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5년 전의 그 동지들은 어디에 있을까?
25년 전의 그 동지들은 어디에 있을까?
김태현(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25주년이 된 87년 노동자대투쟁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독재정권 타도와 민주헌법쟁취를 외치던 뜨거운 6월 항쟁이 전국을 물들었다. 그리고 소위 독재정권의 직선제 수용과 더불어 민주항쟁이 사그라졌을 때, 홀연 노동자대투쟁의 불길이 타올랐다. 7월 5일 현대엔진 노조결성 사건을 시발로 마산, 창원, 부산 등을 거쳐 수도권으로까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87년 7월부터 10월말까지 투쟁은 전국적으로 3,311건에 120만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참가하였다. 투쟁의 강도는 그 이전 10년간 투쟁을 합친 것에 비해 무려 수로는 2배, 쟁의참가자수로는 5배를 넘었다. 당시 10인 이상 사업체 노동자 330만명의 1/3이 넘는 노동자들이 참가한 것이다. 이것이 위대한 87년 노동자대투쟁이다.
노동자대투쟁은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를 외쳤고 대대적인 노동조건 개선투쟁을 벌였다. 당시의 작업장에서 노동자는 군대식 규율에 사로잡힌 죄수의 신분과도 같았다. 오죽하면 당시 투쟁요구중에 두발자유화까지 있었을까? 노동자라는 이름은 불순한 단어였고 제조업 노동자들의 별칭은 공돌이, 공순이였다. 투쟁의 결과 노동자들은 위대한 생산과 역사의 주인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되찾았다. 6월 항쟁이 정치적 민주화에서 그친 것을 노동자대투쟁은 사회민주화로 물길을 더욱 확산시켰다.
또한 노동자들은 자신의 투쟁의 무기인 민주노조를 탄생시켰다. 기존의 노조들은 조합원에게 군림하는 노조, 정권과 자본에 빌붙는 소위 어용노조였다. 이에 대비되는 민주노조는 정권과 자본으로부터 자주적이고 전투적인 노조, 조합 내부 운영에서의 민주성과 노동자간의 연대를 핵심으로 하였다. 정권과 자본의 탄압에 맞선 개별 민주노조의 한계를 느낀 민조노조들은 마산창원노동조합연합을 시발로 한 지역노동조합협의회와 사무노련을 필두로 한 업종별 연맹·협의회를 두 축으로 하여 그룹별 노동조합협의회까지 연대체를 발전시켰다. 전노협과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를 거쳐 마침내 민주노총이라는 전국적 총단결체를 결성한 것이 오늘의 민주노총의 살아있는 역사이다.
민주노조의 간부들은 투쟁속에서 단련되고 자신을 희생하면서 조합원을 위해서 일하는 일꾼으로 인정받았다. 식칼테러를 당하고 경찰에게 두들겨맞고 구속되고 해고되어도 조합원을 위해 헌신하는 동지! 만나면 반갑고, 힘들어도 서로를 지켜주는 의리의 인간들, 학습하고 스스로를 단련하는 새로운 인간들이었다. 이런 노동자들의 투쟁에 의해 노동자들의 임금은 상승하였고, 빈부격차는 축소되었으며 한국사회는 급격히 민주화되고 대중소비사회로 변신하였다. 공장의 작업장 질서도 서서히 민주화되기 시작하였고 군대식 통제도 점차 이름도 낯선 성과급이니 보너스니 팀제니 등등의 새로운 경영방식으로 바뀌어갔다.
25주년이 지난 지금의 노동현실
25주년이 지난 지금 노동자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탄압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하던 민주노조운동은 96-97년 노동법개정 총파업투쟁이라는 화려한 불꽃을 남겼지만 그 다음 해 IMF 외환위기 이후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민주노총이 합법화되고 한국노총과 규모를 나란히 한다지만 조직률은 87년 이전인 86년 수준보다 떨어져 한 자리수로 내려앉았다. 노동자 내부의 격차는 더욱 심해졌다. 대기업과 공기업 등에서 근무하는 정규직, 소위 상위 10% 수준을 제외하면 비정규직, 중소영세기업의 노동자들은 거의 절반 수준의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과거에는 대기업, 중소기업, 정규직, 비정규직 가릴 것 없이 평준화된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었다면 지금은 10%의 대기업 정규직과 나머지 다수의 비정규, 중소영세 노동자로 노동자들이 나누어지고 파편화된 상태이다.
