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역지부 소속 사업장들의 변화와 노동조합의 대응전략
금속노조연구원 |
2013.08.22 00:00
지역지부 소속 사업장들의 변화와 노동조합의 대응전략
한지원(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노동운동은 노동과 자본의 상호작용 속에 발전한다. 노동운동의 발전전략은 조합원들의 상태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더불어 자본의 변화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금속노조 경기지부는 본 연구소와 함께 3개월에 걸쳐 지부 소속 사업장들의 경영상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동시에 지부·지회의 주체적 상황을 분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작년 경기지부가 지부의 명운을 걸고 싸워 승리한 SJM 투쟁이 프로젝트틀 진행한 계기가 되었는데, 투쟁 승리 이후 고조된 지역 노동운동의 다음 전망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경기지부와 노동자운동연구소가 진행한 이 프로젝트는 가능한 지회 담당자들이 연구의 주체가 되고 나아가 이후 지부, 지회 운동의 전망을 스스로 밝힐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전문 연구자가 몇 가지 데이터와 간담회를 분석하고, 설문조사 분석으로 보고서를 만들 수도 있지만, 많은 금속노조 간부들이 수차례 경험했듯이 이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은 대부분 노동조합 주체들 스스로의 것이 되지 못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16개 지회(분회)와 각각 세 차례 이상 지회 간부 간담회가 있었고, 대부분의 지회(분회)에서 조사 결과를 가지고 조합원 교육을 진행했다. 지부 운영위원회에서는 격주로 프로젝트 보고와 토론이 이뤄졌으며, 지부 대의원, 확대간부대회 등에서 프로젝트와 관련된 교육과 토론이 진행되었다. 지부 임투 설문조사에 프로젝트 관련 질문을 몇 가지 추가해 별도의 품을 들이지 않고 조합원 설문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보고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지역지부 차원의 변화와 대응전략을 분석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16개 사업장 차원의 변화와 대응 전략을 각각 분석한 것이다. 보고서의 모든 내용을 소개할 수는 없겠지만 지부와 지회 차원에서 나타나고 있는 몇 가지 중요한 지점들을 아래와 같다.
첫째, 소위 중견기업이라고 불리는 사업장들의 변화로 인해 지부와 지회 운동 모두가 큰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재벌 대기업은 아니지만 중소기업이라 부르기에는 꽤 큰 규모의 기업들이자, 완성차의 1차 벤더인 이들 사업장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빠르게 성장했는데, 이 과정에서 계열사가 급격히 늘어나는 중견기업의 준재벌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지회가 상대해야 할 사업주는 이제 금속노조 사업장의 사장이 아니라 십 수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의 회장이 되었다. 10년 전 경기지부 사업장의 지회들은 사업주가 거느린 회사 전체를 모두 합쳐도 종사자의 60%를 차지했었다. 하지만 현재 계열사 수는 엄청나게 증가한데 반해 지회는 여전히 예전과 같은 사업장에만 머무르고 있어 이 비중이 20%로 쪼그라들었다. 지회사 사업주를 상대할 때, 사업주 입장에서 보면 이제 금속노조는 자기가 거느린 종사자들의 20% 밖에 움직일 수 없는 존재가 된 셈이다. 지회 교섭력이 조직력과 상관없이 구조적으로 약화되는 상황이다.
이 계열사들은 금속 노조 회피를 목적으로, 내부거래를 통한 부당이득 취득을 목적으로, 또는 지분 승계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많은 사업주들이 신규 아이템 수주 시 새로운 법인을 세워 금속노조가 강해지는 것을 막았다. 금속노조 파업에도 중요한 아이템은 이제 영향을 받지 않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내부거래를 통한 부당이득 취득을 위해서 계열사 수를 크게 늘린 사업장들도 많았다. 10년 전 계열사가 3개에 불과했으나 현재 40개에 이르는 사업장도 있는데, 이 회사는 계열사의 절반가까이가 정체가 불분명한 기업들이다. 최근에는 70년대 기업을 세운 사업주들의 나이가 60~70세가 되어감에 따라 2세 또는 3세에 기업을 넘기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계열사들도 늘어나고 있다.
금속노조는 지금까지 자기 사업장의 조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힘을 쏟았지만 이들 계열사들은 사실상 방치해 두고 있었다. 하지만 한 법인의 대표이사가 아니라 그룹의 ‘회장’으로 커진 사업주들은 계열사 전체를 보면서 금속노조를 상대한다. 심지어 한 사업장의 회장은 계열사를 살리기 위해 금속노조가 있는 사업장에 의도적으로 파업을 유도하는 극악한 전략을 쓰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회가 그룹 전체를 보고 있지 못하면 사업주의 계략에 그대로 놀아날 수밖에 없다. 금속노조의 계열사 조직화 프로그램이 절실한 이유다.
둘째, 조합원 고령화, 신규채용 축소, 신규 조직화 사업장들의 불안정화로 인한 조합원 자연감소다. 경기지부 전체로 보면 5년 내 정년퇴직자가 조합원의 12%, 10년 내 퇴직자가 28%, 15년 내 46%에 이른다. 하지만 16개 사업장 중 2개 사업장을 제외하면 신규채용은 퇴직자에 비해 현격하게 적어 지난 몇 년간 조합원 자연감소가 계속 이뤄져 왔었다. 신규채용으로 인한 조합가입자 추이와 정년 및 기타 이유로 퇴직하는 조합원 추이를 두고 계산을 해보면 경기지부 조합원은 연평균 3% 매년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10년 후면 노조탄압이 없어도 약 1천여 명의 조합원이 경기지부에서 자연감소한다는 것이다.
경기지부가 신규조직화 사업에 덜 힘을 쏟았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 10년간 신규로 금속노조에 가입한 사업장은 35개에 이른다. 하지만 이 사업장 중 조합원 절반 이상을 유지하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사업장은 4개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사업주의 탄압이나 회사 도산으로 조직이 심각하게 약화되었거나, 조합이 해산되었다. 금속노조 조직화 사업은 이런 점에서 보자면 신규사업장의 조직화만이 아니라 빠른 안정화를 위한 전략이 시급한 셈이다.
보고서에서는 지역지부와 관련해서 좀 더 많은 쟁점들을 다루고 있으며, 사업장들에 관한 분석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나, 본 칼럼에서 이 내용들을 모두 소개하는 것은 쉽지 않아 생략한다.
다른 금속노조 지역지부에서도 경기지부와 비슷한 방식으로 조사 분석 사업을 진행해 보기를 제안한다. 간부들이 생각하고 있지 못했던 위협들, 또는 고려하고 있었더라도 중요하게 의미부여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들을 찾아내고 함께 고민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사업장에서 구체적 경영쟁점과 노조의 전략을 세워내 추상적 노조 혁신이 아니라 조합원들이 발딛고 서 있는 곳에서부터 구체적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도 중요한 시점이다. 금속노조의 조직발전전략이 정체되고, 조합원들의 산별노조에 대한 긴장감이 바닥을 치고 있는 현재, 노동과 자본이 부딪히는 현장에서부터 변화를 모색할 때이다.