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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생산기술직 육성체계>의 문제점과 대안

홍석범 /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2019년 6월 현대중공업은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의 기술역량을 향상을 제도적으로 지원한다는 명분 하에 <생산기술직 육성체계> 제도를 기습적으로 도입-시행했다. 각각의 직무별로 생산기술(과업)을 체계화하고 거기에 필요한 직무역량을 정의한 생산기술역량표준(HCS)을 제정해서 작업자 개개인의 직무능력을 평가(등급화)-관리-보상한다는 것이 본 제도의 핵심내용인데, 이를 위해 2019년 8월까지 작업자 개개인별로 임시등급을 부여하고 2020년 6월까지 직무능력 등급을 확정해서 수준별 교육훈련을 실시, 2021년 하반기부터 교육훈련 성과(직무능력 향상)에 따라 장려금을 지급한다는 계획이 마련돼있다.

 

문제는 연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중단된 듯했던 <생산기술직 육성체계> 제도가 최근 5월부터 시행 재개되면서 다시금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제도는 외관상 회사가 노동자의 숙련형성을 적극적으로 지원-투자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지만 내용적으로 상당히 다양하고 심각한 문제요인들을 내포하고 있다. 이번 이슈페이퍼에서는 회사가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직무역량 평가-관리제도인 <생산기술직 육성체계>의 내용과 문제점, 그리고 이 제도를 둘러싼 조합원들의 인식과 태도를 살펴보면서 현대중공업의 대안적 숙련정책 방향을 타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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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직무/과업 및 필요역량을 체계화-표준화 한 생산기술역량표준(HSC) 제정, △작업자의 직무수행능력 평가 및 인증, △개개인의 직무역량에 맞는 수준별 교육훈련, △직무능력 향상에 대한 장려금 지급 등을 <생산기술직 육성체계>의 기본방향으로 잡고 있다. 그러나 본 제도는 다음과 같은 한계와 문제들을 노정하고 있다.

 

첫째 직무표준화 가능성 및 적절성 문제다. 이 제도는 140여 개에 이르는 직무와 5,015개의 생산기술(과업), 그리고 거기에 맞는 직무능력을 ‘표준화’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작업자의 직무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교육훈련프로그램을 도입하고 각각의 직무능력을 평가-측정-등급화 하고 거기에 맞게 보상하기 위해서는 직무 및 직무능력을 표준화하는 선행작업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지하듯이 조선산업의 생산현장에서는 표준화된 지식이라고 할 수 있는 명시적 지식보다는 표준화 자체가 불가능한 암묵적 지식이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며, 개별작업이 아닌 동료들 간의 협업을 중심으로 업무가 이뤄진다. 즉 생산현장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곤 하는 다양한 돌발상황들을 그때그때마다 동료 작업자들이 협업해서 대처해 나가는 것이 조선산업의 가장 주된 노동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데, 풍부한 현장경험과 오랜 팀워크 속에서만 체득할 수 있는 이 같은 요소들을 과연 어떻게 표준화할 수 있냐는 것이다. 회사가 시행하고 있는 지금과 같은 기계적인 직무(능력)표준화는 작업현장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에도 기여하기 어렵다.

 

둘째 직무능력 평가의 신뢰성 문제다. 회사는 작업자 개개인의 직무능력(기술역량)을 평가함에 있어 진단요소를 세분화하고 정량적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객관성을 확보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엇을 진단요소에 포함시키고 무엇을 포함시키지 않을 것인지, 평가등급을 몇 개로 나눌 것인지, 누가 누구를 평가할 것인지 등 직무능력 평가-진단을 둘러싼 여러 가지 쟁점요소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결정은 오로지 회사 일방에 의해서만 이뤄진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작업자의 직무수행능력 진단에 소속부서 상급자(생산팀장)의 평가가 30% 반영된다는 점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어떤 요소들을 평가-진단할지 그 기준을 정하는 과정도 문제였지만 어떤 기준으로 정하더라도 결국 평가권한이 관리자의 몫이란 점이다. 관리자의 판단을 완전무결하다고 할 수 있을까? 만약 노사관계가 심각한 대치 국면에 있다면 이때 관리자의 직무능력 평가권한은 현장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일련의 제도시행 과정을 거쳐 작업자들의 직무능력이 어느 정도 상향평준화 되면 그때부터 기존의 기준들은 사라지고 상향된 직무능력들이 새로운 기준점(영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결국 <생산기술직 육성체계>에서 상정하고 있는 직무능력 평가제도는 관리자의 현장권력 및 작업자의 노동강도 강화와 직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정리해볼 수 있다.

