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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 해결, 전략을 바꿔야 한다

금속노조연구원   |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 해결, 전략을 바꿔야 한다

 
이 남 신(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13년 3월 기준 비정규직 노동자는 814만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45.9%이다. <그림1>에서 보듯이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가 시작된 2000년 이후의 추이를 살펴보면, 비정규직 비율은 꾸준한 감소세를 보여 왔으며, 비정규직의 절대규모는 2007년까지 가파르게 상승한 뒤, 감소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비정규직 규모 감소의 추세는 2008년을 기점으로 정체되는 양상을 띠며 이후 현재까지 주로 임시직을 중심으로 일정 범위 내에서 증가와 감소를 반복하고 있다. 그 결과 2007년 874만명을 정점으로 주기적으로 등락하고 있지만 800만명대 비정규직 규모가 구조화되고 있다. 불법파견과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제대로 통계에 잡히지 않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현재 한국은 1천만명에 가까운 비정규직 노동자가 고용불안과 차별의 굴레에 갇혀 고통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림 1> 비정규직 규모와 비율 추이, 2000.8~2013.3 (단위: 천명, %)
 
 

자료 출처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비정규직 규모 못지 않게 심각한 문제가 임금 격차 심화다. 2013년 3월 기준 정규직의 평균임금은 283만원이며 비정규직의 평균임금은 140만원으로 나타나 여전히 정규직 대비 절반에도 못미쳤다. 매년 전체 임금노동자들의 월평균임금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으나, 정규직의 월평균임금 인상폭이 매년 비정규직을 앞지르고 있어 <그림2>에서 보는 것처럼 단 한해도 예외없이 꾸준히 임금 격차가 커져왔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기업별 단위노조 중심의 산별 노조가 주도해 관철시키기엔 대단히 어려운 난제임이 분명하지만, 현재 조건에서도 임단협 협상과 사회연대운동을 통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줄이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인데 노동시장 양극화가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된 데는 민주노조운동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거기에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 최저임금도 못받는 비율이 29.9%로 200만명 규모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나 절대빈곤층마저 양산되고 있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까지 왔다.
 
<그림 2> 고용형태별 월평균 임금수준 추이, 2000.8~2013.3 (단위: 만원)
 
자료 출처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지난 십수년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한 민주노조운동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나름대로 애써왔다. 사회적 고립을 자초한 전략적 방향 상실과 정규직 중심 임단협 활동으로 계급대표성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기도 했지만, 현장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비정규직 문제 개선과 해결을 위한 노력이 있어왔다. 무엇보다 비정규직 당사자들의 절박한 생존권 쟁취를 위한 처절한 투쟁에 힘입어 비정규직 문제 우선 해결에 대한 전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돼 공공 부문에선 이미 비정규직 정규직화 모델 마련이 대세로 자리잡았다. 서울시의 경우 무기계약직을 넘어선 새로운 정규직 고용형태인 공무직 모델로 간접고용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결정해 신선한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 이런 흐름과 양상 속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선두 주자로서 조직노동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지만, 현실에선 천덕꾸러기로 취급받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오랜 기간 정권과 총자본의 포위와 고립 전략에 휘말려 풍전등화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는 민주노조운동이 언제까지 이렇게 넋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지금까지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가장 깊은 고민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다양한 시도를 그치지 않고 해온 조직노동 내 경험과 사례를 토대로 근본적인 평가와 함께 방향 전환을 모색해야 할 때가 왔다고 판단한다. 관련해서 다소 돌발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제언을 하고자 한다.
 
현재 한국 사회의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파격적 조치가 절실하다. 그 핵심은 사용자 책임 회피의 온상이 돼온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사용 금지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비정규직 가운데 가장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해 있으며 가장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는 고용형태다. 간접고용이란 용어는 직접고용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임의로 설정한 것이고 엄밀한 의미에서의 법률용어는 아니다. 간접고용이란 개념을 가장 넓게 이해하면, 기업의 필요에 의하여 타인의 노무를 이용하지만 노무제공자와 근로계약을 직접 체결하지 않고 제3자에게 고용된 노동자를 이용하는 고용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간접고용의 유형을 법적인 개념으로 파악하면 근로자공급, 근로자파견, 도급, 위임을 들 수 있다. 현실에서는 용역, 파견, 민간위탁, 사내하청, 하도급, 아웃소싱, 소사장제 등이 간접고용의 범주에 포함된다.
 
