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노동시간단축운동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왜 노동시간단축운동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이상호(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노동부는 지난 11월 18일 “근로시간의 합리적 사용 길을 넓힌다”는 취지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도의 단위기간을 확대하고 초과근로와 연차휴가를 시간계좌에 저축하여 휴가로 사용하는 ‘근로시간저축휴가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예고하였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실노동시간의 단축’이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기존 근로시간에 대한 법 규정의 심각한 문제로 인해서 노동시간의 유연화만 강화시키며, 초과근로에 대한 유급지급 자체가 유명무실화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개악안은 반드시 저지되어야 한다.
고용위기의 현실이 실노동시간단축을 요구
하지만 정부의 이러한 개악안을 막아내고 허구적 노동시간단축방안을 폭로하는 것으로 민주노조운동의 임무와 과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는 지금 ‘고용위기’에 봉착하고 있으며, 기존 취업자중심의 조직노동자들에게 보다 적극적인 고용연대방안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경기회복세가 지속되면서 고용통계상으로 제조업을 중심으로 취업자의 수가 늘어나 고용율이 10월 말 현재 약 59.4%, 실업율이 약 3.3%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통계청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여전히 실업자로 분류되지 않는 취업준비생과 구직단념자 또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특히 15세에서 29세 청년실업율은 여전히 7%에 이른다. 지난 1월 121만 실업자, 명목실업율 5.0%라는 사상최대치를 깨고 난 후 일정하게 명목실업율이 줄어들고 있지만, 10월 말 현재 실질실업자수는 실업자 83만, 구직단념자 21만, 취업준비생 61만으로 총 165만에 이르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여전히 ‘고용위기’의 긴 터널 중간에 서 있다고하고 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질 좋은 일자리’라고 분류되는 정규 상용직의 경우 정체, 혹은 감소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양질의 일자리’에서 실노동시간단축이 이루어진다면, 고용창출은 충분히 가능하며, 이를 위해 노동조합이 나설 수 있다면, 그 실현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새로운 일자리는 공장과 기업을 새로 설립하는 방식이 아닌, 실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공유 및 나누기를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다른 나라와 달리, 기존 취업자의 장시간노동이 일반화되어 있는 한국 사회에서 노동시간의 단축을 통한 일자리 만들기 가능성은 충분하다. 한국 사회에서 고질적인 사회병으로 관행화되고 있는 장시간노동체제를 줄일 수만 있다고 하더라도 ‘고용위기’시대에 ‘고용혁명’은 현실화될 수 있다.
양질의 일자리에서 더 많은 고용을 이루기 위해서는 ‘장시간노동 체제’를 타파해야 한다. 한국사회의 ‘성장제일주의’가 장시간노동체제를 조장하고 있으며, 초과노동에 대한 노사정의 담합구조로 인해 장시간노동 체제가 재생산되고 있다. 일상화된 장시간노동 체제는 기업으로 하여금 투자확대와 고용창출을 회피하도록 만들고, 노동자로 하여금 임금제도 및 노동시간제도의 개선을 계속적으로 유보시키도록 만들다. 이러한 관행으로 인해 노동조합은 고용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고 기업단위에서 초과노동에 의한 고임금추구에 갇히게 된다. 사용자 또한 초과노동의 유인을 통한 설비가동율의 최대화를 목표로 한 장시간노동 체제를 추구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결국 초과노동의 이익을 노사가 나누어 먹는 ‘장시간노동 체제의 담합구조’가 재생산되는 것이다. 즉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기존 일자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사정 담합의 ‘장시간노동 체제’를 극복하고 실노동시간단축을 위한 과감한 결단이 요구된다.
실노동시간단축을 위한 세가지 경로
결국 한국 사회에서 장시간노동 체제를 극복하고 고용창출을 위한 실노동시간단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노동시간 관련 법제도의 혁신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현행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시간 규정을 전면적으로 개정하고 법정노동시간에 대한 현행 조항을 보다 엄격하고 세밀하게 규정해야 한다. 특히 유명무실한 주당 12시간으로 제한된 연장근로규정을 보다 엄격히 적용하고 총노동시간을 기간별로 제한하는 노동시간 상한제를 빠른 시일 내에 도입해야 한다.