 

셋째 교육훈련 기간 및 방식에 있어서도 문제가 적지 않다. <생산기술직 육성체계>는 작업자의 기초역량 교육에 3일(24시간), 직무역량 교육에 5일(50시간)의 기간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3일에서 5일에 이르는 짧은 교육기간은 실전경험 축적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조선산업의 노동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조선산업은 타 산업에 비해서 업무에 숙달되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상당히 길다. 다양한 선종과 작업상황들을 고르게 경험해봐야만 이후에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조언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까닭에 작업자의 숙련도, 직무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있어 이 같은 경험축적 기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현행 제도는 교육기간도 매우 짧을 뿐만 아니라 교육방식도 작업장 밖 강의실에서 이론수업 및 단순 실습을 진행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조선소들의 기존 교육훈련제도는 생산일정상 업무공백 기간에 지급해야할 임금비용(휴업수당)을 정부의 교육훈련 정책지원자금으로 대체하는 성격이 강했다. 그렇다보니 교육훈련제도 또한 작업자의 직무능력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는 내용이나 형식을 담보하지 못했고 작업자들 역시 생산현장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교육훈련을 인식했던 것이다. 작금에 회사가 시행하고 있는 교육훈련 방식대로라면 과거처럼 휴식이 목적인 교육훈련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결코 장담할 수 없다.

 

넷째 장려금 제도가 승진․인사․임금제도와 연계-확장될 위험성이 있다는 점이다. 현행 제도는 작업자의 직무능력 향상에 대한 보상으로서 상위수준 기술역량 취득자를 대상으로 장려금을 지급할 계획을 갖고 있다. 가장 낮은 단계인 주니어 테크니션에서부터 가장 높은 수준인 마스터 테크니션에 이르기까지 상위단계 직무역량을 취득할 때마다 수준별로 1회에 한해 장려금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적게는 20만원에서 많게는 320만원에 이르는 이 같은 등급별 장려금 제도는 현장 조합원들로 하여금 회사의 <생산기술직 육성체계> 제도 시행에 찬성-참여하게끔 만드는 유인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문제는 이 제도가 작업자의 직무능력 등급화, 관리자의 평가권한, 등급에 대한 차등보상을 기본개념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비록 지금은 일회성 장려금을 지급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향후 언제든지 회사의 필요에 따라 승진제도나 임금제도(직능급, 성과급, 통상수당 등)와 연계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개개인에 대한 등급화와 차등보상, 관리자의 강력한 평가권한 위에서 만들어진 승진제도, 임금제도라면 현장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과 갈등 또한 강화시킬 것이란 점 또한 불 보듯 뻔하다.

 

마지막으로 다섯째 일련의 제도 시행 과정에서 현장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의 목소리가 배제돼있다는 점이다. <생산기술직 육성체계> 제도가 내포하고 있는 직무표준화, 직무능력 평가, 교육훈련 방식, 보상제도 등의 한계 중 많은 부분은 근본적으로 회사가 숙련투자의 한 당사자이기도 한 현장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의 입장이나 요구를 철저하게 무시한 데서 비롯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로 이 이유 때문에 회사의 <생산기술직 육성체계>는 그 진의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제도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사실 1990년대 ‘힘찬21’, 2000년대 ‘비전2010’ 등 과거에도 현대중공업은 신경영전략이라는 명목 하에 교육훈련제도, 승진-인사제도, 임금제도를 연계한 제도들을 일방적으로 시행했던 적이 있으며 당시에도 반장이나 팀장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현장 노동자들 간의 경쟁을 부추기고 작업장 통제를 강화한 바 있다. 이 같은 역사적 맥락과 제도 그 자체의 한계들을 모두 감안해보면 현재 회사가 시행하고 있는 <생산기술직 육성체계>는 노동자들의 직무역량을 향상시키기 위한 표면상의 목적 이면에 관리자의 강력한 평가권한 하에 줄세우기와 경쟁을 조장함으로써 노동조합의 조직력을 약화시키고 작업장 통제를 강화하려는 목적을 감추고 있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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