 수 있는 법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미취업노동자에 대한 직업훈련 지원 및 취업지원, 취업자에 대한 고용안정사업, 단기실업자에 대한 실업급여, 중장기실업자에 대한 실업부조 등과 같이 고용보험제도의 기능과 역할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기존 고용보험제도의 소득보전 및 고용안정적 조치를 보완하기 위해 보험료의 현실화와 같은 실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해고와 퇴직의 위험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노동조합 독자적으로, 아니면 노사공동으로 고용안정센터를 운영하고 고용안정기금을 별도로 조성해야 할 것이다.
세번째 과제는 구조조정국면에서 고용조정의 위험을 가장 심각하게 받는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자에 대한 대책이다. 먼저 기간제법과 파견법을 비롯한 비정규직 관련 법안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이 요구되지만, 전면적인 법개정은 일정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이라도 추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정규모 이상의 기업을 대상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유예하는 기업으로 하여금 이에 대한 분담금을 납부하도록 하는 벌칙조항과 정규직화 전환을 실행하는 기업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유인조항을 포함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전환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운영이 현실적으로 예산제약상 어렵다고 한다면, 적어도 4대 사회보험료의 일정기간 면제, 혹은 보조금지급 등의 방식으로 정규직전환을 위한 인센티브를 정부가 제공하거나, 일정비율 이상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있는 기업에게 정부조달계약시 입찰에서 배제하거나, 정규직 전환기업을 우선 입찰대상으로 만드는 방안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는 청년실업을 줄이기 위해서는 민간대기업과 공공부문에서 청년고용할당제도를 실시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청년고용을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규정하고 일정규모에 따라 청년취업자의 수를 규정하고 이를 기업이 의무적으로 고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규정을 준수하지 않는 기업의 경우 벌칙조항으로 타 기업의 청년고용에 필요한 재원마련에 소요되는 비용을 분담해야 할 것이다.
한편 실노동시간단축을 통한 고용창출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노동시간 관련 법제도의 혁신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현행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시간 규정을 전면적으로 개정하고 법정노동시간에 대한 현행 조항을 보다 엄격하고 세밀하게 규정해야 한다. 특히 유명무실한 주당 12시간으로 제한된 연장근로규정을 제대로 준수하기 위해 예외조항을 대폭 축소하고 총노동시간을 기간별로 제한하는 노동시간상한제를 빠른 시일 내에 도입해야 한다. 또한 한국사회가 봉착하고 있는 일자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노동시간의 단축방안을 포함하는 고용문제 전반에 대한 사회적 협의기구가 필요하고 이를 통한 사회적 합의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방안은 실노동시간단축의 단축을 통한 질 좋은 일자리의 창출이라는 핵심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또한 노동시간단축에 따른 외부효과(임금소득손실, 노동시간의 유연화, 생산투자의 위축, 기업구조변동 등)에 대한 대책을 모색하고 고용보험 및 사회보험제도의 개선을 비롯한 기업 및 노동자지원정책을 새롭게 재구성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조합은 향후 5년 내 주당 35시간 협약노동시간제도의 도입을 목표로 하는 종합적인 실노동시간단축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민주노조운동의 제 1의 실천과제로 설정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한편 장시간노동체제를 해소하고 고용창출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실노동시간의 단축과 청년노동자의 신규채용을 연계하는 방안을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3) 시민사회주체로 다시 서는 노동자의 생활연대
민주노조운동은 이제 시민사회와의 대척점에 서기 보다는 노동자는 물론, 서민대중의 생활공간이고 삶의 현장인 지역 및 공동체에 자신의 뿌리를 제대로 내려야 한다. 이미 울산, 창원 등 노동자밀집지역에서 노동조합과 노동단체들이 시민운동단체와의 결속과 협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지역공동체를 중심에 둔 다양한 형태의 생활연대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국가주도의 복지혜택에 의존하지 않고 노동자와 시민 스스로가 주도하여 지역차원에서 상부상조정신에 입각한 복리후생을 실천하고 체험한다는 점에서 시민사회운동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에도 큰 의미를 지닌다.
