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활동과 정치활동 분리론, 이제 버리자!
금속노조연구원 |
2012.05.01 00:00
노조활동과 정치활동 분리론, 이제 버리자!
- 노동조합이 집권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
공계진 노동연구원 원장
□ 총선결과는 진보정당에 대한 노동자들의 강한 경고
4.11 총선 후 거의 한달이 되어가고 있는 마당에 평가는 좀 뒷북치는 느낌이다. 그래서 형식을 갖추기 보다는 다음 말을 하기 위해서 잠깐 해보고자 한다.
총선은 진보정당에게 가혹함을 주었다. 통합진보당(현 진보당)은 13석의 의석을 얻었으나 노동자 도시인 울산과 창원에서 전멸하였다. 또다른 진보정당인 진보신당은 지역에서 한석도 못얻었을 뿐만 아니라 정당투표율도 2%를 넘기지 못해 결국 해산당했다.
두 개의 진보정당이 받아든 이런 결과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즉, 진보정당간 통합을 위한 논의가 길게 이루어지다가 결국 서로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을 때 이미 잉태되었던 결과인 것이다.
통합진보당이 노동자 도시에서 전멸하고, 정당득표율도 2004년에 못미치는 10.3%에 머물렀던 것은 진보신당과의 통합에 총매진하기 보다는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에 힘을 쓰면서 결국 진보통합을 성사시키지 못했고, 통합 후에도 노동자중심성을 견지하지 못한 것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 때문이었다. 진보신당이 굴욕적 해산을 당한 것 역시 진보진영의 단결이라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충분히 받아들이지 않고, 분열적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의 반영이다. 양당에 있는 동지들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에게 더 많은 마음을 주었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결과는 양당의 동지들의 염원과는 다르게 노동자들이 양당을 모두 배척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굴욕적’으로 살아남은 진영과 ‘굴욕적’으로 죽임을 당한 양당 진영은 이제 노동자들의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노동이 중심이 되는 진보정당의 재도약을 어떻게 이루어 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내놓아야 한다.
이 시점에서 살아남은 자와 죽임을 당한 자가 재통합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하지도 않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양진영이 고민하지 않으면 통합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의미도 별루 없기 때문이다.
□ 노동자와 노동조합, 뼈저린 자기 성찰, 절실!
양당의 잘못으로 인한 총선 결과이지만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은 제대로 사업했는가에 대해서 스스로 성찰해야 한다.
성찰의 목록에 왜 양진영을 압박해서 최악의 경우를 막지 못했나라는 것을 넣어달라는 또다른 고리타분함을 발휘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그런 압박은 할 만큼 했고, 또 지금 시점에서 그 얘기 해봤자 죽은 자식 뭐 만지기식이기 때문이며, 보다 중요하게는 노동자와 노동조합 역시 더 근본적인 것을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건의료노조에게 누가 될지도 모르지만 보건의료노조를 들먹이며 논의를 시작하려고 한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번 총선 때 귀중한 실험을 했다. 그 실험은 나순자 전위원장을 비례후보로 출마시키고, 전조합 차원의 당원가입 사업을 진행한 것을 말한다. 그 실험은 매우 빠른 시간내에 수천의 조합원들을 통합진보당에 가입시켰지만 나순자 전위원장의 비례순위는 11번이 되는, 그래서 19대 국회 기간에 나순자 전위원장이 국회의원이 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한 결과를 내며 끝났다. 이 실험을 간단히 평가(?)해보면, 실험이 나순자 전위원장을 비례 앞부분에 배치하는 것에 있었다면 ‘국회의원을 날로 먹으려 했다’라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귀중한 실험이었다는 평가도 나올 수 있는데, 그것은 ‘보건의료노조가 이런 기회를 활용하여 조합원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의 실험을 계기로 이후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이 일상적 정치활동에 나선다면 그 평가는 더 좋아질 수 있을 것이다.
두 개의 진보정당이 받아든 이런 결과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즉, 진보정당간 통합을 위한 논의가 길게 이루어지다가 결국 서로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을 때 이미 잉태되었던 결과인 것이다.