또한 한국사회가 봉착하고 있는 일자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노동시간의 단축방안을 포함하는 고용문제 전반에 대한 사회적 협의기구가 필요하고 이를 통한 사회적 합의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방안은 실노동시간의 단축을 통한 질 좋은 일자리의 창출이라는 핵심목표를 설정하고 노동시간단축에 따른 외부효과(임금소득손실, 노동시간의 유연화, 생산투자의 위축, 기업구조변동 등)에 대한 대책을 모색하고 고용보험 및 사회보험제도의 개선을 비롯한 기업 및 노동자 지원정책을 새롭게 재구성해야 한다.
한편 노동조합은 향후 5년 내 주당 35시간 협약노동시간제도의 도입을 목표로 하는 실노동시간단축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장시간노동 체제를 해소하고 고용창출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법정근로시간의 단축 외에, 실노동시간 단축방안의 단체협약화를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또한 주간연속 2교대제와 같은 교대제 전환을 통해 노동의 인간화와 고용창출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다. 제조업, 특히 금속산업의 경우 실노동시간단축의 핵심적 과제는 바로 주야맞교대제의 폐지를 통한 교대제전환과 노동시간상한제의 도입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을 현실적으로 실현하기는 쉽지 않다. 작년 11월 7일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지부가 주말특근을 거부한다는 기사가 포털에 뜬 적이 있다. 당연히 쉬어야 하는 주말, 주말특근 거부가 핫이슈라니!
실노동시간단축을 위한 조직노동자의 반성과 결단이 필요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의 노동시간단축을 위한 자체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초과근로를 줄이는 것은 자신의 건강권을 지키고, 노동의 인간화를 위한 길임과 동시에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초과근로를 줄이지 않는 것은 타인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실노동시간단축을 통한 고용창출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먼저 임금완전보전의 논리로 합리화해 온 초과노동의 악습을 조직노동자 스스로가 깨야 한다. 세계 최장의 장시간노동 체제가 지금까지 존속된 것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사용자와 정부에게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노동조합 또한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실질임금 증가보다는 조합원의 요구를 빌미로 할증수당 인상, 잔업과 특근보장과 평일 대체근무 등과 같은 ‘잘못된 관행’에 매몰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완전한 임금보전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노동시간을 줄이기 힘들다고 항변하기보다 실노동시간단축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노동조합의 의지와 결단을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
초과근로에 의존한 임금에서 벗어나, 이제 법정노동시간만 일하고 그에 준한 임금으로 생활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확보된 휴가는 노동자 투쟁의 산물이다. 이 휴가를 사용하지 않고 돈으로 거래하는 것은 투쟁의 성과를 배반하는 행위다. 휴가는 천재지변이 없는 한 모두 사용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노동자계급의 삶과 노동조건에 실질적 개선이 생길 수 있고, 노동자계급의 연대의 조건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초과근로 제한은 더는 회피할 수 없는 노동운동의 당면 과제이다.
노동조합은 지금부터라도 실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만들기 운동을 시민사회의 각계각층 및 제반 연대세력과 함께 사회 운동적 차원에서 전개해야 한다. 자신의 인간적 노동생활 뿐만이 아니라, 청년 예비노동자, 미취업자, 비정규직의 고용안정과 일자리창출을 위해 실노동시간단축을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설정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현장에서 무분별하게 악용되고 있는 초과노동에 대한 엄격한 제한규정을 단체협약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10년 내 주당 실질노동시간이 40시간을 넘어서지 못하도록 만들어 연간 노동시간을 1,800시간으로 줄여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노동조합이 선진국에 일반화되어 있는 유급중기휴가제도, 생애주기근무모델, 교대제 전환모델, 점진적 퇴직모델과 노동친화적 정년조정모델을 한국의 실정에 맞게 재설계하여 추진한다면, 실노동시간단축에 의한 고용창출효과는 상당히 배가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