한마디로 지역공동체에 기반한 생활연대를 통해 노동운동의 전환과 시민사회운동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공동체는 사회연대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이다. 이러한 공동체에서의 연대경험이 지역, 계층과 계급, 더 나아가 국가로 확장된 것이 보편적 복지국가의 역사이기도 하다. 시장은 사람들을 승자와 패자로 구분하지만, 공동체에서 승자와 패자란 있을 수 없으며 말 그대로 운명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생존에 책임을 나눈다는 의미에서 상부상조와 협동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노동운동의 역사도 바로 이러한 생활공동체를 만드는 일에서 출발하였다. 우리보다 자본주의의 역사가 앞선 유럽에서 조차 초기 노동조합이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바로 조합원과 그 가족을 포함한 이들의 상호부조활동이었다. 정부의 실업보험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실직한 조합원의 생계를 도와주었다. 노동자들의 여가시간을 문화활동 프로그램으로 채운 것도 노동조합이었다. 즉 이 시기에 노동조합은 곧 노동자들의 생활공동체였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에 이미 스웨덴과 이탈리아에서는 동네와 마을에 노동자가 주축이 되어 ‘민중의 집’을 만들었다. 노동자들이 일요일이면 모여서 자발적으로 도와가면서 벽돌을 쌓아 만든 이 민중의 집의 1층에는 주점을 겸한 식당이 차려졌다. 노동자들이 시간이 나면 찾아가 가벼운 마음으로 웃고 떠들며 노래도 부를 수 있는 공간이었다. 2층에는 커다란 강당을 만들었다. 거기에서 공개강좌를 열기도 하고 동네잔치를 벌리기도 하였다. 3층에는 진보정당과 노동조합, 진보언론의 지역사무실이 들어서거나 조합원들을 위한 생활협동조합의 상점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한편 이러한 ‘민중의 집’은 주로 회원제로 운영했다. 그런데 스웨덴 노동조합들은 모든 조합원이 최소 2년 동안 이러한 민중의 집 회원을 겸하도록 했다. 비록 ‘최소 2년 동안’이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일단 민중의 집 회원이 된 조합원들은 대개 계속 회원으로 남았다. 즉 스웨덴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하면서 자동으로 민중의 집 회원도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해서 노조 조합원들은 자연스럽게 지역 써클의 회원인 동시에, 생활협동조합의 조합원도 되고 지역공동체가 주관하는 공개강좌나 문화활동에도 참여하게 됐다. 이것이 바로 스웨덴 복지국가의 기초조직인 된 것이다.
지금 우리 민주노조운동에게 필요한 것은 보편적 복지국가의 토대가 되는 지역공동체의 생활연대를 실천하고 체험하는 활동이다. 단순히 노동상담을 하고 비정규센터라는 간판을 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동네와 마을에 사는 지역서민이 누구나 찾아와서 노동과 삶을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는 21세기 한국판 ‘민중의 집’을 만드는 것에서 생활연대의 첫걸음을 내딪을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 무엇을 고리로 삼아 이러한 생활공동체를 만들 것인가는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야 할 문제다. 하지만 이미 우리에게도 소중한 경험이 존재한다. 몇 몇 노동조합이 소비협동조합을 지역주민에게 개방하여 운영하는 경우도 있고, 유기농 먹거리를 중심으로 생활협동조합에 노동조합이 일 주체로 참여하여 운영하기도 하고, 뜻 있는 의료인들과 지역주민들이 힘을 합쳐 의료생활협동조합을 만들기도 한다. 서울 마포에 있는 ‘민중의 집’을 보라. 바로 이것이 지역공동체에 기반한 생활연대의 단초이다.
이러한 지역생활공동체를 모색하는 가운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이 일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사회운동은 ‘지역밀착’형으로 변화해야 하며, 노조운동은 ‘시민친화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직장이 서로 다른 노동자라 할지라도 퇴근하고 나서 같은 동네 주민으로 만나는 공간이 바로 지역이다.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들이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도 생활공동체이다. 따라서 민주노조운동은 조합원들이 가족과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지역생활 연대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조합 활동가들에게 진보적 생활공동체라는 새로운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비로소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는 자신들이 바로 보편적 복지국가의 실현을 위한 주요한 연대세력임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4) 기업사회와 경계를 극복하는 복지연대
보편적 복지국가의 실현은 당연히 복지연대를 전제로 한다. 복지연대의 핵심적 원칙은 공공사회복지의 확대와 고소득-고납세에 근거한 누진과세이다. 복지는 시장의 원리로 작동할 수 없으며,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특히 우리의 경우 공공부문의 확장과 공공성에 기초한 사회복지체계의 구축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보육, 교육, 의료, 주거 및 노후문제 모두 보편적 사회권에 속하는 영역이며, 인간의 존엄과 생존을 보장받기 위한 기본권에 속하는 복지연대의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기본적인 복지 조차 불균등하고 차별화되어 있다. 서구 유럽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보험료의 누진적 원칙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보장수준도 낮을 뿐만 아니라,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수많은 근로빈민과 저소득층이 존재한다. 이들을 위한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공공사회서비스의 제공주체를 확대, 강화하고 이에 필요한 재원을 누진과세의 원칙에 따라 법인과 개인들에게 할당하는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한편 우리의 경우 사회복지의 혜택은 자산 및 소득수준에 의해 결정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느 기업에 소속되는가에 따라 기업복지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소위 근로복지기금의 실태를 통해서도 명확히 확인된다. 