통합진보당이 노동자 도시에서 전멸하고, 정당득표율도 2004년에 못미치는 10.3%에 머물렀던 것은 진보신당과의 통합에 총매진하기 보다는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에 힘을 쓰면서 결국 진보통합을 성사시키지 못했고, 통합 후에도 노동자중심성을 견지하지 못한 것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 때문이었다. 진보신당이 굴욕적 해산을 당한 것 역시 진보진영의 단결이라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충분히 받아들이지 않고, 분열적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의 반영이다. 양당에 있는 동지들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에게 더 많은 마음을 주었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결과는 양당의 동지들의 염원과는 다르게 노동자들이 양당을 모두 배척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굴욕적’으로 살아남은 진영과 ‘굴욕적’으로 죽임을 당한 양당 진영은 이제 노동자들의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노동이 중심이 되는 진보정당의 재도약을 어떻게 이루어 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내놓아야 한다.
이 시점에서 살아남은 자와 죽임을 당한 자가 재통합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하지도 않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양진영이 고민하지 않으면 통합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의미도 별루 없기 때문이다.
□ 노동자와 노동조합, 뼈저린 자기 성찰, 절실!
양당의 잘못으로 인한 총선 결과이지만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은 제대로 사업했는가에 대해서 스스로 성찰해야 한다.
성찰의 목록에 왜 양진영을 압박해서 최악의 경우를 막지 못했나라는 것을 넣어달라는 또다른 고리타분함을 발휘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그런 압박은 할 만큼 했고, 또 지금 시점에서 그 얘기 해봤자 죽은 자식 뭐 만지기식이기 때문이며, 보다 중요하게는 노동자와 노동조합 역시 더 근본적인 것을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건의료노조에게 누가 될지도 모르지만 보건의료노조를 들먹이며 논의를 시작하려고 한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번 총선 때 귀중한 실험을 했다. 그 실험은 나순자 전위원장을 비례후보로 출마시키고, 전조합 차원의 당원가입 사업을 진행한 것을 말한다. 그 실험은 매우 빠른 시간내에 수천의 조합원들을 통합진보당에 가입시켰지만 나순자 전위원장의 비례순위는 11번이 되는, 그래서 19대 국회 기간에 나순자 전위원장이 국회의원이 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한 결과를 내며 끝났다. 이 실험을 간단히 평가(?)해보면, 실험이 나순자 전위원장을 비례 앞부분에 배치하는 것에 있었다면 ‘국회의원을 날로 먹으려 했다’라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귀중한 실험이었다는 평가도 나올 수 있는데, 그것은 ‘보건의료노조가 이런 기회를 활용하여 조합원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의 실험을 계기로 이후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이 일상적 정치활동에 나선다면 그 평가는 더 좋아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성찰모드로 들어가자. 이번 총선시 노동진영의 요구와 기대를 보면서 필자는 노동진영에서 ‘정치활동을 할 만큼 하고, 기대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다. 이는 보건의료노조 뿐만 아니라 다른 산별노조에도 해당된다. 하는 것(정치활동)은 쥐뿔같으면서 기대는 하늘같이 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좀더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평상시 정치와 관련하여 별 활동하지 않다가 후보선출시 진보정당이 갖고 있는 허점을 이용, 한탕하려는 것은 아니었는가 하는, 좀 심하게 느낄지 모르지만,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정치활동은 일상적으로 해야 한다. 매일 밥먹듯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정치활동은 조합내에서도 이루어져야 하지만 정말 정권을 잡아볼 생각을 갖고, 그 실현방법의 하나로 의회진출을 고려하는 것이라면 이전에 민주노조 일궜을 때 했던 식의 일상활동을 지역에서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인데 이런 것은 하지 않고 너무 큰 것을 바라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지역에서의 일상적 정치활동을 위해서는 조합간부들의 대 지역사업 역량을 높여내고, 지역사업에 결합시켜내야 한다. 그러나 어느 조합이든 지역사업을 위한 교육과 훈련은,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하면 ‘없었다’. 그런 이유로 우리 조합원들 아니 그 범위를 좀더 좁혀 조합간부들이나 활동가들의 경우 대주민사업에 대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지역에 나가면 거의 역할을 못한다. 심한 경우 주민접촉에 겁을 먹고 주민들에게 제대로 접근조차 하지 못한다. 그래서 준비정도가 이렇고, 실력도 낮은데 선거 결과에는 유독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지금까지 노동자 또는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에 대해 다소 시니컬한 말들을 쏟아내면서 성찰(?)해보았다. 논리적이 아니라 다소 감성적 표현으로 일관한 것은 이런 것을 통해 ‘정치활동을 제대로 하고 큰 소리치자, 그냥 악쓰거나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무게감있는 큰소리로 진보정치를 이끌어가는 노동자, 노동조합이 되자, 소위 진보정당에 대해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기대를 충족시키자’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 다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기치를 높이 들자!