이렇게 다종다양한 간접고용 비정규직에 만연한 중간착취 제어와 근절 없이 좋은 일자리는 현실에서 불가능하다. 이른바 풍선 효과로 불렸던, 2년 이상 기간제 노동자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기 위해 외주화로 간접고용을 악용한 사례를 얼마나 많이 목도했는가. 근래 급증하고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문제도 모호해진 사용자 책임의 확산으로부터 시작돼 위장자영업자로 전락해 노동기본권을 박탈당한 것이므로 간접고용의 폐해가 확대 심화된 것이라 할 것이다. 결국 사내하청 불법파견 문제로 전국적 쟁점화되기도 한 간접고용 문제를 최우선으로 매듭짓지 않고선 비정규직 문제 개선은 민간 영역에선 한발짝도 진전되기 어렵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개선하고 해결할 것인가다. 조직노동의 힘은 취약하고 노동자의 직접고용 원칙에 대한 자본의 저항은 완강한데다 그들을 대변하는 세력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공 부문 상시지속 업무 정규직화 공약도 실제로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배제한 정책임이 밝혀졌다. 작년 양대 선거의 결과로 간접고용 비정규직 사용 금지는 더욱더 힘겹고 요원한 과제가 된게 사실이다. 심지어 대법원 판결도 묵살한 채 무데뽀로 버티는 한국 최대 제조업체 현대차 정몽구 회장의 행보를 보면 절망의 그림자가 짙어지지 않을 수 없다. 한편 비정규직 남용과 양산을 조장해온 권력과 자본의 대척점에 선 조직노동과 비정규운동 주체들 사이에선 현실과 동떨어진 비정규직 철폐 주장이 드세다. 노동의 주체적 역량과 객관적 정세를 감안한 실질적인 비정규직 문제 개선과 해결 로드맵에 대한 착안과 고민 없이 반대와 저항만으로 자족하는 관성적 태도가 도처에서 걸림돌이 되고 있다.
 
단언하건대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비정규직 고용유형들 가운데 가장 먼저 폐지되어야 할 비정규직 고용 형태이다. 현재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전체 피고용자의 10% 이상을 점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현실에서 명확하게 밝혀졌듯이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철폐 구호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며, 정치적 기회구조와 주체적 조건을 고려한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를 비롯한 민주노조운동 진영의 핵심 조직주체들이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단기간 내에 없앨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단계적 감축·소멸 전략을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마땅하다. 일거에 뒤집는 혁명적 방식의 비정규직 철폐 전략과 담론은 실제 비정규직 당사자들의 이해와 요구에 종종 반한다. 즉각 철폐를 목표로 한 투쟁은 불모의 흥분과 미미한 성과로 일단락되기 일쑤여서 대중적인 공감을 얻기가 어렵다. 그저 특정 정파나 활동가 집단의 전유물이 돼 조직노동과 비정규 당사자 투쟁의 사회적 고립을 자초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전체노동자의 10%를 차지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내적 구성은 파견노동 0.5%, 용역노동 4.4%, 호출노동 5.0%이다(측정오차 감안한 재구성비).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증가속도는 호출노동, 용역노동, 파견노동의 순서를 보이고 있어 간접고용 비정규직 가운데 열악한 부분일수록 상대적 비중이 더 클 뿐만 아니라 더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작년 민주노총의 핵심 입법 과제로 등극한 파견법 철폐는 투쟁 구호로서만 합당할 뿐 입법과제 쟁취 전략으로선 현실 정합적이지도 않고 정규직 중심의 책임 회피 적당주의 전략에 불과하다. 현실에 맞서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총력을 다해 쟁취해야 할 요구를 정립하지 않고 낡고 녹슨 무기를 다시 꺼내든 격이다. 이런 전철을 두 번 다시 밟지 않아야 한다.
 
간접고용 폐지를 지향하되 단계적 감축·소멸 전략의 관점에서 입법정책대안들을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실질적이다. 십수년의 비정규 현장투쟁 및 비정규 권리보장 입법 투쟁과 조직화 성과에 바탕해 이제는 현실에 굳건하게 발딛고 선 전략이 정립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최우선 과제인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 해법과 로드맵을 둘러싼 합리적 공론과 논쟁의 장에서 철폐주의를 넘어설 수 있기를 기대하고, 조직노동의 주축인 금속노조 내에서도 쟁점을 둘러싼 치열한 토론이 생산적인 방식으로 전개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