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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테러리즘과 21세기 신노사관계 전략

금속노조연구원   |  

쟁점과 전망

 

자본의 테러리즘과 21세기 신노사관계 전략

 

전국금속노동조합 노동연구원 홍석범

 

 

올 여름 최악의 납량특집, SJM과 만도의 용역침탈 사건

 

여름휴가를 앞둔 727일 새벽, 안산의 에스제이엠(SJM) 공장에 직장폐쇄를 명목으로 수백 명의 중무장한 사설경비들이 들이닥쳤다. 소화기와 각종 철제제품을 집어던지며 비무장의 조합원들을 토끼몰이했던 그들은 공장에서 나가겠다던 조합원들까지 곤봉과 방패로 찍어 내렸다.

 

직장폐쇄와 용역동원은 같은 날 오후에 만도 공장으로도 이어졌다. 사측은 자신들이 기습적으로 예정한 직장폐쇄에 앞서 문막, 평택, 익산 공장에 총 1,500여명이란 역대 최대 규모의 용역경비를 투입했고, 휴가를 떠나있던 대다수 조합원들은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현장 복귀를 노심초사하며 벼랑 끝 휴가를 보내야만 했다.

 

이렇듯 간담을 서늘케 했던 올 여름 최악의 납량특집극은 TV나 영화관이 아니라 바로 우리 노동자들이 삶을 영위하는 현장에서 실황 생중계됐다.

 

 

MB식 노사관계 선진화의 새로운 척도, 공격적 직장폐쇄와 사설폭력의 동원

 

대선 정국에 힘입어 정치권과 언론으로부터 단기간에 집중조명을 받긴 했지만 (그리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얼마 지나지 않아 급속도로 이런 관심들이 사그라졌지만) 이번 에스제이엠과 만도와 같은 자본의 공격적 직장폐쇄및 폭력을 동반한 작업장 통제는 과거에도 있었다. 그러나 2010년 발레오만도, 상신브레이크, 케이이씨(KEC), 2011년 유성기업 그리고 오늘날 에스제이엠과 만도에 이르기까지 유독 MB정부에 들어와서 이런 방식의 노동탄압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회사 입맛에 맞는 조합원의 선별적 조업복귀와 어용의 기업·복수노조 설립, 휴대폰 메시지나 모바일상의 집단 채팅방을 통한 협박과 회유라는 옵션을 추가하면서 노동조합에 대한 자본의 공격 매뉴얼은 점차 세련되게(?) 진화하고 있기까지 하다.

 

비즈니스 프렌들리국가 불개입 원칙의 자율적 노사관계란 이중적이고 모순된 노동정책 탓일까? 지금 MB정부는 마치 공격적 직장폐쇄와 사설폭력 동원을 노사관계 선진화의 수단이자 척도로 삼고 있는 듯하다.

 

 

노동탄압 종합선물세트와 국가 권력 총동원의 과거

 

10년 전만 하더라도 노동탄압에 가장 많이 활용된 방식은 손배가압류와 공권력의 전방위적 진압이었다. 경찰은 집시법 개악(2003)을 등에 업고 집회금지 통고를 남발하며 집회 자체를 원천 차단했고, 사용자나 정부의 입장에 조금이라도 반대하는 기조로 집회가 이뤄지면 예외 없이 공권력이 전면에 나서 노동자를 진압연행구속했다. 뒤이은 사용자와 정부의 손배가처분 신청은 수많은 노동자를 두려움과 죽음으로 몰고 갔으며, 사법부의 손배 결정은 예외 없이 저들의 손을 들어줬다.

 

즉 모든 국가 권력이 동원돼 노동탄압을 주도했던 것이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5년 동안 구속된 노동자만 1,000명이 넘었고, 2000년부터 2005년까지 노조와 조합원을 상대로 제기된 손배가압류 청구금액만 2,535억 원에 이르렀다. 2003년 철도노조 파업에 대해 사법부가 24억 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선례를 남기면서 손배가압류는 발전철도지하철 등 정부 관할의 공공부문에서 보다 심각하게 전개됐고, 사용자가 고소고발을 취하했음에도 경찰과 검찰이 구속 방침을 관철하면서 노동자들의 지속적인 투쟁을 차단하는 사례가 횡행했다.

 

그런데 작금의 사태는 뭔가 다르다. 자본이 양념을 치고 국가가 전면에 나섰던 노동탄압과 노사관계의 역학구도에 커다란 역할 변화가 생긴 것이다. 우리가 눈여겨 봐야할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신노동탄압의 황금삼각형, 자본가의 돈-사설경비의 폭력-공권력의 방조

 

MB정부 이후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는 새로운 노조말살 시나리오에는 자본, 국가 공권력, 사설용역업체 세 주인공이 등장한다. 자본이 밑천을 던져주면 사설경비업체가 노동자에 대한 폭력으로 화답하고 국가 공권력이 배후에서 이들의 행태를 묵인, 방조, 지원하는 황금삼각관계가 이 이야기의 뼈대다.