앞의 성찰(?)의 결과가 좋은 방향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대안을 수립해야 한다.
아다시피 민주노총은 1995년 11월 11일에 창립되었다. 민주노총은 창립과 동시에 두가지를 선포했는데, 산별노조건설과 노동자정치세력화가 그것이다.
민주노총은 곧바로 자신들의 선포를 실행에 옮겨갔다. 그것은 민주노총 초대위원장이었던 권영길 현진보당 의원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동당의 창당(2000년 1월 31일)이다.
진보운동 역사에서 진보정당의 창당은 매우 의미있는 것이다. 그것을 민주노총, 즉 노동자들이 주도했다는 것도 역시 역사의 순리대로 간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거기에 멈추는 한계를 보였다.
한계의 핵심은 정치활동(집권을 위한 활동)을 민주노동당에게 아웃소싱(외주화)해 버린 것이다. 이는 ‘우리는 임단투 및 고용안정 투쟁 열심히 할터이니 당신들은 열심히 정치활동해서 집권을 실현하라’는 일종의 ‘노조활동과 정치활동의 분리론’이었다.
민주노총은 정치활동만 아웃소싱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정치적 주체로 설 수 있는 행위 자체를 방기했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정치활동을 아웃소싱했는데, 정치활동에 필요한 노동자의 정치의식 고양, 노동조합의 정치적 무장 등이 필요할 리 없기 때문이다.
이런 아웃소싱이 민주노총의 정치활동 부재 및 방기로 연결된 것이다. 그것은 노동조합 활동에서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통상 노동조합회의에서 진보정당 사업은 총선시 노동자후보 선정 등 아주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노동조합에서 당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면 ‘노동조합 활동이나 잘하지 엉뚱한 곳에 신경쓴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런 조합 분위기는 조합간부나 활동가들이 적극적으로 당 활동을 하는 것을 방해한다. 당 활동을 열심히 하면 정파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낙인찍히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것이 진보정당에 대한 한국노동운동의 현주소, 세상을 바꾸겠다고 만든 노동조합의 현주소이다. 아웃소싱한 후과이다.
노동조합이 정치활동 수준이 이렇다 보니 사회문제 등에 별반 관심이 없으며, 사회현안 관련된 타계급계층의 투쟁에 대해 달랑 성명서 한 장 발표하고 자기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하는 노조와 간부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성명서를 내면 그마나 잘 한 것이다. 실제로는 성명서조차 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상태의 지속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왜냐하면 정치활동이란 집권을 위한 것이고, 집권이란 세상바꾸기, 노동자 용어로 표현하면 노동해방의 쟁취인데, 현재 상태의 지속은 집권 불가능 기간의 지속, 노동해방 불가능 기간의 연장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그리고 노동조합이 집권하려면 아웃소싱한 것을 거둬들여야 한다. 민주노동당을 만든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보정당간 통합을 촉구하는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제 정치활동, 그 구체적 표현형태로서의 진보정당 활동을 직접해야 하는 것이다. 즉, 정치활동의 실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정당의 집권활동을 진보정당에 있는 분들에게 맡기는 소위 ‘노조활동과 정치활동의 분리’가 아니라 양자를 결합하여 정치의 직접적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집권을 돕는 활동에서 집권을 위한 직접적 활동에 나서야 한다.
