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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민주노조의 기준에 맞는 투쟁을 하고 있는가?

금속노조연구원   |  
우리는 민주노조의 기준에 맞는 투쟁을 하고 있는가?
- 2009년 투쟁과 완성사들의 한계

공계진 금속노조 정책연구원장


금속노조의 끝나지 않은 2009년 투쟁을 조목조목 평가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쓰고자 하는 것은 상반기 투쟁 중 핵심적인 몇가지 문제를 살펴보고, 몇가지 제안을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필자는 투쟁을 지휘하는 라인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그래서 자칫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이마저도 필자가 의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2008년 발생한 미국발 금융위기가 곧 한국의 경제위기를 불러올 것이라 진단했었다. 그리고 그 경제위기는 서민의 삶 파탄과 구조조정 및 정리해고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에 금속노조는 ‘함께 살자 국민생존! 총고용 보장!’을 슬로건으로 해서 조기투쟁전선을 구축해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투쟁을 보다 힘있게 전개하기 위해 임단투를 앞당겨 진행한다는 것이 덧붙여졌었다.

우리의 예상대로 경제위기가 닥쳐왔고, 자본과 정권은 위기를 서민들과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서민의 주머니는 비기 시작했고, 노동자들은 직장에서 쫓겨나기 시작했다. 반면 재벌의 곳간은 이익잉여금이 145조 5,000억원(10대그룹 8개 상장기업, 2008년 9월말, 금속노조 정책연구원)인 것에서 보여지듯이 줄지 않았고, 사용자들이 책임을 지고 회사를 떠나는 일은 없었다.

상황이 이러함으로 금속노조는 애초 결정한대로 가열찬 투쟁을 전개했어야 했다. 그러나 투쟁은 우리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조기전선은 구축되지 않았다. 4말/5초가 5말/6초로 되었고, 이마저 지켜지지 않았다. 임단투는 완성사들의 쟁의조정신청이 늦어지면서 조기전선 구축에 기여하기 보다는 그 반대로 작용하고 있다. 투쟁시기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15만- 아니 그 50% - 이 하나되는 투쟁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를 비롯한 각 지역에서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있고, 수천명의 노동자들이 이미 희망퇴직당했거나, 해고통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강고한 투쟁전선은 구축되고 있지 않다. 몇차례의 집회를 개최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전개했지만 구조조정 전선을 힘있게 구축했다고 보기 어렵다.

쌍용 투쟁으로 넘어오면 더욱 심각하다. 쌍용 법정관리인이 2,646명을 해고한다고 공언하고, 희망퇴직, 정리해고 통고 등으로 이를 실행하고 있지만 이를 저지하기 위한 전선은 왜소하기만 하다. 강고한 전선 구축을 위해 추진되었던 6/19~20 3만 상경투쟁은 1만명이 참가하는데 그쳤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이는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GM 대우자동차가 어떤 이유로든 이 전선에 합류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과거 연맹시절, 대우자동차 매각과 정리해고가 진행될 때 당시 완성4사가 공대위를 구성하고 공동투쟁을 전개했었다는 것을 상기할 때 지금의 상황은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많다. 공동투쟁은 커녕 받은 것을 갚아주는 ‘품앗이 투쟁’마저 안되고 있는 상태이다.

또 다른 면이 지적되어야 한다. 즉, 이땅의 대다수 서민들이 힘겨운 상황에 직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속노조는 이들과 함께 하려는 투쟁을 기획하고 집행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내코가 석자라는 것을 부각시키며 내몫 지키기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상황이 어려워졌다는 것은 인정하는 바이지만, ‘함께 살자 국민생존이란 슬로건을 걸지나 말지’라는 비아냥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적어도 필자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금속노조의 투쟁에 대해 극히 축약적으로 정리한다면 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 민주노조의 기준에 맞는 ‘제대로 된 투쟁’ 조직에 실패

강고한 투쟁전선을 구축하는데 실패한 이유는 간단하다.
규모를 갖춘 강고한 투쟁전선을 구축하려면 15만 금속노조의 59.1%(투쟁에 참가한 쌍용자동차 제외시 55.7%, 2009.3월 기준)를 점하고 있는 자동차 완성사들을 투쟁에 동참시켜야 한다.