 

주목할 점은 10여 년 전에는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 혹은 그들을 대신해 앞장섰던 국가 덕분에 굳이 나설 필요가 없었던 자본이 스스로 주연 타이틀을 달고 무대에 올랐다는 점이다. 한 손에는 공격적 직장폐쇄, 다른 한 손에는 사설폭력이란 무기를 쥐고.

 

누구의 말처럼 권력이 진정 국가로부터 시장으로 넘어갔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국가와 자본의 분업 및 역할 변화를 둘러싼 침묵의 카르텔이 존재하고 있고, 이들이 노동탄압이란 레이스에서 바톤터치를 했다는 점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리해고제 도입, 집시법 개악, 비정규직법 시행을 비롯해 최근에도 이미 정부가 나서서 복수노조 및 교섭창구단일화, 타임오프제를 시행하고 민주노조의 기반을 침식시킬 각종 제도적 장치들을 구비해둔 마당에, 이제 주인공이 나서서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면 될 일이라 생각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게다가 자본은 노동자에 대한 테러와 공포정치를 주력무기로 들고 나왔다. 공격적 직장폐쇄와 사설경비업체를 통한 물리력 행사, 복수노조 설립 주도, 조합원과 가족을 대상으로 한 각종 회유와 협박, 무선상 메시지와 집단 채팅방을 통해 진행된 정보통제와 노노갈등 유도, 손배·가압류 등의 패키지를 수단으로 하는 유무형의 테러리즘은 현장 노동자들로 하여금 고용 및 생활에 대한 위기감뿐만 아니라 상해와 생존에 대한 공포감까지 조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핵심에 있는 공격적 직장폐쇄와 용역 동원은 노무컨설팅업체와 사설경비업체 업계에 호황을 일으키며 노조파괴를 주업으로 삼는 전문직(?)들을 양산하고 있다. 이들이 분규사업장 일감을 로또 중의 로또로 여긴다는 것은 앞으로도 언제든 일확천금을 꿈꾸는 하이에나들이 법과 제도와 사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돈 냄새를 쫓아 폭력적인 노동탄압 현장으로 몰려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반증한다. (일례로 2009년 쌍용차 파업기간동안 투입된 두 개 용역업체에 쌍용차가 지급한 돈은 83억 원이다. 돈 없다고 아우성치던 기업이 스스로 임금축소 방안과 무급휴직을 제시했던 노동자를 때리고 내쫓기 위해 쓴 돈이다. 그 중 자본금이 1억에 불과했던 한 업체는 5개월 동안에 62억이란 어마어마한 매출을 올리며 크게 한 탕 하고 곧바로 자진폐업했다.)

 

 

노조운동 내부의 성찰과 새로운 연대의 계기

 

하지만 문제는 자본-국가의 노사관계·노동탄압 전략이 탈바꿈했고, 돈 냄새를 맡은 노동탄압 전문가들이 개떼처럼 몰려들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들의 노조무력화 시도에 민주노조가 계속해서 흔들리고 무너져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을 헤쳐갈 수 있는 안팎의 수단이 아직까지 뚜렷하게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에겐 시리고 시린 상처지만 그들에게는 벤치마킹하고 싶은 성공사례다보니 앞으로도 비슷한 방식의 노동탄압이 전개될 가능성 또한 지극히 높다.

 

물론 최근 에스제이엠 용역침탈을 계기로 제도적 변화가 모색되고 있기는 하다. 아직까지 결과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오는 정기국회에서 공격적 직장폐쇄를 막기 위한 요건 강화 법안이 상정될 예정이고 사설용역의 폭력침탈을 막고 사용자 책임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경비업법 개정논의 또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법제도적 변화만으로 작금의 상황이 반전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그것을 경험했든, 경험하지 못했든 이미 현장 노동자들에게 공포가 깊이 각인돼있는 상황에서 몇 차례의 성공을 통해 재미를 맛 본 사용자들의 자신감 넘치는 엄포는 충분히 위력적이기 때문이다. 굳이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노조를 흔들 수 있고 또 어떤 신종수법이 등장할지도 알 수 없다. 게다가 수틀릴 때 다시 사설폭력을 동원하더라도 국가 권력이 뒷배를 봐줄 것이니 자본이 손해 볼 일은 하나도 없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삐걱거리는 집안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노동조합의 뿌리와 기층에서부터 최상층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조직체계, 구조, 전략, 소통, 문화, 정서가 가깝게는 산별 노조를 출범시키던, 멀게는 노동자 대투쟁을 사수했던 시기의 끓어오르던 열정과 기운들을 담아 안을 수 있는 그릇인지 철저하게 성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해서 불어올 외풍에 흔들리고 침식될 것이다. 올해의 금속산별 15만 공동투쟁이란 성과가 앞으로 더욱 더 빛을 발휘하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덕담이 아니라 바로 셀프 채찍이라는 말이다.

 

유무형의 테러리즘을 통해 자본이 만들어내고 있는 공포와 두려움들을 우리가 분노로 승화시키고 모아낼 수 있다면 앞으로의 싸움은 충분히 승산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힘은 분명 탄탄하게 갖춰진 운동 내부로부터 나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