대기업 노동자들은 상대적 고임금을 받는다지만 법이 정한 주12시간 시간외 노동조차 어기는 탈법적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조합원들은 자신의 투쟁 이외에 같은 노동자투쟁에 대한 연대도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 연대의 기치는 빛바랜 채 남루해져있다. 대기업에는 왜 그리 고만고만한 현장조직들은 그리도 많은지, 조합원들이 보기에는 그 나물에 그 밥인 것으로 보인다.
투쟁의 무기인 민주노조가 지금은 관료화되고 노령화되고 관성화된 노동조합으로 비쳐지고 있다. 노조 권력을 둘러싼 정파적 투쟁도 노조에 대한 불신에 한 몫한다.
가장 큰 변화는 자본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낡은 관성과 풍토이다. 엄청난 차입금으로 대규모 투자와 고용을 늘였던 재벌은 잽싸게 변화하였다. 더 이상 고용을 대대적으로 늘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체계적으로 줄이고 있다. 300인 이상 대기업은 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고용을 100만 명이나 줄여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도 안된다. 소위 아웃소싱 등 비정규직화로 인해 노동자간 분열을 통해 노조의 투쟁력 자체를 취약하게 만들었다.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하여 전세계에 사업을 분사화하고 원하청 불공정 거래를 통해 본사 정규직의 임금은 올려주더라도 얼마든지 이윤을 늘리고 압력을 외부화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다. 대기업은 이제 일본, 미국의 기업보다도 차입금 비중이 낮을 뿐 아니라 엄청난 이윤을 투자하지 않고 기업 자체에 쌓아두고 있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우리는 산별노조를 건설하였으며 산별교섭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그러나 여전히 기업별 투쟁에 기반한 상황에서 산별다운 의제를 가진 투쟁으로 돌파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무늬만 산별’이라는 비판과 비웃음의 대상이 될 뿐이다.
그 많던 25년 전의 그 동지들은 어디에 있길래 지금 민주노조운동은 갈피를 못잡는가?
대투쟁의 촛불을 밝힌 현대엔진의 권용목 동지가 변절하여 뉴라이트로 갔듯이 다 변절하였는가? 아니면 현대중공업처럼 꼼짝없이 자본에 순응하여 국민노총의 일부가 되었던가? 그도 아니면 권력을 탐하여 정치적으로 진출하여 그렇게 된 것인가?
일부는 정치로 진출하고, 일부는 변절하고, 일부는 다른 일들을 하지만 가장 많은 동지들은 그대로 현장에 있다. 노동자에게 여전히 자신의 생존은 노동에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은 연대니 투쟁이니 하는 고차원적 주제보다는 어떻게 하면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면서 생활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자식들의 더높은 대학 등록금에 고민하고 그 자녀들이 취직하지 못하는 현실과 취직하더라도 비정규직에 허덕이는 현실에 절망하면서 자신은 잔업을 통해 임금을 높혀서 대비하고자 한다. 정년 퇴임후와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한국의 낮은 사회복지에 절망하며 또 철야나 휴일노동으로 한푼 더 임금을 벌고자 한다. 물론 잘못된 현실에 저항하고 투쟁도 해보지만 25년간의 짬밥 속에서 그리 쉽게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적당히 투쟁하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그렇게 노병은 서서히 다음 세대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다만, 25주년을 맞이하여 25년전의 그 초심과 그 벅차오르던 감격이 어떻게 가능했던가를 다시 한번 되살려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에게 그 하나될 수 있게 하였던 것이 무엇이었던가를 고민하면서, 지금의 운동을 새롭게 되살리는 고민을 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또 젊은 동지들도 87년에 투쟁했던 간부나 동지들을 찾아서 그 교훈을 들어보는 것도 어떨까? 자신의 역사를 망각하는 이들에게는 자부심과 미래의 발전도 없는 법이다. 우리는 지금 현재 속에서 살아있는 역사를 배우고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교훈을 되살리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