금속노조의 4말/5초 등의 투쟁전선이 구축되기 위해서는 금속노조가 설정한 시기에 완성사들도 쟁의조정신청을 하고 투쟁에 나설 수 있는 조건을 갖춰야 했다. 금속노조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3만 상경투쟁이 그야말로 3만에 근접한 수준에서 성사되려면 완성사들이 파업을 선언하고 나와야 했다. 그러나 완성사들은 노조 중앙에서 요구한 쟁의조정신청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래서 투쟁전선은 약하기(3만 상경투쟁->1만 상경투쟁)도 했지만 그나마 자꾸 뒤로 밀렸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금속노조의 투쟁전선 구축에 키를 쥐고 있었던 완성사들이 움직이지 않아 힘있는 전선구축에 실패하였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완성사들은 왜 구조조정 저지투쟁 전선(임단협 전선 포함)에 동참하지 못했던 것인가? 왜 연맹시절에도 했었던 투쟁을 산별시대에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동참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아주 온정적인 평가는 현대/기아/GM대우가 처한 상황이 쌍용과 달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객관적 조건만을 따져 본다면 위의 평가가 틀린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평가는 정당한 평가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조건이 다른 기업단위 노조들이 산별노조로 뭉친 이유를 뿌리부터 흔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돌려말하며 본질을 호도해서는 안될 것 같다. 이제 완성사들이 구조조정 저지투쟁에 ‘제대로’ 참가할 수 없었던 이유를 이제 솔직히 말해야 한다. 무엇이 완성사들의 투쟁 동참에 제동을 걸었을까? 필자가 생각하는 것은 대강 이런 것들이다.

첫째는 경제위기에 대한 상황인식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위기로 인해 쌍용과 GM대우는 직격탄을 맞았고, 그곳에 납품하는 부품사들도 날벼락을 맞았지만 현대/기아는 조금 달랐다. 미국의 경제위기로 현대/기아의 수출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고환률 덕으로 현대/기아가 받은 타격은 미미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현대/기아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 달랐다는 것이다. 즉, 현대/기아는 미국의 빅3(포드, GM, 크라이슬러)가 무너지는 상황이 도래하면 오히려 유리하다고 낙관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렇듯 현실적으로 다른 곳에 비해 어렵지 않았고, 미래 전망도 비교적 낙관적(?)이었기 때문에 현대/기아의 경우 위기의식을 높게 갖지 못했고, 그것은 투쟁 동참에 대한 동기부족으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GM대우의 불참은 또 다른 이유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GM대우의 경우 위기의식은 있었으나 GM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동참하지 않았던 것 같다. 즉 GOOD GM에 대한 기대가 △ 쌍용과 GM대우를 하나의 기업 또는 기업군으로 묶어 회생시키자는 제안과 △ 쌍용과 함께 투쟁하는 방안을 받을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둘째는 연대투쟁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의 차이와 연대는 별개의 문제이다. 사실 처한 조건의 차이가 있을 때 연대라는 개념이 성립되는 것이기도 한데 현대/기아, GM대우는 이 부분을 도외시했다.
기아자동차는 97년 부도후 법정관리, 매각 등 모든 것을 겪어본 사업장이고, 현대 역시 98년 정리해고로 홍역을 치뤘고, GM대우 역시 대우자동차 시절인 2001년에 이를 겪은 사업장이다. 특히, 대우자동차 정리해고와 매각을 막기 위해 완성4사 공대위가 구성되어 공동투쟁을 직접 경험한 사업장이기도 하다.

모두들 어려움을 겪었고, 그래서 개별적 대응과 패배를 교훈 삼아 산별노조로 전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처한 조건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면서 연대 투쟁의 정신은 살려내지 못했다. 문제의 심각성은 현대/기아의 상황이 쌍용을 지원할 수 없을 만큼 나쁜 것도 아니었다는데 있다.

셋째는 세상을 바꾸는 투쟁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조건 차이를 앞세우며 기본적 연대투쟁조차 하지 못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투쟁하여 세상을 바꿔낸다!”라는 인식의 부족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비록 어렵지만 투쟁하는 다른 사업장과 ‘함께’ 가야 자본의 공세를 ‘함께’ 저지할 수 있다는 인식의 부족, ‘함께’ 해야 노동자죽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정권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는 의식의 부족, ‘함께’ 해야 신자유주의와 자본이 판치는 세상을 바꿔낼 수 있다는 전략적 사고의 부재 등이 연대의식의 부족과 2009년 구조조정 저지전선을 약하고, 늦게 쳐지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넷째는 임금을 매개로 투쟁시기를 일치시키고, 그것을 통해 전선을 구축하려고 했던 전략 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임단투를 매개로 한 조기전선 구축 시도는 실패했다. 이유는 완성사들이 노조가 요구한 일정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책임은 완성사들에게만 있는 것인가? 필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완성사들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완성사들이 임단투 일정을 맞추지 못할 것임을 충분히 알고 있던 노조가 이를 감안한 투쟁계획을 수립하지 못한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구조조정 국면이 보다 일찍 닥칠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이를 감안, 임단투와 무관한 계획을 수립하고, 완성사 참여방안을 마련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방안 중에는 완성사들을 상대로 경제위기의 상황, 닥칠 구조조정의 성격, 공세적 투쟁의 전개 필요성 등을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참여를 강제해나갔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계획은 수립되지 않았고, 당연히 집행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임단투에 많은 기대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는데, 아시다시피 완성사들이 그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역부족이었다.

