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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에 대한 노동자 통제의 꿈을 다시 지피자

생산에 대한 노동자 통제의 꿈을 다시 지피자


                        이종탁 정책연구원 자문위원(산업노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최근 몇몇 사업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사용자들의 공세들은 금속노조와 노동자들에게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단순히 금속노조 탈퇴 공장을 일컫는 것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사실 더 심각한 문제는 생산 현장에 대한 자본의 공세이다. 생산량 달성을 위해 현장을 압박하는 단순한 통제가 아니라 투자를 줄이면서 생산의 유연성과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는 일로 수익 경영을 강화하는 일이 거의 모든 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과정과 노조에 대한 압박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그 파괴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노동조합이 노동 유연성에 신경을 쓰고 있을 때, 정리해고와 인력조정을 막는데 온 힘을 집중하고 있을 때, 자본은 생산을 유연화하고 있다. 노동조합에서 관심을 기울였던 해외진출 같은 단순한 외연 확장이거나 바이백(Buy Back)과 같은 저열한 차원의 유연화가 아니다. 생산 시스템의 변화를 통해서 노동의 유연화와 결합한 생산성 향상 체제를 구축하는 모습이다.


생산 유연성 양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투자를 하는 경우와 투자를 하지 않는 경우가 그것인데, 두 경우 모두 정규직 직원을 새롭게 채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 다만, 투자를 하는 경우는 새로운 설비에 기존 인력을 배치하면서 구 설비에는 비정규직을 투입하거나 신규 설비를 중심으로 가동하면서 구 설비는 필요한 경우에 필요한 만큼만 가동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구설비를 아예 외주화하거나 도급화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신설비에 인력을 투입할 때에는 기존 설비에 투입된 인력보다 훨씬 적은 인력을 투입한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엄청나게 생산성이 높아진다. 당연히 그에 따른 산출량도 많아지는데, 이것이 ‘성과’로 이어지면서 신설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더 많은 ‘성과급’을 가져갈 수 있다. 노동조합이 이 단순한 변화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순간, 어디에서 일을 하느냐가 곧 성과급의 차이로 이어지고, 그것은 노동자 내부를 분할하고 분열시키는 핵심적인 기제가 된다.


투자를 하지 않는 경우에도 양상은 비슷하다.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현장의 노동자들도 너무나 잘 아는데, 이것이 기업 경쟁력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것 또한 잘 안다. 그러니 투자가 멈춘 사업장일수록 물량 확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고 물량이 줄어들 때, 노동자들은 심각한 고용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에서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는 일은 더 어렵게 때문에 노동자들의 자발적 노력이 나타난다. 우선, 자연퇴사자들의 자리에 신규 인력을 채우는 일은 쉽게 제기하지 못한다. 그 다음으로 노동자들은 더 많은 일, 더 많은 노동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일감이 많은 라인이나 부서로 사람들을 옮기고 일이 있는 라인과 설비 중심으로 인력을 운영하는 일 또한 큰 저항 없이 이루어진다. 그 결과 투자는 없는데 생산성은 높아진다. 노동자 1인당 생산량이 증가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이런 결과를 받아들이면서 고용을 유지하고, 때로는 성과급으로 그것을 부분적으로 보상받는다.


이러한 양상은 업종을 뛰어넘는다. 자동차만의 일이 아니라 철강과 조선, 전자 등 모든 업종에서 나타난다. 민주노총 사업장만이 아니라 한국노총 사업장에서도 비슷하다. 노동자들은 생산과 생산성 체제에 묵묵히 반응하면서 자신의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으로 현실에 대응한다.


이러한 양상은 경제위기가 일상화하고 자본주의의 불안정성, 한국 경제의 불안정성이 그 양상을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더욱 확장될 것이다. 노동자들이 기업의 상태에 따라 자신의 고용 상태를 짐작하고, 기업의 수익이 높을수록 자신의 성과급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는 한 말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민주노총 차원에서 추진했던 것처럼 고용보험제도를 개선하고 확충해서 노동자들이 실업의 공포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정규직으로 고용되어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큰 효과로 이어지기 힘들다. 금속노조가 선도하고 있는 노동시간단축이나 교대제 변경도 하나의 방법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물량이라는 현실의 조건 앞에서 노동시간단축으로 고용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노동조합 차원에서 기업의 물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아주 단순하면서도 심각한 질문은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노동조합 모습으로는 물량의 문제는 전혀 해결할 수 없다. 기업별 경쟁을 고스란히 인정하고, 공장별 물량 배분의 주도권이 자본에게 있는 한 말이다. 아마도 자본진영의 논리대로라면 물량과 생산의 배분에 대한 권한은 경영권에 속하는 영역이거나 자본의 소유권에 관한 영역일 터이다. 그러므로 자본 진영에서는 이것 자체가 노동조합과 교섭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그러한 논리를 받아들일 이유는 없지 않은가? 신자유주의를 반대한다고 목청을 높이려 한다면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놓은 경쟁과 성과주의 방식이 빚어낸 양극화 현실에 목청을 높여야 할 것이며, 그것을 자본 스스로 시정하지 않는다면 노동자는 단결된 자신의 힘으로 경쟁과 성과주의 체제를 해체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 일이 필요하다면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생산에 대한 통제를 말할 수밖에 없다. 생산의 분배와 생산량의 사회적 결정. 그 속에서 기업의 경쟁을 제한하는 새로운 체제와 방식이 아니고서는 유연화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노동자를 분할하고 분열시키는 현실을 절대로 극복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