현행 근로복지기금은 초기 도입 목표와 달리, 현재 수익성과 지불능력을 갖춘 대기업의 초과이윤의 혜택을 소속 노동자들만이 누리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1993년 도입된 근로복지기금은 노사협의를 통해 사업이익의 5%를 기준으로 자율적으로 기금을 조성하여 노동자의 주택구입, 장학금, 우리사주, 재난구호, 생활안정, 구판장 운영, 체육문화시설 등 각종 복지사업을 실시하는 제도이다. 사업주의 출연금에 대해 법인세 산정시 전액손비 처리되며, 근로자 수혜금액에 대한 증여세가 면제되는 세제혜택을 준다. 주로 1000인 이상의 대기업에서 기금설치율이 70%인 반면, 300인 미만 중소기업의 경우 설치율이 0.3%에 불과한 실정이기 때문에, 사실상 이 제도의 혜택은 일정규모 이상의 초대형기업에게 집중되고 있다. 특히 노동자에게 지원하는 금품과 지원금에 대해 비과세하고 있으며, 주로 혜택을 보고 있는 노동자(전체 노동자의 약 4%) 또한 대기업의 고소득자란 점에서 노동자의 실질소득격차 확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와 같이 근로복지기금을 비롯한 근로복지소득에 대한 과세는 도입 초기 전반적으로 낮은 노동자의 직접임금소득을 보완하기 위한 생활보조수단으로 의미를 지니고 있었지만, 제도적 장치 미비와 대기업 노사의 담합으로 인해 그 기능이 왜곡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상 지불능력으로 표현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불평등구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중소기업의 노동자간 실질적인 소득격차를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근로복지기금에 대한 과세성격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실제로 고소득 노동자가 소득세 및 사회보험료의 부담을 피하기 위한 방안으로 활용되거나, 기업으로 하여금 조세부담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향이 강하다. 예를 들어 생산직노동자의 연장 및 특근수당에 대한 비과세혜택은 과거에 소득보전기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재 장시간노동이 심각하고 양질의 일자리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오히려 초과노동을 조장하는 역기능이 발휘되고 있다. 사실상 소득세에 포함시키거나, 일정소득 이상인 경우 초과노동에 대한 누진과세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로복지기금에 대한 과세성격을 보다 분명히 하고, 과세기준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 사실상 임금소득의 수준이 낮고 법정복지의 혜택을 상대적으로 받지 못하는 중소기업과 소속 노동자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역진적 성격을 바꾸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또한 임금 뿐만 아니라, 복지혜택 조차 기업의 규모에 따라 편차를 발생시키는 사내복지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혁하여 초기업적 차원(지역산업단지, 혹은 협력업체를 포함하는 원하청공동단위)에서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적어도 사업이익의 5%로 규정된 근로복지기금 중 1%라도 기업차원이 아니라, 지역차원의 주민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사회복지문화사업에 출연하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4. 이제 노동운동의 ‘모험’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자.
몇 년 전에 민주노조운동의 위기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 유행처럼 회자되던 말이 바로 ‘성찰’과 ‘혁신’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민주노조운동의 주객관적 조건과 상태가 더욱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이러한 이야기 조차 주위에서 들리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우리가 일상과 관행을 쫒아가기에도 너무 바쁘거나, 아니면 세상의 변화에 대해서 무관심하기 때문이 아닐까?
2011년 복지국가의 뜨거운 논란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조운동이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것은 그 만큼 ‘절실함’과 ‘절박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보편적이던, 선별적이든 간에 복지국가의 의미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 문제에 대한 할 말이 있겠는가?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 오랫동안 임단협, 조직과 선거 등과 같이 익숙한 것들에 길들여져 왔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관성화되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습성과 관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하다. 새 것을 불러들이자면 그 전에 옛 것과 단호히 결별해야 한다.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이제라도 자신과 사회를 위해서 보편적 복지국가의 실현을 위한 사회연대운동에 나서야 한다. 이제까지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던 것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새 길의 앞에 무엇이 기다리는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우리의 오래된 옛 길이 잘못된 것만은 확실하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험’, 바로 ‘모색과 실험’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 다들 어려운 시기 ‘희망’을 찾고 있다. 모두들 타인에게서 그것을 얻고자 한다. 하지만 ‘희망’이 존재함을 발견하는 것은 오직 우리 자신이 ‘희망’이 될 때이다. 이제 우리 스스로가 ‘희망’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