이런 결심과 함께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게 하기 위한 토대구축 사업도 다시 해야 한다.
우선 급한 것은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을 고양시키는 것이다.
우리 조합원들은 조합원 이전에 노동자이고, 노동자이기 이전에 지역의 주민이고, 지역주민 이전에 각자의 자아를 가진 사람이다. 즉, 자아를 가진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들이 반드시 진보정당을 선택할 거라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더 나아가 진보정당 활동을 할 거라고 믿는 것은 더 큰 착각이다. 그래서 이들이 진보정당을 지지하고, 진보정당 활동을 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생각을 바꿔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제 다시 노동자 정치의식 고양 교육을 보다 체계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그래서 지역별로 진보정당과 손잡고 ‘노동자정치학교’를 개최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런 교육을 통해 정치의식을 고양시키고, 지역사업에 대한 마인드를 갖게 해주며, 지역사업에 대한 실무력을 갖게 만들어야 한다.
현재 지역에는 지역활동을 할 활동가가 절대 부족하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그 부족함을 메꿔야 하는데, 현재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은 주민사업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때문에 노동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지역사업력을 높여주기 위한 교육과 훈련을 실시해야 하는 것이다.
역량강화와 더불어 실제로 조합원들을 지역사업에 참여시켜야 한다. 조합원들이 공장에서 내부정치에만 몰두하도록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거주하는 동네에서 조직활동을 하도록 해야 한다. 지역사업에서의 승패는 결국 동네 주민들의 조직 여부에서 판가름 나는 것인데, 진보진영에는 능력여부를 떠나 조직사업할 사람이 절대 부족하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이 역할을 상당 부분 담당해 주어야 한다. 즉, 조합원들이 동대표, 부녀회 등 주민들이 활발히 참여하는 조직에 들어가 활동하며 그들과의 접근성을 높여내고, 궁극적으로 진보정당을 지지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이 활동을 가장 잘하는 조직이 새누리당, 민주통합당의 당원들임을 직시해야 한다. 그들은 우리가 우습게보는 그런 활동을 통해 지역주민들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지역에서 늘 승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보정당이 노동자 밀집 지역만이 아닌 거의 모든 지역에서 승리, 집권을 이룩하려면 조합 간부와 활동가들은 물론 조합원들도 자기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대주민 사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이런 모든 것들을 반영하여 ‘집권을 위한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이것을 매년 초 실시하는 정세교육의 주내용으로 삼아야 한다. 현재의 정세교육은 집권(세상바꾸기)용이기 보다는 다분히 임단투용인데, 현재 수준의 상투적 정세교육을 집권용 정세교육으로 대체한다고 해서 임단투를 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집권용 정세교육은 전망을 분명히 세워주는 교육이기 때문에 조합원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투쟁에 나설 수 있게 할 것이다.