그 결과는 비참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전선은 3말/4초에서 5말/6초로 넘어갔고, 그것도 안돼 6/19~20의 상경투쟁에 힘을 집중했으나 3만 목표가 1만으로 축소되어진 것에서 보여지듯이 이마저 힘있게 진행되지 못하였다.

동참을 가로막은 이유를 네가지로 들었지만 사실 핵심적인 것은 <민주노조의 기준에 맞는 ‘제대로 된 투쟁’ 조직에의 실패>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 ‘제대로 된 투쟁’ - 다시 생각해 보는 96~97년 총파업 조직

필자의 이런 주장에 대해 혹자는 답답한 소리, 실정모르는 소리하고 있다고 항변할 수 있을 것이다. 임금을 매개하지 않고 일정을 일치시키고, 전선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한 일이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것 없이 완성사들을 움직여낼 수 있는가라고 되물을 것이다.

필자도 그것을 이해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반문이 갖고 있는 한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싶다.

산별노조가 만들어지기 전에 현재의 금속노조 소속 완성사들이 ‘조건의 차이’와 ‘어려움’이 상존했지만 이를 극복하고 움직여 96~97년 노동법 개악 저지 총파업을 전개했다.
이것은 임투와 상관없이 철저히 만들어진 투쟁이었다. 즉, 당시 이 투쟁은 일시적인 충동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 노동법 개악을 예상하고 몇 개월 전부터 교육/선전하며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2009년 구조조정 저지투쟁도 이와 같이 준비하고, 투쟁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 민주노조의 기준에 맞는 투쟁의 상 정립해야

민주노조의 기준은 투쟁이다. 투쟁하지 않는 노조를 민주노조라 칭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공장내에서 임금/근로조건 개선 투쟁을 아주 힘있게 한 것만으로 민주노조라는 칭호(?)를 듣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그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제대로 된 투쟁’을 하는가의 여부를 민주노조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 공장안의 투쟁에 머무는 투쟁이 아니라 공장 밖으로 나와 다른 공장의 노동자와 연대하는 투쟁 △ 공장안의 임금 및 근로조건 개선에 머무는 투쟁이 아니라 지역을 바꾸는 투쟁 △ 공장의 변화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의미한다.

그 누구도 완성사들을 향해 ‘투쟁적이지 못하다’라는 말을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투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올해 완성사들의 투쟁양상을 보면서 ‘제대로 된 투쟁’을 했다, 또는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쌍용 투쟁을 비롯한 2009년 투쟁에서 완성사들은 앞서 필자가 나열했던 ‘제대로 된 투쟁’의 기준에 맞는 투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완성사들은 ‘품앗이 투쟁’ 정도는 했어야 했는데 이마저 하지 않았다는 것이 필자의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감히 이런 주장을 하고자 한다. 이제 민주노조의 기준에 맞는 투쟁의 상을 정립하고, 그에 맞는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고.

□ 민주노조가 무너질 수 있다.

앞에서 민주노조의 기준을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기준은 제대로 된 투쟁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현재 완성사들이 제대로 된 투쟁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과 함께 금속노조 역시 완성사들을 제대로 지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곁들였다.

제대로 된 투쟁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시대변화에 맞는 연대투쟁,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하면서 민주노조 진영을 한단계 발전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전 수준 만큼의 투쟁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완성사들이 민주노조의 기준에 합당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약간 오버하여 말하다면 민주노조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금속노조의 전신인 금속산업연맹은 현대중공업을 제명한 아픈 과거를 안고 있다. 당시 현대중공업노조는 2만이 넘는 대공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 노조를 민주노조 대열에서 추방했을까? 이유는 자명하다. 민주노조의 탈을 쓰고 있지만 민주노조답지 않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금속노조는 이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본다. 더 이상 아픈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2009년 완성사들이 ‘제대로 된 투쟁’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에 상응한 대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노조는 무너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