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기본권 투쟁 이후, 어디로 갈 것인가
노동기본권 투쟁 이후, 어디로 갈 것인가
- 한국노동운동연구소 부소장 정일부
지금의 투쟁을 이겼을 경우 조직은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금속노조의 여름은 항상 뜨겁다. 지역을 돌아보면, 노동기본권 쟁취와 임단투로 바쁘고 모두 열심들이다.
그러나 당면한 사업과 현안투쟁을 하고 나면 어디로 가는 것인가, 어떤 일을 할 때는 그 일의 끝을 볼 줄 알아야 하고 또한 그 일을 넘어서 근본적인 배경과 중장기적인 전망을 가늠하면서 추진해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현재의 노동법 관련 단협투쟁도 마찬가지다. 지금 하고 있는 투쟁들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부을 때 그 성과와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온 힘을 다해 싸워서 이겨냈을 경우 그것의 의미는 무엇이고 그때 조직은 어디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인가. 주체들의 상태와 조직의 발전전망을 가지고 짚어야 할 대목이다.
먼저, 금속노조의 조직활동이 심각하게 취약해졌다는 지적이 오래 전부터 이야기되어 왔다. 조합원들의 노조활동 경력이 보통 10여 년이 넘었고, 노동조합의 교육‧선전이나 투쟁지침 등이 변한 게 별로 없다 보니, 조합원은 교육이든 투쟁이든 시작할 때부터 그 끝을 알고, 그래서 자꾸 불참하게 되는 것이 반복되고 있다. 또 지회는 사업장의 내부 문제, 지부는 각종 현안 문제들에 얽매여서, 열심히는 하지만 간부들의 피로도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활동가들의 재생산체계가 무너져 있는 상황이다. 활동가들조차 노동운동에 대한 자기전망이 불투명하다 보니, 더 이상 온몸을 실어 노동운동을 하지 못하는 상태들이다.
금속노조 주체들의 상태로 볼 때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당면투쟁을 성과 있게 마무리하더라도 항상 현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재의 상태를 맴돌 뿐이다. 무엇보다 조직주체들의 활동을 강화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때이다.
금속노조를 강화하려면 노동조합 활동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노동조합 조직활동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노동조합 활동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환이 필요하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래의 민주노조운동이 대기업‧정규직의 임단투를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이었다면, 이제는 노동자의 삶의 문제를 가지고 노동자계급 전체를 묶어나가는 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 노동조합의 중심을 기업 안에 둔 채로 단지 연대의 폭을 확장하는 문제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이것은, 작업장에서의 인간소외와 비민주적인 작업장, 나아가 교육‧건강‧주거‧생태 등 노동자의 삶의 문제를 전면화하는 운동이다. 이를 위해서는 임금‧기업복지 등 시장임금과 사회복지가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양 측면임을 통일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기업내의 요구로 제한되고 기업별로 분리되었던 기존 운동방식을, 이제 기업을 넘어선 운동방식과 사회복지 쟁취투쟁으로 전면적으로 바꾸어나가야 한다.
노동조합이 나아갈 방향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성격을 봐도 분명하다. 자본주의 하에서 작업장의 생산조직들은 임금노동자들의 관계를 개별적으로 나누어버린다.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이 맺고 있는 일차적인 관계는 경영자와의 관계이며, 작업장의 다른 노동자와는 어떠한 법적인 관계도 갖고 있지 않다. 자본주의 하에서 모든 생산과정은 노동자들간의 상호관계를 단절시키는 것이며, 결국 그것은 인간을 소외시키는 것이다. 자본가들은 임금과 고용을 무기로 노동력들을 작업장 안에 얽매이게 하는 한편 이데올로기와 정치권력을 틀어쥠으로써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이에 대항하여, 소외된 노동을 극복하고 민주적인 인간관계를 만들어내려면,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서 사람들간의 인간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그것은 작업장 안팎을 하나로 하는 과정이며, 그 출발은 지역공동체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공동체에서는 공통의 경험과 교육 및 사회적 연대 정도에 따라 계급의식이 높아지고 따라서 노동자들의 단결과 여타 계급‧계층과의 연합이 가능해지게 되는 것이다.
사회운동을 추진하려면 주체를 세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처럼 지역차원의 사회운동을 제대로 추진하려면 주체를 분명히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금속노조의 사회적 영향력은 지역사회에서 절실한 요구를 중심으로 하나하나 추진해나갈 때 커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나아가려면, 노동자의 문제를 지역사회에서 의제화하고 지역에 맞는 구체적인 의제 개발을 주관하는 단위가 필요하다. 또 지역 내 제 단체와의 연대활동, 지방정부와의 교섭‧투쟁 등을 일상적으로 추진할 단위가 필요하다. 이렇게 금속노조 전체차원에서, 각 지역지부에서 지역사업을 담당하는 부서의 설치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이와 함께 지부 주관 하에 부서별 모임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업장을 넘어 교류를 하더라도 지회장들끼리 하는 모습이 주로 많은데, 일상활동을 하는 상집‧대의원들이 지역 차원에서 만나 사업장을 넘어선 교류와 토론‧학습‧실천을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업별 대의원체계를 넘어서 지역 차원의 현장위원체계로 전환하는 일이다. 현장위원체계는 기업별 장벽을 넘어서 지역차원으로 모여서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반 쟁점과 활동들이 기업의 제한된 울타리를 넘어서게 된다. 현장위원체계로 조직이 운영되면 작업과정과 교육‧건강 등 노동력 재생산에 관한 제반 문제를 폭넓은 사회적인 의제로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노동계급내의 단결과 여타 계급‧계층과의 연대로 확장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나아가는 데 관건은, 지역지부가 금속노조 제반 활동의 중심에 제대로 서느냐,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 금속노조의 지역지부는 그 자체 산별노조 제반 활동의 추진주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