이런 내용과 방식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활동 마인드(정형)을 바꿔야 한다. 마인드의 변화는 어디다 쳐박아두었는지 모르는 ‘노동해방’의 기치를 다시 드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즉, 현재 실리적 조합주의 경향을 보이는 노동운동의 흐름을 사회운동과 결합하여 세상을 바꾸는 노동운동, 즉 사회운동적 노동운동의 흐름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의 구체적 형태는 현재의 ‘임단투 중심의 조합활동을 지양하고, 임단투와 더불어 사회에 개입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정치활동을 아주 조심스럽게 하던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정치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공장에 머물며, 물량을 확보하고, 그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 연대를 도외시하는 조합활동을 지속하는 한 노동자정치세력화는 요원한 것이고, 노동조합이 주도하는 집권은 불가능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끝>
정치활동은 일상적으로 해야 한다. 매일 밥먹듯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정치활동은 조합내에서도 이루어져야 하지만 정말 정권을 잡아볼 생각을 갖고, 그 실현방법의 하나로 의회진출을 고려하는 것이라면 이전에 민주노조 일궜을 때 했던 식의 일상활동을 지역에서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인데 이런 것은 하지 않고 너무 큰 것을 바라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지역에서의 일상적 정치활동을 위해서는 조합간부들의 대 지역사업 역량을 높여내고, 지역사업에 결합시켜내야 한다. 그러나 어느 조합이든 지역사업을 위한 교육과 훈련은,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하면 ‘없었다’. 그런 이유로 우리 조합원들 아니 그 범위를 좀더 좁혀 조합간부들이나 활동가들의 경우 대주민사업에 대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지역에 나가면 거의 역할을 못한다. 심한 경우 주민접촉에 겁을 먹고 주민들에게 제대로 접근조차 하지 못한다. 그래서 준비정도가 이렇고, 실력도 낮은데 선거 결과에는 유독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지금까지 노동자 또는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에 대해 다소 시니컬한 말들을 쏟아내면서 성찰(?)해보았다. 논리적이 아니라 다소 감성적 표현으로 일관한 것은 이런 것을 통해 ‘정치활동을 제대로 하고 큰 소리치자, 그냥 악쓰거나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무게감있는 큰소리로 진보정치를 이끌어가는 노동자, 노동조합이 되자, 소위 진보정당에 대해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기대를 충족시키자’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 다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기치를 높이 들자!
앞의 성찰(?)의 결과가 좋은 방향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대안을 수립해야 한다.
아다시피 민주노총은 1995년 11월 11일에 창립되었다. 민주노총은 창립과 동시에 두가지를 선포했는데, 산별노조건설과 노동자정치세력화가 그것이다.
민주노총은 곧바로 자신들의 선포를 실행에 옮겨갔다. 그것은 민주노총 초대위원장이었던 권영길 현진보당 의원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동당의 창당(2000년 1월 31일)이다.
진보운동 역사에서 진보정당의 창당은 매우 의미있는 것이다. 그것을 민주노총, 즉 노동자들이 주도했다는 것도 역시 역사의 순리대로 간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거기에 멈추는 한계를 보였다.
한계의 핵심은 정치활동(집권을 위한 활동)을 민주노동당에게 아웃소싱(외주화)해 버린 것이다. 이는 ‘우리는 임단투 및 고용안정 투쟁 열심히 할터이니 당신들은 열심히 정치활동해서 집권을 실현하라’는 일종의 ‘노조활동과 정치활동의 분리론’이었다.
민주노총은 정치활동만 아웃소싱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정치적 주체로 설 수 있는 행위 자체를 방기했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정치활동을 아웃소싱했는데, 정치활동에 필요한 노동자의 정치의식 고양, 노동조합의 정치적 무장 등이 필요할 리 없기 때문이다.
이런 아웃소싱이 민주노총의 정치활동 부재 및 방기로 연결된 것이다. 그것은 노동조합 활동에서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통상 노동조합회의에서 진보정당 사업은 총선시 노동자후보 선정 등 아주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노동조합에서 당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면 ‘노동조합 활동이나 잘하지 엉뚱한 곳에 신경쓴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런 조합 분위기는 조합간부나 활동가들이 적극적으로 당 활동을 하는 것을 방해한다. 당 활동을 열심히 하면 정파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낙인찍히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것이 진보정당에 대한 한국노동운동의 현주소, 세상을 바꾸겠다고 만든 노동조합의 현주소이다. 아웃소싱한 후과이다.
노동조합이 정치활동 수준이 이렇다 보니 사회문제 등에 별반 관심이 없으며, 사회현안 관련된 타계급계층의 투쟁에 대해 달랑 성명서 한 장 발표하고 자기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하는 노조와 간부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성명서를 내면 그마나 잘 한 것이다. 실제로는 성명서조차 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상태의 지속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왜냐하면 정치활동이란 집권을 위한 것이고, 집권이란 세상바꾸기, 노동자 용어로 표현하면 노동해방의 쟁취인데, 현재 상태의 지속은 집권 불가능 기간의 지속, 노동해방 불가능 기간의 연장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그리고 노동조합이 집권하려면 아웃소싱한 것을 거둬들여야 한다. 민주노동당을 만든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보정당간 통합을 촉구하는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제 정치활동, 그 구체적 표현형태로서의 진보정당 활동을 직접해야 하는 것이다. 즉, 정치활동의 실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정당의 집권활동을 진보정당에 있는 분들에게 맡기는 소위 ‘노조활동과 정치활동의 분리’가 아니라 양자를 결합하여 정치의 직접적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집권을 돕는 활동에서 집권을 위한 직접적 활동에 나서야 한다.
이런 결심과 함께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게 하기 위한 토대구축 사업도 다시 해야 한다.
우선 급한 것은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을 고양시키는 것이다.
우리 조합원들은 조합원 이전에 노동자이고, 노동자이기 이전에 지역의 주민이고, 지역주민 이전에 각자의 자아를 가진 사람이다. 즉, 자아를 가진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들이 반드시 진보정당을 선택할 거라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더 나아가 진보정당 활동을 할 거라고 믿는 것은 더 큰 착각이다. 그래서 이들이 진보정당을 지지하고, 진보정당 활동을 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생각을 바꿔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제 다시 노동자 정치의식 고양 교육을 보다 체계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그래서 지역별로 진보정당과 손잡고 ‘노동자정치학교’를 개최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런 교육을 통해 정치의식을 고양시키고, 지역사업에 대한 마인드를 갖게 해주며, 지역사업에 대한 실무력을 갖게 만들어야 한다.
현재 지역에는 지역활동을 할 활동가가 절대 부족하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그 부족함을 메꿔야 하는데, 현재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은 주민사업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때문에 노동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지역사업력을 높여주기 위한 교육과 훈련을 실시해야 하는 것이다.
역량강화와 더불어 실제로 조합원들을 지역사업에 참여시켜야 한다. 조합원들이 공장에서 내부정치에만 몰두하도록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거주하는 동네에서 조직활동을 하도록 해야 한다. 지역사업에서의 승패는 결국 동네 주민들의 조직 여부에서 판가름 나는 것인데, 진보진영에는 능력여부를 떠나 조직사업할 사람이 절대 부족하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이 역할을 상당 부분 담당해 주어야 한다. 즉, 조합원들이 동대표, 부녀회 등 주민들이 활발히 참여하는 조직에 들어가 활동하며 그들과의 접근성을 높여내고, 궁극적으로 진보정당을 지지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이 활동을 가장 잘하는 조직이 새누리당, 민주통합당의 당원들임을 직시해야 한다. 그들은 우리가 우습게보는 그런 활동을 통해 지역주민들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지역에서 늘 승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보정당이 노동자 밀집 지역만이 아닌 거의 모든 지역에서 승리, 집권을 이룩하려면 조합 간부와 활동가들은 물론 조합원들도 자기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대주민 사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이런 모든 것들을 반영하여 ‘집권을 위한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이것을 매년 초 실시하는 정세교육의 주내용으로 삼아야 한다. 현재의 정세교육은 집권(세상바꾸기)용이기 보다는 다분히 임단투용인데, 현재 수준의 상투적 정세교육을 집권용 정세교육으로 대체한다고 해서 임단투를 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집권용 정세교육은 전망을 분명히 세워주는 교육이기 때문에 조합원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투쟁에 나설 수 있게 할 것이다.
이런 내용과 방식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활동 마인드(정형)을 바꿔야 한다. 마인드의 변화는 어디다 쳐박아두었는지 모르는 ‘노동해방’의 기치를 다시 드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즉, 현재 실리적 조합주의 경향을 보이는 노동운동의 흐름을 사회운동과 결합하여 세상을 바꾸는 노동운동, 즉 사회운동적 노동운동의 흐름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의 구체적 형태는 현재의 ‘임단투 중심의 조합활동을 지양하고, 임단투와 더불어 사회에 개입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정치활동을 아주 조심스럽게 하던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정치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공장에 머물며, 물량을 확보하고, 그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 연대를 도외시하는 조합활동을 지속하는 한 노동자정치세력화는 요원한 것이고, 노동조합이 주도하는 집권은 불가능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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